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59화 (259/648)

259장. 진급

백색부 참장 염효 대군이 전멸했다는 소식이 문산성에 전해졌다.

지팡이를 쥐고 근엄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는 여여해의 모습은 마치 창룡과도 같았다.

홍하회주 여여지가 직접 문산성까지 와서 여여해에게 이 소식을 알리는데, 두변이 6백 명으로 염효의 6천 명을 전멸시켰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여여해의 안면에 경련이 일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계청주가 조정 쪽으로 완전히 의탁했습니다.”

여여지의 말에 여여해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계청주! 그 시야 좁은 놈이 드디어 선택을 했군.”

여여지가 물었다.

“이제 어떡하면 됩니까? 백색부는 지금 두변 그 자식 때문에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던 여씨 세력이 약해졌습니다. 그리고 방씨 문관 집단은 계속해서 백색부를 넘보고 있고요. 천도회에게 당장 청룡회와 전투를 벌이라고 할까요? 한 번에 청룡회와 동창 천호소를 다 없애버릴 수 있도록?”

“천도회가 청룡회와 동창을 무찌를 수 있을 것 같으냐? 게다가 두변의 손에는 막씨 왕족의 비밀 무기가 있다.”

여여지가 고개를 젓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매수를 시도해볼까요? 제 딸 이능어를 두변에게 시집보내는 겁니다.”

“그놈은 환관이다.”

“대환관이 처를 두는 건 흔한 일이잖습니까. 게다가 성화교에는 요술이 워낙 많잖습니까. 환관이어도 사내 구실을 할 수 있도록…….”

여여지가 말끝을 흐렸다.

여여해가 잠시 생각하다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라. 조금만 더 기다리면, 천지가 흔들릴 정도의 큰일이 일어날 거니까. 그때가 되면 대녕 제국이 지금 백색부에서 만들어놓은 모든 게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그게 무슨 일입니까?”

“말하지 않을 것이니, 묻지 말아라. 잠자코 기다리다 보면 알게 될 것이야.”

이때, 1품 무도 고수가 뛰어 들어와서 여여해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주인, 뇌명 토사가 살해당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많은 토사가 두려움을 느끼고 토사 대회를 서둘러 끝내려고 합니다.”

콰직!

여여해가 격노하면서 손으로 탁자를 내리치자, 탁자가 박살 나고 탁자 아래의 바닥이 수십 미터까지 갈라졌다.

무시무시한 충격파가 방 안을 휩쓸고 지나갔다.

여여해가 이를 부득 갈았다.

“영종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영종오를 추격해라. 백색부로 가는 모든 길을 봉쇄하고, 영종오를 발견하면 내게 보고할 필요도 없이 그 자리에서 죽여버려라.”

무사가 알겠다고 대답한 뒤,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검은 그림자들이 먹구름처럼 모였다가 서쪽을 향해 빠르게 흩어졌다.

검은 그림자들은 영종오의 흔적을 따라 빠르게 움직였다.

성화교의 열댓 명 종사급 무도 강자가 수백 명 1품 고수들을 이끌고 독수리까지 동원해서 영종오를 미친 듯이 찾아 헤맸다.

계청주의 병사 모집은 무척 순조로웠다.

그가 했던 말대로, 백색부에는 여씨 세력에 반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누구 하나 우두머리로 나설 수 없으니 여씨의 그림자 아래서 숨죽이며 지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계청주는 서남 무도계의 거물이고, 그가 이끄는 청룡회 또한 영향력이 지대한지라,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계청주의 병사가 되려고 지원했다.

계청주에게 주어진 인원은 1만 명이라서, 넘쳐나는 지원자들 중에서 쓸 만한 사람을 신중히 골라야 했다.

계청주의 병사 모집이 순조로운 만큼, 두변의 동창 천호소 인원 모집도 무척 순조로웠다.

청룡회의 1,300명 무사는 이미 동창 무사로 탈바꿈했다.

사실 동창 소속 무사는 현지의 무도 파벌에서 강제로 징집한 무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창은 현지의 무도 세력을 관리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조정의 공식적인 군대가 아니기 때문에 감독 차원에서 강제 징집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문회는 자기 수하들을 바닥에서부터 키우는 걸 좋아해서 광서 동창의 수천 명 무사는 모두 그의 손을 거쳐서 성장한 무사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광서 동창의 수천 무사들이 이문회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두변에게는 무사들을 바닥에서부터 키울 시간이 없는지라, 계청주가 선물한 무사 1,300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두변은 계청주가 왜 자신에게 이렇게 후한 선물을 주는지 이해했다.

