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장. 안남 왕국
가장 가까운 마을로 가고 나서야, 두변은 자신이 산동성 경내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북명검파의 범위에 가까울 때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북명검파의 영향 범위에서 멀어질수록 상황은 점점 더 안 좋아졌다.
두변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건 난세의 풍경이었다.
또 다른 지구의 명 왕조 시기에 광서성은 비교적 곤궁한 편이었다. 그에 비해 이 세계에서는 광서성에서 비금 광물과 소금 광산이 발굴되었다. 또 이 세계의 염주항은 광동성이 아니라 광서에 속해 있었다. 그로 인해 광서의 해상 무역이 광동과 복건만 못하더라도 비교적 번창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지구의 역사에서 명 왕조와 안남 왕국의 관계는 적대적이었다. 그에 비해 이 세계에서 대녕 제국과 안남 왕국은 친밀한 동맹국 관계였다. 양국은 무역 방면에서도 몹시 밀접하게 왕래해서 광서성은 안남 왕국 최대의 무역 중심지이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광서성은 비록 광동이나 양강(兩江: 강남성, 강서성)만큼은 아니지만 비교적 번영을 누리는 편이었다.
마침내 광서성을 벗어나고 나서야 대녕 제국의 북쪽에 가까운 성일수록 난세의 풍경이 펼쳐진다는 걸 발견하게 된 것이다.
어디에든 기근과 흉작이었다.
값을 매겨서 딸을 팔고, 나뭇잎이나 나무껍질을 먹는 모습을 어디에서든 볼 수 있었다.
바닥에 쓰러져 굶어 죽은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대녕 제국의 관아는 애초에 현성 아래로는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중앙의 권력이 공백 상태가 된 마을을 마련교가 차지하게 된 것이다.
두변은 산동성에서 이도진에게 잡혀갔던 그 객잔으로 돌아가야 했다. 계표표 누이가 아직도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거나, 설령 그녀가 없다고 해도 반드시 그에게 서신을 남겨두었을 것이다.
그곳까지 가는 길은 장장 이천여 리나 되건만, 현실은 점점 더 경악할 수준으로 눈앞에 펼쳐졌다.
마련교의 성단이 곳곳에 맹렬한 기세로 번져 있었기 때문이다.
가는 길 내내, 현성 이상은 여전히 대녕 제국의 관할에 속한다 해도 거의 모든 마을과 농촌이 전부 마련교 통제하에 있었다.
마련교가 마음만 먹으면 즉시 모반이라도 일으킬 기세였다.
물론 그들에게는 정예군이 없으니 군력 면에서는 여씨보다 훨씬 떨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백만 명 이상의 민중을 선동할 수 있으니 대단히 두려운 재앙을 초래할 만했다.
더군다나 더욱더 두려운 점은 여씨와 마련교가 멀리 떨어져 있으나 서로 협응할 가능성이 몹시 크다는 점이었다.
이것 또한 기음음이 예전에 지었던 죄업 때문이었다.
예전에 천마교의 사대천왕 가운데 하나였던 삼안용왕(三眼龍王) 해령화가 천마교를 배신하고 나와서 십여 년이나 소리 없이 종적을 감췄다. 그후 권토중래하여 마련교를 세우면서 종횡무진하고 있으니, 이들을 제압하지 않으면 또다시 천마교의 재앙이 펼쳐지는 게 아닐까.
이틀 뒤, 두변은 호북성 경내에 있는 그 객잔으로 돌아왔다.
도착하니 계표표는 없었으나 서신 한 하나가 남아 있었다.
두변, 내가 널 찾으러 갈게. 만약 너를 찾지 못하면 두 달 뒤에는 백색부로 돌아가 있을게. 그때 네가 세상에 있다면 모든 게 평온할 테지만 네가 없으면 이 누이는 여생 동안 너를 찾는 길을 걷겠어.
날짜를 계산해 보니 아직 한 달 정도가 남아 있었다.
계표표 누이는 대체 어디에 있을까?
누구도 그녀의 행방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아마도 아득히 먼 곳까지 달려가 도처에서 두변을 찾아 헤매고 있을 것이다. 계표표의 무공을 생각하면 그녀가 대종사급 고수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호방하고 직설적인 성격을 가진 그녀지만 강호를 누빈 경험이 충분한 편이니, 두변이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니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 바로 흡성대법을 찾는 일을 먼저 끝내기로 했다.
두변은 스물 전에 종사를 돌파해야 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수련하면 목표 달성에 분명히 실패할 테니, 반드시 흡성대법, 정확히 말하면 북명대법이 필요했다.
하지만 관건은 막추가 벌써 며칠 전에 북명검파를 떠나서 흡성대법을 찾으러 갔다는 것.
이 미치광이 여마두 막추가 먼저 흡성대법을 손에 넣게 되면, 가장 먼저 이도진을 죽이러 갈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그녀보다 먼저 흡성대법을 찾아야 했다.
그렇다면 흡성대법은 어디에 있을까?
이도진이 그에게 준 밀서에는 단 하나의 정보밖에 없었다. 바로 환멸도.
