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76화 (276/648)

276장. 죽지 않는 자들

그 광경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이 세계에 귀신이 있을까? 적어도 대녕 제국에서는 귀혼의 존재를 들은 적이 없는데? 하지만 대지 균열이 일어나서 이계의 에너지가 침투한 곳에 귀혼의 존재가 있을 수도 있잖아. 특히 단혼수 같이 기이한 괴수가 사는 곳엔 말이야. 단혼수의 두 눈이 바로 무수히 많은 귀혼이 모여서 만들어진 거니까.

두변이 생각을 마치고 돌다리를 향해 걸음을 내딛는 순간, 갑자기 양쪽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덜그덕, 덜그덕.

관뚜껑들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그 안에 누워있던 죽은 자들이 밖으로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귀혼이 아니라 죽은 자라고 표현한 건, 이자들의 신체가 부패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자는 반쯤 해골이 된 상태였고, 어떤 자는 팔다리가 잘려있었다.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섬뜩한 초록빛 눈을 가졌다는 것.

두변은 모른 척 앞으로 또 한 걸음 나아갔다.

덜그덕, 덜그덕.

주위에 있던 관들이 더 많이 열리기 시작하고, 죽은 사람들이 괴이한 소리를 내면서 관에서 죄다 기어나왔다.

두변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뭔가 이상했다.

지금까지 그가 이 세계에서 겪은 것들은 어느 정도 무협 장르였다. 구두사나 단혼수나 탈피한 교룡처럼.

그런데 지금 그의 앞에 펼쳐진 장면은 무엇일까.

두변은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죽은 자들이 끊임없이 관을 밀고 밖으로 기어 나왔다.

두변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죽은 자들은 저승의 기운을 뿜어내면서 괴이한 소리를 지르더니, 돌다리를 향해 홍수처럼 밀려왔다.

죽은 자들이 순식간에 돌다리의 앞쪽, 뒤쪽, 그리고 중앙을 점령했다.

죽은 자들이 두변의 앞길과 퇴로를 모조리 막아버렸다.

두변이 앞뒤를 두리번거리면서 앞으로 가지도, 뒤로 가지도 못하고 있을 동안, 더 많은 죽은 자들이 관 속에서 기어 나왔다.

무수히 많은 초록색 눈이 두변을 향해 저승의 기운을 내뿜으면서 포위망을 좁히기 시작했다.

이곳은 지옥이었다.

중간의 다리만이 그의 유일한 살길이었고, 여기서 떨어지게 되면 너무도 처참히 죽게 될 것이다.

두변은 미친 듯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죽은 자들은 뛰지는 못하고 일정한 속도로 그를 쫓았다.

다리의 중앙에 도착한 그는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멈췄다.

다리의 앞뒤에서 몰려오는 죽은 자들이 그의 길을 완전히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죽은 자들이 두변을 향해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손을 뻗었다. 반쯤 백골이 된 죽은 자들의 입에서 저승의 기운이 마구 뿜어져 나왔다.

으어어. 그어어어!

죽은 자들이 두변을 에워싸고, 저승의 기운이 홍수처럼 두변을 향해 덮쳐왔다.

두변의 두피가 저릿해지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저 손에 닿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어느새 다가온 죽은 자의 손이 그의 팔을 살짝 할퀴었다.

두변의 팔에 짙은 푸른색 손톱자국이 남더니, 저승의 사기(死氣)가 그 상처를 통해 두변의 몸으로 침투했다.

두변은 내력을 운용해서 팔로 침투하는 저승의 사기를 몰아냈다.

그런데 그의 손끝을 통해 흘러나온 현기 내력이 팔에 난 상처에 닿는 순간, 현기 내력이 저승의 사기로 바뀌어 버렸다.

이, 이게 뭐야? 너무 끔찍하잖아.

저승의 사기에 중독되면 내력으로 사기를 몰아낼 수도 없고, 현기가 사기와 접촉하는 순간 현기 자체도 사기가 되어 버린다.

그저 이대로 저승의 사기가 온몸을 좀먹어서 죽는 것만 기다려야 할까?

그런데 이때, 단전 안에 있던 교룡의 피가 갑자기 두변의 근맥을 타고 팔에 난 상처를 향해 옮겨갔다.

교룡의 기운이 두변의 팔에 퍼렇게 남은 저승 자국에 닿는 순가, 상처뿐만 아니라 저승의 사기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엄청난데?

구양진경으로도 해독하지 못하는 저승 사기를 없앨 수 있다니!

하지만 그 사이에도 죽은 자들이 두변을 향해 미친 듯이 손을 뻗었다.

열 명, 스무 명, 서른, 그리고 백 명…….

죽은 자들은 산 사람이 갈망하는 것처럼 그를 향해 손을 뻗으며 계속해서 다가왔다.

두변의 단전에 교룡의 피가 남아 있는 건 맞지만, 이렇게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쓸 순 없었다.

