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89화 (289/648)

289장. 오늘의 기억

사실 이 천년사요는 어미에 대한 기억이 무척 희미했다.

지난번에 어미를 봤을 때가 이미 몇백 년 전의 일이었고, 어미는 교룡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강해서 어린 사요가 몇십 살이 되었을 때 내팽개쳤다.

당시 대은구도의 도주가 어린 사요를 가엾게 여겨 어미 대신 키워주었고, 몇 년이 지나서 몸집이 커진 뒤에는 이계 에너지가 가득한 해저 동굴에서 서식하게 했다.

그래서 천년사요는 어미를 오직 독특한 냄새로만 기억했다.

해저 동굴에서 사는 동안에도 몇 차례 용혈로 가서 어미를 만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해저 통로가 무너져 버렸다.

이번에 천년사요가 어미가 있던 용혈까지 무작정 찾아갔지만, 어미가 없다는 사실에 크게 슬퍼했고 약 기운 때문에 완전히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 천년사요는 어린아이가 떼쓰는 것에 가까웠다. 그에게는 바닥에 드러누워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있는 힘껏 울부짖는 행동이었지만, 사람들에게는 거의 재난 수준이었다.

천년사요가 한 번 몸을 굴렀다 하면 용혈 전체에 지진이 일어났고, 한 번 울부짖는다 하면 사람의 고막이 터질 지경이었다.

게다가 천년사요가 울부짖을 때마다 독 안개가 뿜어져 나오는데, 독 안개에 맞은 대은구도의 제자들은 오장육부가 터져서 죽어버렸다.

천년사요가 미쳐 날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죽어가는 제자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천년사요의 사고회로는 무척 단순했다.

어미가 원래 이곳에 있어야 하는데 지금 어미는 없고 사람들만 있으니, 사람들이 어미를 숨겨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궁지에 몰린 대은구도 제자들은 천년사요의 마음이야 모르겠고 그저 무서워서 오줌만 질질 흘릴 뿐이었다.

무도 수준만 보면 이곳의 대부분의 사람이 두변보다 무도 수준이 높지만, 천년사요 앞에서야 3품인들 4품인들 나뭇가지보다도 약한 존재였다.

이때, 두변이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사지에 몰린 제자들이 구세주라도 본 것처럼 미친 듯이 소리쳤다.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이들은 본능적으로 외치는 것일 뿐, 두변이 정말로 자신들을 구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천년사요의 목에 매달려 있던 방청의는 혼비백산한 상태인지라, 두변이 왔다는 걸 아예 눈치채지도 못했다.

아우우우!

사람들이 끝까지 어미를 내놓지 않자, 천년사요는 단단히 화가 났다.

천년사요가 입으로 맹독을 내뿜으려는 것처럼 입을 서서히 벌렸다. 만약 그렇게 되면, 이곳에 있는 천여 명의 사람들은 몇 분 안에 전부 다 목숨을 잃을 것이다.

천년사요의 입이 십여 미터까지 쩍 벌어졌고, 2미터는 넘어 보이는 송곳니가 드러났다.

“멈춰!”

두변이 소리치더니, 내력을 통해 단전 안에 있는 교룡의 기운을 내뿜었다.

순간, 익숙한 냄새를 맡은 천년사요가 움직임을 멈추더니 천천히 입을 다물고 두변을 향해 거대한 머리를 돌렸다.

두변이 있는 곳에 어미가 있을 줄 알았는데, 어미가 아닌 웬 인간 같은 게 서 있어서 놀란 눈치였다.

천년사요가 의아한 눈빛으로 두변을 빤히 바라보았다.

‘응? 어떻게 된 거지? 왜 저 조그마한 인간이 어머니의 냄새를 풍기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어머니가 아닌데? 어머니는 엄청 엄청 컸는데?’

천년사요는 뇌가 무척 단순해서, 어미를 아주 거대하고 하얀 뱀의 모습으로만 기억했다.

두변은 단전 안의 교룡의 기운을 더욱 강하게 내뿜었다.

익숙한 기운과 냄새가 계속해서 천년사요의 단순한 머리를 자극했다. 불현듯 천년사요는 어미를 못 본 지 너무 오래됐으니 어미의 모습이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년사요는 자기 자신을 속이고 합리화하고 있었다.

근친상간의 산물이기 때문에 머리에 문제가 있었고, 어렸을 적 버림받은 기억에 천년사요는 본능적으로 어미에 대한 갈망이 무척이나 강했다. 때문에 즉시 모든 의심을 내려놓았다.

우우우웅!

천년사요가 울음을 터트리더니 거대한 몸집을 바닥으로 바짝 낮추었다. 그리고 두변을 향해 헤엄쳐오더니 머리통을 있는 힘껏 두변의 가슴팍에 비볐다.

