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82화 (282/648)

282장. 유명신장

기이한 불빛이 이어서 말했다.

‘꼭 흡성대법을 찾아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되니까, 꼭 손에 넣어야 한다. 이 전설급 비급을 배우게 된다면, 너는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종사급 무도 고수가 된다.’

이때, 수천 미터 밖의 해역에서 격렬하게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막추와 준수한 중년 사내가 여인 둘의 뒤를 쫓고 있었다.

쫓기고 있던 두 여인은 두변과 각별한 관계인 이도진과 두변의 친모 희민지였다.

막추는 여왕 놀이에 심취한 막한의 고모로, 북명검파 종주 영도현이 한때 마음에 뒀던 여인이자, 대종사급 무도 강자이자, 대은구도 제일의 미인이었다.

그녀는 막한보다 더 아름답지만, 사갈보다도 독한 여인이었다.

이도진의 입가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막추 사숙, 이곳은 북명검파의 영역입니다. 감히 여기서 살인을 저지르려는 겁니까?”

이도진이 냉랭하게 말했다.

“날 사숙이라고 부르지 마라. 너보다 기껏해야 두 살 많잖아? 그리고 내가 너보다 더 어려 보이고 아름다워. 내 말 맞지, 강사?”

막추가 강사라 불리는 사내에게 요염한 눈길을 흘리면서 물었다.

준수한 중년 사내 강사는 정신을 못 차리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럼. 막추는 우리 대은구도 제일의 미인일 뿐만 아니라, 북명검파 제일 미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지.”

“그건 너무 갔지. 예상 선자 그년이 있잖아. 그년은 당신보다도 어리고 나보다도 더 탄력 있는 피부를 가지고 있다고.”

막추가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에이. 예상 선자는 예쁘기만 하지 막추 누이만큼 풍만하지가 않지.”

강사가 능글맞게 말했다.

막추가 더는 강사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이도진을 찌릿 쳐다보았다.

“우리 둘만 알고 있는 그 비밀 말이야. 정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

둘만 알고 있다는 그 비밀은 물론 흡성대법의 행방이었다.

이도진이 고개를 저었다.

“말한 적 없어요.”

두변이 이곳에 있었다면, 분명 이도진을 바보라고 욕했을 것이다.

둘만 아는 비밀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말해버리면, 막추는 이도진 한 사람만 죽이면 끝나는 일이 된다.

“잘됐네. 너만 죽이면 되니까.”

막추가 말했다.

이도진이 놀라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북명검파의 영역에서 저를 죽이겠다는 겁니까?”

막추가 냉소를 터트렸다.

“이곳은 천기도의 해역이야. 사람은커녕 귀신조차 없는 곳이지. 그리고 천기도 도주 강 노귀(老鬼)까지 죽었으니까, 너희는 이곳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하는 거야.”

막추가 손바닥을 치켜들었다.

그녀의 손바닥에 검푸른 명문(銘文)이 생기더니, 그녀의 손 전체에서 저승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유명신장?”

이도진이 화들짝 놀랐다.

“그래. 유명신장이지. 한 번 맞았다 하면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는 그 유명신장.”

이도진이 온몸의 공력을 끌어올려서 도망치려고 하는 순간, 막추가 다른 손으로 이도진을 끌어당겼다.

막추는 이도진을 허공에서 끌어당기자마자 가차 없이 그녀의 등에 유명신장을 찍었다.

“아악!”

검푸른 피가 이도진의 등에서 터져나왔다.

이도진의 심장 뒤쪽인 왼쪽 등에 저승의 손바닥 자국이 남으면서, 저승의 기운이 그녀의 온몸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도진이 수차례 피를 토하면서 희민지를 향해 힘겹게 말했다.

“희 사매, 두변을 찾기 위해서 나와 함께 나온 탓에 이런 일에 엮이게 되어서 미안해요. 얼른 도망쳐요. 어서.”

막추가 냉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이왕 죽일 거, 짝을 맞춰야지.”

막추가 왼손으로 희민지를 끌어당긴 뒤, 곧바로 오른손으로 그녀의 등을 가볍게 쳤다.

“윽.”

희민지가 검푸른 피를 토해냈다.

“희 사매, 참 미안하게 됐어. 어쩜 이리도 운이 안 좋을까? 원래는 희 사매랑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인데, 하필이면 이도진이랑 같이 두변 그놈을 찾으러 나와서 봉변을 당했네.”

