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장. 전설급 비급의 보관자
계청주는 눈을 감고 정신 방어를 완전히 내려놓았다.
두변은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한 번, 또 한 번 계산을 거치고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단혼영 에너지는 조금이라도 많아서도 안 되고 적어서도 안 되며, 계청주의 뇌를 다치게 하지 않고 정확히 검은 기운만 없애야 했다.
두변이 깊이 심호흡한 뒤, 검지와 중지를 모아 계청주의 이마를 눌렀다.
단혼영 에너지가 그의 손끝을 통해 쏘아지고, 곧장 계청주 머릿속의 검은 기운을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마치 현대 기술의 레이저 치료처럼, 아주 정확하게 계청주 머릿속의 검은 기운을 없애버린 후, 단혼영 에너지도 함께 소멸했다.
“됐습니다.”
두변의 말에 계청주가 눈을 뜨고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두변을 바라보았다.
“신기(神技)로구나. 정말로 신기야.”
기억을 되짚어 보니, ‘육맥신검’의 마지막 내용이 다시 선명하게 떠올랐다.
계청주는 재빨리 붓을 쥐고 마지막 열 몇 장을 채워나갔다.
그렇게 꼬박 하룻밤이 지난 뒤, 계청주는 드디어 몇백 장에 달하는 ‘육맥신검’ 비급을 완성했다.
계청주가 두변에게 비급을 건네면서 말했다.
“기억해라. 네게 주어진 시간은 두 시진이다.”
사실 계청주는 비급을 작성할 동안 두변에게 옆에 앉아 있으라고 했다.
열 몇 시진 동안 옆에 앉아 있던 두변은 당연히 비급의 모든 내용을 읽었고, 잠깐 명상하면서 머릿속에 비급을 전부 집어넣었다.
계청주는 두변이 혼자 있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두변은 곧바로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했다.
그의 정신력이 55가 되어서 꿈속 세계의 시간은 현실 세계의 서른 배였고, 두 시진은 자연스럽게 육십 시진이 되었다.
게다가 정신력 향상 덕분에 꿈속에서 그의 뇌의 활성화 정도도 현실보다 열세 배나 높았다.
두변이 가장 먼저 한 건, 빠른 속도로 육맥신검을 다시 읽고 외우는 것이었다.
몇 시진 뒤, 그는 몇백 장에 달하는 육맥신검을 완전히 외웠고, 다시 열 시진의 시간을 써서 내용을 학습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머릿속의 3D 연무장으로 들어가서 육맥신검이 단전에서 어떻게 운용되는지, 근맥과 혈도의 흐름이 어떻게 되는지 관찰했다.
3D 학습 덕분에 육맥신검의 공격 원리를 수월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보통 사람이 검기로 공격할 때, 현기 내력은 단전에 있을 때가 가장 강하고 공격력이 세다. 하지만 단전에서 쏘아져 나온 검기가 체내를 거치면서 점점 더 기력이 약해지고, 무기를 통해 쏘아져 나올 때는 더욱 급격히 약해지고 만다.
그래서 아무리 무공 수준이 높은 고수여도 4, 5미터 이상 뻗어나간 검기는 아무런 살상력을 가지지 못한다.
육맥신검 검기는 단전에서 응축된 채로 단중혈까지 옮겨지고, 바로 손바닥까지 가는 게 아니라, 매 혈도를 지나갈 때마다 다시 응축된 뒤에 손바닥을 통해 쏘아진다. 마치 거리가 멀어질수록 압력이 낮아지기 때문에 중간중간에 변압기를 두는 전기처럼.
그래서 육맥신검은 일반 검기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강한 위력을 가지게 되고, 이 세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원거리 무공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혈도를 지날 때마다 현기를 응축할 수 있는 무공은 오직 ‘구양진경’을 익힌 사람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즉 구양진경을 배운 사람만 육맥신검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원리를 깨달은 두변은 일사천리로 육맥신검을 익히기 시작했다.
두변의 정신력이 한 줄기 빛이 되어서 육맥신검이 어떻게 몸의 안팎에서 운행되는지 관찰했고, 육맥신검의 원리를 완전히 이해한 뒤에 천천히 익히기 시작했다.
두변은 포기하지 않고 시도하고 또 시도했다.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을 반복하던 도중,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영감(靈感)이 그의 뇌리와 단전을 관통했다.
슉.
두변은 꿈속 세계에서 처음으로 육맥신검의 제1검을 쏘아냈다.
“소양검(少陽劍)!”
슉.
이어서 제2검.
“중양검(中陽劍)!”
약속된 두 시진이 지나자, 두변이 천천히 눈을 떴다.
계청주가 방 안으로 들어오면서 물었다.
“어떠하냐?”
두변이 대답했다.
“이보다 더 신비롭고 강력한 무공은 이 세상 어디서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 이런 무공의 비급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기회다. 앞으로 다른 무공 비급을 볼 때도 오늘 보았던 육맥신검을 떠올리면서 배우거라. 무슨 무공이든 연결된 원리가 있는 법이니 말이다. 육맥신검을 익히려는 욕심은 버리거라. 이건 이 세계의 검법이 아니다. 선택받은 자가 아닌 이상, 보통 사람은 절대로 이 무공을 익힐 수가 없어.”
