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장: 인간의 가장 추악한 면
그날 밤, 두변은 지쳐서 죽을 것 같았다.
날이 밝고, 계표표가 그의 품속에서 나른하게 일어나서 다시 그에게 입을 맞췄다.
두변의 처참한 비명에, 계표표가 빙긋 웃더니 그의 눈, 코, 입술에 한 번씩 입을 맞췄다. 이윽고 몸을 쭉 펴면서 튀어 오르듯 일어나더니 욕통에 들어가서 목욕을 한 뒤, 옷을 입고 나가서 무공 수련을 했다.
두변은 너무 지친 나머지, 다시 한 시진도 넘게 잠을 자고 나서야 일어났다. 그런 뒤 세수를 한 뒤 옷을 입었다.
그때 계표표는 갑판에서 검술 수련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암표범이라도 되는 것처럼 온몸에 폭발적인 힘이 가득했다.
어젯밤 두 사람은 필사적으로 사랑을 나눴지만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어떻게 마련교에 잡혀갔는지에 관련된 일은 두변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큰 손해를 보지 않았을지라도 그 일을 꺼내는 게 수치스러운 모양이었다.
두변이 뱃머리에 서서 멀리 내다보니 곧 광서에 도착할 듯했다. 해수면에 배가 점점 더 많아지는데 대부분이 상선(商船)이었다.
‘광서의 해상 무역이 너무 번잡한 것 아닌가? 그럴 리 없는데?’
바로 그때, 두변은 익숙한 깃발을 보았다.
큰 배 한 척, 작은 배 두 척 등 상선 세 척에 전부 같은 깃발이 걸려 있었다.
그건 두평아의 시가, 대해상 오정도의 깃발이었다.
그런데 예전에는 오정도에게 상서 한 척뿐인 걸로 알고 있었는데 짧디짧은 몇 달 만에 어떻게 세 척으로 늘어난 건가? 계왕에게 기대어 장사가 몹시 잘된 모양인가?
광서성을 떠난 지 몇 달이나 지난 터라 광서성 동향에 대해 알아볼 시기라서 마침 잘 되었다 싶었다. 두변은 오정도를 찾아가 동향을 알아볼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오정도가 두평아의 시아버지고, 예전에 큰 은혜도 베푼 적 있기 때문이다.
계표표도 몇 달이나 광서에 돌아오지 않아서 광서 상황에 대해서는 하나도 알지 못했다.
“표표, 준비해요. 저기 상선에 올라서 사람을 만나야겠어요.”
“그래!”
계표표는 검술 수련을 마치고, 선실에 내려가 목욕한 뒤 옷을 갈아입었다.
30분 뒤, 새로운 모습의 계표표가 두변 앞에 나타났는데, 치마를 다소곳하게 입은 양갓집 규수 같은 모습이었다.
생전 치마 한 번 입어본 적 없던 계표표는 두변의 이상한 눈빛을 보고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보기 안 좋아? 그럴 줄 알았어. 가서 갈아입을게.”
두변이 급히 다가가 말했다.
“보기 좋아요, 아주 보기 좋아요.”
그건 진담이었다. 키가 크고 몸매가 몹시 빼어나면서 건강미가 넘치는 여인이 이런 이역(異域) 분위기의 옷을 입으니 더욱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일부러 가냘픈 모습을 연출했다. 대문 밖으로는 전혀 나가보지도 않은 천금 소저처럼 말이다.
상선이 가까워질 때까지 기다린 뒤, 두변이 큰소리로 외쳤다.
“앞에 계신 분은 오정도가 맞습니까?”
잠시 후에 비단옷을 입은 하얀 피부의 중년 남자가 재빨리 달려 나왔다. 그는 두변을 보더니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두변 대인이군요. 빨리, 빨리 두변 대인을 맞이하거라.”
그리고는 바로 허리를 굽혔다.
아무리 두변이 오정도 일가에게 두 번이나 목숨을 구해준 은혜를 베풀었다지만 그는 두평아의 시아버지였다. 두변이 급히 허리를 굽히며 답례했다.
“이러지 마세요. 조카가 백부를 뵙습니다.”
오정도가 즉시 작은 배 한 척을 보내서 두변과 계표표를 맞으러 갔다.
오정도의 큰 상선에 오른 두변이 말했다.
“오 백부께서 장사를 몹시 크게 하시는군요. 큰 상선이 세 척이나 되는군요. 배의 아랫부분이 많이 가라앉아 보이는데 어떤 화물을 운송하고 계십니까?”
