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장. 관문의 끝 一
두변은 마지막 관문이 자신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는 각오는 했지만, 실제로 보게 되니 그 놀라움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건 뭐지? 세계의 종말인 건가? 아니면 시공간이 뒤엎어진 건가?
두변이 문을 열자마자 보게 된 건, 바다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용암이었다.
눈앞에 용암이 끊임없이 들끓고 있었고, 곳곳에서 용암 파도가 충돌하면서 허공으로 용암을 분출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머리 위에는 하늘이 아니라 거꾸로 뒤집힌 빙하였다.
머리 위의 빙하 세계에는 날카로운 설산들이 거꾸로 세워져 있는데 온통 눈발이 휘날리면서 스치기만 해도 피부가 찢어질 것 같은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위아래 몇만 미터를 사이로, 화염과 얼음이 한 공간에 있었다.
화염과 빙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반대편으로 건너갈 만한 다리도, 밧줄도, 그 어떤 것도 없었다.
이게 마지막 관문이라고? 이 뒤집혀버린 것 같은 세계를 어떻게 통과하지? 이건 무슨 계시를 알려주는 거지?
두변은 앞뒤, 위아래 그 어디로도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용암으로 가자니, 인체가 견딜 수 있는 온도를 생각하면 용암에 닿자마자 뼈까지 녹아버릴 것 같은 생각에 결국 빙하를 택했다.
두변은 비수를 꺼내서 살이 에이는 바람을 맞서면서 얼음으로 만들어진 절벽을 기어올랐다.
그런데 절벽을 백 미터쯤 올라갔을까. 설산까지는 아직도 몇천 미터나 남았는데도 벌써 주위 온도는 체감상 영하 80도까지 떨어진 듯했다.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주위의 온도가 무서운 기세로 떨어졌다.
내력으로 체온을 유지하고자 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나마 그의 단전에 있던 교룡 기운이 그의 체내에 끊임없이 열기를 불어넣었다. 두변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무리 그보다 무공이 뛰어났어도 해도 벌써 얼어 죽었을 게 분명했다.
‘더 이상 올라가는 건 무리야. 이대로 가다간 얼어 죽게 생겼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래의 용암에 빠질 순 없잖아!’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기만 하면, 지금껏 얻어왔던 모든 것과 여태 얻은 것보다 훨씬 더 특별한 무언가를 얻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마지막 관문은 마치 그에게 절대로 이곳을 건너갈 수 없다는 걸 극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이 관문은 그에게 도대체 무엇을 보여주려는 걸까.
이 모든 관문의 설계자가 두변에게 궁극적으로 알려주고 싶은 게 무엇일까.
지금의 두변에겐 하늘로 향할 길도 없었고, 지하로 내려갈 문도 없었다.
쨍.
두변이 쥐고 있던 비수가 갑자기 깨지고 말았다.
온도가 너무 낮아서 그만 터져버린 것이다.
비수를 이용해서 얼음 절벽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두변은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반쪽짜리 비수라도 계속 휘두르면서 얼음 절벽에 매달리려고 했지만, 이미 깨져버린 비수는 절벽에 닿는 족족 부서졌다.
두변은 하염없이 추락했다.
철퍽.
바다같이 끝도 없어 보이는 용암이 갑자기 몇백 미터 높이까지 용암을 분출했다.
용암이 분출되면서 강풍이 일었고, 강풍이 두변을 얼음 절벽에서 밀어내 버렸다.
두변은 힘없이 밀려나서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추락할 뿐이었다.
두변의 발아래 저곳은 들끓는 용암뿐이니, 두변 백 명이 있다고 해도 순식간에 용암에 녹아 없어질 터!
용암에 발이 닿는 순간, 그는 정말 흔적도 없이 죽게 된다.
이때, 부글거리는 용암에서 엄청난 크기의 괴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불바다에서 솟아오른 화염 괴수가 커다란 입을 쩍 벌리고 포효했다.
크어어어어!
조금 전에 몇백 미터 높이까지 용암을 분출한 게 바로 이 화염 괴수 때문이었다.
화염 괴수가 입을 벌리고 어마어마한 열기의 불을 뿜어대더니, 추락하는 두변을 향해 입을 벌리고 엄청난 흡입력으로 두변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만약 두변이 이 거대한 화염 괴수의 입 안에 들어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용암에 떨어지는 것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버릴 것이 분명했다.
거대한 화염 괴수의 입에 들어가 놓고도 멀쩡히 살아서 마지막 관문을 통과해서 엄청난 수확을 이룰 방법이 있을까.
