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97화 (297/648)

297장: 크나큰 포상

‘영설 공주와의 일이 아직 윤곽도 잡히지 않았는데 고모라고 부르는 건 너무 빠른 것 같지 않나?’

사실 두변의 짐작은 빗나간 것이었다. 영신 장공주가 예전에 경성에 있었을 적에는 만천하에 친우들을 두었었다. 언제가 그녀가 술에 취한 뒤에 반드시 이문회와 의형제를 맺어야 한다고 우겼다. 그때 이문회도 그녀 탓에 술에 취한 나머지 얼떨결에 의형제를 맺었다. 술이 깬 뒤에 이문회는 차마 그 일을 진짜로 받아들일 수 없어서 매번 여전히 공주 전하라고 불렀다. 그에 비해 영신 공주는 그를 이 반려라고 부르거나 사석에서는 오라버니라고 불렀다.

두변은 이문회의 의자이니 당연히 고모라고 불러야 하지 않나.

지금 당장 아무리 두변이 몹시 중요한 일, 환멸도를 찾아서 전설적인 비급 흡성대법을 찾으러 가야 할지라도, 이런 시기에는 나랏일과 여창 국왕의 목숨을 더 중시해야 했다.

두변과 연단사, 태의들은 한 걸음도 떠나지 않고 실시간으로 여창 국왕의 체온을 측정하고 살폈다.

여창 국왕은 지치고 정력이 소진한 데다가 고통이 제법 사그라들어서 곧 혼절하듯이 잠이 들었다.

일정 시간마다 태의 여러 명이 그의 몸을 뒤집어주었다. 고정된 한 자세로 누워있다가 장 유착을 초래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여덟 시간 뒤에 비교적 두려운 일이 발생했다.

여창 국왕에게 열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그는 웃으며 별일 아니고 자신의 상태가 괜찮다고 말했지만, 말과는 달리 여창 국왕은 고열이 점점 더 심각해지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십 도가 훌쩍 넘어갔다.

분명 상처에서 염증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리라.

두변 등은 모든 수단을 남김 없이 사용하기로 했다. 물리적인 방법으로는 국왕의 체온을 내리기 위해 독주에서 추출한 액체로 끊임없이 몸을 닦았다.

소염에 능통한 연단사는 여러 가지 약을 전부 사용했다.

하지만 전혀 소용이 없어서 국왕은 체온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게다가 정신이 이미 흐려지기 시작했다.

상황은 몹시 위험했다.

과학은 역시 과학인가 보다. 과학적으로 실행되지 않은 결과는 몹시 잔혹했다.

이런 시대에 큰 수술을 실행한다는 건 역시나 성공 가능성이 떨어지고 수술 뒤의 감염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여창 국왕의 고열은 점점 더 놀라울 정도로 올라서 감염이 점점 더 심각해졌다.

지금 이 의료 환경에서라면 그를 죽음에서 구할 방법을 찾기란 몹시 어려울 것이다.

두변이 머릿속에서 소리쳤다.

‘어떻게 해? 어떡하지? 시스템, 무슨 방법이라도 있어요?’

기이한 불빛이 말했다.

‘있다. 이곳에서 90리 떨어진 곳에 갈라진 지혈(地穴)이 있는데 그 안에 일종의 백색 분말 결정체가 있을 것이다. 그건 몹시 강력한 약이라서 수술 뒤의 감염을 막을 수 있다. 그것도 이세계의 에너지가 침입해서 생긴 산물이지. 하지만 네가 알고 있는 그 항생제와는 다르다. 비교적 큰 부작용이 있고, 조금은 환각 작용이 있을 수 있다.’

환각 작용이 있으면 있는 거지, 너무 많은 걸 살필 겨를이 있나!

이대로 가다간 여창 국왕이 애초에 얼마 버티지 못할 텐데!

두변이 소리쳤다.

“여러분, 두 시진 정도 기다려주시지요. 바로 돌아오겠습니다!”

애초에 상황을 설명할 겨를도 없어서, 두변은 곧바로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와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 지도가 나타났다.

두변은 왕궁 밖으로 달려나가서는 곧바로 야생마에 올라타 머릿속 지도에 따라 목적지인 지혈을 향해 달렸다.

잠시 후, 안남 왕국의 궁중 고수 수십 명이 말을 타고 그의 뒤를 따랐다.

두변이 미친 듯이 질주했다.

“긴급한 군무요. 모두 피하시오!”

두변의 뒤에서 안남 왕국 고수 십여 명이 큰소리로 외치며 길을 뚫어주었다.

