247장. 죽음의 꽃
‘저게 뭐지? 그 어떤 칼과 창도 들지 않는 무적의 갑옷이냐?’
염효가 미간을 찌푸렸다.
흑갑 돌격대의 갑옷은 천마혈군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호했고, 두 눈이 있는 곳은 투명하고 단단한 수정이 박혀 있어서 눈까지 안전했다.
흑갑 돌격대가 흑검을 가차 없이 휘두르며 진격하면서, 투석기들과 몇백 명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두껍고 단단한 나무토막이어도 흑검을 한 번 휘둘러 두 동강을 낼 수 있었다.
그 뒤로 투석기들이 30초도 되지 않아 전부 다 부서졌고, 흑갑 돌격대는 그대로 대형 쇠뇌 진열로 달려가서 1분 만에 쇠뇌 진열까지 박살 냈다.
이 과정에서 염효의 병사들은 계속해서 화살을 쏘았고, 전방위로 돌격대에게 달려들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두변의 흑갑 돌격대는 한 치의 지체도 없이 투석기와 대형 쇠뇌를 부수고 병사들을 죽였다.
두변이 투석기와 쇠뇌가 설치될 때까지 기다린 건, 일부러 허세를 부리려던 목적이 아니었다. 전쟁에 쓰이는 대형 병기는 쌓여 있을 때보다 설치 후 부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니까.
염효가 이 광경을 보고 경악했다.
‘저, 저것들은 뭐야? 저 갑옷은 무슨 갑옷이야?’
단단한 흑갑이 탐이 나 눈이 돌아간 염효가 소리쳤다.
“어서 가서 저놈들을 죽이고, 갑옷을 빼앗아 와라!”
병사들이 돌격대를 향해 홍수처럼 몰아쳐서는 그들을 빈틈없이 포위했다.
하지만 이 포위진도 30초 만에 뚫려버렸다.
병사들은 흑갑 돌격대가 흑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잘려나가는 벼처럼 힘없이 쓰러졌다.
이게 바로 흑검의 위력이었다.
흑갑 돌격대는 체력이 다 소진되기 전까지 거의 무적에 가까웠다.
이런 돌격대는 기마병이 돌진해서 상대해야 하는 방법뿐인데, 사방에 염효의 병사들이 깔려있던 터라 염효의 기마병이 가속도를 붙여서 돌진할 공간이 없었다.
흑갑 돌격대가 포위진을 가볍게 뚫은 뒤, 빠르게 천호소 대문 앞으로 돌아가서 대문 앞을 지켰다.
부아가 치밀어 오른 염효가 눈가가 찢어질 정도로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전군 공격하라! 천호소를 폐허로 만들어 버리고 엄당 잡놈들을 모조리 죽여라!”
두변이 냉소하면서 자그마하게 읊조렸다.
“염효, 네 진정한 재난은 지금부터다.”
두변이 가볍게 손짓하면서 명령했다.
“쏴라.”
그러자 그의 뒤에서 초화감유가 담긴 병 100개가 밖으로 우수수 날아갔다.
염효는 모를 것이다.
두변이 던진 건 단순한 병이 아니라, 지옥에서 온 죽음의 꽃이라는 것을.
콰과과광!
죽음 꽃이 굉음을 내면서 만개하기 시작했다.
콰과과광!
천지가 뒤흔들리고, 굉음이 백색부의 하늘을 덮었다.
무수히 많은 불꽃이 곳곳에서 터지고, 불꽃은 무엇이든 찢어 죽이는 죽음의 꽃이 되어 폭풍처럼 밀어닥쳤다.
두변을 포함해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에 완전히 압도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폭풍처럼 몰아닥친 그것은 쇠 파편, 못, 혹은 날카로운 금속 같은 것으로 병사들의 갑옷을 찢고, 뼈를 뚫고, 오장육부를 분쇄기처럼 갈아버렸다.
이건 전투가 아니라 일방적인 도살이었다.
천호소 앞은 마치 죽음의 신이 거대한 낫을 들고 병사들을 거침없이 베는 듯한 광경이 펼쳐졌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대살육이 시작되었다.
지금 이 순간, 염효는 눈앞의 광경을 보면서 온몸의 피가 차게 식었다.
조금 전에 흑갑 돌격대를 보게 되었을 때는 저들의 용맹함과 갑옷의 단단함에 전율과 탐욕을 느꼈을 뿐이다.
저 흑갑 돌격대의 무적 갑옷만 얻게 된다면, 6천 병마 중 절반을 잃어도 그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변이 죽음의 꽃을 피우는 순간, 염효의 모든 탐욕은 공포로 바뀌었다.
