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68화 (268/648)

268장. 흡성대법

그때, 두변은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드디어 막힌 혈도를 풀어냈다.

“잠깐! 임악선, 네 급소가 드러나 버렸네?”

두변이 임악선의 배꼽 아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임악선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의 치명적인 급소가 배꼽 아래라는 건 아무도 모르는 비밀인데, 두변이 그걸 단번에 알아챈 게 놀라웠다.

천마교의 사람이 수련하는 건 모두 사공(邪功)인지라, 정석대로 수련하는 무공보다 훨씬 더 빨리, 효과적인 수련이 가능했다. 하지만 사공을 수련하는 사람들에겐 모두 치명적인 급소가 있는데, 평소에는 그 급소를 필사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적이 그 급소를 발견하면, 그곳을 살짝 찌르기만 해도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기음음에게도 치명적인 급소가 있지만, 그녀는 두변에게 절대로 제 급소를 말하지 않았다.

임악선도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급소가 어딘지 말한 적 없건만, 두변이 시스템의 천안을 통해 알아낸 것이다.

이도진을 범하려고 할 때도 혈도부터 누를 만큼 조심스러운 임악선이고, 제일 가까운 여인에게도 알려준 적이 없는데 생전 처음 보는 두변이 그의 급소를 어찌 바로 알아냈을까.

이도진을 향하던 임악선이 두변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몸이 도진 선자와 먼저 대화를 좀 해보려고 했는데, 네놈을 먼저 죽여야겠구나.”

임악선이 두변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던 찰나, 두변이 검지를 들고 빠르게 육맥신검 소양검을 쏘아냈다.

슉.

치명적인 검기가 임악선의 급소를 향해 날아갔다.

임악선은 두변과 무려 7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이 정도 거리는 정상급 종사인 임악선의 내력 현기도 무용지물로 만들 판인데, 두변처럼 무공 내력이 약한 사람은 무슨 검기를 쏘아내도 그의 발치에 닿지도 못할 것이다.

임악선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두변의 검지로 쏘아낸 검기가 자신의 급소를 향하든 말든, 임악선에게 두변의 공격은 간지럼 태우기에 불과했다.

임악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두변을 죽일 기세로 그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런데 그 순간.

푸슉.

두변의 소양검 검기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임악선의 급소를 정확히 명중했다.

임악선이 흠칫 놀라면서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두변을 쳐다보았다.

7미터나 되는 간격임에도 두변이 쏘아낸 검기가 중간에 사라지지도 줄어들지도 않고 그의 급소에 정확하게 꽂혔다.

급소란 게, 아주 연약하고 치명적이지만 아무런 방비를 할 수 없는 곳이 바로 급소가 아닌가.

급소가 찔리는 순간, 임악선은 공기가 빠진 풍선처럼 온몸의 내력 현기가 급소를 통해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처음에는 내력 현기가 뿜어져 나오다가, 나중에는 붉은 피가 솟구쳤다.

“아악! 아아악!”

임악선이 처절하게 비명을 질렀다.

처음에는 급소에서만 피가 쏟아져 나왔지만, 나중엔 입과 코 등에서도 피가 울컥울컥 흘러나왔다.

“나 임악선이 이렇게 무공이 약한 곱상한 놈에게 당하다니. 하하하. 성숙한 이도진 선자는 네놈 혼자서 독식하겠구나. 내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임악선이 마지막으로 피를 토하면서 눈을 뜬 채 그대로 생을 마감했다.

임악선이 죽자, 이도진이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두변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경계심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이도진은 임악선의 마합산 독에 중독된 터라, 온몸에 힘을 줄 수가 없었다. 만약 두변이 그녀에게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도진이 중독된 독은 지난번 계표표가 중독됐던 독과 성질이 달랐다.

당시 계표표는 이성을 완전히 잃은 채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그 무엇으로도 절제할 수 없었던 반면, 이도진의 마합산은 온몸에 열이 오르고, 시야가 흐려지고, 이성이 점차 마비되지만 반면에 정신은 혼미해지지 않고 평소처럼 또렷하다.

임악선 그 변태는 이도진을 또렷한 정신으로 유린하려고 했던 것이다.

마합산은 여인들에게만 중독 증상이 있고, 남자들에게는 오히려 혈기가 왕성해지고 근맥이 일시적으로 강화되는 효과가 있었다.

“두변,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거든 나를 죽인 뒤에 해라.”

이도진이 숨을 몰아쉬면서 힘겹게 말했다.

그녀는 마합산 때문에 온몸에 열이 올라서 피부가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조금 전에 배에 검까지 찔려서 몸 상태가 최악이었다.

임악선이 그녀의 장포를 반쯤 찢어놓은 상태인지라, 이도진의 새하얀 속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두변이 이도진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장포를 꼭꼭 여며줬다.

“이 종사, 제가 종사를 업어서 밖으로 나갈 겁니다. 야생마에 타기만 하면,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이도진이 조금 놀란 눈치로 두변을 쳐다보았다.

