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91화 (291/648)

291장. 천년사요와의 이별

두변은 이도진을 끌어안고 어린아이처럼 울부짖으면서, 머릿속에서 미친 듯이 외쳤다.

‘이도진을 구하고 싶어요. 무슨 대가를 치러도 좋으니까, 이도진을 살게 해줘요!’

그러나 기이한 불빛은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못했다.

‘이러지 말아요. 제발 이러지 마요.’

두변이 애원하면서 소리쳤다.

그가 있는 힘을 다해서 울부짖은 터라, 그의 목구멍에서도 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도진은 두변의 모습을 보고 도리어 차분해져서는 얼굴 가득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결말이 아름답지는 않지만, 나쁘지는 않네.”

이도진이 두변을 향해 따뜻하기도, 처량하기도 한 미소를 지었다.

두변도 차츰 진정을 되찾고 이도진의 이마에 자신의 뺨을 댄 뒤, 그녀를 꼭 끌어안고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두변은 더는 울지 않았지만, 무궁무진한 슬픔과 칠흑같이 어두운 절망이 몰려와 그의 마음을 집어삼켰다.

우우웅!

두변의 감정에 민감한 천년사요는 두변이 고통스럽다는 걸 알고 자신도 고통스러워하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천년사요는 꼭 서너 살 아이가 부모가 울면 같이 우는 것처럼 슬퍼했다.

천년사요가 거대한 몸집으로 두변과 이도진을 따뜻하게 감쌌다.

우우웅!

이제 힘 조절을 할 수 있게 된 천년사요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두변의 어깨에 머리를 살살 비볐다.

두변이 손을 뻗어서 다정하게 천년사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때, 천년사요가 갑자기 두변을 향해 입을 벌리더니 열심히 무언가를 토해내려는 듯 토악질을 했다. 잠시 뒤, 엄청나게 눈 부신 빛이 동굴 전체를 밝혔다.

천년사요의 혀 위에 맑고 투명한 구슬이 놓여 있었다.

구슬의 크기는 비둘기 알처럼 작았지만, 저 작은 구슬 안에 천년사요가 천 년 동안 수련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

천년사요 정도 등급의 이계 괴수는 평생 이런 구슬을 세 개만 만들 수 있었다. 사요의 어미가 교룡으로 변하기 직전에 근친 남편을 죽였던 것도 그의 구슬을 얻기 위함이었다.

구슬을 뱉어낸 천년사요는 맑고 빛나던 눈동자가 일순간 어두워졌고, 표정이 무척 피곤해 보였다.

천년사요가 두변의 손바닥 위로 구슬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기이한 불빛이 말했다.

‘두변, 어서 수정 상자에다 천년사요의 구슬을 보관해라. 그래야만 기운이 소실되는 걸 최소화할 수 있다. 네가 종사가 된 뒤에 이 구슬을 흡수하면 돼. 이 기운은 너무도 강해서 지금 네가 먹어봤자 온몸의 근맥이 폭발해서 죽을 수 있다. 그러니까 네가 종사가 된 뒤에 먹어야 해.’

‘이걸로 이도진을 구할 수 있습니까? 살릴 수 있냐고요.’

기이한 불빛이 대답했다.

‘이렇게 귀한 구슬을 이도진에게 쓰겠다고? 그건 낭비지. 이도진은 이미 흡성대법의 행방을 네게 알려줬으니, 네게 더 이상 쓸모 있는 존재가 아니다.’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묻는 말에만 대답해요. 천년사요의 구슬로 이도진을 구할 수 있습니까?’

기이한 불빛이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구할 수 있지. 그리고 몇 개월 동안 조용히 요양만 하면, 이 구슬을 완전히 소화해서 대종사가 될 수 있다. 이 구슬이 아니라면, 이도진은 평생 대종사가 되지 못할 것이다.’

두변이 망설임 없이 천년사요의 구슬을 이도진의 입에 넣었다.

이도진은 이미 혼절한 듯 의식이 거의 없었다.

기이한 불빛이 다급하게 외쳤다.

‘숙주! 잠깐 진정해봐. 천년사요의 구슬은 진짜 엄청 귀한 거라고! 네가 종사가 된 뒤에 복용하면 엄청난 효과가 있단 말이다! 종사에서 대종사가 되기까지의 시간을 8할이나 줄여줄 수 있다고! 대종사 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나 하냐? 아무리 천부적인 재능이 뛰어나도 천운이 따르지 않는 한 대종사가 되기 힘들다고!’

‘내겐 이번 기회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난 천운을 타고난 사람이에요. 그리고 천년사요는 나를 어미처럼 따라서 자기 생명으로 만든 이 구슬을 내게 준 겁니다. 이걸로 사람을 구하면 모를까, 이걸로 내 무도 수양을 높인다면, 난 금수만도 못한 놈이 되는 거라고요.’