염효는 처음으로 자신이 패배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저건 또 뭐야? 저게 이 세상의 것인가?’
염효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자신 앞에 놓인 두 가지 선택을 생각했다.
계속해서 싸우거나, 모든 걸 포기하고 퇴각하거나.
아직 남은 병력을 이끌고 퇴각한다면 다시 훗날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퇴각은 곧 도망이었다.
열아홉도 안 된 엄당 고자 앞에서 꽁무니를 내빼는 건, 자신이 수십 년 쟁취했던 모든 걸 잃게 되는 것이고,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염효는 어렸을 때부터 출세하고 싶다는 갈망으로 간절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경성 무도원에서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무도 수련을 했고,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런데 무도원에서 수석으로 졸업했음에도 뒷배가 없다는 이유로 출셋길에 오르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군대에 입대한 후에는 무도원에서 열심히 배웠던 게 전부 소용없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됐다. 유명한 무장 집안의 자제들은 열세 살이 되기도 전에 이미 무도원에서 배우는 것들을 다 배웠다. 그래도 무장 집안 자제들이 무도원에 등록하는 경우는 딱 두 가지였다. 집에서 금이야 옥이야 하며 애지중지 키우는 공자이거나, 할 일 없이 돈을 쓰러 오거나.
이후에 염효는 무도 수련을 목적으로 북명검파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거의 노비처럼 갖은 고초를 겪은 뒤에야 무공을 전수 받을 수 있었다.
북명검파에서 힘들게 무공 조예를 쌓게 된 염효는 군위부의 거물 한 명을 의부로 삼게 되는데, 거기서도 그는 거의 개처럼 부림을 당했고 3년 동안 그 거물의 수발을 들었다.
당시 염효는 거물의 친자식들보다 더 말을 잘 들었고, 나중에 거물이 병상에 몸져누웠을 때 그의 변까지 맛보며 병세를 확인했다.
그렇게 그는 어렵게 실권을 쥔 천호가 되었고, 처음으로 병권을 쥐게 되었다.
그때 비록 그에겐 병사 3백 명뿐이었지만, 그는 천호 자리를 몹시 소중히 여겼다.
염효는 뇌물을 받지도, 뒷주머니를 채우지도 않고, 돈이 생기는 족족 군비에 쏟아부었다.
그 덕분에 다른 장군들의 병사는 삐쩍 마르고 힘이 없었지만, 그의 병사들은 하나같이 건장하고 용맹했다.
염효는 자신의 병사들에게 대우를 잘해주는 만큼, 그들을 거의 죽일 기세로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염효의 상벌이 뚜렷하고, 위엄과 은혜로움이 공존하는 지도 능력 덕분에 병사들은 그를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염효의 3백 명 군대는 1천 명 군대가 되었고, 황제 앞에서 대군 훈련을 하게 되었을 때 그의 군대가 단연 돋보이게 되었다.
천윤제는 제국에 또 한 명 맹장이 나타났다면서 크게 기뻐했고, 몇 년만 더 갈고 닦으면 진남공만큼 훌륭한 장군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황제는 대군 훈련을 마친 당일에 바로 염효를 유격 장군으로 임명했고, 그의 군대를 3천 명으로 늘려주었다.
염효를 하늘이 내려준 젊은 명장이라고 생각하던 황제는 이렇게 우수한 인재가 경성에 있는 게 너무도 아까웠다.
황제가 염효에게 어디로 발령받고 싶냐고 묻자, 염효는 제국에서 가장 험난한 곳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는 다시 천호가 되어도 좋으니, 백색부에 가서 조정의 뿌리를 내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황제는 행여나 어렵게 얻은 인재를 잃을까 봐 걱정되었지만, 그의 충성심에 크게 감동하여 염효를 아예 참장으로 승진시켰고 부장군이라는 직함을 주었다.
그렇게 황제의 총애를 받게 된 염효는 짧은 몇 개월 만에 4급이나 승진해서 참장이 되었다.
물론 황제가 한 사람의 직급을 마음대로 올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염효가 군위부 사람의 의자였기에 이런 고속 승진이 가능했었다.
염효가 정말로 백색부로 가게 되었을 때, 황제는 걱정을 내려놓지 못하고 염효의 의부와 상의해서 그에게 2천 정예병을 더 붙여줬다.
그렇게 염효는 5천 정예병을 이끌고 백색부로 왔고, 그 덕에 백색부에도 조정의 영향력이 미치게 되었다.
처음 백색부에 들어왔을 때, 염효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병사들의 마음을 사는 것이었다.
