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304화 (304/648)

304장: 안 들려요

두변은 그 틈에 단혼영을 쏘아냈다.

순간, 북명검파의 직계 제자 기란정은 눈앞이 새까맣게 되면서 검을 쥔 손에 멈칫 힘이 빠졌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그의 정신력 수준이 워낙 높은 데다 두변에게 단혼영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때문에 정신력 공격을 했어도 그의 눈앞을 새카맣게 만들고 순간적으로 두통을 주는 데 불과했다. 다른 사람처럼 단혼영 공격에 혼백이 날아가거나 하는 것 없이 그저 잠깐 마비 상태에 빠졌을 뿐이다.

하지만 그 정도일 뿐이었어도 기란정은 완전히 충격을 받고 말았다.

“정신 공격? 뜻밖에 정신력 공격을 할 줄 알다니, 어째서 그게 가능한 거지?”

북명검파의 직계 제자인 그는 당연히 정신 공격이 얼마나 두려운지, 얼마나 놀라운지 알고 있었다.

정신력의 경지와 무도의 경지, 거기에 단혼영 기운이 부족한 관계로 현재 두변의 정신력 공격 수준은 높지 못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정신력 공격을 시전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였다.

오늘은 강하지 않더라도 장래에는 몹시 강해질 수 있으니 말이다.

예상과 또다른 중년 남자 모두 의아해하며 두변을 쳐다봤다.

두변의 수련 경지가 저렇게 낮은데도 어떻게 정신 공격을 할 수 있지?

두변이 냉랭하게 말했다.

“기란정이라. 종주 부인의 조카입니까? 북명검파의 제자는 나를 죽일 자격이 없습니다. 나는 천형을 겪었는데도 죽지 않은 사람이거든요. 나는 신마 심판을 통과한 사람이란 말입니다.”

두변이 예상 선자를 향해 말했다.

“기란정은 그 일을 모르는 척 할 수 있어도 예상 선자는 그 일을 모르지는 않겠지요?”

예상 선자가 두변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천형을 거쳤는데도 죽지 않은 사람을 우리는 처결할 권한이 없어요.”

콰과광.

그때 주변이 격렬하게 흔들리면서 지상의 암석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암장의 강에서 하늘을 찌를 듯 엄청난 화염이 솟구쳤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노괴물이 죽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 괴수가 죽었기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환멸도의 내부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예상 선자가 말했다.

“두변, 우리는 당신을 처결할 권한이 없어요. 하지만 당신을 살려주지도 않겠어요. 이곳에 남아서 혼자 살든지 죽든지 알아서 하세요.”

이윽고 예상 선자는 바닥을 한 번 찍더니 그대로 날아올랐다.

콰과광.

환멸도 전체가 계속 무너져 내렸다.

그 거대 괴수가 죽었으니 봉쇄됐던 환멸도 내부 석벽에도 구멍으로 된 출구 하나가 나타났다. 예상 선자는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떨어지는 거대한 돌을 살짝 밟고 날아올라서 구멍 입구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지하 환멸도를 떠났다.

뒤이어 중년 남자가 바닥에 발을 가볍게 찍어서 경공을 시전하며 구멍 입구로 뛰쳐나갔다.

환멸도 내부가 점점 더 심하게 무너져내리면서 거대한 돌들이 높게 쌓여서 출구를 막아버리려고 했다.

마지막 남은 기란정이 가볍게 나는 듯이 출구로 뛰쳐나갔다.

“두변, 내가 이 출구를 막아주마. 너는 꿈에도 나올 생각 말고 이 안에서 죽어라.”

기란정은 출구에서 나가자마자 출구를 막아버렸다.

환멸도 내부의 공기는 점점 더 희박해져 갔고, 붕괴도 점점 더 심각해졌다. 두변은 안에서 길어야 일각 정도면 완전히 비명횡사할 것이다.

와르르.

붕괴가 점점 더 심해져서 불과 2분 만에 거대한 돌들이 안쪽에서도 출구를 완전히 막아버렸다.

환멸도 내부는 끊임없이 무너졌다. 거대한 돌들이 끊임없이 추락하는 동시에 공기는 점점 더 희박해졌다.

두변은 시종일관 바닥에서 가부좌를 튼 채 움직이지 않으면서 점차 호흡의 빈도를 줄였다.

그는 한 사람이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반드시 한 사람이 그의 앞에 나타날 것이다.

도고일척 마고일장(道高一尺 魔高一丈: 좋지 않은 것이 좋은 것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니 더욱 큰 곤란이 닥치다.)이라 했다.

