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장. 신마(神魔)의 심판
산꼭대기에서 이 번개를 맞게 된다면, 어디 숨을 곳도 없는 곳에서 그대로 타 죽어 버릴 뿐이다.
절연체로 만들어진 옷이나 모자, 신발을 신어도 무용지물이었다.
천형을 받게 되면, 죄인은 실오라기 하나 못 걸친 상태로 검은 산의 꼭대기에 서게 되고, 번개에 맞아 죽을 준비를 해야 한다.
대은구도의 주살 명단에서 이렇게 끔찍한 천형을 받게 될 자는 오직 천급(天級)죄인뿐이었다.
그런데 두변은 아직 정급 죄인인지라, 천급 죄인이 되기에는 거리가 좀 있었다.
이건 3개월 유기 징역을 받은 자가 갑자기 사형을 받게 되는 꼴이라 할 만했다.
천형을 받고 신마의 심판까지 받겠다는 건 이런 뜻이었다.
천형을 받고도 죽지 않으면 하늘의 계시가 있는 자라는 의미였고, 하늘도 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하늘이 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면, 앞으로 대은구도에서는 다시는 그 사람을 처단할 권리가 없으니 대은구도의 주살 명단에 다시는 오를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천형을 받고도 죽지 않은 자가 있을까?
적어도 몇백 년 동안은 죽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대은구도의 번개는 백 명도 단번에 죽일 정도로 강력하니까.
6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북명검파의 한 제자가 천형을 받고도 죽지 않았는데, 마지막엔 무죄로 판결 났고, 그는 훗날 북명검파의 종주가 되었다.
또 1천2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또 한 명의 북명검파가 죽지 않고 무죄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북명검파의 희대의 변절자가 되었고, 그 때문에 북명검파가 몇백 년이나 분열을 겪어야 했다.
이 두 사람이 어째서 천형을 받고도 죽지 않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대은구도 도주가 두변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천형을 받고자 하는 이유가 신마의 심판을 받기 위함이냐? 천형을 받고도 죽지 않으면 대은구도에서 더는 너를 어찌할 수가 없고, 너를 죽일 권한도 없어서?”
“맞습니다. 그러니까 제 목숨은 제가 심판하고, 하늘이 심판하게 해주시지요. 만약 하늘이 저를 죽이려고 한다면, 제가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도 여한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들의 심판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전 무죄니까요.”
“만약 교수형이나 참수형을 당한다면, 나중에 다시 윤회를 통해 태어날 수 있다. 하지만 천형을 받게 되면 네 혼백까지 소멸하게 돼. 영원히 윤회를 거칠 수 없는 처형이 바로 천형이다.”
“그래도 저는 천형을 받고, 신마의 심판을 받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천급 죄인이 되는지 알고 있는데, 꼭 제가 직접 해야 합니까?”
천급 죄인이 되는 방법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북명검파의 최고 권위자인 북명검파 종주를 욕하면 된다.
북명검파의 종주는 천하 무도의 최고 지도자인데, 누구든 그를 공개적으로 욕하면 곧바로 천급 죄인이 되고 천형을 받게 된다.
“그 입 다물라.”
대은구도 도주가 정색하고 말했다.
대은구도의 대전에서 누가 그런 짓을 저지른다면, 북명검파에서 큰 파장이 일어날 것이고, 대은구도 도주도 이 사건에 휘말려서 큰 곤욕을 치르게 되지 않겠나.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게 소원이라면, 내 친히 그 소원을 이뤄주지. 천형을 준비하라.”
대은구도 도주가 말했다.
대은구도는 매년 열 번 정도 천형을 집행한다. 마치 특정한 목표치를 채우는 것처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열 번 정도를 유지했다.
만약 1년 동안 천형을 받을 천급 죄인이 부족하게 되면, 도주는 슬쩍 붓을 들어서 천급 죄인 수준이 아닌 죄인을 천급 죄인으로 만들면 그만이었다.
만약 1년 동안 천형을 받을 천급 죄인이 너무 많다면, 천급 죄인 몇 명이 쥐도 새도 모르게 갑급 범인으로 등급이 내려가기도 했다.
지금이 10월인데, 때마침 올해 대은구도의 천급 죄인이 많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죄인 일곱 명이 천형을 받았는데, 두변까지 합하면 여덟 명이 되니 도주 입장에서도 좋은 거래이긴 했다.