두변이 민망해하면서 말했다.
“이미 익혔습니다.”
“뭐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계청주가 단호하게 말했다.
태양이 서쪽에서 뜨는 한이 있어도, 바닷물이 거꾸로 흐르는 한이 있어도, 천지가 뒤바뀌는 한이 있어도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계청주는 누구보다 육맥신검을 잘 알고 있기에 두변이 두 시진 만에 이 무공을 익혔다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의 성격에 결함이 있긴 하지만, 계청주의 천부적인 무도 재능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그런 그가 수십 년에 걸쳐서도 익히지 못한 것을, 심지어 그의 사부조차도 익히지 못한 것을 두변이 익혔을 리가 있나.
고작 두 시진 만에 육맥신검을 익혀? 그 시간이면 비급 몇 장 정도를 외우는 것도 벅찬데? 그런데 이 어린놈이 몇백 장에 달하는 육맥신검을 전부 읽고 익혔다고?
자기를 농락한다는 생각이 든 계청주가 정색하고 말했다.
“두변, 내가 네 재능을 높이 사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네게 이 전설급 비급을 보여준 것이고. 하지만 난 이 비급에 수십 년을 쏟았음에도 아무런 수확을 얻지 못했다. 그런데 네가 두 시진 만에 이 비급을 완전히 익혔다고? 나는 너를 이리 경솔한 사람으로 보지 않았는데, 내가 널 잘못 본 게냐? 너의 그런 경솔한 태도는 육맥신검 공법을 모욕하는 것이다. 기분이 썩 좋지 않구나.”
두변이 진지하게 계청주의 두 눈을 보고 말했다.
“대종사, 정말로 다 익혔습니다.”
“이것 봐라. 그래도 잘못을 인정 안 해? 그만 돌아가서 진지하게 반성하거라.”
계청주가 믿지 않자, 두변은 곧바로 검지와 약지를 모았다.
“육맥신검, 소양검!”
슉.
단단하고 강력한 검기가 두변의 손끝에서 쏘아져 나왔다.
검기는 십여 미터 밖까지 날아가더니, 창밖에 있던 나뭇가지를 부러트렸다.
‘저렇게 멀리 있는 나뭇가지를 검기로 부러트린다고? 이게 무슨 일이야?’
계청주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중양검!”
“대양검(大陽劍)!”
“태허검(太虛劍)!”
“태아검(太阿劍)!”
두변이 쉬지 않고 자세를 바꿔가며 검기를 연달아 여섯 번이나 쏘아냈다.
슉, 슉, 슉.
연달아 쏘아낸 검기 여섯 줄기가 십여 미터 밖의 나뭇가지를 정확하게 명중했다.
이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검법의 이름이 현대 지구의 무협 소설에 나오는 육맥신검과 이름은 같지만, 구체적인 방식은 달랐다.
어떤 것은 직선으로 쏘아지고, 어떤 것은 소리가 없고, 어떤 것은 유연한 곡선을 그리고, 어떤 것은 칼로 베는 듯한 부채꼴 모양이었다.
각기 다른 검기를 모두 쏘아낸 후, 두변 스스로도 이 기적 같은 기술에 놀라고 말았다.
계청주의 영혼도 전율하고 있었다.
그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바깥의 나무를 보았다가, 두변을 바라보았다.
계청주는 너무 놀라워서 할 말을 잃었다.
영종오 대종사가 ‘천재는 뭐든 자기 마음대로구나!’라는 감탄을 뱉었다면, 계청주는 이렇게 감탄했다.
‘내가 육맥신검을 이토록 오랫동안 간직한 건, 다 이 청년을 위한 거였구나.’
이 세계나 저 세계나, 현실은 뼈저리도록 잔인할 때가 있다.
이 세상에 둘도 없을 전설급 비급을 얻게 해놓고, 수십 년을 쏟아도 배우지 못했다. 그렇게 고통스럽게 하루하루를 버티던 중,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 같은 천재가 나타나서 두 시진 만에 그 전설급 무공을 완전히 익혀 버리다니.
두변이 나타남으로써 계청주는 자신이 그저 전설급 비급의 보관자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계청주가 한참이 지난 뒤에야 탄식하면서 입을 열었다.
“가끔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꼭 지옥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천재는 천재일 뿐만 아니라, 하늘의 점지를 받은 사람이구나.”
두변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조용히 있었다.
계청주가 두변을 쳐다보더니 문득 물었다.
“환관인 게 확실하냐? 앞으로도 계속 환관이야? 아이를 가질 수 없어?”
두변이 대답했다.
“제가 고자라기보다는 선천적으로 고환이 정체되어있는 병이 있습니다. 제가 더 열심히 수련한다면, 양기가 상승하여 정상적인 사내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땐 당연히 아이도 가질 수 있고요.”
“정말이냐?”
