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장. 관문의 끝 二
자신이 이들을 위해 해준 게 무엇이 있다고 이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가. 대자대비윤회주를 이용해서 죽지 못한 자들 일부를 제도해줬을 뿐인데. 이들에게 그저 미안해서 마지막 인사를 했을 뿐인데. 어째서 이들은 이런 자신을 위해 제 혼백을 희생하는 것일까.
두 괴수에게 죽임을 당한 자들은 윤회의 삶이 아닌, 영원한 죽음을 맞이한다.
두 괴수는 물리적인 공격이라면 몇천 명, 몇만 명이 덤벼도 끄떡없을 것이다. 무한대의 화염과 얼음을 뿜을 수 있으니 무서울 게 없었다.
하지만 죽지 못한 자들의 혼백 공격에는 생전 처음 당해보는 공격에 고통스러워서 몸부림을 쳤다.
화염 괴수의 몸에서 타오르던 불꽃이 차츰 사그라들기 시작했고, 얼음 괴수를 뒤덮은 고드름과 눈이 빠르게 녹기 시작했다.
두 괴수는 죽지 못한 자들의 혼백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아직도 수천 개의 혼백이 두 괴수의 뇌를 파고 들어가서 끔찍한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절벽에 붙어있던 죽지 못한 자들의 수도 차차 줄어들었다. 몇백에서 몇십, 몇십에서 몇 명, 그리고 마지막 단 한 명만이 남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죽지 못한 자가 퍼런 눈으로 두변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무언가 감정이 담겨 있는 듯했다.
죽지 못한 자가 완전히 말라비틀어진 입술을 벌리고 한마디를 뱉어냈다.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한 목소리였지만, 두변은 그의 한마디를 알아차렸다.
‘희망.’
마지막 남은 죽지 못한 자가 얼음 괴수에게 달려들었다.
아우우우!
얼음 괴수가 냉기 가득한 콧김을 길게 내쉬자, 죽지 못한 자의 몸이 꽝꽝 얼었다가 산산조각이 났다.
그의 육체가 조각나는 동시에 그의 혼백이 한 줄기 빛이 되어 얼음 괴수의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크아아악!
얼음 괴수가 천둥 같은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리고 그의 몸에 있던 모든 얼음이 녹아버렸고, 미친 듯이 불던 얼음 바람도 완전히 멈춰버렸다.
화염 괴수의 몸에서 불타오르던 불길이 완전히 사라졌고, 얼음 괴수의 얼음과 눈도 완전히 녹아버렸다.
두 괴수의 생기가 완전히 소진되었다.
수천 명의 죽지 못한 자들의 혼백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생기를 잃은 두 괴수가 힘겹게 두변을 향해 기어왔다.
원래 수십 미터에 달하던 괴수의 몸집도 절반 정도 줄어들었다.
두 괴수가 드디어 두변의 앞에 도착했다.
그들의 눈빛은 바람 불면 꺼질 듯한 촛불과도 같았다.
괴수들이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죽기 직전의 괴수들은 무척 허약해진 상태지만, 마음만 먹으면 손끝으로 두변을 죽일 수 있었다.
“우리가 평생을 싸워왔는데 이렇게 같은 날 죽게 될 줄은 몰랐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죽을 줄은 더욱이 생각지도 못했지.”
화염 괴수가 말했다.
“이렇게 죽는 것도 나쁘지 않아. 적어도 늙어서 이빨 다 빠진 채로 힘없이 죽는 건 아니니까.”
얼음 괴수가 대꾸했다.
화염 괴수가 두변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인간, 우리가 너를 죽이지 않는 건 하늘의 뜻이다. 내가 지금이라도 너를 쉽게 죽일 수 있지만, 너를 죽이게 되면 나의 아이도 죽게 될 테니.”
화염 괴수가 입을 벌리고 힘겹게 붉은 구슬 하나를 토해냈다.
그가 토해낸 건 단순히 구슬이라기보단 화염 괴수의 알이었다.
붉은 알의 직경은 30센티미터 정도였고, 껍질 가득히 불꽃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때, 옆에 있던 얼음 괴수도 힘겹게 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인간, 나도 지금도 너를 쉽게 죽일 수 있지만, 너를 죽이게 되면 나의 아이도 죽게 된다.”
얼음 괴수가 입을 벌리고 파란 알을 뱉어냈는데, 그 껍질에는 얼음 문양이 가득했다.