두변은 주변의 거대한 돌들이 추락하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눈을 감았다.

문득 제 앞에 누군가 있다는 게 느껴졌다.

눈을 떠 보니 눈앞에 난쟁이 같은 노인, 노괴물 사공멸과 똑같이 생긴 노인이 서 있었다.

그는 손에 두루마리를 받쳐 들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반쪽짜리 두루마리, 고풍스러우면서도 신비로운 기운이 넘치는 두루마리였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흡성대법의 비급이었다.

“대사를 뵙습니다.”

두변이 허리를 굽혀서 인사를 올렸다.

난쟁이 노인이 답례한 뒤, 자신의 입을 가리켰다.

두변은 노인이 입을 열었으나 혓바닥이 없는 걸 발견하고는 경악하며 물었다.

“누가 자른 겁니까?”

난쟁이 노인이 정신력을 사용해서 두변과 교류했다.

‘나 자신일세. 내 자신이 어떤 일을 간파해서 말해 버릴까봐 겁났고, 내가 너무 많이 알고 있는 걸 말해버릴까 봐 겁이 나서 아예 혓바닥을 잘라버렸지. 혓바닥을 자르지 않았으면 진작 죽었을지도 모르고.’

“당신이 오늘 모든 일을 안배해 놓으신 겁니까?”

난쟁이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북명검파 제자가 최후에 나타나서 흡성대법 비급을 빼앗을 것이라는 점도 추측하신 겁니까?”

난쟁이 노인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그가 진정한 흡성대법 비급을 두변에게 건넸다. 아무런 조건을 걸지도 않았고, 피의 맹세를 하라고 하지도 않았다.

‘이 흡성대법은 온전한 북명대법이 아니라서 억지로 수련하면 몹시 심각한 결말을 맞는다네. 그러니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절대로 흡성대법을 시전해서는 안 되네. 반드시 온전한 북명대법을 얻은 뒤에 다시 철저하게 수련을 해야 하네. 자네는 사공멸의 모습을 보았는가?’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는 흡성대법을 수련한 사람들 가운데 최선의 결과를 맞은 사람이지. 그보다 몇 세대 전 북종의 전수자들은 흡성대법을 수련한 지 10년도 안 돼서 전부 급사하고 말았지. 사공멸은 고작 눈만 멀고 두 다리가 움츠러들었을 뿐이야. 내가 그의 수련을 막지 않았다면 그도 진작 횡사해버렸을 것이네.’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단단히 기억해야 하네. 부득이한 순간이 오지 않는 한 절대로 흡성대법을 시전해서는 안 되네.’

“선배께서는 당부할 다른 말씀이 있으십니까? 예를 들면 북명검파 북종과 남종에 관해서라든지, 북명검파의 정통성을 탈환해야 한다든지?”

‘북종과 남종의 은원, 영도현이 선인지 악인지, 현재 북명검파의 암흑과 정의, 이 모든 건 자네 스스로 살펴봐야 하네. 자네가 더 높은 자리에 서게 되면 더 분명히 보일 테지. 나는 미리 자네에게 아무런 판단도 내려주지 않겠네. 모든 건 다 자네 뜻에 따라야 하네.’

두변은 경건한 마음으로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올렸다.

“선배, 감사드립니다!”

콰과광.

환멸도 동굴이 계속 미친 듯이 무너지고 있었다.

“가세. 내 자네를 데리고 나가주겠네.”

이윽고 노인이 두변을 데리고 모퉁이의 눈에 띄지 않는 돌의 튀어나온 부분을 비틀었다. 더할 나위 없이 복잡한 규칙에 따라 그걸 수십 번이나 비트니, 쿠궁 하고 돌이 갈라지면서 동굴 입구로 들어가는 비밀통로가 나타났다.

‘가게.’

“그럼 선배는요?”

난쟁이 노인은 한번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여기서 떠나지 않고 사공멸과 함께 안에서 죽으려는 게 분명해 보였다.

두변이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올렸다.

“선배, 안녕히 가십시오.”

난쟁이 노인이 두변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두변은 비밀통로를 따라 계속 밖으로 걸었다. 장장 수천 미터를 걸은 후에야 통로의 끝에 있는 석판을 들어 올렸다.

콰르르.

그 순간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제 보니 이 비밀통로의 출구는 멀지 않은 곳의 바닷속인 모양이었다.

두변은 바닷물로 그대로 들어가서 끊임없이 위로 떠오른 뒤에 해수면 밖으로 뚫고 나올 수 있었다.

