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장. 작위를 받다
두변이 허리 숙여 예를 표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폐하.”
영종오가 웃으면서 말했다.
“폐하, 두변이 백색부에서 자리를 잡은 정도가 아닙니다. 두변은 혼자의 힘으로 동창 변절자 천호 장소를 죽였고, 뒤이어 변절자 염효 참장과 몇천 대군을 전멸시켰습니다. 청룡회의 계청주는 폐하께 충성을 맹세하였고, 폐하께서 하사하신 성지를 받들었습니다. 계청주는 대녕 제국의 부장군으로서 대녕 제국의 병마를 모집하고 키우고 있습니다. 대녕 제국이 백색부에 1만 병마가 있고, 몇천 명의 무도 세력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동창 무사 2천 명까지 있으니, 충분히 여씨 세력에 견줄 만합니다.”
이 소식은 열흘 전에 이미 황궁에 전해졌지만, 황제는 혼수상태였던 터라 이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다.
얼마만에 듣는 희소식인지, 황제의 안색이 상기되면서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두변이 말했다.
“그리고 염효는 경성으로 압송되고 있습니다. 폐하를 기만한 죄, 폐하를 배신하여 치욕을 안겨드린 죄를 물으시어 폐하께서 직접 염효를 처단하십시오.”
“좋구나. 좋다. 참으로 좋은 소식이로구나. 너는 정말 크게 쓰일 인재로구나! 정말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인재로구나!”
황제가 크게 기뻐하면서 두변을 칭찬했다.
사실 두변은 ‘치욕’이라는 단어를 써서는 안 되었다. 황제가 염효의 배신으로 치욕스러움을 느낀 건 사실이겠지만, 그걸 어디 당사자인 황제 앞에서 감히 쓸 수 있겠는가.
하지만 천윤제는 전혀 개의치 않아 했고 속이 후련하고 기쁘기만 했다.
황후가 말했다.
“폐하께서 아직 모르시는 게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두변 저 아이가 구사일생의 위험을 무릅쓰고 막씨 왕족의 보물을 얻었는데, 59만 냥 황금 중 10만 냥을 진남공 군비로 쓰라고 이문회에게 전달했고, 40만 냥 황금을 진남공작부에 보관해놓고 폐하께서 거둬주시길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남은 황금은 계청주에게 병마를 키우는 데 쓰라고 줬고, 자기는 한 푼도 남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두변이 말했다.
“신은 5만 냥 황금을 남겼는데, 백색부 동창 천호소의 공금으로 쓰일 것입니다.”
황제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짐이 갖은 수를 써서 은자를 끌어모으는 이유는 다 변방의 군대를 위해서다. 변방을 지키는 병사들과 이재민을 구제하는 데 쓰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놈들이 중간에서 은자를 삼켜버리더구나. 그해 짐이 미친 듯이 끌어모아서 1천 5백만 냥 은자를 마련해줬는데, 그래도 돈이 모자란다고 하여 체면을 내려놓고 동창에게 세관, 여운사, 제조국, 광무사를 열게 하여 1년에 2천 6백만 냥 은자를 마련했지. 그때 짐이 속으로 이제 돈이 모자란다는소리는 안 하겠지 싶었는데, 그때도 돈이 모자란다고 짐에게 돈을 더 요구하더구나. 그만큼 돈을 쏟아부었는데도 갈 곳 없는 이재민이 생기고, 굶는 병사들이 생기고, 한겨울에도 솜옷 하나 못 입는 사람들이 생겼다. 짐은 그때 참 답답했지. 그 많은 돈이 다 어디로 갔을까 하고 말이다.”
황제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짐이 갖은 수를 써서 은자를 마련해오면, 어떤 놈들은 그 은자를 어떻게든 자기 주머니에 넣으려고 발악을 하더구나. 산 사람의 것을 갈취하는 것도 모자라서 이미 죽은 사람의 것까지 탐내지. 그런데 어떤 이들은 제국의 강산과 제국의 대업을 위해서 있는 살림 없는 살림 다 내놓는구나. 이문회가 얼마 전에 광서의 여씨 거점을 뿌리째 뽑았을 때, 거기서 얻은 몇백 냥 은자를 깨끗하게 제국에 바쳤다. 그런데 오늘 두변 너도 6백만 냥 은자 가까이 되는 돈을 남김없이 제국에 바쳤구나.”
황제가 고개를 떨구면서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제국에 너희들이 없었다면, 이 제국은 벌써 망했을 것이다.”
황제가 고개를 퍼뜩 들고 태자에게 말했다.