‘천년사요는 멍청해서 너를 어미로 여긴 것이다. 사실상 둘은 그 어떤 관계도 아니야.’

‘시스템. 이건 기회이기도, 인연이기도 해요.’

두변이 내력을 운용해서 천년사요의 구슬을 이도진의 배 속까지 밀어 넣었다.

이도진의 배에서 빛이 보이더니 불빛이 점점 더 환해지고, 엄청난 기운이 이도진의 오장육부를 빠르게 치료하기 시작했다.

두변이 천년사요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다정하게 말했다.

“정말 착한 아이네. 고마워.”

“우웅!”

천년사요가 몸을 낮추고 두변과 이도진을 조금 더 세게 감싸 안았다.

천년사요는 무척 강한 괴수이지만, 속마음과 지능은 서너 살짜리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그 기나긴 세월 동안, 사요는 무척 외롭고 쓸쓸했다. 지금같이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을 평생 꿈꿔왔었다.

한 시진 뒤.

이도진의 안색이 차츰 붉어졌고, 호흡도 점점 안정적으로 변했다.

천년사요의 구슬 덕분에 이도진의 내상이 완전히 치료되었지만, 이도진은 지금 당장 깨어나지는 못하고,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있을 것이다.

구슬은 이도진의 체내에서 끊임없이 힘을 방출할 것이고, 그녀의 근맥과 단전은 기운을 흡수하느라 이도진의 신체를 장악한 상태였다.

공기에 휘발되는 기운도 있겠지만, 이도진은 아주 소량의 기운만 흡수할 수 있어도 대종사급 무도 수준을 돌파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구슬 덕분에 이미 아름다운 이도진의 얼굴이 점점 더 아름다워지기 시작하더니, 절세미인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두변이 이도진을 조심스럽게 품에 안아 올린 뒤, 천년사요를 향해서 따뜻하게 말했다.

“아가, 이제 집으로 돌아갈까?”

“우웅?”

천년사요가 아쉬움이 가득한 모습으로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2년에 한 번씩 너를 보러 온다고 약속할게. 올 때마다 맛있는 것도 가져오고, 같이 재미있게 놀자. 어때?”

두변이 천년사요를 달랬다.

천년사요는 두변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사요는 두변의 말을 이해한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했지만, 두변이 진심으로 무언가를 약속한다는 것만큼은 느낄 수 있었다.

2, 3년은 두변에게는 긴 시간이겠지만, 천년사요에게는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앞으로 자주 보러 온다고 약속할게. 10번, 15번, 20번. 어때?”

이번엔 천년사요도 두변의 말을 알아들은 눈치였다.

비록 숫자를 모르는 천년사요여서 10번, 15번, 20번이 구체적으로 몇 번인지 몰랐지만, 아주 많은 횟수라는 건 알아들었다.

“웅. 우웅.”

천년사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이제 집에 가볼까?”

두변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가 앞장서서 걸으려던 찰나, 천년사요가 이도진과 두변을 조심스럽게 혀로 감아서 자신의 등 위로 두 사람을 올렸다.

천년사요의 몸은 직경이 4, 5미터에 달해서, 무척 빠른 속도로 용혈 밖으로 헤엄치고 있는데도 흔들리지 않아 편안했다.

슈우우우웅.

천년사요와 두 사람이 금세 용혈 밖으로 나왔다.

대은구도 도주와 수십 명 종사급 고수들이 산에서 용혈을 지켜보고 있다가, 두변과 이도진이 천년사요를 타고 나타나는 장면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천년사요는 대은구도 도주 등을 무시하고 곧장 바닷가를 향해 헤엄쳤고, 몇 분 뒤 천년사요가 바닷가에서 멈추더니 두변과 이도진을 땅에 내려줬다.

“아가, 집으로 돌아간 뒤에 착하게 잘 있어야 해.”

“우우웅!”

천년사요가 모래사장 위에서 몸을 이리저리 뒹굴면서 헤어지기 아쉽다고 칭얼댔다.

두변이 커다란 바위 위로 올라가서 천년사요의 머리에 손바닥을 가져다 댄 뒤, 교룡의 기운을 천년사요의 머리에 불어넣었다.

따뜻하고 익숙한 느낌이 온몸을 감싸자, 천년사요는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했다.

“집으로 돌아가. 내가 금방 다시 너를 보러올게.”

천년사요는 편하게 눈을 감은 채 두변의 손길을 만끽하다가, 이내 눈을 뜨고 그대로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우우우웅웅.”

천년사요가 갑자기 수면 위로 머리를 빼꼼 보이더니, 콧구멍에 물을 담아서 장난스럽게 두변을 향해 물줄기를 뿜었다.

