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장: 감희 나를 희롱해!
막사 안이건만, 하늘을 찌를 정도의 노기가 솟구쳤다.
암컷 호랑이가 맹위를 떨치려는 순간이었다.
1초 뒤, 두변은 그대로 바닥에 눌린 채로 마구 얻어터졌다.
옥진 군주, 이 암컷 호랑이, 이 아름다운 요물은 사람을 참으로 매섭게 때렸다. 때리는 주먹마다 살을 파고들 지경이었다.
“놔주십시오, 놔주십시오…….”
두변의 오른팔이 꺾이고, 허리는 옥진 군주의 무릎에 눌려서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두변, 이 몹쓸 놈 같으니. 또 감히 나를 희롱해?”
“옥진 군주! 당신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지금 무공이 제법 좋아졌습니다. 제대로 싸웁시다. 당신은 제 적수가 안 될 겁니다.”
그 말을 듣고 옥진 군주가 바로 그를 풀어주며 말했다.
“와라. 네가 날 이길 수 있다고 했지? 해봐!”
두변은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어떻게 싸우지?
단혼영으로 공격해?
그걸 쓰기는 아까운데. 더군다나 그 공격은 정신 영역을 크게 손상시킨다고.
육맥신검을 써봐? 젠장. 이 미친놈아! 그녀는 네 사저라고! 게다가 널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려고 했던 사람이야!
두변은 자신이 몹시 대단해지긴 했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시전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유일하게 그가 사용할 수 있는 건 능파미보를 사용해서 멀리 도망치는 것뿐.
사실 두변이 설령 육맥신검을 시전하더라도 옥진 군주의 상대는 되지 못했을 것이다. 반년 전에 두변이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3품 고수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그 경지를 돌파해서 2품 고수가 되었으니 말이다.
“와 봐!”
옥진 군주가 도발하듯이 말했다.
두변이 손바닥을 휘두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다른 건 다 못 해도 내가 설마 육금장(六禽掌: 체조식의 신체 단련술로 손바닥을 마구 휘두르는 것)도 할 줄 모르겠어?’
하지만 1초 뒤.
그는 또 옥진 군주에 의해 바닥에 엎어졌다.
“손을 놓으십시오. 놓으세요, 놔줘요! 아파요…….”
두변이 바닥을 치며 항복을 외쳤다.
“이래도 감히 나를 희롱할 거냐?”
“아닙니다, 감히 못합니다…….”
결국 옥진 군주도 두변을 풀어줬는데, 그녀의 얼굴이 붉었고 눈동자도 조금 붉어졌다.
이 여인에게는 농이 전혀 먹히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녀가 두변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사제, 너는 나와 몹시 가까운 사람이다. 너는 내 동생과도 같아. 널 위해서라면 나는 정말로 많은 일을 하고, 많은 걸 내놓을 수 있다. 필요하다면 심지어……. 그렇다고 네가 항상 나를 희롱해서는 안 돼. 그러면 네가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고.”
두변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또, 내 몸매가 이렇게 생긴 건 내가 원한 일이 아니다. 내가 뱀 가죽 경장을 입는 건 정말로 더 나은 전투를 펼치기 위해서다. 평소에 밖에 있을 때는 항상 신경 쓰고 있어. 무더운 여름에도 항상 갑옷을 입어서 가린다고.”
“알겠습니다.
그런데, 옥진 군주! 옥진 군주에게 뭐라고 하는 건 아닙니다만 저번에 견사 대사를 뵐 때, 제가 실수로 군주를 아내로 맞고 싶다는 말을 했었는데 그것까지 공작 대인께 말씀드렸습니까? 제가 방금 전에 그분께 한 대 맞은 뒤, 당신을 희롱하지 말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그분은 손위 어른이 아니십니까. 그분께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땅에 구멍이라도 파고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옥진 군주가 이를 갈며 말했다.
“아버지께서 너에게 경고까지 했는데 뒤돌아서자마자 바로 나를 희롱했다 이거지? 게다가 그렇게 노골적으로? 네가 충분히 맞지 않았나 보구나!”
두변이 두 손을 들며 말했다.
“아니오, 군주! 이렇게 항복하지 않습니까. 제 말은 당신은 그런 일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왜 아버지께 말씀드렸냐는 겁니다.”
옥진 군주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내가 일부러 말한 것도 아니고, 내 잠꼬대를 아버지께서 들었을 뿐이라고. 그때부터 아버지께서는 그 일로 나를 여러 번이나 비웃으셨다. 그러니 다음번에 네가 또 감히 나를 희롱한다면 내가 네 얼굴을 시퍼렇게 부어오를 때까지 때려야겠다. 그래야 아버지께서 너를 알아보지 못하실 테니까.”
“네네, 대단하십니다…….”
두변이 용서를 빌며 말했다.
