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장: 갈기갈기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들!
오정도도 쪼그려 앉아서 옹졸한 말투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
“두변 대인, 내가 너에게 이유를 알려주지.
우선, 너는 내가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가난한 인척인 데다 파락호에 불과했어. 한데 어느 날 갑자기 내 구세주가 된 거야. 나는 너를 우러러봐야 했으니, 그 점은 확실히 받아들이기 힘들었지. 물론 내가 어리진 않으니 그런 종류의 충격은 감수할 수 있어. 생존을 위해서, 부귀영화를 위해서라면 가난했던 친척에게 비굴하게 굽신대는 게 또 뭐가 대수겠어. 네 진정한 죄는 두 가지지.
첫째, 너는 내가 그 당시에 포정사 두강 대인의 가솔을 접대하기 위해서 얼마나 지불했는지 아나? 내가 지부 대인, 지현 대인, 현승 대인에게 뇌물로 은자를 얼마나 내놨는지 알아? 그건 바로 두강 대인의 비위를 맞추고, 방씨 집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야.
두변, 네가 전에 내 아내와 며느리를 구한 건 맞지. 내 상선을 돌려받게 도와줘서 나를 파산할 운명에서 구한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솔직히 한마디를 하자면, 너는 엄당 아니야? 모든 이가 죽여야 한다는 엄당, 모두에게 지탄을 받는 엄당? 설령 네 관직이 아무리 올라간다고 해도 그래봤자 엄당이 아니냐고? 공식 단상에 오르지 못하는 엄당 말이야.
난 정말로 너와 어떤 관계로도 얽히고 싶지 않다고. 내 솔직한 생각은 네가 나를 도울 때에만 나타나고, 필요 없을 때는 영원히 사라져서 네가 우리 가문과 전혀 얽히지 않는 것이야.”
오정도가 냉소를 하며 말을 이었다.
“두변, 내가 비위를 맞추고 싶은 건 두강 대인이자 방씨 집단이거든. 나는 너 두변, 엄당 세력과는 선을 긋고 싶단 말이지.
내가 그렇게 큰 대가를 들여서 성공적으로 두강 대인의 가솔을 접대하게 됐는데 그 결과는 어땠지? 네가 우리 집에서 포정사 두강 대인 공자의 팔을 베고, 두강 대인 부인의 얼굴을 때렸지. 너는 내가 쏟은 심혈을 물거품으로 만들었어. 이래도 내가 너를 원망하는 게 잘못인가?”
두변이 말했다.
“두강이 내 넷째 숙부이긴 하지만, 그의 아들이 당신 며느리에게 행패를 부리면서 심지어 겁탈하려고까지 했는데, 내가 그자의 손에서 당신 며느리를 구한 게 그럼 그것도 잘못인가?”
대해상 오정도가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진실을 듣고 싶나?”
“말해 보시죠.”
대해상 오정도가 웃으며 말했다.
“가문의 부귀영화를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를 치러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지. 내 솔직히 너에게 말해주마. 많은 상인들이 자신의 아내와 며느리를 두우 공자의 침상에 올려놓으려 해도 그럴 기회조차 없었어. 그건 분명히 경사인데도 하필 네가 훼방을 놓았단 말이지. 하물며 오염명이 두평아를 아내로 맞아들인 것 자체가 격에 맞지 않은 일이야. 그런 며느리는 그 자체로 값어치가 없지. 그 애가 대갓집 규수도 아니잖아?”
이것 또한 진실. 그야말로 심술궂은 진실이었다.
이제 보니 두변이 그 당시에 오정도의 며느리를 구해준 일도 잘못이었나 보다. 이자는 며느리를 포정사 공자의 침상에 보내지 못해 안달이었다.
두변이 물었다.
“그럼 당신이 나를 배신한 두 번째 이유는 뭐지?”
오정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두변, 네가 누구지? 광서 동창의 소주였잖아. 나라와 백성들에게 화를 초래하고, 이름만 들어도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광서 동창의 소주 말이야. 방금 전까지 말한 고초들을 나는 이를 악물고 뱃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어. 계속 너의 비위를 맞춰야지, 어디 감히 너에게 노여움을 살 수 있겠어?
