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95화 (295/648)

295장. 불치병

태의와 연단사 여러 명이 재빨리 들어와서 국왕을 진단했다.

왕후 영신이 몸을 덜덜 떨며 물었다.

“어떤가? 어떤 상태인가?”

지금 어떤 말로도 그녀의 두려움을 설명하기는 힘들 것이다. 여창 국왕은 그녀 평생의 반쪽이자 그녀 신체의 일부였으며, 정신을 의탁하는 사람이었다.

“불치병입니다. 불치병입니다…….”

태의와 연단사들이 울면서 고했다.

“어떤 약으로도 구할 수 없습니다. 미천한 신하, 힘이 될 수 없음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저희는 국왕께서 세상을 떠나실 적에 고통스럽지 않게만 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이문회, 진남공 송결, 왕후 영신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어렵사리 휘황찬란한 대승을 거뒀으나 국왕 여창이 죽으면 전쟁 국면에 괴멸적인 재난이 닥칠 것이다.

왕태자는 올해 겨우 아홉 살에 불과했다.

진남공 송결조차 여창 국왕을 대신할 순 없었다. 여창 국왕은 안남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정신적 지주였다.

이번 대전은 안남 왕국의 국운이 달린 전쟁일 뿐 아니라 대녕 제국의 국운이 달린 전쟁이기도 했다. 이번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완씨와 여씨가 순식간에 경계가 맞닿아서 대녕 제국의 남부를 포위해버릴 테고, 그로 인해 대녕 제국의 남부는 완전히 함락될 것이다.

왕후 영신이 갑자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문회, 빨리, 빨리 가서 당신의 의자 두변을 불러오게. 몇 달 전에 신묘한 수단을 써서 황형을 구했다지 않나.”

옆에 있는 태의는 천윤제가 여창 국왕 곁에 보낸 사람이었다. 태의가 입을 열었다.

“저는 그날의 상황을 직접 보았습니다. 두변 남작의 수단은 확실히 신묘했습니다만…… 시간을 못 맞출 겁니다. 지금 두변 남작에게 와달라고 하면 적어도 열흘에서 보름은 걸리는데 국왕 폐하께서는 애초에 이틀을 버티지도 못하고 붕어하실 겁니다.”

“부군, 저도…… 당신을 따라가겠어요!”

절망에 빠진 왕후 영신은 곧바로 혼절해버렸다.

하지만 그때 두변은 마침 말을 재촉하며 쏜살같이 순화부로 달려오고 있었다.

두변은 아직 순화부에 도착하지 않았는데도 벌써 경축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며칠 전,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뒀고, 완씨 반왕이 후퇴하면서 순화부는 이미 포위에서 벗어났다.

정말로 하늘이 대녕 제국을 보우해준다는 생각에 두변도 몹시 기뻤다.

진남공이 십만 대군을 거느리고 남하한 지 반년 가까이나 되었다. 전투가 시작된 지도 벌써 몇 달이나 됐는데 이제야 드디어 유의미한 승리를 거둔 것이다.

완씨 반왕이 이번 전투에서 패배해서 물러났으니 다시 병사를 조직해서 대규모로 공격하는 건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다.

따져보면 이번 전쟁에서 의부 이문회와 두변도 몹시 큰 공로를 세운 셈이었다.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진남공에게 백여만 냥을 군비로 내어줬다. 돈은 영웅의 간담(肝膽)일 뿐 아니라 군대의 간담이기도 했다.

순화부 성문에 도착한 두변은 자신의 관첩을 꺼냈다.

수문장은 그걸 건네받고 놀랐다가 곧 더할 나위 없는 경외감을 드러내면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대인을 뵙습니다.

소인은 장공주 전하께서 시집오실 때 함께 온 병사입니다. 잘못을 범했기 때문에 지위가 낮아져서 성문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수문장이 부끄러운 듯이 말했다.

알고 보니 이 사람은 왕후 영신의 사람인 모양이었다.

“당신은 무슨 잘못을 범했지?”

두변이 웃으며 묻자 그가 답했다.

“여럿이 도박을 하다 일을 그르쳤습니다. 공주 전하께서는 본래 저를 참수하려고 하셨으나 폐하께서 직접 말씀해주셔서 겨우 다행히 살 수 있었습니다. 그후 전장에서 공을 세워서 마침내 일반 병사에서 십장(十長)으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내 의부 이문회 대인께서는 지금 순화부에 계시는가?”