그는 5천 병사를 조정의 병사가 아닌 자신만의 사병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여씨를 총공격할 기세로 군대를 재정비하더니, 갑자기 여씨에게 협상하자며 손을 내밀었다.
협상이 끝난 뒤, 염효는 여여해의 세력이 되었고, 염효와 그가 이끌던 5천 정예 군대는 완전히 조정의 품을 떠나게 되었다.
그때부터 조정에서 파견한 백색부 지부들이 죽기 시작했고, 그 뒤로 지현 십여 명, 동창 천호도 두 명 죽게 되었다.
염효는 동창 변절자 장소와 달랐다. 장소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동창을 배반한 것이지만, 염효는 온전히 사리사욕을 위해서 계획된 배신이었다.
염효가 배신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천윤제는 처음으로 각혈을 했고, 그 뒤로 다시는 문무백관을 믿지 않게 되었다.
염효는 자기가 북명검파와 군위부 거물 밑에서 겪었던 갖은 치욕을 대녕 제국에 분풀이하기 위해 여씨와 손을 잡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조정이 백색부에서 완전히 힘을 잃게 된 건 염효의 배신 때문이었다.
끊임없이 만개하는 죽음의 꽃들을 보면서, 염효는 자신이 살아온 일생을 되돌아보았다.
그는 올해 쉰이 넘은 나이였고, 조금만 더 버티면 그가 달성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된다.
여씨 토사가 서남 토사 연맹을 통일하면 여씨 제국을 건립할 것이고, 염효는 그때 왕후에 봉해지기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지금 포기하게 된다면, 모든 게 수포가 된다.
눈이 희번덕 뒤집힌 염효가 이성을 잃고 소리쳤다.
“돌진해라. 더 빠른 속도로 돌진하란 말이다!”
염효가 직접 칼을 뽑아 들고 말에 박차를 가하며 천호소의 대문을 향해 돌진했다.
두변이 던지는 저 죽음의 꽃의 위력이 강력하긴 하지만, 무기에는 눈이 달려 있지 않으니 동창 무사들과 엉겨 붙어서 싸우면 안전할 테니까.
두변이 자기 사람에게도 저 끔찍한 것을 던질 리 없을 테니까.
이미 병력을 많이 잃긴 했지만, 6천 명이 그리 쉽게 전멸되진 않을 테니까.
그는 조금만 더 버텨서 근접전을 펼치게 되면, 분명히 승리할 것이라 확신했다.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고비를 넘겼는데, 고작 네놈 하나 때문에 그 모든 걸 망칠 순 없다!
염효가 대문을 향해 달리면서 거침없이 칼을 휘둘렀다.
“커헉.”
염효의 칼에 맞은 흑갑 돌격대원이 피를 토하면서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흑갑 돌격대가 입고 있는 갑옷은 칼과 창이 들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서 오히려 염효의 칼날이 구부러졌다. 하지만 염효의 강기가 갑옷 안까지 전해져서 돌격대원의 오장육부를 파괴했다.
콰과과광!
두변의 대살육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염효의 군대가 너무 빽빽하게 대열을 갖추고 서 있던 터라, 초화감유 한 병이 가져오는 살상력은 어마어마했다.
염효는 병사들이 얼마나 죽든 상관하지 않고 혈안이 된 채 천호소 대문을 향해 달렸다.
그는 대문을 뚫고 들어가야만 자기가 살 수 있고, 두변만 죽이면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
“크악.”
“커헉.”
염효는 날이 구부러진 칼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면서 돌격대원을 한 명씩 날려버렸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천마혈군은 한 명이 튕겨 나가면 곧바로 두 명이 달려와서 염효의 앞을 막았다.
하지만 염효가 내력을 얼마나 더 쓸 수 있을까.
여여해가 그랬던 것처럼, 무공이 아무리 뛰어난 장군이어도 절대로 전장에서 선두를 달리면 안 된다. 장군이 직접 칼을 쥐고 전장에 뛰어든다는 건, 군대가 전멸하는 지름길이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계표표는 천마혈군이 한 명씩 튕겨 나가는 걸 보고 마음이 저며왔다.
참다못한 그녀는 발끝으로 땅을 디디고서는 폭탄이 발사된 것처럼 염효를 향해 돌진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그녀의 모습을 본 두변은 속으로 생각했다. 진짜 폭탄처럼 화끈한 여인이라고.
쨍!
굉음이 울리고, 염효와 계표표의 검날이 부딪혔다.
염효 손에 있던 칼은 아예 절단되었고, 그는 뒤로 몇 걸음 밀려나면서 피를 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