“인간, 나의 아이를 보호해주고, 방법을 찾아서 아이를 부화시켜줄 수 있는가? 나의 아이는 너를 부모로 여길 것이고, 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화염 괴수로 성장해서 너를 위해 싸울 것이다. 너의 책임은 내 아이를 평생을 보호해주는 것이고, 진화를 거쳐서 강하게 성장시킨 뒤에 원래 자기에게 속한 세계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할 수 있겠는가?”
화염 괴수가 두변에게 물었다.
“해낼 수 있을진 모르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두변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럼 네게 내 아이를 맡기겠다. 잘 부탁한다.”
화염 괴수가 두변에게 자신의 알을 건넸다.
두변은 아주 무겁고, 불의 기운이 가득한 생명을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얼음 괴수가 두변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인간, 나의 아이를 보호해주고, 방법을 찾아서 아이를 부화시켜줄 수 있는가? 나의 아이는 너를 부모로 여길 것이고, 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얼음 괴수로 성장해서 너를 위해 싸울 것이다. 너의 책임은 내 아이를 평생을 보호해주는 것이고, 진화를 거쳐서 강하게 성장시킨 뒤에 원래 자기에게 속한 세계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할 수 있겠는가?”
화염 괴수와 얼음 괴수는 어떤 의식이라도 치르는 것처럼 두변에게 똑같은 말을 물었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낼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꼭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차가운 얼음의 기운을 가득 품은 거대한 생명이 두변에게 건네졌다.
두 괴수가 죽기 직전에 자기들의 아이를 두변에게 맡겼다. 이건 두변에게 막중한 책임이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천운이리라.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변은 아직도 마지막 관문의 출구를 찾지 못했다.
화염 괴수가 말했다.
“이곳에는 출구가 없어서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우리는 곧 죽을 테니, 우리의 생명을 소진해서 네게 출구를 만들어주마.”
화염 괴수가 커다란 입을 벌리고 암흑 절벽을 향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콰과과광.
화염 괴수가 뿜는 불길은 거의 검은색에 가까운 푸른 불꽃이었다.
그건 화염 괴수에게 남은 마지막 불꽃이었다.
화염 괴수가 마지막 불꽃을 뿜는 동안, 그의 몸이 쩍쩍 갈라지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콰과과광.
검푸른 불꽃은 절대로 뚫리지 않을 것만 같던 암흑 절벽을 새빨갛게 달궜고, 절벽이 거의 투명에 가까울 정도로 달궈졌을 때 갑자기 불꽃이 멈췄다.
화염 괴수가 죽은 것이다.
암흑 절벽에는 약 10미터 정도 되는 얼룩진 흔적이 남아 있었다. 완전히 뚫리진 않았지만, 충분히 달궈져서 새빨갛게 변한 상태였다.
“이제 내 차례군.”
얼음 괴수가 말하더니, 입을 벌리고 마지막 남은 한기를 뿜기 시작했다.
영하 200도에 달하는 혹한 바람이 암흑 절벽을 향해 쏘아졌다.
얼음 괴수의 몸도 화염 괴수처럼 천천히 갈라지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암흑 절벽의 얼룩진 흔적에 영하 200도 한기를 뿜었더니, 절벽에 커다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절벽에 무수히 많은 균열이 생기자, 두변은 이제 자신이 절벽을 부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두 괴수의 알을 바닥에 내려놓은 뒤, 균열이 가득한 절벽을 힘껏 밀었다. 균열이 가득하던 곳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10미터 정도의 구멍이 생겼다.
이곳이 바로 마지막 관문의 출구였다.
화염 괴수와 얼음 괴수가 두변을 위해 만들어준 출구.
두변은 두 알을 조심스럽게 품에 안고 구멍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두변의 마지막 관문이 끝났다.
길을 따라 걷던 두변은 드디어 이 길의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이제 지하 세계를 떠나서 다시 지상으로 온 건가?
눈부시게 밝은 빛이 두변의 시야에 들어왔다.
눈을 가늘게 뜨고 힘겹게 앞을 내다보던 두변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경악하고 말았다.
이곳은 그가 속해 있던 세계도 아니고, 대녕 제국이 있는 세계도 아니었다.
여긴 도대체 어디일까.
두변의 눈앞에는 그가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심지어 이 세계를 뭐라고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할지도 알 수가 없었다.
화려한 건물들이 공중에 둥둥 떠 있는 것이, 마치 판타지 세계에 온 듯한 완전히 새롭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하지만 죽은 듯한 정적만 흐를 뿐, 사방이 눈으로 완전히 뒤덮여 있으면서 생명의 기운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하늘에서는 눈이 쉼 없이 내리는데, 이상하게도 눈의 색은 하얀색이 아닌 파란색이었다.
