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60화 (260/648)

260장. 선물

“하룻밤 만에 진정한 사내가 된다고?”

두변이 경악했다.

“왜, 못 믿겠어? 우리 성화교에는 온갖 신기한 요술들이 많아. 지금 보여줄까?”

여완완이 두변의 배 위로 손을 올리고 혈도를 지그시 누르면서 기이한 힘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정말로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지, 진짜잖아? 무슨 이런 게 다 있지?’

두변이 화들짝 놀랐다.

“이건 겉으로만 보이는 거지만, 성화교에는 네가 정상적인 사내와 똑같은 사내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두변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 대가가 바로 당신을 부인으로 맞이하고, 대녕 제국을 배신하는 것이고?”

여완완이 거짓으로 훌쩍이면서 말했다.

“양심도 없지. 내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

“우린 가는 길이 다르잖아.”

두변의 단호한 말에 여완완이 진지하게 두변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네가 이 세계에 온 이유는 대녕 제국을 구제하는 게 아니라, 다른 특수한 사명 때문이잖아. 나를 부인으로 맞이하면, 그 목표에 좀 더 쉽게 달성할 수 있어. 그래도 싫어?”

“당신 말이 맞겠죠. 내가 이 세계에 온 이유는 대녕 제국을 구제하기 위함이 아니겠죠. 하지만 난 이미 대녕 제국을 위해서 너무 많은 감정을 쏟았고, 이대로 대녕 제국을 버릴 수 없어요.

당신이 말하는 십만 대군 혼수가 참 구미가 당기긴 하는데, 내 손에 십만 대군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치고 싶은 세력이 바로 당신네 여씨거든요.

내게 군대가 필요하다면, 내 손으로 만들려고요.”

여완완이 두변을 빤히 바라보다가 콧소리를 뺀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했다.

“기억해. 난 이미 노력했었다는 걸.”

두변이 냉소했다.

“왜요? 또 나를 깊은 심연에 던져버리게?”

여완완이 고개를 저었다.

“이번엔 안 그래. 이제 눈 감아.”

두변이 순순히 눈을 감자, 살랑이는 봄바람이 그의 뺨을 스쳤다.

잠시 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여완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공기 중에는 여완완이 남기고 간 매혹적인 향만 남았다.

두변은 여완완이 왜 갑자기 나타났다가 이렇게 갑자기 떠나간 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두변이 눈을 감고 물었다.

‘여완완이 여길 왜 온 겁니까?’

기이한 불빛이 대답했다.

‘그건 중요치 않다.’

‘여완완의 무공이 아무리 강해도, 이렇게 천호소를 제 집 드나들 듯이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그러니까 네가 한동안 무공 수련에 집중해야 한다. 네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던 곳에서 무공 수련을 하게 해주겠다.’

‘어딘데요?’

‘네가 영원히 생각지도 못한 곳.’

다음날.

광서 동창 진무사 이옥당이 말을 탄 채로 천호소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두변은 깜짝 놀랐다.

며칠 전에 오셨었는데, 왜 또 오신 거지? 그리고 왜 저렇게 경황이 없어 보이는 거지?

두변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옥당의 표정을 보아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정도의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이옥당은 세상 천하 두려울 게 없는 사람이었다. 여씨가 지금 당장 반역을 일으켰다고 해도 이렇게 경황없는 모습을 보일 리는 없었다.

이옥당이 허둥대면서 굴러떨어지다시피 말 등에서 내려왔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두변, 영종오 대종사는 어디 계시느냐?”

“대종사께서는 따로 할 일이 있으셔서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뭐라고? 언제 돌아오시는데? 언제?”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대종사께서 지금 어디 계시느냐?”

“그것도 잘 모릅니다.”

이옥당은 온몸의 피가 차게 식는 듯했다.

“끝장이다. 끝장이로구나.”

두변이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백부,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이옥당이 두변을 데리고 인적이 드문 구석으로 갔다. 그는 주위를 한 번 더 살핀 뒤,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폐하께서 위급하시다. 폐하의 상태가 거의 붕어하시기 직전이라는 말도 있다. 영종오 대종사는 모르는 게 없는 사람이니, 대종사를 하루 빨리 경성으로 보내고자 널 찾아온 것이다. 지금 폐하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영종오 대종사다. 그런데 대종사께서 이곳에 없다니, 정말 절망스럽구나.”

