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75화 (275/648)

275장. 교룡의 음모

하얀 뱀이 두변의 곁을 맴돌면서 함께 움직이자, 뱀 두 마리가 위험한 기운을 감지하고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네가 먼저 놔.”

“싫어. 네가 먼저 놔.”

“같이 놓자. 저 인간을 죽이고 나서 마저 결판 지으면 되지.”

두 뱀이 급소를 숨기기 위해서 동시에 서로를 놓아주려고 했다.

뱀들은 두변이 자신들에게 올라탄 뒤에 검으로 급소를 찌를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두변은 두 뱀에게 올라탈 필요도 없이 바로 육맥신검 두 줄을 쏘아냈다.

왼손으로 소양검을, 오른손으로 중양검을.

육맥신검이 검처럼 예리하고 빠르게 두 뱀의 급소를 명중했다.

두 뱀이 서로를 물고 있던 입을 딱 떼고 급소를 감추려던 찰나, 자신들이 이미 늦었음을 알아채고 말았다.

푸슉, 푸슉.

거대한 뱀 두 마리의 급소가 갈라지면서 엄청난 기운이 솟구쳐 나왔다.

두 뱀의 피와 기운이 함께 솟구치는 광경은, 마치 물줄기 강한 분수와도 같았다.

우오오오오!

두 뱀이 포효하면서 두변을 향해 커다란 입을 쩍 벌렸다.

콰과과광.

두 뱀의 송곳니가 두변의 1미터 앞까지 다가왔을 때, 두 뱀의 몸에서 쏟아져 나오는 기운과 피를 감당하지 못하고 몸 전체가 터져버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를 물어뜯던 거대한 뱀 두 마리의 몸이 허공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철푸덕, 철푸덕.

조각난 고깃덩이와 핏덩이가 연못 위로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두변은 천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운 좋은 기회를 잡고 두 뱀을 너무도 손쉽게 무찔렀다.

붉은 뱀과 노란 뱀이 조각난 채로 연못 밑으로 유유히 가라앉았다.

“선량한 인간, 고마워요.”

하얀 뱀이 두변을 맴돌면서 말했다.

“이제 내 약속대로 구슬을 줄게요. 입을 벌려요.”

하얀 뱀이 먼저 입을 벌리고 구슬을 자신의 혀 위로 뱉어냈다.

거대한 뱀 두 마리의 피와 살이 연못을 새빨갛게 물들이면서, 연못의 수온이 갑자기 상승하기 시작하더니 금방이라도 들끓을 것처럼 보였다.

두변이 말했다.

“그 구슬은 뱀의 생명줄과도 같은 거잖아요. 몇백 년 동안 흡수한 정기를 내가 어떻게 받아요. 저 사악한 뱀들을 물리친 건 우리의 인연이라고 생각해요. 굳이 내게 보답하지 않아도 돼요.”

두변이 연못을 떠나려고 몸을 돌렸다.

“안 돼요. 안 돼요. 잠시만요.”

하얀 뱀이 연약한 몸으로 두변의 몸을 스르륵 감쌌다.

“은혜를 보답해야만 내 여생이 평안할 수 있어요.”

하얀 뱀은 두변이 떠나지 못하도록 살살 몸을 조이면서 작고 귀여운 머리통을 들이밀며 새까만 눈을 반짝였다.

“선량한 인간, 정말 고마워요. 이 은혜는 내가 꼭 갚아야 해요. 이 구슬을 받아줘요.”

하얀 뱀이 다시 구슬을 자신의 혀 위로 뱉어냈다.

두변은 눈을 감았다.

그는 송과선을 이용해서 정신력으로 그 구슬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얀 뱀이 두변이 눈을 감자마자 사악한 본색을 드러냈다.

하얀 뱀의 혀 위에 있던 투명한 구슬은 초록색 독 구슬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정신력 덕분에 이 뱀의 본색을 알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작고 하얀 뱀은 사실 뱀이 아니라 뿔이 나기 시작한 교룡(蛟龍)이었다.

‘여기서 교룡을 마주친다고?’

교룡은 용은 아니지만, 용에 가까운 전설 속의 동물이다.

이 교룡은 허물을 벗은 지 얼마 안 된, 곧 진화할 교룡이었다. 막 탈피한 상태라서 날카로운 비수로 살짝만 찔러도 죽일 수 있을 만큼 연약하지만, 이대로 몇백 년이 지나면, 엄청난 크기로 성장해서 동굴 속 지하 바다를 재패할 것이다.

게다가 연못 바닥에 온갖 괴수의 시체가 가라앉아 있음을 이제야 발견했다.

각양각색의 괴수들은 하나같이 몸집이 거대한데, 그 괴수들을 죽인 게 바로 이 작고 연약한 교룡이었다.

