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장. 왕후의 입맞춤
태의는 몹시 난처했다. 마취탕을 많이 복용할 수는 없었다.
정상인은 급성 충수염을 앓으면 며칠을 버틸 수는 있지만 여창 국왕은 그동안 몸을 지나치게 혹사시켰다. 거기에다 발버둥 치며 처절한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참는 바람에, 모든 고통이 신체의 내부에서 미친 듯이 터져 나왔다.
그런 까닭에 눈동자의 생기가 점점 희미해져 갔다.
진남공 송결이 뜨거운 눈물을 머금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태의, 정말로 치료할 수 없나?”
태의도 뜨거운 눈물을 머금으며 무릎 꿇고 고했다.
“공작 대인도 아시지 않습니까? 장옹은 불치병입니다.”
진남공 송결은 통탄스러운 나머지 이를 부러질 듯이 악물었다.
“하늘이 호인(好人)을 보우하지 않다니, 하늘이 대녕 제국을 보우하지 않는구나!”
여창 국왕은 이번 전쟁의 절대적인 지도자였다. 그가 쓰러지면 하늘이 무너지는 셈이다.
왕태자가 등극한다고 해도 고작 아홉 살이라서 이번 전쟁을 지탱할 충분한 위엄과 명망이 없었다. 송결은 비록 위엄과 명망이 높다고 한들 결국 외국의 신하가 아닌가? 그런 그가 어떻게 안남 왕국의 수십만 대군을 통솔하겠는가?
여창 국왕은 북쪽 반 동강이 난 강산의 모든 신하와 백성, 군대의 신앙이었다. 그가 쓰러지면 수십만 군대의 사기는 궤멸될 정도로 타격받을 것이다. 심지어 수십만 대군은 자신을 의탁하고 충성을 바칠 대상을 찾지 못할 것이다. 아무래도 왕태자는 너무 어리지 않은가.
“우리 대녕 제국이 정말로 멸망하려는 건가? 하늘이 보우해주지 않으시는구나, 하늘이…….”
바로 그때, 밖에서 여창 국왕의 심복 환관이 조용히 고했다.
“이문회 대인, 대인의 의자 두변이 왕궁 밖에서 뵙기를 청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실내는 죽음과도 같은 정적에 휩싸였다.
이문회는 자신이 들은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두변이 지금 어떻게 순화부에 올 수 있을까? 이건 환각일까?
그가 반응하기도 전에 왕후 영신이 남편의 손을 놓고 날아가듯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방에서 뛰쳐나가 단숨에 왕궁 밖으로 나가서 곧바로 두변 앞에 도착했다.
왕후 영신이 물었다.
“네, 네가 두변이냐?”
두변은 당황했다.
한 가닥 향기로운 바람이 불어온 뒤에 나타난 절색의 귀인, 하지만 또 극도로 초췌한 부인이 그 앞으로 달려왔기 때문이다. 그녀의 얼굴은 어렴풋이 영설 공주와 아주 조금 닮았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제가 두변입니다.”
“네, 네가 내 황형을 치료해준 그 두변이냐?”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제가 그 두변입니다. 신, 공주 전하를 뵈옵니다!”
두변이 대례를 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1초 뒤 왕후 영신이 곧바로 그의 손을 끌고서 재빨리 왕궁 안으로 달려갔다.
달리는 속도가 너무 빠른지라 바람에 날리는 연처럼 두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날아가듯 끌려갔다.
왕후 영신은 두변을 데리고 곧바로 여창 국왕의 방 안으로 뛰어간 뒤, 방문을 꽉 닫았다.
“얘야, 이쪽은 고모의 남편이란다. 그를 구할 수 있는지 봐주렴. 그를 구할 수 있겠니?”
왕후 영신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두변을 쳐다봤고, 그가 고개를 저을까 싶어 두려웠다.
그제야 두변은 의부 이문회와 진남공 송결 모두 전 안에 있는 걸 발견했다.
그가 나타난 걸 보고 이문회와 송결 모두 의외의 기쁨에 젖었으나 동시에 더할 나위 없이 긴장했다.
“두변, 이쪽은 여창 국왕이시다. 불치병을 앓게 되셨는데 국가 사직과 관련된 일이다. 이분을 구할 수 있느냐?”
의부 이문회가 물었다.
사태가 급박하니 부자 간의 정을 논할 새도 없었다.
두변은 침상에 다가가 침상 위에 있는 안색이 납덩이처럼 변한, 식은땀을 터뜨리며 온몸을 덜덜 떠는 사람을 바라봤다.
‘이분이, 바로 국왕 여창이라고? 너무 말랐는데. 겨우 마흔 안팎이고 천윤제보다 몇 살이나 더 젊은데도, 어째서 머리가 태반이나 새었지?’
