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77화 (277/648)

277장. 대자대비윤회주

견사 대사는 이 끔찍한 비밀을 알게 되고, 즉시 제국의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대지 균열이 일어난 땅굴을 찾아다녔다.

그때 그는 귀혼과 기이한 불사 괴수들을 연구하고, 땅굴 깊숙한 곳에 숨겨진 석판의 문양과 문장을 해석해서 꼬박 7년 만에 ‘대자대비윤회주’를 써냈다.

당시 그는 기음음의 불사 부대를 한 번에 해방하려고 이 비급을 써냈지만, 기음음의 실험이 실패하면서 ‘대자대비윤회주’도 쓸 일이 없어졌다.

기음음이 데리고 있던 서양 주술사들이 암살당했는데, 기음음은 지금까지도 그 주술사들을 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기음음은 범인이 북명검파라고 생각했지만,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은 없었다.

어찌 됐든, 그때의 일로 견사 대사가 정신 비급 ‘대자대비윤회주’를 완성했다.

견사 대사는 정신 계승을 할 때 이 비급을 통째로 두변의 정신세계에 남겼기에 두변이 따로 이 비급을 공부할 필요 없이 떠올리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두변은 힘겹게 몸을 일으켜서 앉았다.

먼저 견사 대사가 열반에 올랐던 서남쪽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대사, 그때 제가 대사께 정신 계승을 받았을 때, 대사께서 제게 무엇을 남겨주신 건지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제자가 이제야 스승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를 지혜로 보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변은 서남쪽을 향해 무릎을 꿇고 큰절을 세 번 올렸다.

큰절을 올린 두변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남아있는 모든 정신력을 집중해서 견사 대사가 그에게 남겨준 이 세상에서 가장 고결한 ‘대자대비윤회주’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두변이 작게 읊조리기 시작했을 뿐인데, 그 목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이곳에 있던 죽지 못한 자들이 갑자기 울부짖음과 고통스러운 신음을 멈추고 눈을 감고 조용히 신성한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두변은 얼마 남지 않은 체력과 정신력을 모두 쏟아부으면서 쉬지 않고 정신술을 외웠다.

거대한 무덤은 마치 성스러운 법당이 된 것처럼 불교의 교리와 범어로 가득해졌다.

죽지 못한 자들의 귀에 오래전에 이미 잃어버렸던 소리가 들려왔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 벌레가 속삭이는 소리, 들판 위로 바람이 부는 소리, 절에 걸린 맑은 풍령 소리.

두변의 목소리가 점점 더 힘있게 울려 퍼졌다.

사실 두변은 거의 무의식 상태로 정신술을 운용하고 있는지라, 자신이 정확히 뭐라고 읊조리고 있는 건지도 알지 못했다.

지금 두변은 더 이상 두변의 모습이 아니었다. 일대 정신 대사였던 견사 대사가 자비로운 황금빛을 두르고 장엄한 표정으로 정신술을 읊조리고 있었다.

대자대비윤회주의 정신력은 보이지 않는 새가 되어 죽지 못한 자들에게 날아갔다.

화아악.

이때, 죽지 못한 자 중 한 명이 갑자기 한 줄기 빛이 되어 공중에서 사라졌다.

진정한 죽음을 맞이한 그자는 드디어 윤회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대사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빛이 된 혼백이 공중에서 두변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곧이어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죽은 자가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

점점 더 많은 죽은 자가 대사를 향해 큰절을 올리며 사라졌다.

대사의 대은대덕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윤회하고 인연이 닿는다면, 꼭 대사께 보답하겠습니다!

대사,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화아아아악!

화아아아악!

죽지 못한 자들이 곳곳에서 빛이 되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들의 몸은 으스러지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혼백은 한 줄기 빛이 되어 공중으로 떠올랐다.

죽지 못한 자들이 제도(濟度: 극락세계로 인도하다.)하게 되면, 단전이 사라지면서 그 안에 있던 무수히 많은 현기 내력이 공중에 남았다.

죽지 못한 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제도하게 되니, 이 거대한 무덤에 현기 내력이 아주 두껍게 쌓이기 시작했다.

늘 그렇듯, 두변의 구양진경이 시작되었다.

그의 단전은 거대한 소용돌이가 되어 허공에 남은 현기 내력을 미친 듯이 빨아들였다.

죽지 못한 자들은 이런 식으로라도 두변에게 보답하고자 한 것이다.

콰광.

콰광.

두변의 단전이 한 번, 또 한 번 폭발하면서, 그의 무도 수준이 한번, 또 한 번 상승하기 시작했다.

두변은 유래에 없던 폭발적인 무도 수준 향상을 시작했다.