어떡하지? 이들을 죽여야 하나? 하지만 죽은 자를 어떻게 또 죽여?

하지만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일단 마구잡이로 육맥신검을 쏘아내기 시작했다.

두변은 왼손과 오른손을 동시에 쓰면서 죽은 자들을 향해 공격했다.

슉, 슉, 슉, 슉.

소양검! 중양검! 대양검! 태허검! 태충검! 태아검!

기관총이 난사되듯, 육맥신검이 번쩍거리면서 어둠 속에서 화려한 장관을 만들어 냈다.

주위를 에워싼 죽은 자들이 두변의 검기에 맞자마자 나뭇가지 부러지듯 부러졌다. 허리가 부러지기도, 팔뼈가 튕겨 나가지기도, 두 다리가 으스러지기도, 혹은 아예 산산조각나기도 하면서.

두변의 주위가 몇 분 만에 죽은 자들의 잔해로 가득해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닥에 널브러진 죽은 자들의 잔해가 꿈틀대면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다시금 고통스러운 소리를 지르면서 두변을 향해 기어왔다.

발로 지르밟아도 잔해들은 멈추지 않고 부서진 채로 그를 향해 기어왔다.

무수히 많은 초록빛 눈동자가 두변만을 바라보면서 그를 원했다.

두변은 이 소름 끼치는 광경에 잠시 넋을 놓았다.

이곳은 지옥이 아니었다. 지옥보다 더 끔찍한 곳이었다.

죽은 자들이 죽지 못하는 끔찍한 곳.

두변이 잠시 넋을 놓은 사이 더 많은 죽은 자가 그를 에워쌌다.

두변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다시 공격을 시작했고, 검기는 폭우가 되어 죽은 자들을 향해 쏟아졌다.

잔해가 산처럼 쌓이기 시작했고, 두변의 발치부터 시작된 잔해가 산을 이루어 그를 잠식할 정도로 거대해졌다.

하지만 돌다리를 향해 다가오는 죽은 자들의 수는 줄지 않았고, 사방에서는 아직도 관뚜껑이 열리면서 죽은 자들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결국 두변의 내력 현기도 모두 소진되고 말았다.

두변이 왼손으로 황금설 비수를 뽑아 들고, 오른손으로 옥진 군주가 선물한 보검을 쥐었다.

그는 양손을 이용해서 죽은 자들을 닥치는 대로 베었다.

“죽어. 죽으란 말이야!”

죽은 자들은 두변의 절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덮쳐왔다.

무수히 많은 손가락이 그의 발을 타고 올라오거나, 그의 검을 타고 올라와 두변의 몸에 저승의 자국을 남겼다.

온몸이 오한이 든 것처럼 차가워졌다.

그는 점점 정신이 흐릿해지면서, 저승의 사기가 대량으로 그의 몸에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뒤로 쓰러지면서 다리 아래로 떨어졌다.

후두두둑.

동시에 죽은 자들도 그를 따라 다리 아래로 떨어지거나 내려왔다.

몸이 비교적 온전한 죽은 자들 십여 명이 두변의 몸을 들어 올려서 이 거대한 무덤의 중앙으로 옮겼다.

무덤의 중앙에는 돌로 만들어진 커다란 관이 있는데, 관 자체가 하나의 무덤이라고 할 정도로 거대했다.

죽은 자들이 두변을 돌로 만들어진 무덤 안에 눕혔다.

몇천 명의 죽은 자들이 두변이 누운 무덤을 둘러싼 채 알 수 없는 비통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정말 끔찍한 광경이었다.

사지나 살점이 온전치 못한 죽은 자들 수천, 수만 명이 두변을 에워싸고 고통스러운 비명, 비통한 울부짖음, 그리고 무언가를 애걸하는 듯한 소리를 울부짖었다.

혼수상태인 두변은 온몸이 저승의 사기에 잠식되면서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다.

죽은 자들은 두변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들은 두변을 그저 잡거나 건드리기만 했을 뿐이다.

두변은 무의식중에도 이대로 있다가는 죽겠다는 걸 직감했다.

그의 현기 내력이 전부 소진된 터라, 단전에 아직 조금 남은 교룡의 피를 운용할 내력조차 없었다.

게다가 그의 몸에 침투한 무궁무진한 저승의 사기가 세포 하나하나를 집어삼키는 게 느껴졌다. 교룡의 피로 온몸을 해독하기엔 이미 늦었다.

이대로 십여 분이 지나면 죽을 것이다.

수천 명 죽은 자들의 울부짖음과 애원의 목소리가 두변이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을 수 있게 했다.

두변은 앞선 두 개의 관문에서 정답을 맞혔고 두 관문을 성공적으로 통과했다.

비록 위험 요소가 있긴 했지만, 그는 결국 살아남았고 엄청난 수확을 얻었다.