두변이 정신력을 송과선에 집중하자 붉은 불빛이 서서히 밝아졌다. 이윽고 여창 국왕의 복부에 염증이 나서 크게 부어오른 충수가 보였다.
“장옹? 충수염입니까?”
두변이 묻자 태의가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예, 남작 대인. 바로 장옹인데, 역대 이래 불치의 병이었습니다. 남작 대인께서는 훌륭한 솜씨로 신의 기적을 재현하실 수 있으십니까?”
모든 이가 더할 나위 없이 긴장하며 그를 바라봤다.
“치료할 수 있으나…… 성공 확률은 5할밖에 안 됩니다.”
두변의 말을 듣자 다들 한시름을 놓으며 무한한 희망에 기뻐했다. 특히 왕후 영신이 희망을 품으며 말했다.
“5할이 아니라 설령 1할의 희망만 있다고 해도 하늘께서 보우해주신 거다. 얘야, 바로 손을 쓰렴. 바로…….”
하지만 두변은 의사가 아니었다. 호기심에 기초 의학서를 읽은 적은 있지만 의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였다.
충수염에 관해서라면 고작 충수를 곧바로 절제해야 한다는 것만 알 뿐 나머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천윤제의 병은 몹시 신비롭고 괴상했지만 결국 수술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그에 비해 충수를 절제하려면 적어도 복부에 구멍을 내야 하는 데다 충수를 절제한 뒤에 봉합을 해야 한다. 이러니 작은 수술이라 할 수 없었고, 두변이 가진 능력의 범위를 넘어섰다. 게다가 항생제 없이 포공단(蒲公丹)만으로 수술 뒤의 감염을 막아낼 수 있을까.
두변은 그에 관해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가 성공 확률을 5할이라고 말했던 건 위로 차 그랬을 뿐, 사실 3할의 확신조차 없었다.
곧 그는 태의 중에 얼굴이 익숙한 사람을 발견했다. 바로 예전에 천윤제를 구했던 걸 목격한 태의였다. 황제가 뜻밖에 이 태의를 여창 국왕 곁으로 보냈을 줄이야.
두변은 태의와 연단사 여러 명을 소집해서 구석으로 가서 그들과 상의를 했다.
“국왕 폐하의 병증은 장의 말단 부분이 곪아서 염증이 생긴 겁니다. 유일한 치료 방법은 부어오르고 염증이 생긴 부위를 절제하는 것입니다. 방금 전에 왕후께는 확신이 5할이라고 했지만 사실 2할의 확신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충수를 절제하는 건 어렵지 않으나 두려운 건 절제한 뒤 봉합하는 겁니다. 또 국왕 폐하께서 몸이 너무 약하셔서 수술이 끝난 뒤에 감염되는 걸 막지 못할까 봐 두렵습니다. 고작 포공단만으로 충분히 소염이 되겠습니까?”
그때 두변은 정말이지 17, 18세기가 떠올랐다. 그 시기 유럽의 의사들은 완전히 도살업자나 마찬가지였다. 도살장과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잔인하게 여러 가지 수술을 한 뒤 환자가 살 수 있을지 여부는 하늘의 뜻을 따랐다. 심지어 당장 죽어버릴 확률이 살 확률보다 더 컸다.
두변은 지금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이들에게 강요하는 격이었다.
태의 하나가 말했다.
“남작 대인, 상처 봉합에 대해서라면 소관, 일정 부분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평소 소관은 동물들을 사용해서 신체 내부 구조를 관찰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순식간에 그 태의를 쳐다보는 다른 이들의 눈빛이 이상했다.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충수를 절제한 뒤에 봉합 작업은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또 다른 연단사가 말했다.
“저는 포공단이 붓기를 가라앉히는 약리(藥理)에 대해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다른 약제를 보조해서 대인께서 말씀하신 상처가 짓무르고 빨갛게 붓는 증상을 막아보겠습니다.”
“그럼 좋습니다. 수술 뒤에 감염을 막는 일에 대해서는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임시 수술조가 구성되었다.
두변이 남작인 데다가 신묘한 수단을 사용해서 천윤제를 구한 적이 있었기에 모든 태의와 연단사는 그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했다.
곧 수많은 촛불과 큰 거울 하나가 준비되었다.
또 비금으로 만들어진 작은 칼들이 많이 준비되었는데 끓는 물과 독주를 사용해서 모두 소독했다.
면포 수십 장을 삶았고, 수많은 약을 준비했다.
진남공 송결과 이문회 등은 내공을 사용해서 수술실을 깨끗하게 했고, 최대한 모든 먼지를 몰아냈다.
그런 뒤 왕후 영신에게 나가라고 청했고, 이문회와 진남공 송결 두 내공 고수만 남겨두었다.
영신 공주가 두변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눈동자로 진지하게 말했다.