“정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밤에 바로 표표와 혼례를 올리자꾸나. 거추장스러운 다른 의식도 필요 없고, 다른 사람을 부를 필요도 없이, 두 사람이 내게 큰절을 올리기만 하면 된다. 언젠가 두 사람이 아이를 낳게 된다면, 한 아이는 나를 따라 계씨 성을 가져야 한다.”
두변이 허리 숙여 예를 표했다.
“알겠습니다.”
계청주가 이렇게 서둘러서 두 사람의 혼례를 올리려는 것은 단순히 육맥신검 때문이었다.
그는 원래 두변에게 이런 엄청난 것이 있다며 한 번 슬쩍 보여주려는 의도였건만, 두변이 육맥신검을 통째로 외워서 익혀버렸으니 마음이 착잡했다.
자기 자신이 보관자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조금 힘들었던 터라, 일단 두변을 사위로라도 둬야 육맥신검이 생판 모르는 남의 손에 들어간 게 아니라면서 위안할 필요가 있었다.
두변도 계표표와의 혼례를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계청주가 수십 년 동안 지켜왔던 것을 손쉽게 가져갔으니, 이 정도 타협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잠시 뒤, 두변과 계표표는 계청주 앞에서 무릎을 꿇고 부부의 연을 맺었다.
사실 두 사람은 이미 계표표가 청룡회를 떠난 날, 혈관음과 셋이서 부부의 연을 맺었다. 하지만 그날 셋이서 올린 의식은 혼인식이라기보다는 도원결의에 가까웠다. 세 사람의 의리와 우정, 그리고 생사를 함께하겠다는 다짐일 뿐, 단순한 남녀 간의 정은 아니었다.
“오늘은 일단 표표의 방에서 하루 쉬고, 내일 천호소로 돌아가거라.”
계청주가 말한 뒤, 자리를 떠났다.
계청주는 마음의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홀로 고탑으로 돌아갔다.
두변이 육맥신검을 익혔다는 건, 계청주가 평생 이루고자 했던 소망을 없애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날.
두변은 계표표의 호위를 받으며 동창 천호소로 돌아갔다.
계표표는 귀한 보약이라도 먹은 사람처럼 온몸에 활기를 띠었지만, 옆에 있던 두변은 근육통에 시달리느라 사람이 녹초가 된 듯했다.
천호소 문앞에 도착하자, 계표표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면서 조용히 말했다.
“여기서부턴 혼자 가. 나는 아버지한테 돌아가볼게.”
아무래도 혈관음의 얼굴을 보기가 민망한 듯했다.
자기 방 안으로 들어간 두변은 완전히 새로 꾸며진 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새로 꾸며진 방은 꼭 가정집처럼 따뜻하고 포근했다.
그는 바뀐 방 안을 천천히 감상하면서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침상 위의 여인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를 가진 아름다운 여인은 얇디얇은 비단 잠옷을 걸친 채 두변의 침상에서 잠이 들어 있었다.
여인은 만개한 해당화처럼 아름다웠고, 사람을 매혹시키는 뱀의 요정 같기도 했다. 이 여인은 당연히 혈관음이었다.
전투가 끝난 뒤, 천마혈군은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염효 대군의 머리와 몸통을 분리하고, 그들의 시체를 처리할 커다란 구덩이를 팠다.
그 사이 혈관음은 두변을 위해 각양각색의 가구를 구해오고, 새 이부자리를 만들어서 새집 분위기를 냈다.
어릴 적, 따뜻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소망을 품은 혈관음은 두변을 위해서 꼬박 밤을 지새우며 집을 꾸미고는 쏟아지는 졸음을 견디지 못하고 두변의 침상에서 깜빡 잠이 든 것이다.
두변이 조심스럽게 혈관음에게 다가가서 그녀를 와락 끌어안고 입술을 포갰다.
“웁, 이러지 마.”
잠이 덜 깬 혈관음이 콧소리로 말했다.
말로는 두변에게 이러지 말라고 하지만, 그녀는 벌써 입을 살짝 벌리고 혀를 내밀었다.
두변이 다정하고 능글맞은 모습으로 말했다.
“누이, 가만히 좀 있어 봐요. 내가 기분 좋게 해드릴게. 오랜만에 두 공공의 맛을 한 번 봐야죠.”
뜨거운 시간을 보낸 뒤, 혈관음은 다시 진남공의 해군에 합류하기 위해 떠나야 했다.
“두변, 이번 해전은 짧으면 열흘, 길면 보름 정도 걸려. 이번 전투가 끝나는 대로 진남공 대인께 나를 백색부로 보내 달라고 말씀드릴게. 약초를 운송하는 걸 빌미로 잠깐 올 수도 있어. 그때 또 우리 둘이 같이 있을 수 있을 거야.”
혈관음이 두변의 품을 파고들면서 말했다.
한참이 지난 뒤, 혈관음이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넌 언제 남자가 돼?”
“왜요. 두 공공의 기술이 영 만족스럽지 않은가 봐요?”
두변이 농처럼 묻자, 혈관음이 그를 흘겨보면서 말했다.
“그런 거 아니거든. 아주 만족스러워. 하지만 내가 정말 아이를 갖고 싶어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