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67화 (267/648)

267장. 이도진을 정복하라

기이한 불빛이 되물었다.

‘계표표와 너의 내공 속성이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둘 다 엄청난 양기를 내뿜는 게 말이다.’

계표표는 여인의 몸이긴 하나, 그녀가 수련한 내공에는 양기가 가득했다.

두변은 안 그래도 그 점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기이한 불빛이 말했다.

‘네가 수련한 건 구양진경이고, 이도진, 여천천과 계표표가 수련한 내공은 절대 비급인 대중양경(大重陽經)이다. 대중양경은 한 단계 약한 구양진경이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본질적으로는 두 내공이 같은 속성이다. 네가 수련한 내공이 훨씬 더 강하긴 하지만.’

두변이 갑자기 물었다.

‘저는 폐하께 충성을 다하는 사람인데도 북명검파가 저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겁니까?’

‘이연정의 스승도 북명검파의 고수다. 네가 보기엔 어떨 것 같으냐?’

두변은 그제야 깨달았다.

북명검파의 제자는 전 세계에 포진되어 있고, 특별히 이렇다 할 정치적 입장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들은 거물들을 무도로 키워내면서, 어둠의 장막 뒤에서 그들을 통해 천하를 조종할 뿐이다.

두변이 다시 깨어났을 때, 이미 한 마을에 도착해 있었다.

두변은 혈도가 모두 막힌 채 말 등에 얹혀 있었다.

붉은 석양이 다른 말을 타고 있는 이도진의 굴곡진 몸매를 그대로 비추었다. 나이가 마흔이 다 되어 가는데도 강력한 무공과 내력 수련 덕분에 서른도 안 된 젊은 여인 같기도 했고, 동시에 어린 여인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성숙함과 원숙미가 흘렀다.

이도진의 얼굴은 막한만큼 차갑고 냉랭했지만 아름다웠다.

살면서 미소 한 번 지어본 적 없는 사람 같아 보였고, 누구나 이 얼굴을 본다면 경외심부터 들 듯했다.

“이 종사, 저흰 지금 어딜 가는 겁니까?”

이도진은 두변을 흘겨볼 뿐, 그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두변이 송과선에 정신을 집중해서 천안으로 이도진의 몸을 훑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뭔가를 알아내지 못하자, 시스템이 답답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남녀 간의 일을 한 적 없던 여인인지라, 자주 월경통을 겪고 있다. 사색이 너무 깊어서 밤에 잠에 쉽게 들지 못하고, 화가 많은 탓에 간이 많이 상해있다.

이 점들을 고려해서 이도진에게 잘 보일 수 있겠나? 윗선의 지시를 무시하고 너를 살려주고, 제자로 삼을 만큼?’

두변이 고개를 저었다.

특히 ‘남녀 간의 일’로 이도진에게 호감을 사는 일은 더더욱 자신이 없었다.

이도진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고 허리를 숙였다.

월경통이 시작된 건가?

두변이 물었다.

“이 종사, 안색이 영 안 좋아 보이시는데, 잠깐 쉬다 가는 건 어떻겠습니까? 설탕물을 좀 구해올까요?”

“두변, 네놈이 얼마나 교활한 놈인지는 잘 알고 있다. 가는 길에 내게 호감을 사서 목숨을 부지할 헛수고는 하지 말도로 해라. 넌 죽은 목숨이다. 내가 마교 분단(分壇) 건만 처리하고 나면, 곧장 너를 대은구도로 데려가서 죽일 것이다.”

이도진이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덕분에 두변도 아주 중요한 정보를 알게 된 셈이었다.

‘마교 분단?’

두변은 그제야 이 마을의 분위기가 좀 기이하고, 곳곳에 마련화(魔蓮花) 문양이 새겨진 깃발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두변과 이도진을 향한 마을 사람들의 시선도 이상했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어떤 마교의 사도들 같기도 했다.

그리고 오는 길 내내 마주친 호북, 산동의 백성들의 생활은 무척이나 고단해 보였다. 그들은 가을이 다 되어가는 날씨인데도 제대로 된 옷을 갖춰 입지 못했고, 특히 산동 지역에는 나무에 열매가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연초의 가뭄이 아직도 나아지지 않은 건가?’

두변이 속으로 생각했다.

이도진이 마을 중앙으로 가면 갈수록 주위에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졌고, 두 사람을 향한 시선이 더욱 기이했다.

두변은 주위의 공기가 이상하다는 걸 감지하고 말했다.

“이 종사, 아무래도 여기 분위기가 이상한데요. 어쩌면 여기에 누군가가 함정을 파놨을 수도 있어요.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이도진이 냉소를 지었다.