“태자.”
태자가 황제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네 옆에 서 있는 두변이 보이느냐?”
태자가 큰절을 올리면서 대답했다.
“예, 부황.”
“오늘부터 두변이 네 반려(伴侶)다. 짐과 이문회처럼, 이연정과 네 조부처럼 말이다.”
반려는 황제와 가장 가까운 환관이라는 뜻이자, 황제와 가족이라는 뜻이었다.
반려는 황제의 제1 심복이라는 의미였다.
두변이 태자를 향해 예를 올렸다.
“소야(小爷)를 뵙습니다.”
태자가 두변의 손을 맞잡고 말했다.
“두 반려, 앞으로 우린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황제가 말했다.
“태자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많을 테니, 일단 나가보거라.”
“알겠습니다. 부황, 두변이 제 반려라면, 이대로 저와 함께 경성에 남아서 함께 공부하고 함께 무예를 갈고 닦는 건 어떨지요?”
황제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안 된다. 두변 같은 보검을 황궁에 숨겨두기엔 너무 아깝다. 먼저 나가보거라.”
태자가 나가자, 황제가 두변을 진지하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얘야. 40만 황금은 네가 바친 것이다. 진남공작부에 있다는 그 돈을 짐이 어떻게 썼으면 좋겠느냐?”
두변은 그런 말을 자기가 해도 되는지 몰라서 잠시 머뭇거렸다.
“짐은 네 아비와 한마음 한뜻이니, 개의치 말고 말하거라.”
황제의 말에 두변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여씨의 반란이 코앞까지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진남공의 십몇만 대군이 안남 왕국에 가 있는 터라, 제국의 서남에는 당장 쓸 수 있는 병마가 없습니다. 여씨가 서남 토사 연맹을 통일하게 되면, 그들은 30만 대군을 거머쥘 것이고요. 그렇게 된다면, 여씨가 순식간에 제국의 서남을 휩쓸 것이고, 더 나아가 안남 반란군 완씨와 손을 잡고 진남공과 안남 국왕을 사이에 두고 협공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모든 국면은 걷잡을 수 없게되겠지요.”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각지에 있는 대녕 제국의 병마는 저마다 맡은 바가 있어서 다른 곳으로 파견을 보낼 수가 없었다. 산서 등에 있는 주둔군도 제국의 서남만큼 중요한 변방을 지키고 있었다.
두변이 말했다.
“지난번에 의부께서 광서에 있던 여씨의 세력을 몰아내면서 천문학적인 숫자의 식량과 무기, 갑옷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폐하께서 이참에 광서에 무기, 갑옷을 만들 수 있는 대장간을 만들게 해주시고, 계왕과 광서 순무 장양명에게 군대를 만들라는 성지를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몇백만 냥 은자와 충분한 무기와 갑옷, 식량만 있으면 됩니다. 광서의 백성들이 워낙 강인한지라, 1, 2년이면 15만 대군을 양성해낼 수 있을 겁니다.”
두변이 황제를 향해 큰절을 올리면서 말을 덧붙였다.
“물론, 신은 그저 탁상공론만 할 줄 아는 놈입니다.”
황제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린 뒤, 상주서 두 개를 꺼내면서 말했다.
“계왕과 장양명의 상주서는 이미 받았다. 심지어 계왕은 네가 큰 인물이 되었을 때, 자진하여 번왕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하더군. 계왕은 너무 조심성이 많아.”
이어서 황제가 탁자를 손바닥으로 치면서 말했다.
“문무백관이 허구한 날 짐에게 조칙을 어기지 말라 하였지. 그놈들은 꼭 자기가 필요할 때만 조칙을 운운하고, 불리할 땐 조칙 따위 안중에 두지도 않아. 그놈들이 뭐라고 짐을 질책하든 상관없다. 짐은 이미 계왕과 장양명 순무에게 현지 군대를 만들라 하였고, 짐을 위해 15만 대군을 양성하라고 명을 내렸다. 짐은 계왕과 장양명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오직 그 둘만이 네가 힘들게 구해 온 돈을 제대로 쓸 것이다.”
황제가 두변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네가 세운 이 혁혁한 공로들에 대해서 짐이 어떤 포상을 내려주는 게 좋겠느냐?”
두변이 서둘러 큰절을 올렸다.
“당치도 않으신 말씀입니다. 신은 그 어떤 포상도 바라지 않습니다. 신이 폐하의 목숨을 구한 건, 제국에 폐하가 없어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신은 자식의 마음으로 폐하의 목숨을 구한 것인데, 어찌 공로를 운운하겠습니까? 신이 폐하께 금은을 바친 것은 부모께 효도하는 자식의 도리일 뿐입니다.”