물에 쫄딱 젖은 두변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천년사요를 향해 손을 저었다.

천년사요는 그래도 헤어지기 아쉬웠는지, 두변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천년사요는 곧장 자신의 해저 동굴로 돌아갔고, 모두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게 천년사요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다.

대도주 하진이 두변에게 다가와서 허리를 깊이 숙이며 읍을 올렸다.

“대은구도를 대표하여 두 사제의 은혜에 감사한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으마.”

두변이 답례했다.

“대도주, 천년사요는 고의로 사람을 해친 게 아닙니다. 평소에는 얌전히 있는 편인데, 여마두 막추의 약을 먹고 난동을 부린 것이니 천년사요는 해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당연한 얘기지. 이것은 인재이지 천년사요와 상관없는 일이니까. 게다가 천년사요는 대은구도의 수호수다. 만약 천년사요가 아니었다면, 대은구도를 공격하려는 이계 괴수들이 벌써 이곳을 침범하고도 남았다. 그러니 우리가 천년사요를 해칠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아라.”

“그럼 다행입니다. 아, 그리고 강무심, 강사 부자가 저를 습격하려다가 천년사요에게 잡아먹혔습니다.”

대도주 하진이 살짝 놀란 듯했다가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알겠다. 이도진의 상태는 어떻고?”

두변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사실대로 얘기했다.

“이도진 사저는 저를 구하기 위해서 강무심과 강사의 공격을 막아줬는데, 오장육부가 터져버렸습니다. 그때 천년사요가 구슬을 제게 주었고, 저는 그 구슬을 사저에게 먹였습니다.”

구슬이 이미 이도진의 몸에서 융화되고 있던 터라, 구슬을 갖고 싶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게 되었다.

“이 사저는 구슬 덕분에 내상이 전부 치유되었고, 몇 개월만 쭉 요양하면 대은구도의 새로운 대종사가 될 겁니다.”

하진이 복잡한 눈빛으로 이도진을 바라보다가 탄식했다.

“하늘의 뜻과 인연이라는 것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군. 이렇게 된 것도 좋은 일이지. 이도진에게 강무심의 빈자리를 주고, 대은구도의 장로로 임명해야겠다.”

하진이 이도진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다가 이어서 말했다.

“그나저나 이도진의 얼굴이 더 젊어진 것 같은데? 원래도 아름다웠지만, 이게 다 사랑의 힘 덕분인가?”

“대도주께서는 무척 훌륭하신 분이니, 집에 분명 아름다운 부인이 계실 테지요. 그런데도 이런 현상을 모르시겠습니까?”

“사제, 모르는 게 있나 보군. 대은구도 도주는 가정을 이룰 수도 없고, 가족을 둘 수도 없는 몸이다. 그래서 사제의 모친인 희민지도 대은구도 도주 자리를 경쟁하기 위해서 조만간 두회와 이혼할 것이다.”

“때마침 잘됐네요. 제가 그분의 목숨을 구해드릴 기회가 있었는데, 그 기회로 저를 낳아준 은혜를 갚았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영원히 남남인 겁니다.”

대도주 하진은 이 일에 뭐라고 판단하거나 말하기가 어려워서 잠시 침묵했다.

하진이 한참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두 사제, 네가 이번에 우리 대은구도의 제자 천여 명을 구해줬고, 나 하진의 앞길과 목숨을 구해줬다. 게다가 대은구도의 수호수인 천년사요도 사제를 어미로 여기는 걸 보아, 모든 게 천운인 듯싶기도 하고. 내가 이 일을 북명검파 장로회에 보고하면, 사제가 천기도 도주가 되는 건 떼놓은 당상이다. 두 사제가 세운 공훈이 너무 커서 또 다른 큰 포상이 있을 수도 있고. 일단 대은구도에서 며칠 머물러 있어라. 내 지금 당장 장로회에 보고하고올 테니.”

두변이 공손하게 예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대도주.”

“두 사제의 은혜에 내가 더 감사하지.”

대도주 하진이 답례한 뒤 발끝으로 가볍게 땅을 딛더니 곧장 바다를 가로질러 북쪽으로 향했다.

두변은 대은구도에 있는 동안 줄곧 이도진의 방에서 지냈다.

이도진은 가부좌를 튼 자세로 명상하는 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폐관(閉關) 상태였다.

그녀는 점점 더 아름다워졌고, 그녀의 몸에서 나는 체향도 더욱더 향기로워졌다.

두변이 이도진을 닦아주려고 보니, 피부가 백옥보다 곱고, 먼지조차 쌓이지 않는 데다 좋은 향기까지 나는 걸 발견했다.

며칠 사이, 희민지도 두 사람을 보러 온 적이 있었지만 두변과 어색하게 잠시 마주 앉아 있다가 어색하게 자리를 뜨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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