그때 그의 시선에 옥진 군주의 갑옷 옆에 있는 도(刀)가 들어왔다. 보도(寶刀)가 분명하겠지만 흠집이 많았고 일부는 날이 구부러지기까지 했으니, 그것만 봐도 그녀가 몹시 격렬한 전투를 겪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두변은 두말하지 않고 막사를 나섰다.
옥진 공주가 당황해서 뒤쫓아 나오며 물었다.
“화났나? 분명히 네가 잘못한 거잖아. 그러고도 화를 낼 면목이 있어?”
“빨리 들어가세요. 당신은 몸매가 너무 좋아서 몸에 딱 붙는 뱀 가죽 경장을 입고 있는 걸 다른 남자가 봤다가는 정력이 소진돼서 죽을 거라고요.”
옥진 군주는 다시 주먹을 움켜쥐고는 여기서 저 아이를 때리고 싶은 충동을 참고 있었다.
그 사이 두변은 야생마에 묶어놓은 보따리를 풀었다. 그 안에 비금으로 만든 보도 한 자루가 있었는데, 막천남이 가지고 있던 보물 중 하나였다. 그가 막추에게 붙잡혔을 때 잠시 대은구도의 손에 넘어갔었지만 워낙 대단한 보도인지라 도주가 자기네 소유로 점유하지 않고 두변이 떠날 때 전부 돌려줬다.
두변이 보도를 들고 막사 안에 들어가서는 송옥진의 검을 힘껏 내려쳤다.
콰광!
한순간 송옥진의 검은 부러진 반면, 두변이 손에 쥔 보도에는 아주 조그마한 이도 나가지 않았다.
옥진 군주가 아름다운 눈을 크게 빛내며 불가사의한 듯이 그 보도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세상에 이토록 날카로우면서 강인한 보도가 있다니!
“사저, 제가 당신의 검을 하나 가져갔으니 이 보도는 당신께 선물하겠습니다. 이게 당신이 전장에서 적군을 참살하는 데 더 적합할 겁니다. 이 보도만 있으면 적이 무슨 갑옷을 입었든 다 박살 낼 수 있을 겁니다.”
“너에게 한 자루밖에 없는 보도일 텐데 내가 가질 수는 없지.”
“저는 백 자루도 넘게 가지고 있으니 괜찮아요.”
“뭐라고? 이런 보도가 얼마나 진귀한데, 네가 백여 자루나 가지고 있다고?”
옥진 군주는 믿을 수가 없었다.
두변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
“거짓말한 겁니다. 제가 어느 지하 보물 창고에서 천신만고 끝에 겨우 이 보도를 얻었는데, 보자마자 가장 먼저 군주에게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검을 사용하니까요. 제가 당신의 검을 사용하니, 당신이 제 보도를 사용하면 몹시 공평하잖아요.”
옥진 군주는 몹시 감동했지만 또 그를 매섭게 노려봤다. 보도를 선물하는 건 몹시 고상한 일이긴 하지만, 그걸 또 이렇게 애매하게 표현하면서 시시각각 그녀를 희롱하려고 들다니.
“정말 나에게 선물하는 거지?”
“당연합니다. 옥진 군주가 아니면 누가 또 이러한 보도를 쓸 자격이 있겠어요?”
옥진 군주는 두말하지 않고 두변의 손에서 보도를 가져갔다.
“내가 밥을 하러 갈 테니 너는 남아서 식사를 하도록 해. 그런 뒤, 너를 데리고 환멸도로 가주지. 먼저 말해두는데, 내가 만든 요리는 정말로 맛이 없어.”
옥진 군주는 말한 뒤에 뒤돌아 그 자리를 떠났다. 가면서 외투를 몸에 덮어서 두변의 불량한 눈빛을 방어하는 걸 잊지 않았다.
반 시진 뒤.
“옥진 누이는 과연 거짓말을 하지 않는군요. 정말로 먹기 힘든 밥이네요.”
“먹을 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거라고. 난 아직 아버지께도 식사를 만들어드린 적이 없어. 너에게 감격하지만 않았어도 내가 너에게 식사를 만들어 줬을 것 같아?”
“저, 저는 차라리 그냥 군영 밥을 먹고 싶은데요.”
“끝까지 먹지 않을 거냐? 내가 어렵사리 만든 거라고!”
결국 두변은 정말로 힘겹게 옥진 군주가 만든 식사를 다 먹었다. 그런데 이 못된 여인은 제가 만든 밥을 한 입만 먹은 뒤에 즉시 젓가락을 내려놓고, 사과를 들고 크게 베어먹었다.
“옥진 군주는 나이가 어떻게 거죠?”
“애들은 어른한테 그런 걸 묻는 거 아니다.”
“그럼 군주가 나이가 많습니까, 아니면 영설 공주가 나이가 많습니까?”
