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55화 (255/648)

255장. 막한의 눈물

물론 시스템이 미리 알려준 비밀이었다.

막한이 흠칫 놀라면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녀는 얼음이라도 되어버린 듯 제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두변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내 아버지의 유골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고? 내가 몇 년에 걸쳐서 백색부 전체를 샅샅이 뒤졌는데도 아버지의 유골을 찾아내지 못했어. 그런데 백색부에 온 지 며칠 안 된 네놈이 어떻게 안단 말이지?”

그해 막씨 토사가 반역을 일으켰다가 여씨 토사의 배신으로 참패를 했었다. 감타는 잡힌 즉시 처형되었고, 그의 시신은 나무막대에 꽁꽁 묶인 채 서남 토사 연맹 각지에 끌려다녔다. 그 뒤로 그의 시신은 백색부 성벽에 백 일 넘게 매달려 있다가, 백골이 된 채 아무도 모르는 곳에 버려졌다.

여씨 토사는 막씨 가문의 후손이 그를 위해 장례를 치르거나 영을 기리지 못하도록 그의 유골을 어디에 버렸는지 절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당시 막씨 가문의 잔여 세력은 감타의 시신을 몰래 빼돌리기 위해서 갖은 방법을 썼지만,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사람 족족 목숨을 잃었다.

너무도 많은 사람이 희생된지라, 막씨 가문도 하는 수 없이 감타의 시신을 포기해야만 했다.

막한은 아무도 모르는 황량한 곳에서 외로이 먼지가 되어가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두변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어디 있는지 압니다. 제가 왜 당신을 찾아왔겠어요?”

막한이 냉랭한 어조로 대꾸했다.

“아무 유골이나 찾아와서 나를 속이려는 건 아니고?”

두변이 역으로 당당하게 물었다.

“이 세상에 자기 아버지의 유골도 못 알아보는 자식이 있습니까?”

막한이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아버지의 유골을 찾게 되면, 향마혈질을 네게 주겠다.”

“약속한 겁니다.”

“약속한다. 지금 당장 가자.”

막한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발걸음이 점점 더 빨라졌다. 조금 전 두변이 그녀를 정말 죽일 기세로 때려서 그런지, 그녀의 걷는 자세가 조금 이상했다.

두 사람은 막왕부를 나온 뒤, 비밀 통로를 통해 빠르게 백색부를 떠나 서쪽의 산맥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한참을 걷고 또 걸었다.

막한은 무공 수준이 워낙 높아서 두변이 자신을 함정에 빠트릴 수도 있을 거라고 걱정하지 않았다.

두변의 정신 공격을 당했음에도 금방 정신을 되찾은 그녀는 조금 괴로워서 미간을 살짝 찌푸리는 것 외에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막한의 정신력이 얼마나 뛰어난 건지 가늠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족히 100리가 넘는 거리를 걷던 막한이 참다못해 소리쳤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건데? 나를 속이는 거라면, 네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겠다.”

두변은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시스템이 가라는 대로 계속 걸었다.

50리 넘게 더 걷자, 집채 몇 칸이 있는 폐허가 나타났고, 폐허의 마당에는 완전히 말라버린 우물이 하나 있었다.

두변이 우물 앞에 멈춰 서서 말했다.

“당신 부친의 유골은 이 우물 안에 있습니다.”

막한은 두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우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진짜 좀 모자란 사람인가. 이게 함정이었어도 뛰어들 사람처럼 보이는데.’

잠시 뒤, 우물 안에서 처량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버지, 제가 왔어요. 아버지.”

작게 울먹이던 막한의 울음소리는 이내 우물이 떠나가라 울부짖는 소리로 바뀌었다.

그녀는 우물 안에서 한 시진 넘게 울었고, 가슴이 찢어지듯 슬픈 목소리로 아버지를 부르고 또 불렀다.

두변은 ‘희대의 간신이었던 진회(秦檜)에게도 마음 나눌 친구 세 명이 있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무리 간악하고 나쁜 사람이어도 감정이 있기 마련이다.

권력에 눈이 멀어 부인을 사지로 몰아넣고 토사를 배신한 감타는 악인인 건 맞지만, 자기 딸 막한에게는 한없이 다정다감한 아버지였나 보다. 그래서 막한이 이토록 그를 그리워하는 것이고.

