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장. 두변의 모친
두변과 계표표는 다시 새로운 말로 갈아타고 갈 길을 재촉했다.
계표표가 두변에게 말했다.
“두변, 내가 보기엔 지금 경성으로 향하는 사람 중에 폐하의 건강을 걱정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는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다 태자께 선물을 바치거나, 미리 판을 깔아두러 가거나, 슬픔을 연기하러 가는 것 같다니까? 그 꼴을 보니 내가 다 마음이 차가워지는군. 너희 엄당 사람들조차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겠어.”
두변은 대답 대신 쓴웃음을 지었다.
두 사람은 꼬박 2박 3일을 더 달려서 대녕 제국의 경성에 들어갔다.
이곳은 현대 지구의 북경이지만, 두변은 옛 경성의 번화를 느낄 여유가 없었다.
대녕 제국의 경성은 2백만 인구의 대도시라 할 수 있었다. 외성(外城)에 사는 평민들의 얼굴색은 썩 좋지 못했다. 경성에서 살더라도 대녕 제국 평민의 삶이 각박한 건 마찬가지였다.
내성(內城)으로 들어오니, 모든 게 바깥 성과 달랐다.
이곳에서는 대녕 제국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번화와 화려함, 그리고 돈 냄새가 가득했다.
어딜 가나 준마와 고급 마차가 보였고, 곳곳이 비단과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두변과 계표표의 추레한 차림을 본 행인들은 코를 막으면서 그들을 피해갔다. 동창이 다른 곳에선 기세등등하다지만, 경성의 내성에서는 사람 취급도 받지 못했다.
“어이, 거기 두 명. 말에서 내려와서 옆으로 비키시오.”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두변과 계표표를 향해 호통쳤다.
큰길의 반을 차지한 거창한 마차 대열이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완전 무장한 무사 백여 명과 시녀 수십 명이 4미터 정도 폭의 대마차를 에워싸고 있었다.
두변은 말에서 내려온 뒤, 미간을 찌푸린 채 옆으로 비켜섰다. 호화로운 마차 행렬이 위풍당당하게 두변과 계표표의 앞을 지나갔다.
마차 행렬의 가장자리에서 걸어가던 시녀들이 두변의 앞을 지나가면서 코를 움켜쥐었다.
“저것들이!”
계표표가 화를 참지 못하고 호통치자, 시녀 하나가 도리어 화를 내면서 마차 안을 향해 목소리를 낮추고 일러바쳤다.
“부인, 저 사람이 우리 후부(侯府)를 욕하네요.”
마차 휘장이 걷히고 풍만한 체형의 아름다운 여인이 곁눈질로 밖을 쳐다보는 게 보였다.
“가서 오군(五軍) 도독부에게 저놈들을 잡으라고 알려라.”
두변은 마차에 탄 여인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마차 안의 풍만한 여인은 두회의 정실부인이자, 두변을 버렸던 두변의 친모였다.
두변과 허공에서 눈이 마주친 두 부인은 마치 벼락에 맞은 사람처럼 얼굴이 창백해졌다.
“두 후부의 기세가 정말 어마어마하군.”
두변은 냉소를 지으며 말한 뒤, 계표표와 함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원래라면 가장 먼저 동창으로 가서 풍보보에게 인사를 올린 다음, 풍보보가 두변을 데리고 황제를 알현하러 가야 했다. 두변의 신분으로는 황제를 알현하기란 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두변은 무작정 황궁을 찾아가서 궁문 앞에서 당직을 서는 대내(大内) 시위들을 향해 말했다.
“저는 광서성 백색부 동창 대리 천호 두변입니다. 황제 폐하를 알현하고자 왔습니다.”
이 말이 나오자, 수십 명의 시위들이 두변을 흡사 귀신 보는 것처럼 쳐다보았다. 단순히 두변을 업신여기는 게 아니라, 미치광이 보듯 쳐다보았다.
‘일개 천호가 폐하를 알현하겠다고 왔다고? 대리 천호 주제에? 이자, 미친 건가?’
“몇 년이 지난 뒤에, 만호, 진무사, 지휘 동지, 동창 제독 정도로 진급한 뒤에 황제 폐하 알현을 청하시오. 지금은 돌아가서 열심히 공덕을 쌓고, 10년 후에 다시 와보시게.”