오정도가 대답했다.
“두 대인께 고합니다. 여전히 소금, 양식, 비단, 옷감이지요.”
“최근에 장사가 잘되고 집안도 평안합니까?”
오정도가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대인 덕분입니다. 제게 계왕이라는 큰 뒷배를 만들어주셔서 장사가 몹시 잘되고 있습니다. 집안도 평안하고, 우리 며느리이자 대인의 누이도 잘 있습니다. 대인께서 신경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때 오염명이 갑판으로 올라왔다가 두변을 보고는 깜짝 놀라더니 안색이 조금 이상해졌다. 그가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올렸다.
“대인을 뵙습니다.”
두변이 말리며 말했다.
“자형, 그러지 마세요. 한 가족이 아닙니까? 게다가 백부께서는 손위 어른이신데 말끝마다 두 대인, 두 대인이라고 하시니, 제가 감당할 수 없어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두변이 떠나려는 모양새를 취하니, 오정도가 급히 말을 바꿨다.
“그럼 소인, 대담하게 말을 바꾸겠습니다. 조카라고 할까요?”
“네, 좋습니다. 조카라고 불러주세요.”
이어서 오정도가 계표표를 바라보며 물었다.
“실례지만…….”
두변이 계표표의 신분을 설명하려던 차에 계표표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저는 두변의 아내입니다.”
‘환관에게도 아내가 있다고? 그것도 저렇게 아름다운 아내가?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운데?’
게다가 완전히 대갓집 규수 같은 모양새였다. 지금 사나운 기세가 전혀 보이지 않은 여인은 닭 모가지 비틀 힘도 없는 천상 규수였다.
오정도는 의아했지만 아무런 내색도 드러내지 않았다. 두변의 자형, 오염명도 역시나 필사적으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윽고 오정도는 열정적인 모습으로 두변과 계표표를 호화로운 선실 안으로 초대하고는, 주방에 최고로 풍성한 오찬을 준비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점심시간. 식사가 준비된 탁자 위에는 사치스러울 정도로 푸짐한 요리가 육해공을 가리지 않고 모두 차려졌다. 좋은 술도 여러 종류나 준비되었다.
오정도 부자는 두변과 계표표를 극진히 접대했고, 두변도 사양하지 않고 오정도 부자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을 몇 잔이나 마셨다.
“물을 마실 때면 우물 판 사람을 잊지 않아야 하듯 사람은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하지.”
오정도가 황금색 술주전자를 꺼내서 두변에게 좋은 술을 한잔 채워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상선을 압류당해서 궁지에 빠져 있을 때, 조카가 나를 구해주고 상선을 돌려받도록 해주었지 않았나. 게다가 그 짐승 같은 순검의 손에서 내 부인과 며느리를 구해줬고. 두 번째로 포정사 두강 대인이 내 집에 묵었을 때, 우리 오가에 치명적인 재난이 닥쳤는데 그때도 조카가 우리 오가를 구해주면서 계왕이라는 큰 뒷배를 찾아주었지 않나.”
오정도는 말을 하면서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두변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조카, 큰 은혜를 받으면 도리어 고맙다고 말도 못 한다고, 내가 이 술에 고마움을 전부 담겠네. 앞으로 자네가 어떤 일을 부탁해도 우리 부자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끝까지 그 일을 해낼 걸세.
노부, 먼저 잔을 비울 테니 한잔 드시게!”
말을 끝낸 뒤, 오정도 부자가 동시에 한잔을 비우며 두변에게 바닥에 닿을 정도로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오정도는 심지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두변이 베푼 은혜에 다시 한 번 감사를 올렸다.
두변이 재빨리 말했다.
“아니, 이러지 마십시오. 이러지 마세요. 저도 한잔 비울 테니…….”
그런데!
그 술잔을 막 입가로 대자마자 시스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술에 독이 있고, 바깥에 무사 수십 명이 매복하고 있다.’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오정도 부자가 나를 죽이려 한다고? 어째서? 왜?
자신이 오정도 가족에게 거의 천혜에 가까울 은혜를 베풀었지 않았나? 그런데 이렇게 어이없게 나를 음해한다고?
다시 오정도를 바라보니 그는 여전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글썽글썽한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봤다. 무한한 감동에 휩싸인 듯한 표정이었다.