“시간이 더 필요합니까?”

두변이 우물 밖에서 소리쳤다.

잠시 뒤, 막한이 울음을 그치고 유골을 품에 안고 우물 밖으로 나왔다.

두변은 보존 상태가 엉망인 유골을 보고 저도 모르게 속으로 감탄했다.

‘이 여자가 어떻게 이 유골이 자기 아버지 것이란 걸 알아본 걸까?’

감타의 유골은 일반인보다 훨씬 큰 골격, 이국적인 얼굴 뼈와 특수한 상처 등, 막한이라면 모를 수 없는 특징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잠시 아버지 곁을 지켜줘. 관을 하나 만들어 올 테니까.”

막한이 감타의 유골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은 뒤, 빠르게 숲속으로 사라졌다.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줄 알았는데, 막한은 거의 반 시진도 되지 않아서 다시 나타났다.

막한은 자기 검으로 깎아낸 관을 바닥에 내려놓은 뒤, 엄숙한 태도로 유골을 관 안에 눕혔다.

막한이 작게 말했다.

“아버지, 저랑 같이 집에 가요. 이제 다시는 저랑 떨어지지 말아요.”

돌아가는 길, 막한은 관을 들고 앞장섰고, 두변은 그녀의 뒤를 조용히 따라갔다.

두 사람이 막왕부에 돌아왔을 때, 해는 이미 저문 후였다.

막한은 감타의 유골이 담긴 관을 대전 안에 내려놓았다.

그녀는 며칠 뒤에 아버지를 위해 장례를 치른 뒤, 막씨 가문의 지하 무덤에 묻어줄 생각이었다.

“왜 내가 어머니 막영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않는지 의아했지?”

막한이 갑자기 두변에게 물었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인은 부인이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키지 않았어. 아버지에게 시집을 왔음에도 마음속엔 다른 사람을 품고 살았지. 그리고 난 마연향과 삼룡탕을 써서 아버지를 독살하려고 했던 사람이 막영이라고 생각해.”

두변이 놀라서 되물었다.

“증거가 있습니까?”

“없어. 심증이 전부지.”

막한의 막무가내 화법에 두변은 또다시 말문이 막혔다.

“아버지 유골을 찾게 해주었으니, 약속대로 네게 향마혈질을 주마.”

막한이 향마혈질을 가져오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

일각의 시간이 지난 후, 막한은 작은 상자 하나를 가지고 돌아왔다.

두변은 막한이 건넨 상자를 열어보았다.

‘이게 향마혈질이라고? 내가 생각했던 모습이랑 완전 다른데?’

두변은 향마혈질이 기생충이라서 몹시 징그러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향마혈질은 1밀리미터 정도도 안 되는 굵기에 십여 센티미터 길이의 황금빛 벌레였다.

두변은 향마혈질이 죽은 게 아닌가 하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안 죽었어.”

“아 네. 감사합니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두변이 머쓱하게 대답했다.

“잠깐!”

막한의 말에 두변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조금 전에 날 그렇게 때려놓고 이대로 가겠다고?”

“그, 그럼 어쩌고 싶은데요?”

막한이 두변을 바닥에 밀친 뒤, 두꺼운 칼집으로 그의 엉덩이와 허벅지를 때리기 시작했다.

퍽, 퍽, 퍽, 퍽.

수십 대를 쉬지 않고 때린 막한이 두변을 놓아주었다.

“이제 됐어. 그만 가 봐.”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몸을 일으킨 두변은 있는 힘껏 그녀를 노려본 뒤에 자리를 떠났다.

두변이 비밀 통로를 통해 청룡회로 돌아오자, 계표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두변은 자리에 소목지가 보이지 않는 걸 눈치채고 물었다.

“소목지는요?”

계표표는 소목지가 사라졌다는 걸 아예 눈치채지 못한 기색이었다.

이사형 사무도가 말했다.

“소 공자는 두 대인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 걸 보고 혹시나 천도회 사람들을 마주쳤을까 싶어서 두 대인을 찾으러 나갔는데.”

두변은 천호소를 나올 때 변장을 하고 나왔고, 백색부에선 되도록 비밀 통로를 이용해서 이동했다. 천도회 사람들은 두변이 아직 천호소에 있는 줄 알고 그쪽에 모든 감시인력을 배치했을 것이다.