두변이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폐하께서 위급하시다고?

황제가 붕어하게 된다면 자신이 힘들게 백색부에서 일궈낸 모든 게 수포가 되고 만다. 대녕 제국은 폭풍의 언덕 위에서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초가집과 같아서, 그 초가집을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기둥이 천윤제가 붕어하게 된다면, 두변뿐 아니라 대녕의 온 백성이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태의원의 모든 태의들이 황제의 상태를 살폈고, 대종사 두 명, 연단 대사 몇 명까지 불러봤는데, 다 아무런 방도가 없다고 하더구나. 폐하께서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신다면, 대녕 제국엔 그야말로 재난이 일어날 것이다.”

두변이 무언가 결심한 듯 이를 악물고 말했다.

“백부, 제가 한 번 가보겠습니다.”

이옥당이 화들짝 놀랐다.

이옥당은 영종오 대종사가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천호소를 찾아왔다. 하지만 이연정이 전서구를 보내면서도 영종오 대종사를 찾는다고 해도 큰 희망을 걸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두변이 갑자기 자기가 해보겠다며 나서니, 두변의 마음이 대견하긴 해도 이 아이가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모르지 싶었다.

“영종오 대종사께서 직접 나서도 안 될 수 있는 일을 네가 어떻게 해본다는 말이냐? 너는 영종오 대종사께 연단학을 얼마 못 배우지 않았어? 그리고 넌 아직 어린아이다.”

두변은 별다른 설명 없이 굳건한 눈빛으로 이옥당을 쳐다보았다.

“백부, 저를 한 번만 믿어주십시오.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이옥당은 두변이 여태 만들어 왔던 기적들을 생각하면서 진지하게 대답했다.

“두변, 이번 일은 정말 중대한 일이다. 진지하게 해보고 싶은 게 맞느냐?”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진지합니다.”

“알겠다. 그럼 당장 떠날 채비를 하고 밤낮 가리지 말고 경성으로 달려가거라. 내 영패를 들고 가서 이연정 의부를 찾아뵙거라. 나는 너를 대신해서 이곳에 남아있겠다.”

촌각을 다투는 일인지라, 두변은 사람들과 간단히 작별 인사를 한 뒤에 곧바로 경성으로 떠났다. 두변은 야생마를 타고, 계표표는 천리마를 타고 단둘이서 경성을 향해 달려갔다.

처음 2천 리는 야생마와 천리마를 타고 달렸지만, 나중엔 백 리에 한 번씩 말을 바꿔가면서 달렸다. 광서 동창 진무사의 영패 덕분에 말을 바꿔 타는 게 수월했다.

두변처럼 긴급하게 경성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중 대부분이 황제의 목숨을 누구보다 중요시하는 엄당 사람들이었다.

두변과 계표표가 산동성에 도착해서 말도 바꾸고 목을 잠시 축일 겸 한 간이 다관에 들어갔다.

두변이 두 손을 떨면서 차를 마시던 도중, 어딘가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두변?”

두변은 자신을 부른 사람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당엄?”

몇 개월 만에 보게 된 당엄은 예전보다 피부가 더 거칠고 까매졌다. 겨우 몇 개월 만에 보는 사이지만 꼭 아주 오랜만에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당 형, 시박사에 계신 겁니까?”

두변이 물었다.

“광동에서 제일 중요한 게 해상 무역이다 보니 시박사에 들어가게 됐다. 네가 백색부에서 이뤄낸 것들을 전해 들었는데, 정말 너무 훌륭해서 감탄만 나오더군.”

당엄이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두변이 고맙다는 의미로 찻잔을 들었다.

“이번에 경성에 가는 이유가 혹시…….”

“아마 우리가 같은 이유로 경성에 가는 걸 것이다. 온 제국의 엄당 사람이 모두 경성으로 몰려오고 있지. 기이한 약이 있는 사람은 기이한 약을 바치고, 기인이 있는 사람은 기인을 바친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길조(吉兆) 신물을 올리고, 길조 신물도 없는 사람은 금은보화를 바치고.”