막추가 눈썹을 으쓱하면서 말했다.

막추의 무공은 정말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이도진은 정상급 종사이고, 희민지도 종사급 고수였다. 그런데 막추 앞에서 두 사람은 반격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도망치려고만 했지만, 막추의 악귀 같은 한 수에서 도망칠 수가 없었다.

막추가 강사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당신 아버지 천기도 도주 강 노귀는 정말 죽은 거야?”

“그렇다니까. 내 사부가 강 노귀의 쌍둥이 동생인데, 그가 죽는 순간이 아주 확실하게 느껴졌대. 게다가 강 노귀의 생기(生機) 토우(土偶)가 그 순간 깨져버렸다는군.”

막추가 입꼬리를 올렸다.

“당신 숙부가 당신 아버지의 부인과 처를 다 뺏어갔으니, 당신도 숙부의 반쪽짜리 아들이라고 볼 수 있겠네. 흥미로워.”

막추가 웃음기를 거두고 강사에게 협박하듯이 말했다.

“내가 이도진과 희민지를 처리하는 걸 봤겠지만, 굳이 당신까지 죽이고 싶진 않아.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잘 알고 있겠지?”

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다마다. 이도진과 희민지 두 미인을 내가 마음껏 유린한 뒤에 죽여버리지. 그러면 우리 둘이서 죽인 게 될 테니까.”

“똑똑하네. 목숨을 부지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군. 당신은 좋겠어. 북명검파의 절색 미인 두 명을 한 번에 맛볼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저승의 사기가 아직 몸 전체에 퍼지지 않았으니까, 족히 일각은 즐길 수 있을 거야.”

막추가 웃으면서 말했다.

천기도 도주 강 노인의 아들인 강사가 곧장 자신의 옷을 벗어 던졌다.

그는 아래 내의만 남겨두고 이도진과 희민지를 향해 공손하게 예를 표하면서 말했다.

“사매들,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내가 두 사매에게 극락을 맛보게 해주고 환상적인 시간을 즐기다가 떠나게 해주리다.”

강사가 두변의 친모인 희민지에게 먼저 달려들었다.

이때, 석실 밖으로 걸어 나온 두변은 멀리서 보이는 광경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어쨌든 자신을 낳아준 친모였다.

모자 관계가 냉담하긴 하지만, 저 중년 사내가 희민지와 이도진의 정절을 더럽히게 두고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친모와 이도진을 모두 구하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막추와 중년 사내의 무공이 말도 안 되게 강한데, 내가 어떻게 두 사람을 다 구하지?’

두 사람을 구하다가 도리어 자기 목숨까지 잃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두변의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이 몹쓸 놈아. 죽고 싶은 게냐!”

갑자기 천기도 쪽에서 연로하고 허약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중년 사내 강사의 안색이 흙빛이 되고 말았다.

강사에게는 이 목소리가 악몽과도 같았다.

그와 천기도 도주 강 장로 사이에는 남에게 말 못 할 비밀이 있었다. 만약 강사의 사부가 천기도 도주가 죽었다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그는 천기도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저 강 노인이 죽었다고 믿었고, 천기도에 있는 보물들을 가장 먼저 가져가기 위해서 이곳까지 왔을 뿐이다.

그런데 오는 길에 여마두 막추가 이도진과 희민지를 죽이려는 걸 목격했고, 막추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자기도 막추와 공범이 되길 선택했다.

강사는 평소 이도진과 희민지에게 호감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두 여인을 한 번에 가질 수 있으니 그에게는 이번 일이 밑지는 장사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가 막 옷을 벗어 던지고 희민지를 희롱하려던 찰나, 그의 귓가에 익숙하기도, 끔찍하기도 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이 목소리는 두변이 강 노인의 목소리를 흉내 낸 것이었다.

얼굴 없는 강 장로가 두변에게 정신 계승을 하진 않았지만, 그가 만든 정신적 환상에서 오래 있던 터라 강 장로의 목소리 정도는 모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강 장로의 막강한 정신적 기운을 모방할 수는 없으니, 강 장로가 허약해서 기운을 전혀 분출할 수 없는 상황을 가장해서 목소리를 흉내 낸 것이다.

안색이 사색이 된 사람은 강사뿐만이 아니었다.

막추도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천기도 쪽을 내다보았다.