예상 선자 등은 이미 멀리 갔으려나?

두변은 눈을 감고 예상 선자의 향기를 느껴 보려고 했다.

그녀의 기운은 너무나 특별해서, 어디에 있든 온갖 꽃들이 활짝 핀 것만 같은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예상 선자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두변은 조심스레 북쪽으로 헤엄쳤다. 물론 그가 걱정하는 건 본인의 안위가 아니라 품속에 있는 진짜 흡성대법 비급의 안전이었다.

그가 천형을 받고서도 죽지 않았을 때부터, 북명검파의 제자들은 그를 처결할 권한을 완전히 잃었으니까.

계속 북쪽으로 헤엄친 지 반 시진 뒤, 갑자기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두변, 두변!”

옥진 군주의 목소리가 더할 나위 없이 초조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 도도한 여인은 두변의 자극에 곧바로 뒤돌아 떠났다. 하지만 돌아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두변의 생각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즉시 돌아와서 두변을 찾아 헤맨 것이다.

하지만 두변도 찾을 수 없었을뿐더러, 환멸도 입구에 있던 암초 다섯도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그녀는 애간장이 타는 듯하고 두려우면서 죄책감에 목소리가 떨릴 수밖에 없었다.

두변은 조용히 그녀가 탄 작은 배 쪽으로 잠수해 다가가서 냅다 물 밖으로 솟구치면서 혓바닥을 쭉 내려뜨렸다.

“옥진 군주, 나 죽을 것 같아요…….”

옥진 군주는 놀랐다가 곧 미친 듯이 기뻐했다. 그녀는 두변의 몸을 배 위로 끌어올린 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미안하다……. 사제, 미안해. 내가 화를 내면서 돌아가지 말았어야 했어. 내가 멍청한가 봐. 널 혼자서 위험한 곳에 가게 하다니. 미안해.”

두변이 여전히 혀를 축 내려뜨리며 말했다.

“옥진 군주, 내가 몹시 처참하게 죽었나 봐요…….”

“좀 착실하게 굴 수는 없어?”

옥진 군주는 단숨에 두변을 내리누르고는 그의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렸다. 두변이 몸을 일으켜 보니 그녀의 눈시울이 다 발그레한 것이 지금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했다.

두변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난 별일 없었어요. 정말 그 장소에는 군주와 함께 가는 게 도저히 적합하지 않았어요. 그곳이 얼마나 험난했게요. 한데 그건 결국 다 속임수더라고요. 애초에 다시 저를 위풍당당하게 만들지도 못했…….”

두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옥진 군주가 그의 입술을 세게 꼬집었다. 이 아이가 더 이상 헛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이윽고 옥진 군주가 앞에서 노를 저으면서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제, 여기서 며칠 정도 머물 예정이지?”

“제가 군주의 막사 안에 머무는 걸 허락해준다면 며칠 머물게요.”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다정하면서도 도도한 옥진 군주를 보고 있으면 끝도 없이 놀리고 싶어졌다.

옥진 군주는 더는 참을 수 없었지만 차마 그를 때리기는 아까웠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두변의 얼굴빛만 봐도 그가 손에 땀을 쥐는 험난한 상황을 겪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저도 며칠 머물고 싶어요. 하지만 의부께서 광서의 상황이 몹시 위급하다고 하셔서 즉시 돌아가야 해요. 심지어 의부와는 작별을 고할 시간도 없었거든요. 사저가 바로 해선 한 척을 준비해주시면 즉시 북상해야 해요.”

옥진 군주가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시진 뒤, 두변은 해선에 올라서 옥진 군주와 작별을 나눴다.

그는 옥진 군주가 몹시 도도하게 고개를 돌리며 시원스럽기 그지 없이 떠날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옥진 군주는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두변이 멀어지는 것을 지켜봤다.

두 사람의 거리가 충분히 멀어졌을 때, 그제야 옥진 군주가 갑자기 소리쳤다.

“두변 사제!”

“왜요?”

“약속해줘! 나중에 설령 네 무공이 나를 넘어서도 반드시 날 이기지 못하는 척해줘야 해! 내가 널 때릴 때, 너는 내가 널 바닥에 눌러놓고 때리게 해줘야 해. 알겠어?”

“뭐라고요? 안 들려요!”

그 순간 옥진 군주가 이를 갈면서 힘껏 발을 쿵 하고 찍자, 그녀 몸 앞의 아름다운 흉기가 한바탕 휘청거렸다. 그녀는 도도하게 뒤돌아 떠났다.

‘알겠어요!’

그가 속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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