“마련교가 강하긴 하지만, 이런 작은 마을에 있는 분단은 내가 걱정할 수준이 아니다. 나 혼자서도 이곳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

두변이 그래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제가 느끼기엔 이곳에 아주 엄청난 음모가 있는 것 같은데요. 조심하세요. 아니면 잠깐 물러났다가, 제대로 좀 본 뒤에 다시 오는 건 어떠세요?”

이도진이 성가시다는 듯이 두변을 노려본 뒤에 그가 말도 할 수도 없게 입 쪽의 혈도까지 막아버렸다.

두 사람은 드디어 마련교 성단(聖壇) 앞에 도착했다.

이도진이 미간을 찌푸리고 검을 뽑았다.

“웬 놈이냐. 감히 성단 앞에서 검을 뽑다니.”

마련교 무사들이 호통을 치면서 달려들었다.

서걱, 서걱, 슥.

이도진이 검을 휘두르자, 검이 서늘한 빛을 내뿜으면서 마련교 무사 네 명을 모조리 베어 버렸다.

이도진은 곧바로 성단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천마교의 잔당 놈들. 과거에 천마교를 배신하고 나와서는 지금 천하가 혼란한 틈을 타서 백성들을 현혹하고 악행을 저지르다니. 다른 곳에서 난장판을 치는 건 상관없지만, 우리 북명검파의 땅에서 경솔한 짓을 벌이다니. 죽음을 자처하는군.”

이도진이 소리쳤다.

한때 천마교의 잔당이자, 천마교의 변절자였던 자들이 지금의 마련교를 만들었다는 의미였다.

“하하하하.”

승려 하나가 밖으로 걸어 나오면서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10년 만인가? 이도진 선자(仙子), 못 본 사이에 더 아름다워졌군. 내가 밤마다 선자의 꿈을 꾼 보람이 있어.”

이도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 민머리 승려는 과거 천마교의 변절자 중 하나로, 마련교의 몇 대 장로 중 하나인 임악선이었다.

10년 전에 이도진이 그와 싸운 적이 있는데, 당시 이도진이 힘겹게 임악선을 이겼었다.

이번에 이도진이 마련교 분단을 없애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원수지간인 임악선이 이곳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급이 굉장히 낮은 분단인지라, 이도진 혼자만의 힘으로도 이곳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하게 마련교 장로급 고수가 이곳에 숨어 있었을 줄이야.

“하하하. 여기서 날 마주칠 줄 몰랐지? 하지만 나는 날이면 날마다 선자 생각에 잠을 못 이뤘다. 이도진 선자, 북명검파에서 그만 나오고, 우리 마련교에 들어오는 건 어때? 내가 매일 선자와 밤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으하하하!”

임악선의 시선이 두변에게 향했다.

“어이구, 이도진 선자. 외로운 걸 잘 못 견디는 성격인가 보네? 곱상한 녀석도 한 놈 데리고 다니는구먼. 괜찮아. 다 같이 즐기는 거지.”

임악선이 고개를 젖히며 웃음을 터트리자, 이도진이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네놈이 있다고 내가 두려울쏘냐.”

이도진이 검을 겨누자, 임악선이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십여 명의 마련교 고수가 나타났다. 그들 모두 1품 무도 고수였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종사급 강자가 성단 앞으로 튀어나왔다.

이도진이 경악했다.

‘이럴 수가! 함정이구나.’

마련교는 한때 천마교의 소속이었던지라, 무도 강자가 많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보잘것없는 마을에 이렇게 많은 무도 강자가 주둔할 리가 있을까.

이도진과 무도 수준이 비슷한 임악선, 종사급 무도 강자, 그리고 십여 명의 1품 고수까지 이곳에 매복해있다는 건, 이도진이 이곳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의미했다.

임악선이 징그러운 미소를 보이면서 말했다.

“이도진 선자, 이를 어쩌나? 북명검파에서 선자가 죽길 바라는 사람이 있나 보네. 혹시 누군가에게 들키면 안 될 비밀 같은 걸 알게 된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그쪽에서 우리에게 매복할 기회를 주지 않았을 텐데?”

임악선이 웃음기를 거두고 손짓했다.

“잡아라.”

십여 명의 마련교 고수가 이도진을 향해 돌진했다.

이도진이 검기를 내뿜으면서 한 명, 또 한 명을 썰었다.

그녀는 눈 깜빡할 사이에 1품 무사 여덟 명을 죽였다.

“독화살을 쏘고, 독침을 쏴라.”

임악선이 외쳤다.

슉, 슉, 슉, 슉.

각양각색의 독화살과 독침이 빗방울처럼 촘촘하게 이도진을 향해 날아왔다.

