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70화 (270/648)

270장. 대은구도 도주

지금 두변이 두씨 가문으로 돌아간다는 건, 의부 이문회에게 못 할 짓이고, 황제에게도 못 할 짓이었다.

황제가 두변의 기세를 세워주기 위해서, 훗날 두씨 가문을 뛰어넘으라는 의미로 작위까지 하사했는데, 다시 가문으로 돌아가는 건 황제를 우습게 만드는 일이었다.

희민지가 두변의 대답을 듣고는 얼굴이 굳어졌다.

“두변, 나는 네 어미지만 두씨 가문의 사람이기도 하다. 선택권을 줬음에도 그런 결정을 내리다니. 내가 매정하다고 탓하지 말아라.”

“괜찮습니다. 어차피 어렸을 때부터 당신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거든요. 사실 어머니가 있다는 생각도 해본 적 없어서요.”

희민지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대전 안에 있던 사람들의 이목이 희민지에게 집중되었다.

다들 강 건너 불구경하듯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희민지를 쳐다보았고, 그중 막추가 가장 사악하게 웃으면서 희민지를 바라보았다.

대은구도의 사도들 내에는 저마다 보이지 않는 대립 구도가 있다.

10년 후면 대은구도 도주를 교체하게 되는데, 그때 도주 후보가 될 사람들이 바로 이곳에 있는 수십 명이었다.

북명검파 내에서도 대은구도의 권력은 실로 막강했다.

대은구도는 바깥세상과 북명검파의 모든 세속적인 교류를 담당하는 데다가, 대은구도 명단 하나로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들에게 북명검파 종주는 닿을 수 없을 만큼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라지만, 대은구도 도주는 무림 세계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대은구도의 사도 중에 무공 수준이 가장 높고, 경험이 제일 많은 사람은 단연 막추였다. 하지만 막추는 천성이 악독했고, 인간관계가 몹시 원만하지 못했다. 덕분에 막추는 10년 동안 연달아 몇 번씩이나 벌을 받았고, 표사도에서 소요도로, 소요도에서 또 대은구도로 여러 번 좌천을 당하기도 했다.

희민지는 사도 중에 무공이 가장 강한 건 아니었지만, 도주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서 차기 도주로 많이 언급되는 자 중 한 명이었다.

막추가 일부러 두변을 죽이지 않고 대은구도로 데려온 건, 희민지를 괴롭혀서 그녀가 도주 자리에 오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희민지가 두변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너는 나를 어미로 인정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나는 내 친아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구나. 내가 오늘 네 목숨을 한 번 구해주겠다. 대신 오늘 이후로 모자의 연은 완전히 끝이다.”

희민지가 이도진 앞으로 다가가서 허리를 숙였다.

“이도진 사매, 사매의 제자 여천천이 죽은 터라, 지금 직계 제자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두변을 제자로 받아들이고, 이 아이의 목숨을 한 번만 살려주게.”

이도진은 난감했다.

아무 일도 없긴 했지만 두변과 남녀 간의 이런저런 일이 있던 터라, 뭔가 애매한 게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두변은 북명검파를 항상 적대시해왔다.

북명검파가 온 세상에 퍼져있는 것도 맞고, 각지의 천재들을 인재로 양성한 것도 맞지만, 두변은 너무도 위험한 인물이었다.

이도진은 두변이 훗날 북명검파의 명령을 어기고 무슨 짓을 할 것이라고 확신했고, 그땐 사부인 자신도 연루될 수밖에 없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니 어찌 쉽게 희민지의 청을 들어줄 수 있으랴.

희민지가 재차 말했다.

“사매, 제발 내 아들놈의 목숨을 한 번만 구해주게. 내가 사매에게 한 번 빚을 진다고 생각하겠네. 나중에 두변이 정말로 명령을 어길 때, 언제든 두변을 내쳐도 돼. 그럼 사매에게 영향이 가지 않을 테니까.”

이도진은 두변을 바라보면서 힘겨운 고뇌에 빠졌다.

“알, 알겠어요. 두변을 제 제자로 받아들이고, 주살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지워주죠.”

결국 이도진이 말했다.

기이한 불빛이 두변의 머릿속에서 말했다.

‘드디어 모든 게 끝났다. 이도진의 제자가 되어서 북명검파를 개척할 수 있는 열쇠를 얻었다!’

