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49화 (249/648)

249장. 시스템 재가동

“소 형께서 여기까진 어쩐 일인가요?”

“두 형, 그날 내가 바다에서 도망친 건, 남들에게 말하기도 민망한 싸움이 일어날까 봐였습니다. 내 무공이 표표 누이나 영존 이문회 대인을 능가하진 않지만, 그 두 사람만으로는 날 죽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막한 소저의 무공도 범상치 않다는 걸 알고 있습니까? 난 정말 우리 넷이서 전면전을 펼칠 게 염려되어 도망친 겁니다.”

소목지는 한 마리 여우처럼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그가 막한과 손을 잡았다는 건, 이문회나 계표표가 두렵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소목지가 이어서 말했다.

“내가 전할 말은 끝났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참, 표표 누이, 의부께서 밤이고 낮이고 누이 걱정에 잠을 못 이루고 계세요. 그러니 너무 오기 부리지 말고 시간 날 때 한 번 의부를 찾아와요. 부녀지간에 풀지 못할 원한이라는 건 없으니까요.”

계표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기음음이 계표표의 옷소매를 잡아끌며 속삭였다.

“저 사람 나쁜 사람 같아.”

소식을 들은 이도전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하고 전멸했다고?”

천도회주 이도전이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이능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하얗던 그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이능어는 그 어떤 말로도 자신의 놀라움을 형용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단 한순간도 두변을 안중에 둔 적이 없었다. 여태 이능어가 두변을 상대하던 방식은 마치 고양이가 쥐를 잡고 놀다가 죽여버리는 정도였다.

두변처럼 세상 물정 모르고 날뛰는 놈들은 백색부에 온 것 자체가 자기 무덤을 판 것일 뿐이니까.

그런데 하찮게만 보이던 두변이 불과 며칠 만에 동창의 변절자 천호 장소, 조정의 변절자 염효를 죽여버렸다.

특히 6백 명으로 6천 명을 상대해서 이겼고, 6천 명을 모조리 죽였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이능어는 전투가 시작되고부터 천호소가 보이는 높은 누각에서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관전했다.

창과 칼이 들지 않은 무적의 흑갑 돌격대가 나타났을 때 그녀는 놀라서 찻잔을 내려놓았고, 이내 두변이 병을 던져서 무수히 많은 죽음의 꽃을 피울 때는 경악했다.

이능어는 몇백 미터 떨어져 있는 곳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부가 화끈거리는 작열감을 느꼈다.

죽음의 꽃이 굉음을 내면서 만개할 때, 염효의 병사들이 갈기갈기 찢기면서 허공에 튕겨 나가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저건 뭐지? 두변에게 저런 엄청난 살인 병기가 있다면, 앞으로 전투는 어떻게 해야 해?’

이능어가 회상을 멈추고 물었다.

“어째서 두변에게 그런 엄청난 살인 병기가 있는 거죠?”

이도전이 대답했다.

“막씨 왕족의 보물이다.”

“막씨 가문의 후손을 포함한 그 누구도 국왕의 영계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내지 못했는데, 두변이 어떻게 그걸 알아낸 거죠? 그것도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두변 그놈은 엄당 학원에서 수석으로 졸업했고, 칠현금, 서예, 시문, 모든 분야에서 일류라고 들었다. 정말로 비상한 머리를 가진 놈이지.”

“아버지, 저들이 휴식하면서 재정비하는 틈을 노려서 급습하는 건 어떠세요? 우리가 몇천 무사를 이끌고 가면, 두변 그놈도 뼈를 못 추릴 거예요.”

이도전은 이능어의 제안에 잠시 귀가 솔깃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만에 하나 그놈에게 그 끔찍한 살인 병기가 남아있다면, 우리 쪽의 손실이 너무 크다.”

“아니면 아버지는 곧 대종사급 무공 고수가 되실 테니까, 아버지께서 직접 그놈을 죽이시면 되잖아요. 영종오는 오른손을 못 쓰고 아직 회복 중이니까 기존 무공의 절반도 쓰지 못해요. 그리고 영종오가 지금 백색부에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고요. 계표표는 이제 막 종사급에 들어선 수준이니까, 아버지의 상대가 되지 않을 거예요.”

이도전은 잠시 고민했다.

‘두변에게는 6백 명 천마혈군이 있고, 그중 백 명 정도가 무적의 흑갑 돌격대다. 아무리 내가 대종사급 무도 고수라고 해도, 그들을 몇 명이나 상대할 수 있을까. 현기가 다 소진되기 전에 후퇴할 수야 있겠지만, 두변을 죽이지 못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이도전이 말했다.