천 년쯤 전에 북명검파에 어마어마한 분열이 일어났다. 문파의 보물인 북명대법도 둘로 나뉘어서 그중 절반은 흡성대법으로 변해서 배신자들이 가져갔다.
수백 년 뒤에 북명검파는 다시 통일됐으나 흡성대법의 행방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이번에 이도진과 막추가 밖에서 떠돌다가, 우연한 기회에 흡성대법의 행방을 알게 되었다. 그 일을 진귀한 보물이라도 얻은 것마냥 생각했지만 두 사람 다 북명검파에 보고하지는 않았다.
물론 두변이 이도진을 두 번이나 구해줬고, 마지막에 이도진이 완전히 두변에게 몸을 의탁한 뒤, 일념을 다해 흡성대법을 가져와 두변의 비위를 맞출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대종사를 돌파하는 데 더 이상 흡성대법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또 두변을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이도진과 막추가 어떤 상황에서 흡성대법의 행방을 알게 되었는지, 어째서 이렇게 중요한 전설적인 무공 비급의 행방이 갑자기 세상에 드러난 건지 등에 관해서는 알 방법이 없었다.
어차피 흡성대법의 행방을 알게 된 건 신비롭고 이상하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럼 환멸도는 어디에 있는 걸까.
지도에서조차 환멸도를 찾지 못한 두변은 그곳이 안남 왕국의 왕도 순화부에 가깝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순화부는 이미 초대형 전장이 되어 버렸다.
안남 왕국의 이십만 대군, 대녕 제국의 십만 대군, 반왕 완씨의 삼십만 대군이 마침 순화부에서 국운이 걸린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순화부가 아직은 대녕 제국과 안남 왕국 연합군 수중에 있다는 점이었다.
두변은 최대한 빨리 말을 타고 남하해서 먼저 안남 왕국의 왕도로 향한 뒤, 환멸도에 관한 소식을 알아봐야 했다.
결정을 내린 그는 야생마를 타고 바람처럼 달렸다. 매일 몇 시진만 휴식을 취하고 나머지 시간은 밤낮으로 길을 재촉해서 안남 왕국의 왕도 순화부로 향했다.
안남 왕국의 천도는 이미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순화부는 곧 배도(陪都: 제2의 수도)가 되고, 승룡부가 왕도가 될 예정이었다.
안남국왕 여창과 왕후 영신은 시종일관 순화부 최전선에서 전투를 독려했고, 왕 태자만 승룡부로 향했다.
국왕 여창은 문무를 겸비한 국왕이 아니라서 직접 군대를 거느리거나 전투를 치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국왕인 그는 매일 수십만 대군 앞에 서서, 순화부 왕도와 존망을 함께하며 수십만 장병과 생사를 함께 한다는 자신의 결심을 드러냈다. 이것만으로도 전장의 사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도 남았다.
대녕 제국의 장공주이며 안남 왕국의 왕후인 영신 공주는 진정한 용장(勇將)이었다.
전쟁이 최고로 위태로운 시기를 맞으면 그녀는 여러 차례 갑옷을 입고 전장으로 향했다. 그녀 휘하의 수만 대군은 실성한 듯이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아서 몇 번이나 위태로운 국면을 만회하곤 했다.
여창 국왕의 친우이자 대녕 제국의 사자인 이문회는 여창 국왕에게 승룡부로 돌아가 요양하라고 거듭 설득했으나 매번 여창이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여창은 국왕이 군대를 떠나고, 전선을 떠난다는 건 수십만 병사에 대한 일종의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본래부터 건장하지는 못했던 여창은 전국이 깊어짐에 따라서 건강 상태가 점점 악화되었다.
몇 달 간의 격전을 거친 끝에 사흘 전 대녕 제국과 안남 왕국 연합군은 드디어 중요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그 전투에서 반왕 완씨의 6만에 가까운 대군을 섬멸했으니, 적군의 근골을 다치게 한 셈이었다.
결국, 이틀 전에 반왕 완씨는 수십만 대군을 거느리고 철수했다.
이로써 1년 가까이 포위되어 있던 순화부는 마침내 포위를 벗어났고, 연전연승을 거뒀던 반왕 완씨는 처음으로 크나큰 패배를 겪으며 불패 신화가 깨져버렸다.
전장의 승리를 나타내는 천칭의 추가 조금씩 안남 왕국과 대녕 제국 쪽으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그동안 처참한 사상자를 냈다지만 이건 휘황찬란한 대승이자 전략적으로 중요한 승리였다.
오늘 국왕 여창은 왕궁 광장에서 전사한 장병들을 위해 성대한 의식을 치렀다. 비장하고 엄숙한 방식으로 이번 휘황찬란한 승리를 축하하는 셈이었다.
계속된 전투에 지쳤음에도 사기가 고조된 수십만 병사와 백성들이 고개를 들어 자신들의 국왕을 바라봤다. 진남공 송결, 왕후 영신은 각각 국왕의 양측에 섰고, 천윤제의 사자인 이문회는 조금 뒤쪽에 서서 여창 국왕이 제문을 낭독하는 걸 듣고 있었다.