교룡은 생물의 피와 살을 먹지 않지만, 생물들의 가장 순수한 정기를 뽑아먹는다.

교활하게 불쌍한 연기를 하면서 두변의 손을 빌려 거대한 뱀 두 마리를 죽이고, 이젠 두변에게 독 구슬까지 먹이려고 하고 있었다. 두변을 독살한 뒤에 두변의 정기를 빨아들일 속셈이리라.

교룡은 자신이 가장 취약한 상태일 때조차 이렇게 사악하고 교활했다.

두변은 눈을 번쩍 떴다.

교룡이 사악한 눈빛을 거두고 다시 부드럽고 고마워하는 눈빛으로 재빨리 두변에게 독 구슬을 먹이려고 했다.

푸슉.

“육맥신검 대양검!”

두변은 검기를 쏘아내서 연약하기 그지없는 교룡의 머리를 잘라버렸다.

교룡의 목에서 연한 황금색 피가 뿜어져 나왔다.

교룡의 피가 연못에 떨어지자, 수온이 급격히 상승하던 연못 전체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가장 순수하고 무시무시한 교룡의 정기가 두변의 피부에 닿으면서 그의 몸에 흘러 들어갔다. 교룡의 황금색 피가 두변의 근맥과 혈도를 뜨겁게 달궜고, 그의 뼈까지 녹일 기세로 그의 몸에 침투했다.

두변은 이제야 모든 게 명료해졌다.

교룡은 탈피하기 전에 이미 강한 존재였다.

교룡은 이미 지하 세계의 패왕이었고, 주위의 지하 생물이나 괴수, 해저 괴수들을 무참히 죽였다. 몇백 년 동안 쌓인 사체가 연못의 바닥을 가득 메웠고, 하얀 뱀은 교룡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교룡으로 완전히 진화한 후에는 동굴을 벗어나 바다로 나가서 지상의 패왕 괴수가 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생물이 그렇듯이 오늘 교룡은 지금 막 탈피한 탓에 작고 여린 하얀 뱀의 모습으로 두변을 보게 된 것이다.

붉은 뱀과 노란 뱀은 이 교룡이 탈피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교룡의 영역에 침범해서 교룡을 잡아먹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교룡의 음모 때문인 건지, 아니면 원수지간인 두 뱀이 하필이면 운이 나쁘게 마주치게 된 건지, 교룡을 상대하기도 전에 먼저 둘이서 싸우게 되었다.

둘 중 이긴 뱀만이 교룡을 먹어서 교룡이 수백 년 동안 축적한 정기를 독식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붉은 뱀과 노란 뱀이 비슷한 실력이어서 서로를 물고 늘어져서 누구도 먼저 입을 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덕에 탈피한 교룡이 안전하게 두 뱀의 싸움을 관전할 수 있었다.

게다가 두변이 나타나자, 두변을 꼬드겨서 두 뱀을 죽이게 하고, 두변까지 죽이려고 했다.

두변이 교룡의 본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정말로 모든 게 교룡의 음모대로 흘러갈 뻔했다.

두변이 교활해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이곳에서 허망하게 죽을 뻔했다.

어쩌면 두변의 그런 면모 때문에 그가 지금껏 살아있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

지하 연못에는 이미 거대한 두 뱀의 피 때문에 수온이 한껏 상승해있었다.

거기에 교룡의 황금색 피 몇 방울이 물에 닿자마자 연못 전체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물과 피가 한 데 섞여서 불에 올린 기름처럼 부글부글 끓었다.

두변은 용암에 빠진 것처럼 사지와 뼈마디가 뜨겁다 못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가장 순수한 정기의 결정이 두변의 근맥과 뼈마디에 스며들고 있었다.

이게 바로 진정한 세수벌맥(洗髓伐脈: 골수를 깨끗이 씻어내고 근맥을 모두 뽑아내어 새로 태어난다는 의미)이었다.

이 세계의 정신력과 체질 속성은 모두 태생적으로 정해지며, 후천적으로 바꿀 수 없었다. 그래서 사실 세수벌맥이라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두변은 지금 온몸의 근맥, 근육, 뼈마디가 한땀 한땀 불타오르면서 개조되고 있었다.

“으아아악!”

두변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태어나서 가졌던 모든 걸 다 뜯어내서 고치는 고통이니, 웬만한 사람이라면 주화입마에 빠져서 목숨을 잃을 정도가 아니겠는가.

교룡의 황금색 피가 두변의 근맥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그의 근맥을 완전히 망가트린 뒤에 다시 더욱 단단하게, 내력 현기의 통로를 더욱 넓게 만들었다.