황제가 두변을 잠시 바라보다가 영설 공주를 쳐다보았다.
그는 속으로 탄식했다.
‘참 아깝구나.’
황제와 황후가 처음으로 이런 탄식을 하는 건 아니었다.
두 사람은 두변이 환관이라는 게 너무도 아까웠다.
‘두변이 환관만 아니었다면, 영설과 환상의 짝이 되었을 텐데. 영설이 세 살 많긴 하지만, 부부 사이에 처가 세 살 많으면 복이 많다는 얘기도 있지 않은가.’
황제와 황후는 두변의 충성스러움과 재능, 인품, 시문, 장기, 금 연주 실력 등등 그의 전부가 빼어남을 감탄했다.
영설 공주도 황후와 황제가 몰래 탄식하는 것을 들었던 터라, 저도 모르게 볼이 발그레 붉어졌다.
발그레 상기된 영설 공주의 얼굴이 오늘따라 유난히 아름다웠다.
황제가 말했다.
“너는 아직 나이가 어리다 보니, 짐이 성급하게 네게 큰 관직을 하사할 수는 없다. 그러니 네 의부에게 포상해주는 건 어떠하냐?”
두변이 뛸 듯이 기뻐하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폐하의 은덕에 감사드립니다.”
황제가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역시 효심이 지극하구나. 너를 포상한다는 말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더니, 네 아비를 포상한다는 말에 이리 기뻐하다니.”
황제가 이연정에게 눈짓했다.
이연정이 옆에 놓인 성지를 가지고 와서 읽었다.
“황제가 명하노라, 이문회를 광서 진수(鎭守) 환관으로 책봉하고, 광서 신군 총감군으로 임명한다. 이문회는 현재 맡고 있는 안남 왕국의 천도 임무를 병행한다.”
당장 이문회가 제국으로 돌아오는 건 아니었지만, 실로 크나큰 포상이었다.
현재 아무런 관직이 없는 이문회가 이번 기회로 2급이나 진급해서 4품 동창 진무사에서 종2품 광서 진수 환관이 된 셈이었다.
광서에는 원래 진수 환관이라는 직책이 없지만, 서남에 여씨 반란을 대비하여 진수 환관을 하나 두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계왕과 장양명 순무는 황제의 성지를 받아 광서에 15만 명 규모의 새로운 군대를 만들 것이고, 이문회는 이 군대의 감군이 될 테니 엄청난 권력을 누리게 될 것이다.
황제의 뜻은 명확했다.
서남에 새로 만들어질 군대는 완전히 황제 직속이며, 그 누구도 손을 댈 수 없다는 것.
황제의 성지에는 광서 포정사 두강의 이름조차 없었다.
군대가 성공적으로 만들어진다면, 백색부의 1만 대군, 안룡 토사부의 몇천 대군까지 합하면 제국 서남에 18만 규모의 황제 직속 대군이 생기는 것이다.
여씨의 몇십만 대군에는 못 미치는 숫자이지만, 충분히 그들을 대항할 수 있는 수였다.
황제가 두변을 바라보면서 성지를 내렸다.
“두변을 사례감 남서방(南書房) 교서사(校書使) 직에 임명한다. 매일 당직할 필요는 없다.”
교서사란 직급은 높지만 실권이 없는 자리였다. 그래도 두변은 동창 외에 사례감에도 관직이 하나 생긴 셈이었다.
이 정도 포상은 두변도, 다른 사람들도 납득 가능한 범위였다.
하지만 황제는 이에 그치지 않고 물었다.
“네가 경성 두씨 가문 출신이지만, 그들에게 버림받았다는 게 사실이냐?”
두변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황제가 결심을 내린 듯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짐이 너를 위해 분을 풀어주마. 두회와 두강은 관직이 아무리 높아도 작위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짐이 네게 작위를 내려주마.”
이 말이 나오자, 사람들이 화들짝 놀랐다.
대녕 왕조에는 문관도 작위를 받기 힘든 터라, 환관이 작위를 받는 것은 더더욱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황제가 두변에게 봉작을 하겠다고 하니, 사람들이 자신들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다른 지구의 역사에서 송대(宋代)의 동관(童貫)도 환관이지만 왕의 작위에 봉해졌다. 송대 이후의 다른 시대에서는 어느 환관도 작위를 받았다는 기록이 없다.
두씨 가문에 후작부 출신의 며느리는 있지만, 가주 두회는 작위를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