이곳은 온도가 너무도 낮아서 살아있는 생명이 존재할 수 없는 곳이었다.
서서히 종말을 맞이하는 세계였다.
두변은 이곳이 절대로 지구는 아닐 것이라고, 대녕 제국이 있는 곳도 아닐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곳은 도대체 어디일까.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진짜 같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이 현실 세계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이 이 세계에 들어온 게 아니라, 현실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진짜 같은 4D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바로 이때.
쿠구구궁.
하늘이 갑자기 쩍 갈라지면서 초록색 불꽃이 하늘에서 땅으로 쏟아져 내렸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건 유성우가 아니라 아주 끔찍한 에너지 공격이었다.
슉슉슉.
수십 개, 수백 개, 수천 개, 수만 개, 무궁무진한 초록색 불꽃이 하늘을 가르며 사정없이 땅으로 내리꽂혔다.
눈으로 뒤덮여 있던 아름다운 곳은 순식간에 완전히 망가졌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초록색 불꽃이 모든 걸 집어삼켰고, 온 세상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렸다.
콰과과광.
초록색 불꽃이 점점 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더니, 급기야 두변을 향해 매서운 기세로 떨어졌다.
두변은 본능적으로 괴수의 알 두 개를 자기의 몸 뒤로 숨겼다.
초록색 불꽃이 두변의 몸을 활활 불태우는 순간, 그의 눈앞에 있던 모든 것이 심하게 왜곡되면서 갈기갈기 찢겨졌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그의 눈앞에 보이던 세계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는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으아아악!”
두변은 비명을 지르면서 눈을 떴다.
신비롭던 세상과 주위의 모든 게 사라졌다.
놀랍게도 두변은 지금 얼굴 없는 노인 강 장로의 석실 안에 있었다. 그가 처음으로 강 장로를 봤던 그 석실에서.
강 장로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손바닥을 두변의 머리 위에 놓고 있었다.
두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악스러움, 황당함, 그리고 알 수 없는 소외감이 밀려왔다. 그는 꼭 기나긴 꿈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사람처럼 막연한 눈빛으로 얼굴 없는 강 장로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미 죽은 거 아닌가? 왜 아직도 살아있는 거지?
두변은 강 장로의 단추 구멍 같은 두 눈이 붉은 피로 막혀있는 걸 그냥 멍하니 쳐다보았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두변이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제가 겪은 모든 게, 정신적 환상이었습니까?”
얼굴 없는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럼 그 모든 관문이, 제가 겪은 것이 전부 정신적 환상인 겁니까? 다 진짜가 아니라고요?”
“정신적 환상이긴 하지만, 진짜가 아니라고 단정할 순 없지.”
“그게 무슨 뜻입니까?”
“나는 네게서 미래를 보았다. 미지로 가득하고 위대한 미래 말이다. 나는 천기를 엿보았고, 내가 엿본 미래를 기반으로 관문을 설치했다. 너는 네가 선택한 것에 따라 모험을 한 것이다. 첫째는 네 인성을 알아보기 위함이고, 둘째는 네 미래에 대한 계시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어떤 계시 말입니까?”
“내가 볼 수 있는 예지는 거기까지일 뿐, 구체적으로 어떤 인생의 계시인지는 네가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만약 제가 통과한 관문들이 전부 가짜라면, 다 정신적 환상이었다면, 어째서 제 무도 수준이 미친 듯이 향상한 거죠? 체질 변화도 정말 진짜 같단 말입니다. 지금도 그 힘이 느껴져요.”
얼굴 없는 노인이 천천히 말했다.
“진짜와 구분할 수 없는 가짜라면, 가짜가 바로 진짜인 것이다.”
“제가 겪은 관문은 다 정신적 환상이지만, 그 안에서 얻은 모든 것은 진짜라는 뜻입니까?”
“그렇다. 전부 다 진짜다. 내가 정신적 환상에서 능파미보 비급을 네게 전수해준 것이다. 아, 정확히 말하면 네가 능파미보를 선택한 것이지.”
“만약 제가 능파미보를 선택하지 않고, ‘유명신장’이나 ‘건곤대나이’를 선택했다면요?”
“이미 말했잖으냐. 정신적 환상이긴 해도, 진짜와 구분할 수 없는 가짜라면, 가짜가 곧 진짜인 셈이다. 네가 정신적 환상 속에서 정말 죽었다고 느꼈다면, 네 정신과 혼백도 죽었을 것이다.”
얼굴 없는 노인이 더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두변은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