몇 분 뒤, 두변은 도저히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혼절해버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두변이 다시 깨어났을 때, 그는 연못 위에 둥둥 떠 있었다.

연못은 다시 잠잠해졌고, 교룡의 황금색 피나, 두 거대한 뱀의 살점과 핏덩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연못은 처음 봤을 때처럼 맑고 투명했다.

잔잔하고 맑은 연못은 마치 조금 전에 두변이 겪은 모든 것이 꿈이라고 얘기하는 듯했다.

하지만 연못 아래에 깔린 괴수의 사체는 모든 게 현실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두변은 자신의 몸이 완전히 변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근맥과 골수 안에 기운이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 같았고, 온몸이 예전에 비해서 확실히 힘이 넘치고 가벼웠다.

두변은 폭발력이 느껴지는 제 몸을 내려다보면서 감탄했다.

‘이런 게 바로 진정한 세수벌맥이구나.’

두변의 체질 점수도 급격히 상승했다.

원래는 그의 체질 점수가 40이어서 최고 수련 수준이 6품 하등 무사였다.

얼마나 향상되었을까?

아직 시스템과 연결이 되지 않아서 정확한 수치를 파악할 수 없자, 두변은 눈을 감고 몸의 변화를 느끼면서 단전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단전에 있는 현기 내력에 옅은 황금색이 띠는 걸 발견했다.

현기 내력이 옅은 황금색을 띤다는 건, 두변을 세수벌맥시키고도 교룡의 피가 아직 모두 소진되지 않아서 단전에 보관되었다는 의미였다.

두변은 당장 교룡의 피를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지만, 일단 좋은 것이라 확신했다.

첫 번째 관문에서 얻은 수확도 중요했지만, 두 번째 관문에서 얻게 된 수확은 단순히 무공 수준의 향상이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영구적인 체질 향상이라는 점에서, 근맥과 단전의 진화라는 점에서 더 중요하고 값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단전의 변화와 교룡의 피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는 알지 못했다.

두변은 물 위에 둥둥 뜬 채로 눈을 감고 생각했다.

얼굴 없는 노인이 제게 준비한 모험은 모두 의미가 있어 보였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얼굴 없는 노인이 그에게 어떤 계시를 알려주고 싶은 걸까?

그는 생각을 멈추고 두 번째 관문을 떠나기로 했다.

‘출구가 어디지? 여기엔 보이지 않는데, 연못 아래에 있는 건가?’

두변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연못 아래로 잠수했다.

수백 미터 넘게 잠수한 뒤에야 연못의 바닥이 보였다.

교룡에게 당한 괴수들의 사체를 힘겹게 손으로 밀어내자, 석판 하나가 드러났다.

석판 위에는 알아볼 수 없는 이 세계의 것이 아닌 듯한 문자가 가득 새겨져 있었다.

석판을 치우자 출구가 나타났다. 그는 출구 안으로 재빨리 들어가면서 두 번째 관문을 떠났다.

두 번째 관문 밖은 조용하고 아늑한 석실이었고, 석실 안에는 석문 두 개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왼쪽 문에는 ‘영생’, 오른쪽 문에는 ‘죽음’이 쓰여있었다.

두변은 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두변이 마조히스트가 아닌 이상, 왼쪽의 문에 써진 글자가 ‘생존’이었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왼쪽 문을 골랐을 것이다.

그런데 왼쪽 문에 쓰인 글자는 영생이었다.

생존과 죽음 중엔 당연히 생존을 선택하겠지만, 영생과 죽음 사이에선 어떤 게 더 좋을까.

이 문제는 무척 쉽기도, 무섭기도 했다.

결국 그는 죽음의 문 앞에 서서 천천히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길고 긴 통로가 나타나는데, 희미한 불빛만이 통로를 비추고 있고 주위는 암흑 그 자체였다. 마치 이 세상에 오직 이 통로만 남은 것 같았다.

문득 이 통로가 음양로(陰陽路: 생과 사를 잇는 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변은 끝이 보이지 않는 통로를 따라 걸어갔다. 체감상, 통로는 계속해서 두변을 아래로 이끌었다.

만 미터를 묵묵히 걸어가던 두변은 드디어 음양로의 끝에 도달했다.

음양로의 끝에는 아주 오래된, 낡고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문 하나만 놓여 있었다.

두변은 심호흡을 한 뒤,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그의 시야에 들어온 건 무수히 많은 관이었다.

몇천, 몇만,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관이 질서정연하게 공간을 꽉 메우고 있었다. 공간의 가운데에는 길이 하나 있고, 길의 끝에는 무지개 모양의 둥근 다리가 이어져 있었다.

다리의 양쪽에도 셀 수 없이 많은 관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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