천형은 항상 오후 4시에 집행되었다.
대은구도의 날씨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늘 오후 4시가 되면 경이로운 번개가 내리쳤고, 미친 듯이 반 시진 정도 내리치다가 5시쯤에 번개가 그쳤다.
그런 만큼, 천형을 집행할 때마다 대은구도에는 장관이 펼쳐지게 된다.
족히 몇만 미터 되는 번개가 내리치는데, 천급 죄인이 눈 깜빡할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장관. 뼈도 못 추린다는 말이 바로 이때 쓰는 게 아닐까 싶다.
오후 3시가 되자, 두변은 가마에 실린 채 대은구도의 가장 높은 산봉우리로 이송되었고, 대은구도의 사도 수십 명도 그와 함께 산으로 향했다.
사도들은 해발 4천 미터까지만 동행했고, 그 이후 몇백 미터는 두변과 그를 이송하는 무사 몇 명만 올라갔다.
두변이 오른 산은 하늘을 찌르는 검은 검처럼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길이 좁아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은구도는 이 산봉우리 덕분에 번개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모든 번개가 이 산봉우리에만 집중되다 보니, 대은구도의 다른 곳에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다.
이도진은 복잡한 심정으로 산봉우리를 올려다보았다.
방청의는 흥분하기도, 고소하다는 눈빛으로 두변을 쳐다보았다.
무사들이 두변의 옷을 하나도 남김없이 벗겼다.
방청의는 두변이 이런 식으로 죽는 게 너무 신나고 분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두변의 모친 희민지는 두변을 따라오지 않고 대전 안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오후 3시 20분.
무사들이 두변을 해발 4천5백 미터 높이의 대은구도 산꼭대기에 데려다 놓았다.
두변이 간신히 발을 디디고 있는 이곳은 바위가 아니라 어떤 특수한 암석인데, 천년 넘게 번개를 맞아서인지 암석은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무사들은 두변을 벌거벗긴 채로 쇠사슬에 묶어 놓고는, 행여나 번개에 맞을까 싶어서 빠르게 아래로 내려갔다.
모든 사람이 경이로운 번개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사도 수십 명과 도주는 번개가 미치지 않는 산 아래 동굴에 들어가서 산봉우리를 올려다보았다.
오후 3시 45분.
하늘에 먹구름이 점점 몰려들기 시작했다.
먹구름이 점점 더 두껍게, 넓게 퍼지더니, 어느새 태양을 완전히 가려버렸다.
결국 섬 전체가 마치 밤이 된 것처럼 깜깜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신선경 같던 대은구도는 한순간에 지옥이 되었다.
바다에서 요란하게 파도가 치기 시작했고, 먹구름이 바다 위를 자욱하게 감쌌다.
먹구름이 차츰 낮게 깔리더니, 두변이 있는 산봉우리도 집어삼켰다.
오후 3시 50분.
먹구름이 좀더 빽빽하게 모여들었다.
10분 뒤에 천형이 시작된다.
같은 시각. 두변의 머릿속.
기이한 불빛이 말했다.
‘기후 상태와 지금까지 계산한 것에 따르면, 숙주의 신마 심판 성공률이 70퍼센트에서 80퍼센트까지 상승했다.’
두변이 물었다.
‘천년 넘게 신마 심판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오직 두 명이에요. 성공 확률을 계산할 수 있는 어떤 규칙이 있는 건가요?’
‘표면적으로는 규칙이 없어 보이지만, 우리의 계산에 따르면 일정한 규칙이 있다. 하지만 네 운이 좋은 편이구나. 각종 기후 조건을 계산한 결과, 너의 신마 심판 성공률 85퍼센트까지 상승!’
오후 3시 58분.
동굴 안에서 천형을 지켜보는 수십 명은 숨을 참고 번개가 내리치기를 기다렸다.
번개가 치기 시작하면, 두변은 천형이 시작됨과 동시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먹구름이 점점 더 짙고 낮게 깔렸다.
구름층이 충돌하기 시작하면서 하늘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슈우욱.
하늘의 먹구름이 갑자기 모양새를 바꾸더니 거대한 용 모양이 되었다.
회오리가 일기 시작하면서 산봉우리에 있던 두변을 감쌌다.
굵고 단단한 쇠사슬이 회오리에 휩쓸려서 힘없이 끊어졌고, 두변은 몸 전체가 붕 뜨면서 회오리에 휘말렸다.