두변은 곧 순화부를 빠져나갔다.

이어서 또 병사 한 무리가 쫓아와서 장장 기병 수백 명이 두변의 좌우를 둘러싸고 지켰다.

두변이 탄 야생마의 체력이 너무 강해서 기병들은 애초에 두변의 질주 속도를 버틸 수 없었다. 웬만해서는 몇십 리마다 말을 한 번씩 바꿔 타야 했다.

왕성에서 장장 90리를 가서야 폭이 좁고 갈라진 지혈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두변은 두말하지 않고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빠른 이들이 있었다. 안남 왕국의 고수 여섯 명이 말에서 뛰어내려 그대로 지혈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두변이 어떤 위험이라도 겪을까 봐 재빨리 두변 앞에서 길을 찾았다.

이곳은 황폐해진 지혈에 속할 것이다. 이세계의 에너지가 얼마 남아 있지 않았고, 이세계의 괴수 같은 건 더욱더 없었다.

두변은 재빨리 지혈의 맨 밑에 도착했다. 몹시 안전해 보였기에 그는 곧 백색 분말을 찾기 시작했다.

궁중 고수들은 즉시 물러나서 두변을 등지고 보초를 서기 시작했다.

어떤 명령을 내릴 필요도 없었다. 그들 모두 두변이 하는 일이 절대 기밀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다른 사람이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두변은 꿈속 시스템의 지도 덕분에 고작 몇 분 만에 그 백색 결정체를 찾아낼 수 있었다.

정확히는 백색이 아니라 아주 조금 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바닥에 분말이 흩어져 있고, 그 위에 온전한 정석(晶石) 한 덩이가 있는데 아주 조금씩 갈라지고 있었다. 다 합치면 대략 300그램이 될 정도였다.

게다가 몹시 괴이한 냄새가 풍겨서 살짝 들이마시니 신선처럼 떠다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젠장, 이 물건의 환각성이 이렇게나 강해?’

기이한 불빛이 말했다.

‘숨을 참아라. 이 물건은 환각성이 아주 강하다.’

두변은 숨을 참고서 상자 하나를 꺼내서 이 환각을 일으키는 정석을 전부 담았다. 그런 뒤 순화부 왕궁으로 돌아갔다.

고작 세 시간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때 여창 국왕은 고열이 놀라울 지경으로 올라서 경련을 일으키면서 실신했다.

태의와 연단사 여러 명이 모든 방법을 다 써 봤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두변은 백색 정석 분말을 극소량 꺼내서 숨을 멈춘 채 온수에 녹였다. 여창 국왕을 부축해서 일으키는데 그의 몸이 펄펄 끓고 있었다.

그는 국왕의 입을 벌려서 분말 용액을 억지로 먹였다.

“왕후, 이 분말은 일정한 환각 작용이 있을 겁니다. 국왕 폐하께서 비교적 이상한 거동을 하실 수 있으니, 언짢아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창 국왕의 체온이 정말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뒤이어 그의 몸도 안정을 찾았다.

정말로 신의 약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두변도 완전히 경악했다.

이 분말의 위력은 설파민(sulfamine)을 훨씬 뛰어넘었고, 심지어 페니실린까지 뛰어넘을 정도였다.

어쩌면 이 세계의 사람들이 생전 항생제를 복용한 적이 없는 까닭에 세균도 항생제로 인해 도살당한 적이 없어서 특히 더 효과가 좋은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대략 반 시진 뒤에 여창의 입에서 역시나 이상한 말이 튀어나왔다.

“신(晨: 왕후 영신의 이름), 시간이 너무 오래됐는데 이만 일어나도 될까? 바닥이 너무 딱딱해서 무릎이 다 까졌어…….”

“싫다는 게 아니라, 여기가 이렇게 길쭉하게 생긴 건지 몰랐어서……. 나는 너무 좋지…….”

“여치(吕雉: 전한 고조 유방劉邦의 황후)는 여치이고, 그녀를 어떻게 당신과 비교하겠어. 나는 정말 당신을 너무 좋아하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고, 매일 반드시 이곳에 한 번씩 입맞춤을 해야겠어…….”

여창 국왕이 말을 하는 동시에 너무 좋아라 하면서 입술을 내밀려 하자, 왕후 영신이 순식간에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곧바로 다가와 여창 국왕의 입을 틀어막았다.

“외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진남공 송결과 이문회가 급히 허리를 굽히며 물러났다.

두변과 태의, 연단사들도 급히 물러났다. 남아 있다가 또 무슨 말을 들을지 너무 민망했다.