하지만 두변은 도저히 후련함은 전혀 느낄 수 없었고,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이게 바로 시스템이 계획했던 겁니까? 바람 빠진 축구공처럼 이리저리 치이다가, 누군가가 불쌍히 여겨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는 게 목표였냐고요!’

기이한 불빛이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숙주, 우리는 무슨 수단을 쓰든 목표에 도달하기만 하면 된다고 본다. 과정은 중요치 않아. 그리고 계청주 때와는 다르게 뭘 많이 준비할 필요도 없이 목표를 달성했지 않으냐.’

두변이 이를 부득 갈았다.

‘아니요. 난 이렇게 날 불쌍하게 취급하는 건 사양하겠습니다. 그리고 난 내 운명의 주도자잖아요.’

‘그야 맞긴 하지. 그래도 성공했잖아? 북명검파의 주살 명단에서도 이름이 지워졌잖아. 북명검파 소속이 되었고 말이다.’

‘시스템! 이번엔 내 명령을 따라요.’

굳게 결심한 두변은 이도진의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이 종사, 난감해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종사의 목숨을 구해줬던 건 우연의 일치일 뿐이지, 그걸 이런 식으로 보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훗날 내가 종사께 피해를 줄까 봐 저와 선을 긋고 싶어하는 것 압니다.”

두변이 희민지에게 시선을 돌리고 말을 이었다.

“희 부인, 인륜 도덕 같은 것에 등 떠밀려서 저를 구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그 제안을 거절했으니, 이제 두씨 가문과 그 어떤 은원관계도 없는 겁니다. 제 목숨은 제가 알아서 구합니다.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어요.”

마지막으로 두변은 대은구도 도주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가서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하 도주라고 하셨습니까? 북명검파가 진짜 대단한 조직이긴 하네요. 누구든 마음대로 죽일 수 있고 말이에요. 제국의 변절자 염효를 죽인 게 북명검파와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계청주를 설득해서 폐하께 충성을 맹세하게 한 게 북명검파와 또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이고요? 북명검파가 무슨 권한으로 나를 처벌합니까? 대은구도 도주가 무슨 권력으로 나를 주살 명단에 올리고, 갑을병정 급까지 나눠가면서 죄인 취급합니까? 북명검파가 뭔 황제입니까? 형부(刑部)예요? 아니면, 뭐 천신이라도 됩니까?”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아연실색했다.

줄곧 무표정하던 대은구도 도주도 조금 놀란 기색으로 두변을 쳐다보았다.

대은구도 도주 자리를 10여 년 동안 지켜왔고, 세속 무림의 운명을 주도한 지 10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도주는 누군가에게 이런 식으로 질책을 들은 건 처음이었고, 이렇게 면전에 대고 자기를 욕하는 사람도 처음이었다.

두변이 되지도 않는 허세를 부리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는 이미 두씨 가문과 완전히 연을 끊었는데, 이제 와서 가문에 다시 목숨을 빚질 필요는 없었다.

방청의의 말대로 지금 와서 두씨 가문과 화해할 것도 아닌데, 목숨을 부지하고자 두씨 가문에 빌붙을 이유가 무엇이랴.

그리고 이도진이 정말로 난감해 보였다.

두변은 굳이 이도진을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이도진이 자신에게 목숨을 빚졌다고 해도, 이건 정말 너무 구질구질한 노선이 아닌가.

만약 두변이 미래에 이도전을 죽여서 북명검파를 자극한다면, 이도진은 어쩔 수 없이 두변을 내쫓을 것이고, 대은구도 주살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다시 오르게 될 것이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한번 끝장을 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시스템, 플랜 B를 시작하죠. 우리가 시뮬레이션해봤을 때 성공할 확률이 꽤 높지 않겠어요?’

기이한 불빛이 대답했다.

‘숙주, 우리가 시뮬레이션을 해봤던 건 사실이지만, 우리가 완전히 정확한 예지자는 아니다. 시뮬레이션이 100퍼센트 정확한 것도 아니고, 만에 하나 사소한 오차가 있다면 넌 그대로 죽는다고. 그리고 시뮬레이션을 진행할 때, 위험 점수가 너무 높아서 시뮬레이션을 다 완료하지도 못했다.’

‘그래도 이 방법만이 확실하잖아요. 시스템! 이전엔 나를 몇 번이고 위험한 상황에 몰아넣었지만, 난 몇 번이고 구사일생했어요. 맞죠?’