두변은 아직까지 소목지의 속내를 읽지 못했지만, 그가 겉으로 우호적이거나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내 보이지 않은 이상, 오히려 복잡하고 위험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대인, 사부를 구할 해독제를 찾아온 건가?”

이사형이 물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두변에게 쏠렸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이 기쁘고 감격스러운 얼굴로 두변을 에워싸고 계청주의 방으로 향했다.

계청주는 조금 전의 모습 그대로 가사 상태에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두변이 비수를 꺼내서 계청주의 발바닥에 아주 작은 상처를 냈다. 발바닥에서 피가 흘러나오는데, 마찬가지로 금색 실 같은 게 섞여 있었다.

이때, 상자에 담겨 있던 향마혈질이 갑자기 생기를 찾은 것처럼 상자를 빠져나가려고 힘차게 헤엄쳤다. 향마혈질이 벌써 마연향의 향을 맡고 반응하는 모양이었다.

두변이 조심스럽게 향마혈질을 집어 들어서 계청주의 발바닥 상처에 갖다 댔다.

슉!

향마혈질은 눈 깜빡할 사이에 계청주의 발바닥 상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모든 사람이 숨을 참고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지금부터는 향마혈질이 마연향을 포식하는 시간이었다. 향마혈질은 피를 빨아들이지 않고, 계청주 체내에 있는 맹독만 뽑아내어 먹었다. 몸집이 워낙 작은지라, 대동맥부터 모세혈관까지 마음껏 돌아다니면서 맹독을 흡수했다.

두변과 계표표, 그리고 네 명의 제자들은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표정으로 계청주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했다.

십몇 분이 지나자, 정말 신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처음엔 계청주의 안색이 점점 더 좋아지더니, 또 10분이 지난 뒤에는 그의 맥박과 호흡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또 10분이 지났을 무렵, 향마혈질이 계청주의 발바닥 상처를 통해 빠져나왔고, 다시 상자 속으로 들어가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나 많은 양의 맹독을 흡입했는데도 향마혈질의 외형에는 변화가 전혀 없었다.

두변이 말했다.

“계청주 대종사의 독이 완전히 해독되었습니다.”

계표표가 다급하게 물었다.

“그런데 왜 아버지께서 아직 깨어나시지 않는 거지?”

두변이 비웃듯 말했다.

“제가 여기 있는 한 절대로 깨어나지 않으시겠죠.”

이 말은 들은 계청주가 몸을 움찔했다.

그가 천천히 눈을 뜨고 복잡한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보았다.

“계 대종사,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표표 누이가 대종사 곁을 지켜줄 겁니다.”

두변이 허리 숙여 예를 표하고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버지!”

계표표가 다급한 눈빛으로 계청주를 불렀다.

“멈춰라.”

계청주가 입술을 달싹이다가 드디어 한마디를 뱉어냈다. 아마 이 말을 하기 위해 평생의 용기를 다 썼을 것이다.

두변이 걸음을 멈춘 뒤, 다시 뒤돌아서 계청주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계청주가 말했다.

“다들 물러나거라. 표표 너도 잠깐 나가 있거라.”

계표표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계청주가 엄한 어조로 말했다.

“나가래도.”

그가 다시 다정하게 모두에게 말했다.

“다들 잠시 나가 있거라.”

“알겠습니다.”

계표표와 제자들이 대답한 뒤 곧장 방을 나갔고, 방 안에는 두변과 계청주 두 사람만 남았다.

남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게 위엄이라고 생각해왔던 계청주는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누워서 대화하려니 어쩐지 자신이 좀 허약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몸을 반쯤 일으키던 그는 다시 조용히 자리에 누웠다.

평생을 고집스럽고 강직하게 살아왔던 계청주지만 이번에 손아랫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면서 심경의 변화가 생겼다.

그는 오랫동안 지켜왔던 체면을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나는 표표가 집을 떠날 때 했던 말들이 맞다는 걸 알면서도 인정하기가 싫었다.”

계청주가 한 번도 쓴 적 없는 어조로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도 내가 중립을 유지할 여유가 없다는 걸 안다. 여씨가 반란을 일으키면, 그들의 땅에서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 세력이란 존재할 수 없어. 그때가 되면, 내가 여씨에게 무릎을 꿇거나, 여씨의 손에 죽겠지.”

이건 누구나 다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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