하지만 그가 틀린 답을 선택한 걸까.

아니, 그 답이 틀렸을 리 없다. 영생과 죽음 사이에서 선택하라고 한다면, 그는 몇 번이고 죽음을 택할 테니까.

죽음이 있어야만 윤회를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영생은 인간의 의미 없는 허망한 욕심일 뿐이다.

옳은 답을 선택했는데도 이곳에 떨어진 이유가 뭘까. 설마 그가 무언갈 잘못한 걸까?

두변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랬구나. 내가 잘못했구나.

이미 죽은 자들을 공격하지 말았어야 했구나.

어차피 이들은 이미 죽은 자들이라 공격이 의미 없을 테니까.

내가 아무리 공격해도 이들은 내게 반격하지 않았어. 적의가 없다는 뜻이지. 나를 보자마자 관에서 나와서 천천히 내게 다가와 나를 만졌을 뿐이야. 공격이 아니라 만진 거라고.

두변은 죽은 자들이 자신을 만질 때의 모습을 회상했다.

죽은 자들은 마치 자신들의 우상이라도 본 듯이 두변을 조금이라도 만지고자 몰려왔을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손길이 두변에게 저승의 자국을 남길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고, 두변을 죽일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들이 그의 팬일 리는 없고, 두변을 무엇으로 생각한 걸까.

두변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해답을 얻었다.

죽은 자들은 두변을 구세주로 본 것이다.

이들은 두변을 잡자마자 그를 이 거대한 무덤으로 옮겼고, 몇천 명의 죽은 자들이 그를 에워싸고 기도하고, 울부짖고, 애원하고 있었다.

이들이 애원하는 게 뭘까?

죽음! 죽음이구나!

지금 이들은 죽어도 죽은 게 아니니까, 죽지 못한 육체로부터 해탈을 얻고자 하는 것이로구나.

어쩌면 사악한 기운에 의해서, 또 어쩌면 사악한 인물이 행한 금기된 주술에 의해서 이자들이 죽지 못하는 사람이 된 걸 수도 있구나. 관 속에 누워서 끝없는 외로움과 고통을 견디면서 영원히 이곳에 갇혀 있었구나.

이런 건 영생이 아니라 영원한 고통과 괴로움이었다.

죽은 자들은 두변에게 자신을 제발 죽여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죽음의 문이 뜻하는 건 두변의 죽음이 아니라, 이 죽지 못한 자들의 해방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죽지 못하게 만든 걸까.

도대체 누가 이들에게 영원한 고통을 안겨준 걸까.

두변은 그 해답을 알 수 없었지만, 이건 모두 북명검파와 연관이 있을 거라는 걸 직감했다.

두변은 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이들을 완전한 죽음을 맞이해서 해방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두변은 이들의 혼백을 해방하는 게 곧 자기 자신을 구하는 것이라 믿었다.

두변은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했다.

안 돼!

이것도 안 돼!

순식간에 여러 방법을 생각해냈지만, 전부 소용이 없는 방법들이었다.

두변은 자신의 지혜만으로는 도저히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없다고 판단하고는, 견사 대사의 기억을 되짚었다.

이곳은 두변의 또 다른 보물창고나 마찬가지였다.

두변은 견사 대사의 정신 계승을 받았을 때, 정신력이 15점 상승한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견사 대사의 기억과 지혜야말로 이 세상의 유일무이한 보물창고라는 걸 깨달았다.

두변은 견사 대사의 기억을 빠르게 훑어보면서 무언가를 찾았다.

드디어 찾았다!

세상에서 제일 진귀한 정신 비급 ‘대자대비윤회주(大慈大悲輪回呪)’!

두변이 찾아낸 건 주술이 아니라 아주 강력한 정신술의 일종이었다.

이 정신술은 갇혀 있는 혼백을 해방하고 완전한 죽음을 맞이하여 윤회의 삶을 되찾을 수 있게 해준다.

견사 대사는 이 비급을 기음음에게 쓰려고 했었다.

당시 천마교주 계음음은 천마군을 양성한 데 그치지 않고, 금기된 사악한 주술로 불사의 군대를 만들려고 했다.

물론, 그녀가 만들고자 하던 불사 부대는 두변이 마주한 이 죽지 못한 자들처럼 끔찍한 몰골은 아니었을 것이다.

기음음이 만들려던 불사 부대는 사악한 주술과 과학이 결합된 것이었다.

그녀가 꿈꾸던 불사 부대의 무사들은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건 당연하고, 검에 수차례 찔려도 죽지 않고, 전투력을 끝까지 잃지 않는 자들이었다.

당시 기음음은 서양에서 온 주술사에게서 보통 사람의 인체에 또 다른 생명 유지 체계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람을 개조하면 오장육부가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공격당해도 즉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이미 걸어 다니는 좀비가 되는데도 일정 시간 동안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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