하나는 모두가 한 식구라는 걸 증명하기 위함이고, 하나는 두변이 준 5만 냥 황금에 대한 보답이리라.

덕분에 두변의 병력도 순식간에 늘어서, 동창 천호소에 무사들이 가득 채워졌다.

두변은 무사들에게 동창 천호소를 확장하는 공사를 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기존에 있던 천호소를 허물지는 않고, 천호소의 크기를 2배로 키우면서 담벼락을 더 높고 두껍게 보수했다.

천호소를 하나의 군사 보루로 만들면서, 청룡회와 함께 여씨에 대적할 준비를 한 것이다.

천호소가 확장되면서 연무장이 생기자, 광서에서 함께 온 임계연, 진평, 장옥윤이 드디어 무공 수련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 사람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무공 수련을 할 여력이 없는 형편이었다. 그렇지만 밥 먹고 물 마실 시간도 없이 바쁜 지금이 오히려 생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두변이 동창 변절자 장소, 백색부 참장 염효를 연달아 죽이자, 동창이 백색부에 끼치는 영향력도 날로 커지면서, 대녕 제국의 기세 역시 거듭 강해졌다.

예전에 동창 천호소 문 앞에서 구걸하며 살아가던 비렁뱅이 도 백호 등도 다시 천호소를 찾아왔다. 이번에 그들은 비렁뱅이 차림이 아니라, 동창 관복을 입고 멀끔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도 백호는 미안하기도 한 기색으로 두변을 쳐다보다가 허리를 숙였다.

“두 백호, 소생, 복귀를 청합니다.”

두변이 도 백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두변의 눈에 도 백호는 참 충성스러운 사람이었다. 남들이 죄다 제 살길 찾으려고 동창을 배신하거나 도망쳤을 때, 그는 비렁뱅이가 되는 한이 있어도 제국을 배신하지 않았으니까. 도 백호는 그저 용감하지 않은 사람일 뿐이었다.

두변이 깊이 심호흡한 뒤, 깔끔하게 대답했다.

“돌아온 걸 환영합니다.”

같은 날, 백색부 동창 천호소에 거물이 찾아왔다.

광서 동창 진무사 이옥당이 두변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두변을 동창 백색부 대리(代理) 천호로 임명한다.”

두변은 석 달 만에 직급이 세 번이나 오른 셈이었다.

이옥당이 감탄의 눈빛으로 두변을 쳐다보았다.

“왜 너는 내 아들이 아닐까. 어떻게 이렇게 대단할 수가 있느냐. 이곳은 무려 백색부다. 천호 세 명이 수백 명 무사를 데리고 왔다가, 두 명이 죽고, 한 명이 배신한 곳이란 말이다. 이곳은 정말 호랑이 굴보다 더 무서운 곳이지.

그런데 너는 혼자서 두 달 만에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게다가 동창이 백색부에서 입지를 확보한 것에 그치지 않고, 계청주 대종사를 설득해서 조정에 충성을 맹세하게 하다니. 그 덕에 계 대종사는 백색부에서 조정의 기둥이 되었다.

지금 대녕 제국은 백색부에서 최고로 좋은 시기를 맞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다 네 덕이다. 의부 이연정 대인께서는 네게 이곳에서 살아남기라도 하라고 하셨다고 하지만, 네가 이룬 것들이 정말 나를 탄복하게 만드는구나.

아, 너무 걱정하진 말거라. 대리라는 두 글자는 잠깐 달고 있다가, 두 달이 지나면 내가 너를 정식으로 동창 천호로 임명해주마. 열아홉에 동창 천호를 달다니!”

두변이 허리 숙여 예를 표했다.

“이옥당 백부께 감사드립니다.”

진무사 이옥당이 두변의 어깨를 힘있게 다독였다.

“네 아버지 이문회가 지금 광서에 없으니, 내가 너를 아비처럼 지지할 것이다. 너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거라.”

경성.

경성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지만, 경성 전체가 먹구름이 낀 것처럼 분위기가 어두웠고, 폭풍전야처럼 무서운 적막함이 맴돌았다.