옥진 군주가 한참을 침묵한 뒤에 매섭게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며 말했다.
“내가 더 많아!”
“몇 살이나 더 많은데요?”
“닥치라고! 다 먹었지? 가자, 내가 널 환멸도로 데려다줄게.”
그녀는 곧바로 그 화제를 내팽개쳐 버렸다.
옥진 군주는 두변을 데리고 군영을 떠난 뒤, 작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남하했다.
“환멸도가 섬이 아니라면서요?”
“잠시 후면 너도 알게 될 거다.”
이윽고 작은 배는 쭉 남하해서 대략 백 리 정도를 이동했다.
“만약 다른 때라면 내가 널 데리고 몰래 잠입해야 했을 거다. 이 구역은 반란군이 장악하고 있었거든. 지금은 반란군이 철수했지.”
대략 한 시진 뒤에 옥진 군주의 작은 배가 멈췄고, 두 사람은 배에서 내렸다. 옥진 군주가 작은 배를 해안가로 끌어다 놓았다.
두변도 원래는 도와주려고 했다. 하지만 배를 끄느라 옥진 군주의 잘록한 허리 곡선이 고스란히 드러나자,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 뒤에서 수수방관하기로 결정했다.
옥진 군주가 배를 백사장까지 끌고 와서 숨겨놓은 뒤, 매섭게 두변을 흘겨보았다.
“너와 함께 있으면 하루에도 세 번은 너를 때리고 싶어진단 말이지.”
두 사람은 조용히 백사장 뒤의 밀림 속에 가서 앉았다.
“옥진 군주.”
“나한테 말 시키지 마라.”
옥진 군주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서 눈을 감았다.
“중요한 일이에요!”
“무슨 중요한 일인데?”
옥진이 아름다운 눈을 뜨며 물었다.
“제게 이수(異獸) 가죽으로 만든 가면이 있어요. 제가 이미 며칠 밤낮을 들여 얼굴형을 만들어놨는데, 번거롭겠지만 군주가 그걸 제 얼굴에 붙이는 걸 도와주세요. 모든 곳이 다 꼭 맞아야 해요. 게다가 얼굴에 있는 솜털까지 빼내야 해요.”
“낮에 말을 안 하고, 밤이 되니까 그걸 말해?”
두변이 천기도주의 보물 중 하나인 야명주를 꺼내서는 웃었다.
“밤에 하면 더 낭만적이잖아요.”
옥진 군주는 참을 수 없어서 다시 두변을 한 대 내려쳤다.
이윽고 옥진 군주는 야명주의 빛을 받으면서 두변에게 가면을 천천히 붙여줬고, 그의 얼굴에 난 솜털까지 한 올씩 정리해줬다.
아무리 야명주가 있다지만 빛이 부족하니, 숨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붙을 수밖에 없었다.
‘두변, 이 나쁜 자식. 이게 분명 고의인 거지!’
장장 한 시진에 걸려서 옥진 군주는 마침내 두변의 가면을 깔끔히 붙여줬고, 솜털도 모두 정리해 주었다. 사실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그녀의 동작은 영종오 대종사보다 더 민첩했다.
두변의 새로운 얼굴을 본 옥진 군주는 조금 놀라서 어리둥절해졌다.
‘이, 이건 누구 얼굴이지? 이토록 출중하며 준수하고, 이토록 비범한 매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니! 누구라도 이 얼굴을 보면 거의 다 심장이 뛸 것 같은데!’
두변도 대단히 준수하게 생기긴 했으나 나이가 너무 어려서 특수한 남성다운 매력이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두변이 착용한 이 얼굴의 주인은 누구일까.
그걸 말하자면, 두변 자신도 두려울 지경이었다. 북명종주, 무림제왕 영도현이었다.
물론 젊은 시절의 영도현이라서 많아야 스물 몇 정도 되는 모습이었다.
두변은 젊은 시절의 영도현을 사칭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시스템이 기어코 이렇게 하라고 강권했다.
시스템이 두변에게 젊은 시절의 영도현을 사칭하라고 한 건 무엇을 하기 위해서일까. 이건 죽음을 자초할 정도로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온 짓 아닌가.
두변이 씁쓸한 말투로 물었다.
“너무 잘생겨서 당신이 봐도 마음이 동합니까?”
“무슨 헛소리 하는 거야?”
옥진 군주는 성을 냈다가 보기 드물게 조금 다정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나이가 아직 어려. 10년 뒤면 너도 ‘어쩌면’ 이런 매력을 갖게 될 수 있겠지.”
“좀 묻겠습니다. 왜 ‘어쩌면’이라는 말을 붙여야 합니까?”
“네가 계속 이렇게 저속하게 나가다간 네가 또다른 운중사가 될까 봐 걱정이다.”
두변은 한순간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