“감군 대인께서 당신의 의부십니까?”

그 십장은 목소리가 다 떨렸다.

‘감군 대인은 대단한 분이시다. 눈앞의 이 환관은 이렇게 젊은데도 벌써 동창의 대리 천호를 맡다니, 이제 보니 그건 대단한 뒷배를 뒀기 때문이었구나. 정말이지 대단하구나!’

두변도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언제 의부께서 감군이 되신 거지? 진남공 십만 대군의 감군이라면 계급이 몹시 높은 건데?’

두변은 당연히 알지 못했다. 생사의 문턱에서 살아돌아온 천윤제가 완전히 거리낌 없이 자신의 적통 관원의 지위를 올리고 있으며, 문무 집단과의 관계가 결렬 직전이라는 것을.

“그래, 그래서 이문회 대인께서는 순화부에 계시는가?”

“계십니다. 오늘은 대승을 경축하고, 전사한 장병을 기념하는 제사를 치르는 날이니, 감군 대인과 진남공께서 분명히 계실 겁니다.”

“그럼 자네가 나를 그곳까지 데려다주게.”

“소인은 꿈에서도 대인을 모시고 가고 싶지만 절대로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대인, 청컨대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소인이 상관께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이윽고 그 십장이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의 수하 병사들이 즉시 두변에게 의자를 날라주었다. 거기에다 두변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두변 쪽에 있는 문동(門洞: 짧은 터널 모양의 문)의 출입을 잠시 봉쇄했다.

두변은 고작 천호일 뿐이라서 차마 이런 대우를 누릴 수 없었다. 그는 즉시 성으로 들어가 성벽 아래에서 기다리며 문동으로 출입하는 백성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 했다.

잠시 후에 그 십장이 천호 두 명을 데리고 쏜살같이 나타났다. 한 명은 진남공 군단의 천호였고, 또 한 명은 안남 왕국 군단의 천호였다.

두 천호는 두변에게 다가오기도 전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남작 대인을 뵙습니다.”

두변이 급히 답례를 하며 말했다.

“나는 고작 대리 천호에 불과하니, 두 분이 그런 대례(大禮)를 행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대녕 제국의 천호가 말했다.

“대인은 동창의 천호시니, 저희 같은 군대의 천호와 전혀 다르십니다. 게다가 황제 폐하께서 직접 봉한 남작이시니, 소관이 무릎 꿇는 예를 취하는 건 당연합니다.”

안남 왕국의 천호가 말했다.

“제가 대인께 무릎 꿇은 건 대인께서 황금 십만 냥을 군비로 헌납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순화부가 대승을 거둔 건 대인의 크나큰 공로도 있습니다. 저는 안남 왕국의 병사이자 백성으로서 그 은혜를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안남 왕국의 천호도 한어(漢語)를 몹시 잘했다. 사실 안남 왕국은 국왕부터 그 아래의 관원들까지 거의 모든 이가 한어와 한자에 능통했다.

두 천호는 기병 수십 명을 데리고 두변을 왕궁까지 호송해 주었다.

그들은 제사 의식에 막 참여했던 터라 이문회 대인이 국왕 폐하와 함께 왕궁에 들어간 걸 직접 목격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두변이 외국 신하이니 왕궁에 진입하려면 역시나 내관이 보고를 올려야 한다. 그 일은 이미 두 천호의 권한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이문회와 진남공 송결은 지금 애간장이 탈 지경이었다.

왕후 영신은 반 시진을 혼절했다가 깨어난 뒤, 침상 옆에서 여창 국왕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여창 국왕은 안색이 납덩이 같은 데다가 온몸에서 식은땀이 끊임없이 터져 나와서 옷뿐 아니라 이불까지 온통 젖어버렸다.

천윤제의 병이 원인을 찾기 어려웠던 것과는 달리 여창 국왕의 병은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거의 순식간에 태의와 연단사들이 병을 확정했었다.

여창 국왕이 얻은 병은 장옹(腸癰).

이 병은 다른 지구의 급성 충수염으로, 고대에서는 절대적인 불치병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신의(神醫)라고 알려진 장중경(張仲景)의 대황모단피탕(大黃牡丹皮湯)으로 장옹을 치료할 수 있다는 얘기가 전해지지만, 사실상 불가능했다. 대황모단피탕은 많은 복통과 장염을 치료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약이며, 심지어 현대에서도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충수염을 치료하는 건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이 세계에는 동한(東漢) 시대도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장경중이란 의원도 없었다. 때문에 장옹에 걸리면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갖은 고초와 괴로움을 겪으며 며칠이나 울부짖은 뒤에 죽는다.