이도진이 이를 악물고 내력을 뿜어냈다.

콰광.

그녀가 내력 현기를 폭발시키자, 엄청난 방어막이 생기면서 독화살과 독침을 튕겨냈다.

“독이 든 연기를 풀어라.”

임악선이 다급하게 외쳤다.

갑자기 제단의 모든 곳에서 분홍색 독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도진이 다급하게 숨을 참았지만, 사람은 코와 입뿐만 아니라 모공으로도 숨을 쉰다.

독기는 이도진의 체내에 빠르게 스며들었고, 임악선이 이때를 놓치지 않고 명령했다.

“하하하, 죽여라! 우리가 북명검파를 대신해서 처리해주마.”

마련교 고수들이 이도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도진은 몸에 열기가 느껴지면서 눈빛이 흐릿해졌다.

‘저 빌어먹을 땡중이 마합산(魔合散) 독을 쓸 줄 알았어!’

이도진은 이를 악물고 피를 한 모금 내뿜더니, 더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다.

마련교의 나머지 고수들도 전부 이도진의 검에 죽고 말자, 임악선은 이도진이 독기에 중독되었음에도 이렇게 강하다는 것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때, 마련교의 종사급 고수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도진을 향해 검을 찔렀다.

푸슉.

종사급 고수의 검이 그대로 이도진의 배를 찔렀다.

독에 중독되어 정신이 혼미해지던 이도진은 검이 배에 닿는 순간 정신을 퍼뜩 차렸다. 이도진은 곧장 배에 반 촌 정도 들어왔던 검을 쳐내고는 일장(一掌)을 매섭게 뻗었다.

마련교 고수는 이도진에게 기습 공격을 한 후 바로 후퇴했지만, 이도진의 일장을 정통으로 맞고 그 자리에서 목숨이 끊겼다.

임악선의 두피가 저릿해졌다.

이도진이 막강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중독된 상태임에도 모든 마련교 고수를 죽일 만큼 강할 줄 몰랐던 것이다.

“내가 중독되었어도, 네놈은 내 손에 죽는다!”

이도진이 패기 넘치게 외쳤다.

이도진은 중독되어서 정신이 혼미해지는 와중에도 임악선을 먼저 공격하겠다고 검을 휘두르며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임악선은 얼굴이 사색이 되더니, 이도진과 전면전을 펼치지 않고 계속 후퇴하면서 그녀의 검을 피하기만 했다. 그는 독이 이도진의 몸 전체에 퍼지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임악선의 예상대로 온몸에 독이 퍼지면서, 이도진의 얼굴이 점점 더 붉어지고 다리에 자꾸 힘이 빠졌다.

철퍼덕.

어느 순간, 임악선을 쫓던 이도진이 고꾸라지고 말았다.

“하하하하! 드디어 독이 퍼졌나 보군. 내 소원이 이루어졌구나.”

임악선이 그제야 이도진을 향해 일장을 날렸다.

쾅.

이도진의 몸이 허공으로 날아가면서, 그녀의 입에서 붉은 피가 솟구쳤다.

그녀의 몸이 바닥으로 콰당 소리를 내며 떨어지자, 키가 크고 건장한 임악선이 옷을 풀어헤치면서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흥분한 임악선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도진 선자, 내가 선자를 밤이고 낮이고 그리워했다고. 벌써 10여 년이나 흘렀는데, 이제 내 소원 좀 이뤄줘야지. 선자가 죽을 만큼 기분 좋게 만들어 줄 테니까, 응? 하하하. 내가 천하의 모든 미녀와 잠자리를 가져봤는데, 북명검파의 선자를 맛본 적이 없네. 이야, 진짜 짜릿한데?”

이도진이 입가에 피를 흘리면서 허약한 모습으로 두변을 향해 말했다.

“날 죽여줘. 두변, 제발 날 죽여줘!”

슉, 슉, 슉.

하지만 임악선이 걸어오면서 허공에 손가락을 몇 번 튕기더니 이도진의 혈도를 찍어서 그녀가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에이, 뭘 벌써 죽으려고 그래. 저 새파랗게 어린놈의 무공이랑 정상급 종사인 내 무공을 생각해야지. 혈도까지 다 막힌 저놈이 뭘 할 수 있는데? 우리 선자를 죽이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되지.”

임악선이 악랄한 미소를 지으면서 두변에게 말했다.

“곱상한 녀석아. 난 남녀를 가리지 않으니까, 도진 선자를 먼저 맛본 뒤에 네놈을 예뻐해 주마. 하하하.”

임악선이 이도진의 통 넓은 장포를 찢을 기세로 두 손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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