6품 하등 무사.

6품 중등 무사.

5품 하등 무사.

5품 중등 무사.

5품 상등 무사.

4품 하등 무사.

2각이 지날 무렵, 두변의 ‘대자대비윤회주’가 끝났다.

그 사이 두변의 무도 수준은 6급이나 상승해서 4품 하등 무사가 되었다.

천부적인 무도 재능이 있는 사람이어도 6개의 등급을 돌파하기까지 몇 년이 걸린다. 그런데 두변은 오직 2각만에 연달아 6급을 돌파했다.

게다가 단전이 폭발할 때마다, 단전에 있는 교룡의 피인 황금빛 기운이 두변의 근맥을 타고 온몸에 퍼지면서 그의 몸에 남아있는 저승의 사기를 씻어 없앴다.

무도 수준이 6급이나 상승했지만, ‘대자대비윤회주’를 운용한 탓에 두변의 정신력은 전혀 남지 않았다.

두변은 천천히 두 눈을 떴다.

그는 지금 자신의 신체가 두 개의 극단에 처해있음을 느꼈다.

세수벌맥 덕분에 신체 속성이 크게 향상되었고, 죽지 못한 자들이 남기고 간 현기 내력을 미친 듯이 흡수한 덕에 그의 무도 수준 또한 6급이나 상승했다. 그는 이 세계에 온 이래 가장 강한 무도 수준을 갖게 되었고, 온몸에서 넘치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정신력이 모두 소진되어서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피곤했다.

두변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몇천 명의 죽지 못한 자들이 성공적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아직 이곳에 남은 죽지 못한 자들이 너무 많았다.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왜 이들은 ’대자대비윤회주‘를 듣고도 제도하지 못하는 거지? 왜 아직도 2, 3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해탈을 얻지 못했지?

두변은 힘겹게 몸을 일으켜서 죽지 못한 자들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 정신력이 다 소진되어서 지금은 더 이상 대자대비윤회주를 더 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가 정신력을 조금 더 회복하면 다시 해보겠습니다.”

죽지 못한 자들은 두변의 말을 알아듣는 건지, 울부짖지도, 뭐라 말하지도 않고 조용히 앉아서 그를 바라보았다.

두변은 조금 의아한 얼굴로 더는 애걸하거나, 고통스럽게 신음하지 않는 자들을 바라보았다.

죽지 못한 자들의 초록색 눈에는 평온함이 가득했다.

두변은 이들이 윤회하는 삶을 얻지 못한 이유와 왜 해탈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이 읊은 대자대비윤회주의 위력이 충분치 못해서 모두를 제도하지 못한 건지, 아니면 이 사람들은 더는 윤회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 건지.

쿠구구궁.

굉음이 거대한 무덤을 덮치면서, 무덤이 서서히 붕괴하기 시작했다.

무덤의 중앙에 있던 길고 긴 돌다리가 격하게 흔들리면서 돌다리에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 해. 여기가 다 허물어질 것 같은데, 시간을 더 지체했다간 산 채로 파묻혀!

두변은 이를 악물고 능파미보를 이용해서 무중력 상태로 무덤 중앙의 돌다리로 날아갔다.

세 번째 관문의 출구가 돌다리 끝에 있었다.

콰과과광.

거대한 무덤이 더욱 한 번 빠르게 붕괴하기 시작했고, 땅은 지진이 난 것처럼 심하게 흔들리면서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 거대한 무덤이 완전히 파괴되고 있었다.

두변은 능파미보를 이용해서 더 빠르게 뛰었다.

이 거대한 무덤을 가로지르는 돌다리의 길이는 약 3만 미터였다.

땅이 흔들리고, 사방의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렸다.

두변은 무너져가는 돌다리에서 능파미보를 이용해서 미친 듯이 달렸다.

세 번째 관문의 출구가 점점 더 가까워지는 그 순간.

두변은 뒤를 돌아봤다.

거대한 무덤이 붕괴하면서 죽지 못한 자들과 그들이 있던 관들이 함께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두변은 이 광경을 보면서 너무도 괴로웠다.

왜 나는 나머지 사람들을 제도하지 못했을까? 내 능력이 충분했다면 저들도 이곳에 깔리지 않고 윤회의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두변은 이들이 파괴된 무덤 아래에서도 사지가 잘린 채 끝없는 고통을 견뎌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도 미안했다.

두변은 한시라도 지체하면 자기도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 돌연 걸음을 멈췄다.

그는 재빨리 몸을 돌려서 심연 아래로 떨어지는 죽지 못한 자들을 바라보면서 허리를 깊이 숙이고 예를 올렸다.