자형인 오염명은 비교적 냉랭한 표정이었지만 애써 비위를 맞추려는 표정이 어딘지 복잡해 보였다.
두변은 깊숙이 한숨을 들이마신 뒤, 재빨리 계표표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런 뒤 술잔의 술을 단숨에 비웠다.
“표표, 당신이 이 술을 절반만 마셔줘.”
두변은 계표표의 입술에 입을 맞추면서 절반의 술을 그녀의 입에 넣어주었다.
두변은 시종일관 벽사단을 입속에 머금고 있어서 독주가 입에 들어와도 즉시 해독되니 문제는 없었다.
두변이 스스로도 술을 마시고 나서 계표표에게도 먹여주는 걸 본 오정도는 드디어 한시름을 놓았다.
오염명이 비위를 맞추는 듯한 표정이 싹 사라지고 완전히 싸늘해졌다.
잠시 후 두변은 갑자기 안색이 변한 뒤 배를 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이, 이 술에 독이?”
“아!”
계표표도 처참하게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지는 열연을 펼쳤다.
오정도와 오염명은 재빨리 뒤로 몇 걸음 물러서며 냉랭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여봐라, 두변, 이 환관 놈을 죽여라. 저 여인은 남겨둬라. 즐긴 뒤에 죽일 것이다!”
오정도가 명령을 내리자, 밖에서 무사 수십 명이 밀려 들어와서 두변과 계표표를 겹겹이 에워쌌다.
그 무사들은 대부분 4품이나 5품 무사였다.
두변은 몹시 의아해했다. 오정도 가문에서 4품 무사 여럿을 거두는 것은 가능하지만 수십 명을 거둘 수 있다고? 그건 오정도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일 것이다. 비록 돈이 있다고 하나 일개 지방의 현(縣)에 있는 부자에 불과했다. 돈이 없어서 못 거둔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많은 무사를 거둘 권력이 그에게는 없었다.
계표표는 연기하기 편했다. 바닥에 쓰러져서 움직이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두변은 얼굴이 뒤틀리고, 낯빛이 시퍼렇게 변해서는 언제든지 일곱 구멍에서 피가 나올 듯한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오염명이 두변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두변, 이 환관 놈아. 너도 오늘이 올 줄 알았냐?”
그 말투에 억누를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원한이 가득했다.
두변이 쉰 소리로 물었다.
“어째서지? 어째서야? 내가 너희 오가에 베푼 은혜가 태산 같은데! 내가 없었다면 너희 가문은 이미 멸족했을 테고, 내가 없었다면 너희 가문은 이미 파산했을 텐데?”
오염명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나직이 말했다.
“내가 네게 이유를 알려주지.
우선, 나는 당당한 용모를 가진 데다, 수재일 뿐 아니라 남해도장에 다닌 적도 있다. 한데 너는? 일개 파락호의 폐물일 뿐이야. 일가족 모두 두평아 덕에 살았고, 그녀가 아니었다면 모두 굶어 죽었을 테지. 너희가 사는 그 집도 두평아가 돈 들여서 사준 것이고.
그런데 두평아가 가진 돈은 모두 내가 준 거지.
그럼, 너는 누구지? 너는 우리 가문의 가난한 친척일 뿐이야. 우리 가문에 붙어있는 기생충일 뿐이라고.
한데 너 같은 파락호가 어째서 출세하게 되었지? 어째서 우쭐거리며 우리 앞에 나타난 거지? 어째서 우리 가문을 거듭 구해주며, 우리 부자가 너에게 비굴하게 굽신거려야 하지?”
두변은 그 말을 듣고 내심 더할 나위 없이 감탄했다.
대단히 정곡을 찌르는 진실들이었다.
진실은 종종 듣기 싫은 법이다. 오염명이 말한 이 진실은 속상할 정도로 인간성의 가장 추악한 면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로, 시기!
아니, 심지어 시기라는 단어로도 이 느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리라.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할 듯했다. 그건 시기보다도 더 강렬한 감정이었다.
많은 이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건 가난한 친척이 갑자기 부자가 된 일일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은 그 부자가 된 가난한 친척에게 누차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인 반면, 상대방은 심지어 자신에게 여러 번 은혜를 베풀어 준다?
받은 은혜가 너무 크면 원한을 산다고 했다.
물론 오정도 부자가 배신한 이유는 그뿐이 아닐 것이다. 오정도는 몹시 현실적인 사람이라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익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