기이한 불빛이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우리가 네게 투자한 게 많은 만큼,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네가 성공할 확률이 높으면 높을수록 위험을 감수할 자신이 없어진다고.’

‘하지만 큰일을 해내려면, 운에 맡겨볼 배짱도 있어야 해요.’

‘숙주, 넌 운명의 주도자이고, 우리가 계획했던 노선을 아예 없애버렸으니까 네가 말한 대로 플랜 B를 시작해도 좋다.

플랜 B: 신마(神魔)의 심판 임무 시작!

임무 성공 포상 1: 대은구도 추살 명부에서 이름이 완전히 지워진다.

임무 성공 포상 2: 북명검파의 신비한 인물의 제자가 된다.

임무 성공 포상 3: 북명검파의 전설급 인물이 된다.

지금까지의 예측 결과, 성공 가능성 70퍼센트 이상.

임무 실패 시 숙주 두변 사망.’

두변의 말을 들은 대은구도 도주는 화를 내긴커녕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이름이 두변이라고 하였나? 말 한번 잘하는구나. 북명검파에서 무슨 자격으로 너를 사형에 처하고, 북명검파가 무슨 자격으로 세계를 호령하냐고?”

대은구도 도주가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어린 것이 말을 참 잘해. 사도들이여! 너희들은 모두 북명검파를 대표하여 세속 세계를 오가는 사람들이다. 바깥세상 사람들이 너희들을 무척 공경하게 대하고, 경외심을 가지지 않나? 다들 두변의 말대로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 있는가? 우리 대은구도의 심판 자격은 어디서 왔다고 생각하는가!”

“사존, 힘에서 나온 거지요. 북명검파는 천하에서 가장 막강한 무도 세력이기 때문에 가장 고귀하고 정의롭습니다.”

방청의가 대답했다.

두변은 대은구도 내에서 방청의의 위치가 굉장히 특별하다는 걸 눈치챘다.

대전 안에는 수십 명의 대은구도 사도가 있는데, 대부분 마흔이 넘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유독 방청의만 스물 몇 살이었고, 자리가 비록 좀 뒤쪽이긴 했지만 언제든 말하고 싶을 때 대화에 끼어들 위치인 듯했다.

게다가 대은구도 사도들 대부분이 종사급 무사였는데, 방청의는 아직 종사급에 달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녀가 무슨 자격으로 대은구도의 사도가 되었을까?

두헌(두변)이 선천적 고자이기도, 경증의 자폐증도 있어서 두씨 가문 내에서 환대를 받지는 못했지만, 먹고 사는 데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방청의의 말 한마디 때문에 두변은 가문에서 버림받았다.

보아하니 방씨 가문은 단순히 천 년 역사의 문관 세가만은 아닌 듯했다.

대은구도 도주가 말했다.

“두변, 북명검파가 세계 최강의 무도 문파이고, 힘이 곧 정의를 뜻한다. 그래서 우리는 너를 심판할 수 있는 것이고, 너를 사형에 처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네 모습은 참 기개가 있어 보이는구나. 목숨을 구걸하지 않겠다 이거지? 좋다. 네 기개를 높이 사마. 원래는 너를 교수형으로 처형하려고 했는데, 대전에서 언성을 높이고 북명검파의 권위를 질책하였으니, 내가 너를 정급 죄인에서 병급 죄인으로 격상시켜주마. 넌 참수형을 당하게될 것이다.”

두변이 앞으로 한 걸음 나가서 말했다.

“천형(天刑)을 신청합니다. 신마(神魔)의 심판 말입니다.”

두변의 말에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도진, 희민지, 막추, 그리고 대은구도의 도주까지 놀란 기색으로 두변을 쳐다보았다.

‘천형이라니. 그건 대은구도의 최고 수위의 처벌인데?’

대은구도의 제일 높은 산은 마치 날카로운 검처럼 하늘을 찌를 기세로 우뚝 솟아있는데, 산 전체가 검은 금속 재질이어서 바위나 나무 같은 게 일절 없었다. 높이는 해발 몇천 미터나 되고, 산꼭대기에는 사람 하나가 간신히 서 있을 정도의 공간만 있었다.

대은구도에는 매일 오후에 놀라운 번개가 내리치는데, 여천천을 죽였던 그런 벼락 수준이 아니라 정말 하늘이 울릴 정도의 강력한 번개가 내리꽂히곤 한다.

그 번개에 맞는다면, 사람 하나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 백 명이 죽는 것도 쉬운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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