여창 국왕은 무공이 괜찮은 편이었으나 신체는 몹시 허약했으니 장옹을 얻으면 며칠조차 버티지 못할 것이다.

방금 전에도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고통에 혼절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국왕인 탓에 바닥에 뒹굴 수도 없고 울부짖을 수도 없으니, 아픔을 참느라 온몸의 핏줄이 다 터져버렸다. 이를 너무 악물어서 잇몸이 터지고, 입안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뒹굴며 발버둥 한 번 치지를 않고, 아프다는 소리 한번 지르지 않았다.

왕후 영신은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진남공과 이문회도 마음이 쥐어짜듯이 아팠다. 여창 국왕은 이번 전쟁의 절대적인 수령일 뿐 아니라 이문회와 송결의 가장 친한 벗이었다. 그가 이렇게 고초를 겪는 걸 차마 못 보겠던 나머지 그들은 태의에게 마취탕을 준비하라고 했다. 여창 국왕이 그걸 마시고 당분간 혼절하듯이 잠들어서 그 끝없는 고초를 피할 수 있게 말이다.

이런 고통은 여인이 출산을 할 때보다 몇 배나 아파서 애초에 맨정신으로는 견딜 수가 없다. 설령 마취탕이라고 해도 여창 국왕을 반 시진 정도만 잠들게 할 수 있을 뿐, 곧 두려운 고통에 시달리며 깨어날 것이다.

그 고통은 사람이 즉시 죽지 못하는 게 한이 될 정도이리라.

왕후 영신은 정말이지 자신이 대신 고통을 겪어주고 싶었지만 아무런 힘이 될 수 없어서 남편의 손을 꽉 쥐어줄 뿐이었다.

“송 형, 이 형…….”

여창 국왕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에게서 식은땀이 터져 나오는 속도는 그에게 물을 먹여주는 속도를 넘어섰다. 그 탓에 그의 입술은 말라서 터지다시피 했고, 얼굴색은 극도로 누렇게 떴다. 한 글자씩 입 밖으로 말을 내뱉는 게 더할 나위 없이 힘겨워 보였다.

“외신(外臣), 여깄습니다!”

진남공 송결이 즉시 침상 앞머리에 무릎을 꿇었고, 이문회도 그 옆에 무릎을 꿇었다.

사실 진남공 송결이든, 이문회의 신분이든 평소에는 무릎 꿇고 예를 행할 필요가 없었으나 지금은 특별한 때였다.

여창 국왕은 지금 뒷일을 맡기려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남쪽의 전쟁을 중하게 여기시고, 왕태자는 북쪽 승룡부에서 즉위하게 하되 간단하게 의식을 치르면 되오.”

진남공 송결과 이문회가 머리를 조아리며 답했다.

“예.”

“만약 계왕(桂王)이 시간이 난다면 그에게 왕태자의 즉위 대전을 주관해달라고 하시오.”

여창 국왕의 말에 이문회가 머리를 조아렸다.

“외신, 반드시 황제 폐하께 간청드려서 계왕 전하께서 왕태자 전하의 즉위 대전을 주관해달라고 청하겠습니다.”

여창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소, 고맙소.”

왕후 영신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부군, 더는 말씀하지 마세요. 당신은 한평생 애를 쓰며 일을 했고, 왕위에 즉위한 뒤로 하루도 편한 날을 보낸 적이 없을 정도예요. 지금은 그 일에서 벗어난 셈이니 이제 중임을 내려놓으세요.”

여창 국왕이 아내를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애틋한 정과 미련이 솟구쳤다. 그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신(晨), 죽지 마시오. 아이가 아직 어리오!”

왕후 영신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어요. 민아는 이문회에게 맡겼고, 송결 사형이 보살펴주면 돼요.”

여창은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내가 따라 죽는 걸 필사적으로 막고 싶었지만 말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고, 눈물만 끝없이 흘러나왔다.

한도 끝도 없는 고통이 다시 엄습해왔다. 여창 국왕의 모든 근육과 핏줄이 뒤틀리듯이 도드라졌고, 온몸이 축축해지며 차디차게 변했다.

남편이 이토록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자 왕후 영신은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가 울먹이면서 말했다.

“마취탕을 더 올리게. 이렇게 고통스럽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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