“당신들을 제도해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2, 3천 명의 죽지 못한 자들이 일제히 두변을 바라보았다.

그들과의 시선이 마주친 찰나의 순간, 그들은 이 순간만큼은 정신이 맑고 감정이 있는 산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귀가 찢어질 듯한 굉음이 무덤 전체를 잠식했다.

대지에 갈라진 균열 아래로 모든 것이 떨어졌고, 죽지 못한 자들 또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돌다리가 눈 깜빡할 사이에 앞에서부터 붕괴되기 시작했고, 두변은 재빨리 다시 죽기 살기로 달렸다.

이를 악물고 달리던 두변은 30초 만에 기나긴 돌다리의 끝에 도달했다.

그가 출구에 도착하는 찰나, 돌다리 전체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면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 속으로 사라졌다.

세 번째 관문이 종료되었다.

두변은 급하게 이곳을 떠나지 않고 두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고 자리에 앉았다.

이번 관문의 주제였던 죽음과 영생은 뭘 뜻하는 걸까? 이번 관문에서 내 무공 수준이 상상 초월하는 수준으로 상승했지만 더 중요한 건 이곳에서 얻은 인생의 계시였다.

두변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수히 많은 죽지 못한 자. 이건 또 무얼 뜻하는 걸까. 내가 제도시킬 수 있던 자들과 제도시키지 못했던 2, 3천 명의 죽지 못한 자들은 뭘 의미하는 걸까.

두변이 안간힘을 써서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에 숨어있는 의미를 알아낼 수 없었다.

두변은 지금 당장은 그 의미를 알아내지 못했지만, 언젠간 이번 관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생각을 떨쳤다.

두변은 다시 눈을 떴다.

세 번째 관문에서 나온 두변 앞에는 작고 조용한 석실이 놓여 있었다.

석실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오직 두변의 심장 소리만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아무도 그에게 이번 관문이 마지막 관문이라는 걸 알려주지 않았지만, 두변은 본능적으로 앞으로 남은 관문이 마지막 관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건 그의 직감이 아니라 추정이었다.

지금까지 그가 지나온 모든 관문은 두변에게 인생의 계시를 보여주고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죽음과 영생이 마지막 관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세계에서 완수해야 할 특수한 사명을 가진 두변에게는 죽음이 인생의 마지막이 아닐 것이다.

두변은 마지막 관문이 무척 끔찍할 수도, 제 상상력을 초월할 엄청난 무언가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두변은 자신이 마지막 관문을 통과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지 잠시 생각했다.

자신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게 분명했다.

하지만 누구든 예측 불가하고 심오한 관문을 앞두고 있다면, 두변과 똑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할 건 해야지!

두변은 비장한 눈빛으로 마지막 관문의 문들을 노려보았다.

이전 관문에서는 두변에게 항상 두 개의 선택지를 줬었는데, 이번엔 선택지가 세 개가 나타났다.

역시나 마지막 관문다웠다.

가장 왼쪽의 문에는 ‘화염’이라는 단어가 있었고, 가장 오른쪽 문에는 ‘얼음’이 있었다.

중간에 있던 문에는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았다.

두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무슨 뜻일까.

세 번째 관문에 나타났던 죽음과 영생이라는 주제는 뭔가 굉장히 웅장하고 인생의 서사가 담겨 있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관문에 나타난 주제는 굉장히 생뚱맞기만 했다.

화염, 얼음, 그리고 공백?

이건 단순히 마지막 관문의 주제를 뜻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 세계에서 얻을 수 있는 마지막 인생 계시일 텐데? 이 관문은 내가 이 세계에서 수행할 사명의 최종 해석일지도 모르는데. 그런데 도대체 이게 다 무슨 뜻이지?

난 뭘 선택해야 하는 거지?

두변은 마지막 선택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이번 선택이 제일 중요해. 만약 틀린 선택을 한다면, 이곳에서 흔적도 없이 죽게 되겠지. 내게 남은 미래도 없을 것이고, 지금껏 얻은 것도 전부 무용지물이 돼.

세 개의 문. 화염, 얼음, 공백. 난 이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굳이 분류한다면 화염과 얼음은 뭔가를 파괴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뭔가를 파괴할 수 있는 것들과 나란히 있는 공백의 문.

두변은 단순하게 생각해서 중간에 있는 문을 열기로 결심했다.

어떻게 보면 두변은 매 관문에서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단순하게 생각하면서 결정을 내렸다.

두변은 자신이 내린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몰라도 자기 자신을 믿었다.

두변은 깊이 심호흡한 뒤, 중간의 문 앞에 서서 있는 힘껏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나타난 광경에 놀라서 그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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