“네 어머니와 상의해봐야겠다. 아무래도 문산성에 이를 알려서 여 대인의 결정을 따르는 게 좋겠구나.”

이도전이 탄식을 뱉으면서 말을 이었다.

“어찌 됐든, 두변은 더 이상 우리가 마음대로 밟아 죽일 수 있는 개미 새끼가 아니구나. 그놈이 며칠 사이에 흉악한 들개가 되어버렸어.”

이도전이 매우 놀란 수준이었다면, 백색 지부는 안색이 창백해지고 사지가 떨리는 수준이었다.

“정, 정말로 제대로 본 게 맞느냐. 다 죽었다고?”

백색 지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막료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대답했다.

“저희 쪽 사람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했습니다. 염효의 몇천 대군이 전멸했고, 염효가 그랬던 것처럼 두변이 병사들의 머리를 자르고 그 머리를 산처럼 쌓았습니다. 그리고 두변의 군대가 근처에 커다란 구덩이를 파두었는데, 몇천 구 시신을 그곳에 던져 넣은 뒤에 불태우고 매장한다고 합니다.”

백색 지부가 혼비백산한 모습으로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지 않느냐. 몇백 명이 어떻게 몇천 명을 다 죽여? 설마 다음 목표가 나는 아니겠지? 두변이 죽인 사람들은 다 조정의 변절자들 아니냐. 하, 하지만 나는 살고 싶어서 어쩔 수 없이 배신한 것이다. 나 이전의 지부들은 여씨에게 협조를 안 해서 죽임을 당했으니, 나도 살고 싶어서 여씨에게 무릎을 꿇은 거라고!”

지부가 갑자기 눈을 번뜩이면서 막료에게 물었다.

“지금 내가 두변에게 잘못했다고 사정하면 어떨 것 같으냐? 자네가 보기에 소용이 있을 것 같으냐?”

막료는 속으로 지부를 비웃었다.

‘이 정도 배짱으로 무슨 지부를 한다고. 정말 보면 볼수록 나보다도 못한 놈이지.’

하지만 막료는 겉으로 공경한 태도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일단 천도회로 잠시 피신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거긴 안전할 테니까요.”

지부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지금 당장 천도회로 가야겠다.”

동창 천호소에서 염효와 두변의 대전이 시작되었을 때, 계청주는 홀연히 지하 밀실로 사라졌다.

그는 그곳에서 ‘육맥신검’을 필사할 때만 온전한 평정심을 찾을 수 있었다.

계청주의 밀실은 지하 수십 미터에 있는지라, 지상까지 연결된 산소를 공급하는 얇은 관이 있음에도 지면에서 울리는 폭발을 느끼지 못했다.

계청주는 계표표가 분명히 이번 대전에 참여하리라 생각했다. 딸이 아직 주화입마 상태인 줄 아는 그는 이번 전투에서 계표표가 더욱 크게 근맥을 상하게 될 게 걱정스러웠다. 계표표에 대한 걱정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자연스럽게 지하 밀실을 찾은 것이다.

대전이 끝났다고 생각할 때쯤 계청주는 다시 지상으로 돌아왔다.

지상 기지로 돌아오자, 대사형이 계청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끝났느냐?”

대사형이 허리 숙여 대답했다.

“예.”

“두변은 죽었고?”

“죽지 않았습니다.”

계청주가 미간을 찌푸렸다.

“죽지 않았다니? 염효가 왜 두변 그놈을 살려둔 게냐? 그런 법이 어딨어?”

“염효가 두변에게 패배했고, 그의 대군이 전멸했습니다.”

계청주의 몸이 휘청였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대사형을 쳐다보았다.

그는 본능적으로 평정심을 되찾으려고 깊이 숨을 들이마셨지만, 이번엔 더욱 심하게 몸을 휘청이고 말았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대사형이 계청주에게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사매의 주화입마가 완전히 치유된 것 같습니다. 듣기로는 이전의 무공 실력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순간 계청주는 한없는 상실감이 솟구쳤다.

딸아이에게 자신이야말로 유일한 하늘이자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계표표가 뭐에 홀려서든, 정말 순진해서 제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두변을 따른 것이든, 두변이 죽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가 되면, 계표표는 다시 혼자가 될 것이고, 다시 자기에게 돌아와서 따듯하게 아버지, 하고 부를 것이라 확신했다.