특히 황궁 안은 바늘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도 화들짝 놀랄 만큼 조용했다.

조정의 최고위 관리 몇 명은 지금 한숨도 제대로 못 쉴 만큼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며칠 전, 황제의 측근 환관이 무서운 소식을 전했다.

황제가 벌써 며칠째 물 한 방울 마시지 못하고 누워만 있고, 숨소리가 점점 더 작아지고 맥박이 흐려진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은 몇 사람만 알고 있었는데, 그중 이연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연정이 황제의 맥을 잡아 보더니, 이건 중독이 아니라 병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태의와 연단 대사가 와서 황제의 병증을 살폈지만, 도무지 무슨 병인지 알 수가 없었다.

대녕 제국은 지금 누란지위(累卵之危: 계란을 층층이 쌓아놓아 위태로운 모습) 같은 상황이었다. 서남에서는 여씨가 반역을 도모하고 있고, 동북 건로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남쪽에서는 진남공의 십만 대군이 안남 왕국과 대전을 펼치고 있다.

대녕 제국의 황권이 바닥까지 떨어진 것 같지만, 그래도 황제가 있기에 제국이 아직 망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만에 하나 황제가 무너진다면, 이 혼란스러운 시국이 어떻게 될지 가늠도 할 수 없었다.

황제의 병증에 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 소식이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소식통을 아예 끊어버렸고,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황제의 목숨을 구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도 황제의 병증을 알지도 못하고, 그를 치료할 방법을 찾지 못한 터라 다들 절망스러운 마음으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었다.

다시 바쁜 하루가 지나갔다.

계표표는 이위와 함께 무사들을 미친 듯이 훈련하느라 두변보다 정신이 없었다.

식량과 무기, 그리고 갑옷이 광서성에서 끊임없이 운송되었고, 계청주의 1만 대군도 서서히 모양이 잡혀갔다.

계청주가 선물한 동창 무사 1,300명은 천마혈군만큼 뛰어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대, 기이의 지옥훈련 덕에 점점 더 천마혈군을 닮아갔다.

오히려 지금 천호소에서 가장 한가한 사람은 두변이었다.

여씨 가문은 꼭 두변을 잊은 것 마냥 그를 건드리지 않았고, 천도회와 홍하회도 천호소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두변은 매일 ‘구양진경’을 수련하는 데 시간을 쏟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체질이 40밖에 되지 않아서 6품 하등 무사가 그가 지금 달성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싶다면, 체질부터 향상시켜야 했다.

하는 수 없이 시간이 남을 땐, 기음음과 시간을 보내야 했다.

어느 날 아침에 기음음이 일어나서 두변을 찾아왔을 때, 두변은 다시 한 살 어려진 그녀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기음음은 밤마다 두변 오라버니와 자겠다고 했지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점이 마음에 걸려서 매일 같이 그녀를 달래서 돌려보내곤 했다.

홀로 외로이 침상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던 두변은 혈관음이 그리워졌다.

지난번에 혈관음이 길어도 보름 이내에는 돌아온다고 했는데, 보름이 지났는데도 깜깜무소식이었다.

혈관음이 도저히 자리를 비우지 못할 정도로 해전이 몹시 치열한가 보다고 짐작할 뿐이었다.

“관음, 꼭 건강하고 평안해야 해요.”

두변이 속으로 말한 뒤,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여인이 두변의 이부자리 안으로 들어왔다.

아름다운 얼굴과 매끄러운 피부, 그리고 마음을 흔드는 매혹적인 향을 지닌 여완완이 두변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두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하던데? 내가 네 부인이 되어줄게. 어때?”

여완완이 두변의 몸 위로 올라타더니 그의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그녀가 눈빛을 반짝이면서 말했다.

“나 진짜 진지해. 그리고 난 네가 이 세계에서 어떤 사명을 갖고 있는지도 알아. 나와 혼례를 올리면 혼수로 십만 대군을 얻을 수 있어. 그리고 네가 환관이라는 것도 알지만, 내게는 네가 하룻밤 만에 진정한 사내가 될 방법도 있어.”

여완완이 두변의 입술을 다시 한번 훔치면서 그의 옷을 벗겼다.

“그러니 날 부인으로 맞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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