두변이 이때를 틈타서 그녀를 욕보이는 게 아니라, 그녀를 살려주고 이 함정에서 같이 살아서 나가자고 말하고 있었다.

사실 두변도 진심으로 이러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이건 시스템의 지시였다.

두변은 두말없이 그녀를 등에 업었다.

‘와씨. 겉으로 봤을 땐 몰랐는데, 왜 이렇게 무거워?’

두변이 속으로 울상을 짓는 순간,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그의 등에 닿았다.

“준비됐어요? 이제 갑니다. 이곳에서 나가지 못하면 우리 둘 다 여기서 죽는 거예요.”

두변이 말했다.

그는 이도진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곧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마련교 제단 밖으로 나가자, 마련교 사람들이 두 사람을 보고 흠칫 놀랐다.

그리고 곧장 살기 어린 눈빛으로 두 사람을 노려보면서 칼을 뽑아 들었다.

“죽여라. 저놈들이 도망친다.”

두변이 한 손으로 이도진의 허벅지를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 빠르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슉, 슉, 슉, 슉.

육맥신검 소양검, 중양검, 대양검, 태허검, 태충검, 태아검!

보통 무도인은 실전에서 검기나 강기를 쓸 때마다 충분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두변의 육맥신검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두변은 마치 기관총을 손에 쥔 것 거침없이 육맥신검을 공격했다.

그는 폭주한 것처럼 눈 깜빡일 새도 없이 육맥신검을 쏘아냈는데, 그중 가장 강력한 건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나가는 태아검이었다.

5품 무사 이하의 적들은 두변의 육맥신검을 한 방만 맞아도 고꾸라졌다.

두변은 30초도 안 되는 사이, 자신에게 달려든 마련교 사람들을 수십 명을 해치웠다.

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은 생사가 불명했고, 전부 피를 토하거나 피를 흘리고 있었다.

‘세상에나.’

두변도 자신의 능력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미친. 이게 육맥신검이라고? 시스템이 날 속인 거 아냐? 이건 육맥신검이 아니라 현기 내력 버전의 기관총이잖아!

6품 무사의 몸으로 이 정도인데, 내가 나중에 1품 무도 고수가 되거나, 종사급 고수가 되면 육맥신검의 위력이 얼마나 더 대단해질까?

기이한 불빛이 두변의 머릿속에서 말했다.

‘어때? 강하지? 이건 오직 너 한 사람만을 위한 기술이다.’

마련교 제단 밖에 있던 사람들도 놀라서 움찔거리기만 할 뿐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사실 이곳엔 두변의 육맥신검에 치명상을 입지 않을 3품, 4품 무도 고수들도 많았지만, 그들은 두변의 기세에 완전히 압도당하고 말았다.

일당백의 기세로 포위진을 뚫고 나오는 두변을 보자, 마련교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면서 두변의 앞을 막지 못했다.

그 덕에 두변은 쏜살같이 포위망을 뚫고 나가서 야생마 위로 몸을 날렸다.

“달려!”

두변이 외치기도 전에 야생마가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뭐, 뭣들 하는 거야. 어서 쫓아야지.”

마련교 사람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두변을 쫓았다.

하지만 야생마는 그들이 쫓아올 틈도 주지 않고 벌써 멀리 달아나버린 후였다.

두변은 이도진을 데리고 끊임없이 질주하다가 깊은 산속의 연못가에 멈춰 섰다.

이도진은 혼절하기 직전이었고, 복부의 상처가 벌어져서 그 사이로 흘러나온 피가 장포를 새빨갛게 적셨다.

두변이 이도진을 조심스럽게 안아서 연못가에 내려다 놓은 뒤, 그녀의 장포를 벗기려고 손을 뻗었다.

이도진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면서 소리쳤다.

“뭐 하는 짓이냐!”

“지금 당장 처치하지 않으면 이대로 과다 출혈로 죽습니다.”

이도진이 벌겋게 실핏줄이 터진 눈으로 두변을 바라보면서 애원했다.

“두변, 나를 죽여도 좋다. 나를 갈기갈기 찢어 죽여도 괜찮아. 하지만 부디 내 몸을 더럽히진 말아라. 나는 얼음보다 깨끗하고 투명한 도진 선자니까.”

‘뭐라는 거냐. 자기애가 넘쳐도 너무 넘치네.’

두변이 속으로 생각하는 찰나, 이도진은 눈을 뒤집으면서 혼절했다.

두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이도진의 장포를 풀었다.

‘와. 겉으로 봤을 땐 몰랐는데, 마흔 가까이 되는 사람의 몸매가 아니긴 하네. 이 몸을 보면 이도진이 스물 몇 살이라고 해도 믿겠어.’

두변은 깜짝 놀랐다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서 시선을 거두고는 복부 상처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다행히 검이 깊이 찔리지 않아서 그녀의 장기가 손상되진 않았다.