바로 다음 순간, 경이로운 번개가 내리치기 시작했다.
파지지지직! 파지직!
대은구도에 세계 종말과도 같은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몇만 미터에 달하는 번개가 두변이 서 있던 곳을 향해 쉴새 없이 내리쳤다.
번쩍거리는 번개가 칠흑같이 어두운 대은구도의 하늘을 수백 번이고, 수천 번이고 찢어발겼다.
쿠구구구궁.
두변이 아직 산봉우리에 남아 있었다면, 그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이게 바로 천형이었다.
하지만 두변은 어젯밤에 시뮬레이션했던 것처럼 회오리에 휩쓸려서 이미 멀리 날아간 후였다.
회오리의 중심은 무척 평온했고, 두변에게 어떤 피해도 끼치지 않았다.
단점이 딱 하나 있다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아서 너무 춥다는 것?
두변은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회오리 속에서 세계 종말과도 같은 장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바로 천형이고, 신마의 심판이구나!
하지만 현실의 결과는 꿈속 결과와 조금 달랐다.
1시간 뒤, 번개가 그치고 석양이 구름 뒤에서 뉘엿뉘엿 나타났다.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평온함을 되찾았다.
회오리는 두변을 품은 채 대은구도를 한 바퀴 돈 뒤, 다시 그를 산봉우리에 무사하게 데려다 놓았다. 그 이후, 회오리는 즉시 소멸되었다.
꿈속 시스템도 두변의 천운에 놀랄 정도였다.
‘아무리 운이 좋은 사나이라고 해도 그렇지, 회오리가 두변을 절체절명의 시기에 데려간 것도 모자라서 번개가 그친 뒤에 다시 산봉우리에 무사히 데려다 놓아? 너무 소름 끼치잖아? 설마 두변이 정말로 하늘이 점지한 그 사람인가?’
기이한 불빛이 감탄했다.
‘우리도 네가 이렇게 운이 타고난 사람일 줄 몰랐다.’
‘이전에 신마의 심판을 통과한 사람들은 제자리에 돌아오지 못했나요?’
‘당연하지. 그 둘은 모두 바다에 떨어졌었다.’
번개가 지나간 뒤, 먹구름이 흩어지고 붉은 석양이 바다를 눈부시게 비췄다.
대은구도 도주 등은 동굴을 떠나서 대은구도 대전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 누군가가 손으로 산봉우리를 가리키면서 소리쳤다.
“주, 죽지 않았습니다!”
이 말을 듣자, 모든 사람이 경악하면서 산봉우리를 쳐다보았다.
석양이 산봉우리를 비추자, 헐벗은 사내가 가부좌를 튼 자세로 앉아 있었다. 사내는 온몸에 햇빛을 받아 금빛을 뒤집어쓴 것처럼 보였다.
이 신성한 사내가 두변이 아니라면 누구란 말인가?
경악한 대은구도 도주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면서 두변을 쳐다보았다.
도주는 정신력을 눈에 집중하고 산봉우리의 화면을 확대했다.
과연, 두변은 번개에 맞아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긴커녕, 어디 하나 다친 곳 없이 평온하게 산봉우리에 앉아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긴 정적이 흘렀다.
이도진도 놀란 표정으로 산봉우리에 앉은 두변을 바라보다가 대은구도 도주를 쳐다보았다.
막추가 눈빛을 반짝이면서 말했다.
“앞으로의 일이 재밌어지겠는데.”
방청의는 창백해진 얼굴로 목소리를 떨면서 말했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요. 저놈이 천형에서 살아남다니요. 뼈도 못 추리고 죽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죽지 않은 거지? 도대체 왜?”
대은구도 도주가 질끈 눈을 감았다.
‘일이 커지겠구나. 저놈이 천형에서 살아남다니. 신마의 심판을 통과했어.’
신마의 심판을 통과했다는 건, 단순히 무죄를 뜻하는 게 아니었다.
역사상으로 신마의 심판을 통과한 사람이 딱 둘이었는데, 한 명은 북명검파의 구세주가 되었고, 다른 한 명은 북명검파의 희대의 악마가 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신마의 심판을 통과한 사람이 바로 두변이었다.
두변은 과연 북명검파의 구세주가 될 것인가, 아니면 악마가 될 것인가.
북명검파는 두변을 어떻게 해야 할까?
“여봐라. 두변을 데리고 오너라.”
대은구도 도주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