두변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당엄이 물었다.

“넌 무얼 준비해 왔지?”

“뭘 말입니까?”

두변이 되물었다.

“네 뒷배였던 이연정 어르신이 모든 권력을 내려놓고 물러나지 않으셨냐. 지금 동창을 이끄는 건 사례감의 병필 풍보보 대인인데, 그분을 위한 선물을 꼭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네 의부보다 직급이 높은 동창 도독 두 분과 지휘 동지(同知: 지부知府의 부직副職) 네 분의 선물도 잊지 말아라. 적어도 선물 열 개는 준비해가야 해. 사례감의 어르신 몇 분도 챙겨드려야 할 테니까. 내가 지금 말한 건 최소다. 진짜 제대로 챙기는 사람들은 경성의 동창 만호 이상 되는 사람들 모두에게 선물을 돌린다. 사례감의 어르신들을 한 분도 빠짐없이 챙기는 건 당연하고. 제대로 준비하는 사람은 아마 적어도 백 개 이상의 선물을 준비했을 것이다.”

두변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은자를 그럼 얼마나 준비해야 하는 겁니까?”

“너는 광서 진무사 이옥당 대인을 대표해서 온 거니까, 최소 10만 냥은 준비해야겠지. 이러니 환관들이 목숨 걸고 돈을 긁어모으는 거다.”

“당 형도 준비해왔습니까?”

“나는 광서 시박사를 따라온 거라, 내가 단독으로 준비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너는 혼자 왔길래 광서 동창 진무사 이옥당 대인을 대신해서 온 줄 알았지.”

“지금 수중에 은자가 있긴 한데, 그 돈을 이런 밑 빠진 독에 쏟을 수 없습니다. 제 돈은 더 의미 있는 곳에 쓰일 예정이라서요.”

두변의 말을 들은 당엄이 흠칫 놀랐다.

“몇 개월 만에 우리 둘이 역할이 바뀐 것 같군. 넌 못 본 사이에 엄청 올곧고 바른 사람이 되었는데, 이젠 내가 겉만 번지르르한 경박한 놈이 된 기분이군.”

당엄이 자조적으로 말했지만, 두변은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당엄이 이어서 말했다.

“아무튼 내가 말했던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데, 두 사람은 꼭 챙겨라. 그리고 제대로 챙겨야 해. 한 명은 동창 대도독 풍보보다. 이연정 대인께서 대도독 자리에 계실 때도 풍보보 대인은 직급으로는 이연정 대인보다 더 위에 계셨다. 풍보보 대인의 지위는 손바닥으로 엄당의 하늘을 가릴 수 있을 정도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예전엔 엄당의 돈 자루를 쥐고 계셨던 분인데, 이젠 대도독 자리까지 꿰찼으니 칼까지 쥐게 되었지. 그러니까 풍 대인의 선물은 꼭, 꼭 잘 챙겨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 사람은 태자 전하다. 내가 정확하게 왜인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엄당 사람들이 선물을 바치는 건 황제 폐하를 위한 일이기도 하고, 태자 전하를 위한 일이기도 하지.”

두변이 한숨을 쉬었다.

황제가 아직 붕어하지도 않으셨는데 이 사람들은 벌써 다음 주군에게 잘 보일 생각만 하고 있다니. 이제 곧 불을 붙일 차가운 부뚜막을 미리 데우겠다는 심보인가. 당엄의 얘기를 들어보면, 엄당 사람들뿐만 아니라, 각지의 권문세가, 주부의 사자들, 훈귀의 자제들, 그리고 장수들의 가족까지 금은보화를 들고 경성으로 몰려오겠군.

황제가 아직 살아계신 데도 벌써 새로운 황제가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왜 이리 많은 건지.

“당 형,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두변이 공손하게 말했다.

두변이 떠나자, 종3품 대환관이 당엄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당엄, 저자가 바로 두변이냐?”

당엄이 허리 숙여 예를 표했다.

“맞습니다.”

“이문회와 똑 닮았구나. 아니, 이문회보다 더 대단해 보이는군. 저런 자에게는 밉보이지도 말고, 너무 가까이하지도 말거라. 이래저래 죽는 꼴이 험할 테니.”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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