“대담하게 행하거라. 설령 부군을 치료하다가 죽게 되더라도 나는 네가 베푼 은혜에 감사할 것이다. 절대로 쓸 수 있는 수단을 남기지 말거라.”
두변이 허리를 굽히며 답했다.
“예, 장공주 전하.”
영신 공주는 두변의 이마에 정중하게 입맞춤을 했다.
“얘야, 내 부군의 목숨과 이 고모의 목숨이 전부 네 손에 달렸구나.”
두변이 허리를 끝까지 굽혔다.
“신, 반드시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이윽고 영신 공주가 궁 밖으로 나가서 바닥에 무릎을 꿇었고, 두 손을 합장하며 남편을 위해 기도를 했다.
두변의 어깨에 올려진 중임이 천근처럼 무거웠다.
이런 수술은 마취약을 사용해도 부족할 정도라서 진남공 송결이 내공을 사용해서 여창 국왕을 완전히 혼절시켜 버렸다.
이윽고 두변이 수술을 시작했다.
먼저 해부와 봉합술에 조예가 있는 태의에게 여창 국왕의 복부를 그어서 절개하게끔 했다.
천안 덕분에 복잡한 장 안에서 염증 때문에 곪아서 크게 부어오른 충수를 단번에 찾아냈다.
휙.
재빨리 한 칼에 절제한 뒤, 태의가 이어서 절단한 상처를 세밀하게 봉합했다.
모든 과정은 원시적이었지만 정교했다.
두변은 이 수술 과정에서 지도자에 불과했지만 다른 이들은 다 전문가였다.
모든 이는 두변의 지도를 받으며 각자 자신의 작업을 최대한 높은 완성도로 마무리했다. 이런 상황이 의외이긴 했지만, 이들에게 부족한 건 절대적으로 기술이 아니라 의학적인 시야였다.
처음 손발을 맞췄음에도 그들은 완벽한 협력을 이루었다. 손을 떠는 이도 없었고, 명령을 받은 뒤에 한시도 주저하지 않고 다들 정교하면서도 민첩하게 행동했다.
대략 한 시간 반 뒤에 여창 국왕의 복부 절개 봉합 수술이 정교하게 끝났다.
앞으로 여창 국왕이 제때 깨어날 수 있는지가 이번 수술이 성공했는지를 알 수 있는 첫 번째 지표가 된다.
두 번째 지표이자 최대의 지표, 즉 수술 뒤의 감염 여부 및 상처의 염증 발생 여부를 아는 건 국왕에게 고열이 나는지였다.
왕후 영신은 시종일관 궁 밖의 광장에서 합장을 하며 눈을 감고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두변도 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끝냈고, 나머지는 전적으로 하늘의 뜻에 달려 있었다.
하늘에 보우해달라고 기도를 올리면서 여창 국왕이 살고자 하는 의지가 극도로 강렬하기만을 기대했다. 그의 임시 수술조가 성공적으로 국왕의 목숨을 구할 수 있기를 기도했으며, 하늘에게 안남 왕국와 대녕 제국을 보살펴달라고 애걸했다.
사실 수술 전에는 성공에 대한 확신이 2할뿐이었지만 태의와 연단사들이 몹시 전문적으로 작업을 끝마친 덕에 희망은 4할로 올라갔다.
두 시진 뒤.
안에서 갑자기 기쁨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국왕 폐하께서 깨어나셨습니다!”
왕후 영신이 재빨리 일어나서 바람처럼 궁 안으로 뛰어들었다.
두변도 몸을 흠칫 떨고는 안으로 달려갔다.
국왕 여창이 눈을 뜬 뒤에 첫 번째로 한 말은 이 말이었다.
“어? 그다지 아프지 않은데…….”
남편의 목소리를 듣고 왕후 영신은 몹시 기뻐했다.
이윽고 그녀가 힘껏 두변을 껴안았다.
“얘야, 너는 정말로 하늘이 내려준 아이로구나.”
여창 국왕이 제때 깨어난 건 당연히 좋은 일이었지만 두변은 차마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앞으로의 72시간이 더욱더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소염에 정통한 연단사가 있다지만 이 세계의 약은 지나치게 원시적이었다.
더군다나 수술의 상처도 작지 않아서, 상처에 대규모 감염이 일어나면 항생제가 없는 환경에서는 의심할 여지 없이 죽게 될 것이다.
이제 여창 국왕의 체온을 측정해야 했다.
두변이 자신이 걱정되는 바를 말하자 왕후 영신이 말했다.
“안심하거라, 하늘이 기왕 그를 깨어나게 했으면 반드시 그대로 거두어 가시지는 않을 것이다. 너는 고모부의 강력한 의지를 믿어야 한다.”
그 말은 제법 일리가 있었다. 다만 두변은 아직까지도 왕후 영신이 어째서 말끝마다 자신을 고모라고 칭하는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