두변은 천년사요의 힘에 밀려서 피를 토하면서 튕겨 나갈 뻔했지만, 간신히 통증을 참으면서 다정하고 부드럽게 사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두변은 천년사요를 쓰다듬으면서 교룡의 황금 기운을 더욱 많이 분출했고, 그 기운은 두변의 손을 통해 천년사요의 머리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일순간, 천년사요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기분에 너무 행복했다.

천년사요의 어미인 교룡은 근친 형제와 교배를 한 직후에 그 형제를 물어 죽여버렸고, 형제가 천년 넘게 갈고 닦은 내공이 든 사단(蛇丹)을 집어삼켰다.

천년사요의 어미는 이렇게 잔인하고 비겁한 수단을 써가며 어렵사리 교룡이 되었지만, 이렇게 교활한 교룡도 결국엔 천기도 강 노귀의 음모에 죽게 되었다.

한 번도 어미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던 천년사요는 익숙한 기운에 휩싸여서 쓰다듬을 받는 게 너무나도 행복했다.

천년사요가 어린아이처럼 까르르 웃더니,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거대한 몸집을 구르기 시작했다.

천년사요가 몸을 구르자 용혈 전체가 또 격하게 흔들렸다.

천여 명의 대은구도 제자들이 혼비백산한 모습으로 연신 비명을 질렀다.

‘조용. 조용.’

두변이 천년사요에게 정신력으로 신호를 보내자 천년사요가 금새 조용해졌다.

‘아이고 착하지. 한숨 자자.’

두변은 뱀의 언어를 할 줄 모르지만, 천년사요에게 자라는 생각을 전달할 수 있었다.

천년사요는 지능이 매우 낮지만, 직접적이고 일차원적인 생각 전달에는 무척 민감했다.

천년사요가 눈을 감더니 잠을 자기 시작했다. 사실 아직 잠이 오지 않았지만, 어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잠들려고 노력했다.

두변이 구석에 몰려있는 대은구도 제자들을 향해 말했다.

“어서들 이동해요. 왼쪽 길에 독 안개가 있으니 오른쪽으로 가야 합니다.”

대은구도 제자들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자기 눈으로 직접 본 게 아니라면, 절대로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쳐 날뛰던 거대한 천년사요가 두변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말을 잘 듣는다니!

제자들이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던 찰나, 한 제자가 앞으로 나와서 공손하게 두변에게 예를 올렸다.

“목숨을 구해줘서 고맙습니다. 사형의 존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두변이 대답했다.

“나는 천기도의 새로운 도주 두변입니다.”

제자들이 깜짝 놀라면서도 두변을 경외심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새로운 천기도주였구나. 그래서 이렇게 강하고 신비로운 것이었구나!’

대은구도의 제자들에게 가장 무서운 사람은 대은구도 도주 하진이 아니라 천기도 강 노귀였다. 강 노귀에 관한 소문은 신화와도 같았고, 그들의 눈에는 강 노귀는 귀신이거나 신처럼 못하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제자들이 두변이 새로운 천기도주라는 말에 바로 납득할 수 있었던 것도, 천기도주가 아닌 이상 이렇게 거대한 천년사요를 단숨에 길들일 방법이란 없기 때문이었다.

“어서 움직이세요. 왼쪽으로 가지 말고, 오른쪽으로 가요!”

천여 명의 제자가 두변을 향해 일제히 예를 올렸다.

“두 도주,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밖으로 나간 뒤에 대도주에게 말씀드리세요. 모든 사람을 용혈 밖으로 내보내고, 내게 잠시 시간을 달라고 말이에요. 내가 천년사요를 해저 동굴로 돌려보낼 테니, 절대로 천년사요를 공격하지 말라고요. 이번엔 약을 먹어서 이렇게 난동을 부린 것이지, 평소에는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라고 말이에요.”

“알겠습니다.”

제자들이 대답했다.

제자들은 바닥에 널브러진 수십 구의 시신들을 들고 조심스럽게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천년사요는 사람들이 움직이는 걸 느끼고 곧바로 눈을 떴다. 천여 명의 제자들은 놀라서 제자리에 얼어붙었고, 또 한 번 아랫도리를 적실 뻔했다.

하지만 이들보다 더 긴장한 천년사요는 재빨리 다시 눈을 꼭 감았다. 그는 세 살배기 아이처럼 자신이 자는 척을 하고 있었다는 걸 두변에게 들킬까 봐 긴장한 것이다.

덕분에 천여 명의 대은구도 제자들은 안전하고 빠르게 용혈 동굴에서 도망쳐 나갈 수 있었다.

이때, 아직도 천년사요의 목에 매달려 있던 방청의는 움직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방금 전에 일어난 일들이 믿기지 않았고, 이곳에 있던 사람들 통틀어서 제일 놀라기도 했다.

‘두변이 시문에 재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사요까지 길들일 줄 알지? 얜 뭐 하는 애야?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거지?’

방청의는 두변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의 재능에 시샘과 불편함을 느꼈고, 노골적인 적의가 생겼다.