대내 시위 하나가 말했다.
이때, 황금색 장포를 입은 태자가 대신 몇 명에게 에워싸인 채 지나가고 있었다.
대신들을 무척 깍듯하게 대하던 태자는 대내 시위 여럿에게 둘러싸인 두변을 보고는 곁에 있던 환관에게 무슨 일이냐고 알아보라고 일렀다.
대내 시위가 환관에게 두변의 신분과 황궁에 온 용무를 말하고 있는데, 두변이 바로 옆에서 끼어들더니 한마디 얹었다.
“폐하의 상태를 확인하러 왔습니다.”
이 말이 나오자, 사람들이 화들짝 놀랐다.
환관이 태자에게 잰걸음으로 돌아가서는 아뢰었다.
“두변이라고?”
태자가 이름을 들어본 듯한 표정을 짓더니 환관에게 말했다.
“가서 저자에게 말하거라. 일단 동창으로 가서 풍보보에게 인사를 올리고, 풍보보의 대동 하에 폐하를 알현하는 게 더 적절할 것이라고.”
태자가 환관에게 말한 뒤, 두변을 향해 눈짓으로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
환관이 두변에게 와서 태자의 의견을 전했지만, 두변은 태자의 말대로 풍보보를 찾아가지 않고 여전히 궁문 앞에 서서 기다렸다.
잠시 뒤, 아주 반갑고 익숙한 목소리가 두변의 귓가에 들려왔다.
영설 공주는 못 본 사이 많이 초췌하고 야위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
“두변, 이쪽은 누구시지?”
영설 공주의 물음에 두변이 대답했다.
“계표표입니다.”
영설 공주가 눈빛을 반짝이면서 계표표를 향해 웃었다.
“표표 사저(師姐)였군.”
영설 공주가 다시 시선을 돌려서 두변에게 물었다.
“두변, 만 리 길을 이렇게 급히 달려온 이유가 뭐지?”
“폐하의 목숨을 구해보고자 왔습니다.”
영설 공주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태의들도 폐하께서 며칠 정도만 버티실 수 있다고 얘기하고, 이연정 대인도 그렇게 얘기하더군. 다들 요 며칠이 폐하의 고비일 거라고 얘기해서 일단 모든 대비를 해둔 상태다.”
두변이 간절하게 말했다.
“그럼 저도 한 번만 폐하를 뵙게 해주십시오. 의부 이문회 대인을 대신해서라도요.”
영설 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의 병실이 마련된 궁의 밖에는 항시 십여 명 대신과 십여 명 대장군, 십여 명 사례감 대환관과 십여 명 정상급 귀족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황제가 붕어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이 사람들은 제일 먼저 국상을 치를 준비를 한 뒤에 곧바로 태자가 제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알릴 것이다. 그래야만 국사가 혼란스러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궁전 안에는 대종사 세 명, 수십 명 종사급 강자가 곳곳을 지키고 있어서, 파리 한 마리도 못 들어올 정도로 수비가 삼엄했다.
그리고 이곳에는 수십 명 연단 대사, 행림 고수, 태의 등 백 명이 넘는 의료진이 있는데도 황제의 상태에 대해서 아무런 대책을 내지 못했다.
황제는 이 상태로 꼬박 열흘 동안 병상에 앓아누워 있었고, 매일 먹는 것이라곤 삼탕이 전부였다.
사람들은 황제가 더는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의 임종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전 동창 대도독 이연정도 황제 때문에 많이 야위어서 두 눈이 잔뜩 충혈되어 있었다.
황후는 황제의 손을 잡고는 침상에 엎드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황후도 급격하게 야위어 보였다. 눈을 감고 있는 황후의 모습은 지쳐 쓰러진 건지, 잠든 건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때 영설 공주가 햇병아리 환관 두변을 데리고 들어오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영설 공주가 이연정과 황후에게 다가가서 조용히 말했다.
“두변이 부황을 치료하고 싶다고 합니다.”
이연정의 안색은 더 어두워졌고, 황후는 크게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연정이 두변을 바라보면서 목소리를 낮췄다.
“이건 아주 중대한 사안이다. 네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든 아니든, 네가 폐하의 상태를 살필 때 폐하께 무엇이라도 사달이 나게 되면, 나도 네 목숨을 구해줄 수가 없고, 공주 전하도 난처해지신다.