두변이 황제를 구한 일로 인해 이문회는 관직이 올라서 광서성 진수 환관으로 승관했다.
게다가 며칠 전에 천윤제는 다시 흠차를 파견해서 그를 광서 신군의 감군 환관으로 세웠고, 대녕 제국 남정(南征) 대군의 감군 환관으로도 봉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황제는 이제 거리낌 없이 굴기로 작정했는지, 자신의 충신과 뛰어난 장수들의 지위를 필사적으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덕분에 짧디짧은 며칠 만에 이문회는 4품 환관에서 2품 환관으로 승관했다.
이 일을 반대로 생각하면, 광서성의 국면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알 수 있었다.
여창 국왕이 여전히 추도문을 읽고 있었다.
안남 왕국 선대 두 국왕의 죄업이 더없이 깊어서, 여창 국왕이 현명하지 않았다면 수많은 병사와 백성들은 진작 여씨를 저버렸을 것이다.
대녕 제국과 달리 안남 왕국의 문관과 무장집단은 아직 반목하지 않았고, 국왕도 실권을 잃지 않았다. 천윤제에 비하면 여창 국왕은 여전히 비교적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여창 국왕은 권위를 휘두르는 일이 몹시 적었고, 어진 덕망과 명성을 사용해서 반 동강이 난 국토를 통치하는 데 애를 썼다.
돈이 다 떨어졌다고? 그래, 내가 가서 돈을 만들어오마.
양식이 떨어졌다고? 좋아, 내가 가서 양식을 만들어오마.
여창 국왕은 왕궁 안의 거의 모든 걸 팔아 돈을 만들었고, 그것들을 양식과 바꿔서 군대를 키웠다. 뿐만 아니라, 며칠에 한 번씩 민간과 군대에 깊숙이 침투해서 그들을 살뜰히 보살펴주었다.
그런 시간이 오래되자 병사들과 백성들은 그를 가리켜 일대의 현군(賢君)이라고 칭송했다.
이런 연유로 안남 왕국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여창 군왕은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그는 반 동강 난 국토의 병사들과 백성들에게 하나의 신앙과도 같았다.
그나마 대녕 제국에는 대들보가 여럿 존재한다지만, 안남 왕국에는 국왕이라는 대들보, 단 하나밖에 없었다.
전사한 병사들을 기념하는 추도문 낭독이 끝났다.
수십만 병사와 수많은 백성이 눈물을 흘렸다.
여창 국왕이 추도문을 내려놓고서 말했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 안남 왕국의 천도는 이미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오늘부터 순화부는 배도이고, 승룡부가 왕도다. 이것은 어쩌면 천도라고 하기보다 처음의 왕도로 다시 돌아왔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 당시 황금 제국의 공세를 피하기 위해 우리 안남 왕국은 왕도를 승룡부에서 순화부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도를 어디로 옮기든 전쟁이 끝나지 않는 한, 반왕을 소멸시키지 않는 한, 왕국을 통일시키지 않은 한, 과인은 절대로 왕도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전장과 병사들이 있는 곳이야말로 과인이 있어야 할 곳이다.
과인은 항상 장병들과 함께 하겠다.”
그 말을 들은 수십만 대군은 피가 뜨겁게 끓으며 사기가 하늘까지 치솟아서 팔을 흔들며 소리를 높였다.
“국왕 만세, 만세, 만세!”
이것이 바로 여창이었다. 그가 죽지 않는 한 반왕 완씨는 여씨 왕조를 완전히 소멸시킬 수 없을 것이다.
바로 그때.
여창의 낯빛이 확 바뀌었다. 안색이 더할 나위 없이 창백해지면서 등 뒤에서 식은땀이 폭발하듯이 터졌다. 배 속 깊은 곳에서 억제할 수 없는 아픔이 치밀면서 여인이 출산하는 것보다 열 배는 아픈 고통이 미친 듯이 엄습해왔다.
여창 국왕은 전신의 근육이 다 뒤틀리는 듯해서 곧바로 피가 나올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수십만 병사와 백성들 앞에서 쓰러질 수 없었던 그는 모든 의지를 다해서 그들에게 손을 흔들고 인사했다. 그런 뒤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한 걸음씩 제단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백성들의 환호성 속에서 그는 모든 힘과 의지를 쥐어짜며 한 걸음씩 왕궁으로 걸어갔다.
왕후 영신, 진남공 송결, 감군 이문회가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간담이 으스러질 정도로 비통했지만 감히 다가가서 부축할 수 없었다.
드디어 국왕이 왕궁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문회는 재빨리 모든 궁문을 닫아 밖에 있는 어떤 이도 국왕을 볼 수 없게끔 했다.
이문회가 궁문을 닫자마자 여창 국왕이 곧바로 바닥에 쓰러지더니 왈칵 피를 뿜었다. 그 피는 배 속에 있는 걸 토한 게 아니라 잇몸을 세게 물어서 나온 것이었다.
광장에서 왕궁까지 걸어오는 짧은 사이, 그의 왕포와 온몸이 흠뻑 젖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