하지만 지금은 적의 따위를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방청의가 아주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두변, 얘한테 당장 나를 내려놓으라고 해.”

두변이 냉소했다.

‘이 여인은 이 와중에도 명령조네.’

“방청의, 만약 지금 내가 이 아이에게 너를 잡아먹으라고 하면 어떨 것 같아? 아마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버리겠지?”

방청의가 발끈했다.

“두변! 네놈이 지금 감히!”

아우우우!

천년사요가 갑자기 고개를 휙 돌리고 방청의를 향해 포효했다.

천년사요가 방청의가 두변에게 적의가 있다는 걸 직감하고는 바로 그녀를 위협한 것이다.

가엾은 방청의는 힘없는 지푸라기처럼 천년사요의 목에서 튕겨 나가서는 그대로 땅에 처박혀 피를 토했다.

천년사요가 힘 조절을 해서 다행이지, 힘 조절도 하지 않았다면 방청의는 이대로 죽어버렸을 것이다.

‘착하지. 계속 자자!’

두변이 천년사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천년사요의 몸집이 워낙 큰 터라, 두변이 커다란 바위 위에 올라가야만 그의 머리를 쓰다듬을 수 있었다.

천년사요가 다시 조용히 눈을 감고 단잠을 자는 척했다.

두변이 방청의에게 다가가서는 냉랭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뭐, 뭘 하려는 거야? 우리 방씨 가문이 네놈을 가만히 둘 것 같아?”

우우우웅!

천년사요가 다시 눈을 번쩍 뜨고 심기가 불편하다는 듯이 소리를 냈다. 천년사요는 지능이 낮긴 하지만, 일차원적인 감각은 무척 예민했다. 방청의가 두변에게 조금이라도 적의를 보이면 곧바로 방청의를 위협하는 게 그의 본능이었다.

천년사요가 눈을 뜨고 소리만 냈을 뿐인데, 방청의는 놀라서 오줌이 찔끔 나올 뻔했다.

“내가 선천적인 고자인 게 싫었으면 퇴혼만 하면 됐지, 왜 두씨 가문에 나를 없애버리라고 한 거지?”

두변이 방청의의 턱을 손끝으로 올리면서 물었다.

방청의는 아직 놀란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고, 온몸에 근육통이 있는 데다 내상까지 입은 터라 반항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방청의는 무척이나 당당하게 대답했다.

“네놈이 살아있는 한, 사람들은 다 네가 내 정혼자였다는 걸 기억할 테니까. 나 방청의는 영설 공주보다 더 고귀한데, 태생이 고자인 정혼자가 있다면 얼마나 창피하겠어? 네놈이 죽어야만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테니까 그렇게 했지.”

짝!

두변이 방청의의 따귀를 세게 올려쳤다.

“네까짓 게 영설 공주와 고귀함을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해? 너희 방씨의 배후에 있는 그자가 해외 제국이 있다는 것도 알고, 방씨 세력이 대녕 제국에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다는 것도 안다만, 참 대단하네? 하지만 고귀함은 사람의 마음과 품행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걸 아나? 너처럼 악독한 년이 무슨 자격으로 고귀함을 논해?”

“지, 지금 날 때린 거야?”

방청의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소리를 질렀다.

짝, 짝, 짝, 짝.

두변이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방청의의 뺨을 좌우로 번갈아 가며 연달아 열몇 대를 올려쳤다.

방청의가 화를 내려고 했으나, 천년사요가 곧바로 눈을 뜨고 위협적인 눈빛으로 방청의를 노려보았다.

천년사요는 방청의가 두변에게 불경스러운 언행을 한 번이라도 했다가는 갈기갈기 찢어버릴 기세였다.

방청의는 두변이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까지 두변을 업신여겨 왔고, 언제나 두변에게 우월감을 느끼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 방청의는 무엇보다 천년사요가 무서웠다.

“몹쓸 년, 살고 싶나?”

두변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방청의는 어금니를 꽉 깨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두변에게 목숨을 구걸하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지 않은가 보네. 잘됐군. 우리 아가가 밥 먹을 때가 됐는데. 자, 셋을 세지. 셋! 둘!”

방청의는 오기를 부릴 때가 아니라는 걸 직감하고 곧바로 소리쳤다.

“살고 싶어. 살고 싶다고!”

두변이 방청의의 앞에 웅크려 앉아서 콧방귀를 뀌었다.

“살고 싶어? 그럼 빌어. 싹싹 빌라고.”

방청의가 또 인상을 쓰면서 입을 꾹 다물자, 두변이 할 수 없다는 듯 다시 숫자를 셌다.

“셋! 둘!”

천년사요가 고개를 들고 입을 커다랗게 벌렸다.

“하…….”

방청의가 화들짝 놀라면서 애원했다.

“아, 알겠어. 두변, 제발 살려줘. 제발 목숨만 살려줘. 제발,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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