그제야 두변도 이문회와 부자의 정을 나눌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문회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짧디짧은 두 달간 폐하께서 내 지위를 세 단계나 올려주셨다. 정4품에서 종3품으로, 다시 정3품으로 올려주셨고, 지금은 종2품이 되었다. 이건 좋지 않은 소식이란다. 폐하께서 몹시 급박하다는 뜻이지. 이 일은 문관 및 무장 집단과 결렬되었다는 걸 나타내기도 하지만 엄당 집단 또한 더는 한 마음이 아니라는 걸 나타내기도 한단다.”

두변도 그 점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천윤제가 예전에 이문회를 양성할 때는 점진적으로 움직이면서 모든 걸음마다 견실한 토대를 확보했었다. 항상 권력이 먼저였고 그후에 관직이 따르는 모양새였다.

그에 비해 지금은 갑자기 관직을 끌어올리는 바람에, 의부 이문회의 관직이 그가 가진 권력을 훨씬 넘어섰다.

광서 진수 환관이라는 관직까지는 이문회가 가까스로 장악할 수는 있는 자리였다. 하지만 이문회는 남정 대군의 감군, 광서 신군의 감군이라는 직위까지 겸하게 되었다. 이 세 직위 모두 몹시 중요한 자리인데 일반적인 상황에서라면 어디 그 세 관직이 한 사람에게 떨어지겠는가.

게다가 의부 이문회의 경력으로는 애초에 진남공의 감군이 될 수 없었고, 적어도 사례감의 병필(秉笔) 태감이 그 관직을 맡아야 했다.

그런데 황제는 사례감 사람을 그 자리로 보내지 않았다.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황제가 사례감에게도 불만이 생겼다는 뜻이 아닌가. 사례감은 본래 황제의 가장 직접적인 힘이 되는 게 마땅하거늘.

역사상 명 황조의 가정제가 아무리 연단술에 가장 열광적으로 빠졌을 때조차 사례감은 항상 그의 개처럼 움직였다. 엄숭(嚴嵩)이 실각한 뒤에 서계(徐階) 등이 가정제를 원숭이 놀리듯이 대해도 사례감은 웬만해서는 가정제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두변, 어째서 순화부에 온 것이냐?”

이문회가 묻자 두변이 답했다.

“몹시 중요한 무도 비급 때문에 왔습니다.”

이문회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무슨 무도 비급이 그렇게 중요하기에?

“제가 그 무도 비급을 얻는 건 결코 중요한 일이 아니나, 그보다 그 비급이 타인의 수중에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랬다가는 10년 뒤에 크나큰 재난이 발생해서 세속 무도의 평형 상태를 깨뜨릴 겁니다.”

이문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일이 끝난 뒤에 너는 즉시 광서로 돌아가서 백색부로 돌아가거라. 그쪽 상황이 지금 어딘지 기이하다.”

“기이하다고요?”

두변이 경악했다.

“그래, 기이하더구나. 밀정들이 보낸 밀서 수십 통의 내용을 보면 광서가 지금 위험한 국면을 맞았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광서에 전대미문의 위험이 닥쳤지만 나는 또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구나. 돌아가서 이옥당에게 알려라. 반드시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말이다.”

“예. 참, 의부, 제게 북명검파의 건곤혼원단 한 알이 있는데 영구적으로 근골의 속성을 향상시키고, 본래 가진 무도 수준의 한계치를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특별히 의부께 바치겠습니다.”

이문회가 놀라 물었다.

“네 효심만 받으마. 어째서 너 자신이 복용하지 않느냐?”

“이 물건은 제게는 크게 영향이 없습니다. 저는 세수벌맥하기 위한 더 강한 물건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근골의 속성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이문회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제국의 상황이 헤아릴 수도 없이 기이해서 나도 아마 무도에 전념하기 어려울 듯싶구나. 허니 그걸 나에게 낭비하지 말고 더 필요한 사람에게 남겨주려무나. 특히 젊은이들에게 말이다.”

이문회가 다시 건곤혼원단이 든 상자를 밀어냈다.

수많은 이가 이 건곤혼원단 한 알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존엄성을 포함한 모든 걸 내놓으려고까지 한다. 그럼에도 이문회는 복용하기를 거절하고 더 필요한 젊은이에게 양보하고 있었다.

“예, 의부.”

“가서 공작 대인께 인사드리거라.”

두변이 몇 걸음 걸어서 송결 앞으로 다가가 허리를 굽히며 예를 올렸다.

“후배, 공작 대인을 뵙습니다.”

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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