안타깝게도 세상에 그렇게 교묘한 기적이 존재할까.
화염 괴수의 입 안은 몇천 도가 넘었고, 두변의 육신은 그 온도를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아우우우우!
화염 괴수가 포효하면서 미친 듯이 공기를 흡입했다.
두변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화염 괴수의 입을 향해 추락했다.
3천 미터, 2천 미터, 천 미터.
두변은 온몸이 익어버릴 듯한 온도에 몹시 괴로웠다.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에서 두변은 스스로가 너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와 씨. 나 진짜 죽겠는데? 아, 나 진짜 죽는 건가?’
그런데 이때, 거꾸로 세워진 설산 위에서 갑자기 또 다른 괴수가 나타났다.
이 괴수는 온몸이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고, 생김새를 정확히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새하얗고 거대했다.
얼음 괴수도 화염 괴수만큼 몸집이 수십 미터에 달할 정도로 거대했다.
아우우우우!
얼음 괴수도 포효하면서 입을 크게 벌리고 공기를 흡입하기 시작했다.
화염 괴수와 얼음 괴수가 위아래서 두변을 빨아들이려고 공기를 흡입하는 탓에, 두변은 용암 바다와 빙하 세계의 중앙에 매달린 모양이 되어버렸다.
두변은 위아래로 펼쳐진 끔찍한 광경에 침을 꿀꺽 삼켰다.
몇천 미터 아래에선 끊임없이 들끓는 용암 바다가 있었고, 화염 괴수가 입을 쩍 벌리고 두변을 집어삼키려고 했다.
그리고 몇천 미터 위에는 살이 에이는 칼바람이 부는 빙하 세계가 있고, 얼음 괴수가 그를 잡아먹으려고 포효하고 있었다.
두 괴수는 입을 점점 더 크게 벌리면서 서로 두변을 잡아먹으려고 더욱 강하게 공기를 흡입했다.
두변은 두 괴수의 상반된 온도 덕분에 너무 춥거나 너무 뜨겁진 않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의 몸이 두 쪽으로 찢어질 것만 같았다.
두변은 이 와중에도 자신의 몸이 두 쪽으로 찢어지면, 한쪽은 화염 괴수가, 다른 한쪽은 얼음 괴수가 먹을 거라는 생각에 식은땀이 났다.
두변은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미약한 존재인지 절실히 깨달았다.
두변이 아니라, 영종오 대종사가 여기 있다고 해도 속수무책이 아닐까.
이계의 에너지를 몇백 년 동안 흡수하고 자란 이계 괴수들의 힘은 인간과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두 괴수는 광기에 가득 찬 포효를 내지르면서 더욱 강하게 흡입했다.
두변은 자신의 몸이 꼭 고무처럼 늘어나는 것 같았고, 이대로 가다간 정말 사지가 찢겨서 죽을 것 같았다.
‘하! 이대로 죽는구나.’
두변은 절망했다.
그런데 이때, 마지막 관문의 입구를 비집고 검은 그림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두변은 놀라서 고개를 퍼뜩 들었다.
검은 그림자의 정체는 두변이 이전 관문에서 제도시켜주지 못한 죽지 못한 자들이었다.
조금 전에 무덤 전체가 붕괴해서 죽지 못한 자들도 대지 균열 아래로 떨어졌지만, 부서진 몸으로 절벽을 타고 올라온 것이다.
죽지 못한 자들은 두변이 고른 중간 문을 통해 이 기이한 세상에 기어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이 이어서 한 행동에 두변의 눈시울이 저도 모르게 붉어지고 말았다.
죽지 못한 자들은 마치 견우와 직녀를 이어주는 오작교처럼 두변을 위해 인간 다리를 만들고 있었다.
두변이 열고 온 문을 통해서 끊임없이 쏟아져나온 죽지 못한 자들은 온전치 못한 몸을 서로 잇고, 껴안고, 겹쳐서 다리를 길게 만들기 시작했다.
슉, 슉, 슉, 슉.
죽지 못한 자들은 몹시 빠르게 다리를 만들었고, 불과 30초 만에 두변이 있는 곳까지 다리가 이었다.
몇천 명의 죽지 못한 자로 이어진 다리가 발밑까지 이르자, 두변은 힘껏 발버둥 쳐서 그들이 만든 다리 위로 발을 디뎠다.