내가 이옥당에게 영종오를 불러오라고 했는데, 영종오는 안 오고 네가 올 줄은 몰랐구나.
영종오가 와도 폐하를 치료할 수 있을지 모르는데, 아직 어린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그러느냐. 너는 영종오에게 연단학을 고작 며칠 배운 게 전부라고 하지 않았더냐.”
두변은 이연정에게 대답 대신 예를 표한 뒤, 황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황후 마마, 제가 한 번 시도해보겠습니다.”
두변이 무턱대고 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제게 천안이 있으니 이 일의 성공 가능성이 7할 이상은 된다고 믿었다.
이때, 모든 태의, 연단사, 대신들이 무릎을 꿇고 청을 올렸다.
“황후 마마, 절대로 허락하시면 아니 됩니다. 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감히 황제의 옥체를 더럽히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은 결단코 일어나선 안 됩니다.”
“맞습니다. 저 뭣도 모르는 놈이 폐하께 해를 끼치게 된다면, 그건 정말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일입니다.”
“그때 저놈을 능지처참한다 하여도, 이미 하늘이 무너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제국의 연단 대사, 대태의도 손 쓸 수가 없는 병증인데, 고작 열 몇 살 된 놈이 뭘로 폐하를 치료한단 말입니까?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옵니다. 마마.”
“다들 조용히 하시오.”
황후가 언성을 높이면서 사람들의 입을 막았다.
황후가 간절한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얘야. 네가 이문회의 아들이라고 들었다. 네가 혼자서 백색부의 판을 뒤집어 놓았다는 소식은 이미 들었다. 그리고 조정을 위해 수백만 냥 은자를 군비로 헌납했다는 소식도 말이다. 본궁은 너를 믿으니 한 번 시도해 보거라.”
이연정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두변에게 말했다.
“두변, 잘 생각해야 한다. 만에 하나 폐하께 무슨 일이라도 난다면, 그 누가 와도 네 목숨을 구해주지 못할 것이다.”
황제의 병증은 제국의 가장 뛰어난 대태의와 연단 대사도 알아내지 못하고 있으니, 이들은 황제의 맥박이 약해지는 걸 보고만 있어야 했다.
그런데 두변이 나서서 황제를 구하지 못하는 건 차치하고, 만에 하나 두변이 황제의 상태를 살피는 사이 황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두변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황제의 상태를 더욱 악화시켜도 물론 처형당할 것이고.
두변이 깊이 심호흡한 뒤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두변이 앞으로 나서자, 환관 두 명이 그의 온몸을 살피면서 그에게 무기나 독이 있는지 확인했다.
두변은 침을 꿀꺽 삼키고 목숨이 위태로운 황제에게 다가갔다.
두변이 황제를 살릴 수 있는지, 그가 대녕 제국의 하늘이 무너지는 걸 막을 수 있는지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두변은 이 세계 사람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연단 대사와 대태의조차 황제의 병증을 알아내지 못했다는 건, 그만큼 보통 난치병이 아니라는 뜻이리라.
열흘 전까지만 해도 황제는 황후와 웃으며 담소를 나눌 정도로 건강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유 없이 쓰러져서는 지금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물 한 방울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인사불성이 된 황제는 여태 눈 한 번 뜨지 못했고, 손가락 하나 까딱한 적 없었다.
그가 살아있다는 유일한 증거는 그의 미약한 심장박동과 숨소리일 뿐, 멀리서 보면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대태의들은 황제가 중풍도 아니고, 중독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지병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두변은 의원도 아니고 의술에 대해 배워본 적도 없었다.
그가 배운 것이라곤 영종오 대종사에게서 배운 연단학 이론이 전부이다 보니, 아무도 두변에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
영설 공주, 이연정, 그리고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두변에게 기회를 준 황후까지도 그에게 큰 기대는 걸지 않았다.
황후가 두변에게 기회를 준 건, 두변이 자기 사람이라는 믿음과 정말 일억만 분의 일의 확률이라도 황제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었다.
그런데 두변이 황제의 상태를 살피는 모습을 본 황후는 그 일억만 분의 일의 가능성도 놓고 말았다.
두변은 황제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할 뿐, 그 흔한 문진을 하려는 자세도 취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