모든 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계청주는 갖은 심혈을 쏟아서 계표표를 치료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의 예상과 달리 두변은 죽지도 않았고, 대전에서 대승을 거뒀으며, 계표표의 내상까지 치료했다.

계청주는 자기 없이도 계표표가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서운했고, 항상 계표표의 곁을 지키는 사내가 자기가 아니라 두변이라는 생각에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두변만큼 강한 사내가 계표표의 곁을 지킨다면, 자신은 더 이상 계표표에게 필요한 존재가 아니지 않은가.

“안 돼! 안 돼!”

계청주는 격노했다.

지금 그는 계표표를 두변에게 빼앗겼다는 생각에 두변을 몇백 번이고 찢어 죽이고 싶었다.

계청주의 몸이 또 한 번 휘청였다.

“사부!”

대사형이 서둘러 그를 부축했다.

하지만 계청주가 대사형을 거칠게 밀어내더니 이를 부득 갈면서 말했다.

“표표를 치료해줄 또 다른 사내가 있다니, 이젠 이 아비는 안중에도 없겠구나. 난 오늘부터 정말로 표표와 부녀지간의 연을 끊겠다.”

계청주가 소매를 홱 털고 홀로 고탑 위로 올라갔다.

어떤 사람들은 꼭 이렇다.

누군가가 위험에 처해서 처량한 꼴로 도움을 청할 땐 얼마든지 그를 용서하고 도와주지만, 반대로 그 누군가가 크게 성공을 거두게 되면 그를 적으로 간주하고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린다.

계청주가 바로 이런 부류의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영종오 대종사는 그를 ‘속 좁고, 극단적인 놈’이라고 평가했다.

홀로 고탑 위에 올라간 계청주는 하룻밤 사이에 앓아누웠다.

대종사도 마음의 병이 생기면 앓아눕는다.

물론 그가 앓아누웠다고 해도, 전투 시에는 여전히 평소의 7할의 힘을 쓸 수 있다.

밤이 되자, 두변은 드디어 두 발을 편히 뻗고 잠이 들었다.

그가 막 꿈속 세계에 들어갔을 때, 두변의 머릿속에 기이한 불빛이 다시 나타났다. 그런데 이번엔 기이한 불빛이 하나가 아니라, 빨간색과 파란색 불빛 두 개가 나타났다.

두 불빛은 처음엔 갈라져 있다가 서서히 결합하기 시작했다.

결합을 마친 새로운 불빛은 기존의 기이한 불빛의 2배 크기가 되었고, 밝기도 기존보다 훨씬 더 밝아졌다.

두변이 흠칫 놀라서 말했다.

‘드디어 나타났군요.’

기이한 불빛이 말했다.

‘내 도움 없이 백색부 참장 염효를 죽였으니, 네가 이겼다.’

‘사실 저는 당신들이 정해준 노선대로 간 겁니다. 막씨 왕족의 보물을 찾았기 때문에 이번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거죠.’

‘하지만 보물의 지도는 네가 스스로 알아냈고, 악마도에서 무탈하게 무덤까지 갈 수 있었던 건 기음음 덕분이다. 기음음과의 인연은 네가 만든 것이니, 결과적으로는 네가 혼자의 힘으로 백색부 참장 염효를 죽인 게 맞다.

그리고 네 말대로, 우리가 지금껏 온갖 확률을 계산해서 노선을 짜왔는데, 우리의 바람대로 계획이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도 이번에 전략을 한 번 바꿔볼까 한다. 오늘부터 네가 이 계획의 주도자이고, 우리는 보조자 역할을 하겠다.’

두변이 저도 모르게 울컥했다.

드디어 이 순간이 왔구나. 지금껏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는데, 다 오늘을 위한 거였어!

사실 두변과 시스템은 서로가 없으면 안 될 사이다.

시스템에겐 두변이 마지막 초월자이고, 두변은 시스템 없이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두변이 말했다.

‘두 불빛이 하나로 합쳐졌던데, 그게 저번에 말한 업그레이드된 시스템입니까?’

‘그렇다. 이 세계에선 안 쓰는 말이라 듣기 어색하긴 하지만, 업그레이드된 시스템이다.’

‘예전에 꿈속 세계의 예지, 꿈속 시간이 현실 시간의 20배인 것 외에 또 다른 신규 기능이 추가된다고 했죠?’

‘맞다. 엄청난 신규 기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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