죽지 못한 자들은 쉴새 없이 밀려와서 다리를 이어갔고, 두변은 그들을 밟으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두변은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움직이면서 마지막 관문의 끝을 향해 걸었다.
두변이 죽지 못한 자들이 만든 다리를 건너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아래에는 용암 바다, 위에는 빙하 세계로 만들어진 이 세계에서 두변이 걸을 수 있는 길이라곤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몇천 명의 죽지 못한 자들이 두변을 위해서 자신의 몸을 희생해가며 다리를 만들어주었다.
두변은 아직도 자신이 왜 이자들을 제도시키지 못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이 절체절명의 시기에 자신을 도와주는 이유는 딱 하나라고 생각했다.
바로 조금 전, 무덤이 붕괴해서 모든 게 대지의 균열 사이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두변은 목숨을 걸고 걸음을 멈추고 이들을 향해 예를 올렸다.
그때만큼은 이들은 심지가 있고, 감정이 있는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3천 명이나 되는 죽지 못한 자들이 두변을 위해 자신의 몸을 늘려가면서 만 미터가 넘는 다리를 만들었다.
두변은 용암 바다와 빙하 세계 사이에 만들어진 죽지 못한 자들의 다리를 밟고 마지막 관문의 끝에 도달했다.
그런데 마지막 관문의 끝에는 출구가 없었고, 암흑과 절벽뿐이었다.
절벽의 위로는 여전히 끔찍한 추위의 빙하 세계였고, 절벽의 아래로는 들끓는 용암 바다였다.
두변은 정말로 막다른 길에 놓이게 되었다.
이때, 용암 바다에 있던 화염 괴수와 빙하 세계의 얼음 괴수가 격노하며 포효했다.
두 괴수는 감히 인간 따위가 유유히 자신들의 사냥을 피해서 관문의 끝까지 간 게 너무도 분한 모양이었다.
크아아아아!
용암 바다의 화염 괴수가 단숨에 절벽까지 헤엄쳐왔다.
몇십 미터 길이의 거대한 몸집에서 화염이 뿜어져 나오더니, 화염 괴수는 칼날보다 날카로운 갈퀴를 이용해서 빠른 속도로 절벽을 타고 올라왔다.
얼음 괴수도 포효하면서 설산을 타고 거꾸로 매달려서 미친 듯이 아래로 기어왔다.
거대한 몸집의 괴수들이 두변을 잡아먹으려고 빠른 속도로 움직였고, 두변과의 거리를 점점 더 좁혀왔다.
두 괴수가 두변의 코앞까지 오게 된다면, 두변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두 괴수가 두변을 놓고 서로 싸우게 된다고 해도, 두변은 그래도 죽게 될 것이다.
화염 괴수와 얼음 괴수가 화염과 얼음을 몰고 다니기에 그들을 가까이하기만 해도 불에 타 녹아서 죽거나, 얼어 죽거나였다.
이 두 괴수가 싸우게 된다면, 근방 몇백 미터 내의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다 죽을 것이다.
두변이 4품 하등 무사여서가 아니라, 대종사급 무도 고수여도 두 괴수의 싸움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었다.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괴수들이 두변을 향해 미친 듯이 돌진했다.
슉, 슉, 슉, 슉.
그 사이, 죽지 못한 자들이 자신들이 만든 다리를 타고 절벽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두 괴수를 향해 날아가면서 자폭하기 시작했다.
죽지 못한 자들은 마치 불에 달려드는 나방처럼 화염 괴수와 얼음 괴수를 향해 쏟아졌다.
크아아아아!
분노한 화염 괴수가 입을 크게 벌리고 불덩이를 뿜었다.
죽지 못한 자들의 잔해는 불덩이에 닿자마자 녹아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들의 혼백이 잔해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허공으로 튀어나왔다.
그런데 그 혼백들이 쉬지 않고 다시 두 괴수를 향해 자폭했다.
한 줄기 빛이 된 혼백들은 두 괴수의 머릿속으로 침투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크어어억!
화염 괴수와 얼음 괴수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뱉었다.
몇천 명에 달하는 죽지 못한 자들은 죽기를 자처하는 나방처럼 두 괴수에게 달려들었다.
뜨거운 불에 녹아서 육신이 녹아 없어져도, 얼음이 된 뒤에 산산조각이 나도, 죽지 못한 자들은 혼백이 되어서도 두 괴수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다가 죽지 못한 자들의 혼백은 수많은 유성우가 되어 허공에 빛을 그리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야말로 눈물이 날 정도로 처절하게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두변은 더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