두변은 침착하게 연못의 깨끗한 물로 이도진의 상처를 씻어냈고, 약초를 바른 뒤에 간단하게 봉합까지 마쳤다.

이왕 도와주기로 한 거,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하자는 마음에 이도진의 장포를 깨끗하게 빨아서 모닥불에 말린 뒤, 다시 이도진에게 입혀줬다.

이도진은 여전히 인사불성인 채로 잠들어 있었는데, 그녀의 몸이 점점 더 빨갛게 달아올랐다.

두변은 모닥불 옆에 앉아서 고민에 빠졌다.

‘이도진을 여기 버리고 나 혼자 백색부로 돌아갈까? 계표표 누이가 날 기다리느라 목이 빠졌을 텐데.’

기이한 불빛이 말했다.

‘절대 그러지 마라. 이도진이 마련교 함정에 빠졌던 건, 절대로 알아선 안 될 비밀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그 비밀은 네 무도 수준을 미친 듯이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이도진은 네가 영원히 북명검파의 추격을 당하지 않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기이한 불빛이 이어서 말했다.

‘네 선천적 체질은 40밖에 되지 않는다. 이 체질이라면 네 무도 수준은 최대가 6품 하등 무사다. 이 최고 수준을 돌파하려면 이도진과 북명검파를 이용해야만 해. 이렇게 어렵게 이도진의 호감을 얻었는데, 지금 이대로 포기하게 된다면 너무 아깝지 않겠냐. 네가 운명의 주도권을 쥔 것도 맞고, 네가 무슨 결정을 하든 우리는 다 존중할 것이다. 하지만 이도진은 네가 북명검파라는 세계를 열 수 있는 열쇠가 되어줄 것이다. 이대로 포기한다면, 내 마음이 너무 아파.’

두변이 피식 웃었다.

‘알겠어요.’

‘백색부는 지금 아주 위급한 상황은 아니다. 계청주는 차질없이 군대를 훈련하고 있고, 여여해는 서남 토사 연맹을 단합하느라 바쁘다. 백색부에 잠시 네가 없다고 해도 큰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 어려운 기회를 꼭 붙잡고 최단 시간 내로 네 무도 수준을 향상해라. 이도진이 그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네네, 알겠습니다.’

두변이 갑자기 물었다.

‘그런데 이도진을 죽이려던 사람은 누굽니까? 북명검파 소속의 사람인가요?’

‘그렇다.’

‘왜요? 무슨 비밀을 발견했길래 그래요?’

‘북명검파는 천년 전에 문파를 설립했다. 그때 문파를 설립하게 된 전설급 비급이자, 원래는 이 세계에 있어선 안 될 북명대법(北冥大法), 정확히 말하면 반 토막짜리 북명대법인 흡성대법(吸星大法)을 발견했다.’

‘서, 설마 말로만 듣던 그 흡성대법이요? 남의 내공 현기를 빨아들여서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그 흡성대법이요?’

‘그렇다. 바로 그것이다. 이도진과 북명검파 소속의 다른 종사가 동시에 흡성대법의 행방을 알아내서 이도진이 함정에 빠진 것이다.’

‘그 흡성대법이 전설급 비급이기도 하고, 제가 회수해야 할 천상의 무공이라는 거죠?’

‘맞다. 네가 단시간 내에 무도 수준을 미친 듯이 향상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기도 하다. 평범한 수련으로는 네가 스물다섯쯤에 종사급을 돌파할 테니까, 꼭 이도진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흡성대법이라는 이름도 이전의 숙주가 이름을 지은 겁니까? 원래 이름은 뭔데요?’

‘지옥가공(地獄嫁功)이다.’

두변은 이미 육맥신검을 통해 전설급 비급의 위력을 여실히 느낀 상태였다.

이 흡성대법이라는 무공이 또 얼마나 사람을 놀라게 할지 기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기이한 불빛이 말했다.

‘아무튼, 꼭 이도진을 스승으로 모셔야 한다. 그리고 그녀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어야 하고. 이도진은 네가 북명검파에 들어갈 유일한 열쇠이자, 네 무공 수준을 빠르게 향상시킬 열쇠이다.’

기이한 불빛과의 교류를 마친 두변은 피로감이 몰려왔다.

육맥신검을 너무 많이 써서 내력 현기가 많이 소진된 탓이었다.

두변은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연못 옆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그는 잠자는 동안에도 구양진경을 통해 내력 현기를 회복했다.

다음날, 이도진이 서서히 눈을 떴다.

이도진은 자신의 옷이 흐트러져있고, 새하얀 왼팔이 밖에 노출된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게다가 그녀는 주꾸미처럼 두변의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부아가 치밀어 오른 이도진이 두변을 죽이려는 찰나, 두변이 오히려 자기를 피하려는 듯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바위와 일체가 되기 직전이라는 걸 깨달았다.

‘설마 내가 먼저?’

이도진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두변을 내려다보았다.

‘죽겠네. 이게 뭐야? 내가 왜 이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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