이 영역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대은구도 도주가 아니었다. 대은구도 도주는 무공이 뛰어나지만, 매사에 공정한 편이었다. 하지만 천기도 도주 강 노귀에 대해서는 온갖 소문이 떠돌았다.

강 노귀는 무공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강한데, 정신력 경지는 그의 무공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얘기.

누구든 그의 영역에 들어가게 되면 그의 정신적 함정에 빠지게 되고, 강 노귀가 원하는 대로 사람을 괴롭힐 수 있다는 얘기.

게다가 북명검파의 모든 사람은 강 노귀가 아주 불길한 사람이므로, 그에게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도 화를 당한다고 믿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천기도는 금기시되는 구역이었고, 대은구도 도주 이외엔 그 누구도 이곳에 들어올 수조차 없었다.

막추가 이도진과 희민지를 천기도 부근의 해역까지 추격했지만, 천기도에 들어가지는 않고 그 근처의 작은 돌섬에서 두 사람을 공격한 이유이기도 했다.

막추가 냉랭한 어조로 물었다.

“강사, 강 노귀가 이미 죽었다면서?”

강사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대답했다.

“정말이야. 사부께서 강 노귀가 죽은 때를 확실히 느끼셨다고 말씀하셨단 말이야. 게다가 그의 생기 토우도 산산조각 났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강 노귀가 아직 살아있다고?”

막추가 말했다.

“그가 아직 살아있다고 해도, 곧 죽을 상태인 것 같군. 여기에 온 김에 강 노귀를 죽이고 천기도에 있는 보물들을 가져가야겠어.”

막추의 목소리를 들은 두변은 깜짝 놀랐다.

막추야말로 정말 대단한 여마두(女魔頭)면서 미치광이로구나.

강 장로의 목소리를 흉내 냈는데도 두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다니!

두변이 더욱 허약한 목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강사! 이 몹쓸 놈아! 천기도의 보물을 가지기 위해서 온 것이냐? 그럼 어서 오너라. 난 곧 죽을지도 모르니, 이 보물들을 네게 주마.”

두변은 정말 죽기 직전인 것처럼 숨을 몰아쉬면서 목이 쉰 목소리를 냈다.

강사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지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음모야. 음모라고. 강 노귀는 계속 나를 죽이려고 했어. 지금 강 노귀가 나를 천기도로 유인해서 나를 죽이려는 거야.”

“몹쓸 자식아. 어서 오라고. 어서…….”

두변의 목소리는 마지막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강사가 웃으면서 소리쳤다.

“아버지! 잘 계신다니 참 다행입니다. 제가 시간이 좀 지난 뒤에 다시 아버지를 뵈러 가겠습니다!”

강사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옷가지를 챙겨 들고 도망쳤다.

“쓸모없는 새끼.”

막추가 줄행랑치는 강사의 뒷모습을 향해 말했다.

막추가 다시 시선을 돌리자, 막추가 잠시 주의를 돌린 틈을 타서 이도진과 희민지가 바닷속으로 뛰어들더니 천기도를 향해 힘껏 헤엄치고 있었다.

막추가 냉소를 지었다.

“강 노귀, 남들이 당신을 무서워한다고 해서 나까지 당신을 무서워하는 건 아니야. 당신이 죽었든 살았든 간 난 당신을 두려워하지 않아.”

두변이 강 장로의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천기도로 와서 오랜만에 얼굴 한 번 보는 거 어떤가? 내가 유명신장 비급을 이십몇 년 전에 당신에게 선물했었지. 그때 당신이 내게 마음을 주기로 약속했었는데, 비급을 얻자마자 나를 내팽개쳤지 않아! 참 무정한 사람이야. 옥교와(玉嬌娃)!”

이십여 년 전, 천기도 도주 강 장로도 너무나 아름다운 그녀를 남몰래 좋아했었다. 그때 강 장로는 막추를 옥교와라고 부르면서 그녀의 환심을 사려고 했던 터라, 옥교와라는 애칭은 오직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셈이었다.

두변이 강 장로에게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은 없지만, 두변이 정신적 환상에 갇혀있을 때 시스템이 열심히 일해서 강 장로의 과거를 제법 알아낸 모양이었다.

두변이 천기도 도주의 목소리로 자신을 옥교와라고 부르자, 막추도 더는 그가 강 장로가 아닐 수 있다고는 의심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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