한데 시국이 변했고, 광서의 하늘도 변했어. 예전에 제멋대로 날뛰던 너희 엄당이 지금은 뭐 대수라고? 나는 부귀영화를 위해서, 오가의 미래를 위해서 그제야 너를 죽이려고 하는 거라니까? 너희 광서 엄당이 이미 끝장난 걸 알고 있나? 지금 광서 전체가 방씨 집단 천하야. 두강 대인이야말로 광서의 하늘이라고!”
그 말에는 여러 가지 정보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두변은 일개 해상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정보보다 더 정확한 정보를 원했다.
두변이 이를 악물며 물었다.
“또 무엇이 있지?”
오정도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말해다.
“큰 인물은 역시 큰 인물이더군. 포정사 두강 대인은 도량이 넓으시단 말이야. 아무리 우리 오가가 너라는 환관 놈 때문에 어르신에게 무례를 범했어도 그분은 은원을 분명하게 아시더군. 내가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하니, 두강 대인께서도 받아들이셨지. 이제 나도 포정사 대인 휘하의 앞잡이가 된 셈이지. 너는 어째서 내가 상선을 세 척이나 갖게 됐는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나? 그건 바로 내가 두강 대인의 앞잡이가 되면서 얻은 혜택이라고.”
두변이 쉰 소리로 물었다.
“계왕은? 계왕의 비호를 받았는데도 충분하지 않았단 말인가?”
오정도가 하찮다는 듯이 말했다.
“계왕? 계왕이 뭔 대수라고. 오주부에서는 그나마 계왕에게도 아주 조그마한 쓸모가 있지. 하지만 오주부를 벗어나서 광서와 광동이라는 지반에서 계왕은 개뿔 소용도 없어. 남들이 그 번왕을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 조정이 거둬 키우는 돼지에 불과하다고 해. 그것도 키우기만 할 뿐 죽이지 않는 돼지. 계왕이 날 비호해주긴 개뿔. 그가 성지 없이 감히 오주부를 떠나면 일개 현령도 그를 처결할 수 있거늘.”
두변은 그 말에 분노했다.
계왕은 두변이 몹시 경의하는 사람이었다.
일전에 오주 지부, 오주 지현, 오주 여경사 수천 명이 오정도의 장원을 포위했을 때, 계왕이 병사를 거느리고 제때 나타난 덕에 오정도 일가를 구할 수 있었다.
그 당당한 황실의 후예가 두변 때문에 오정도 일가를 구해줬다. 그런데 지금은 도리어 일개 해상인 오정도에게 이토록 짓밟히고 모욕을 당하고 있었다.
제국의 친왕이건만! 자신이 백색부에서 가장 위태로운 순간, 그때도 제때 나타나서 자신의 위험한 상황을 만회해 주었건만!
“계왕은 자신도 지키지 못하는데 내가 그에게 의탁했으면 지금 대상선을 세 척이나 가질 수 있었겠어? 진작 끝장이 났겠지. 짧디짧은 몇 달간 내가 매달 얻는 수입은 예전의 몇 배가 되었거든. 이게 다 두강 대인의 앞잡이가 된 장점이지. 계왕? 허참!
네가 아까 배 세 척으로 무엇을 운반하냐고 물었지? 알려주지. 소금, 철, 비금, 납포(蠟布). 전부 금지된 물품이지. 전부 조정에서 운송 금지한 전략적인 물품이야. 한데 그것들을 취급해야만 돈을 벌 수 있지.”
순간, 두변은 고통스러운 듯 눈을 감았다.
역시나 최악의 국면이 발생했구나!
해상 무역에서 꺼진 불씨가 전부 되살아났다. 전략적인 물자의 무역 거래가 완전히 회복되었을 뿐 아니라, 점점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두변은 이제 일부러 쉰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정말로 목이 잠겨버렸다.
“당신이 운송하는 철, 비금, 소금, 납포는 누구의 물건이지?”
오정도가 냉랭하게 말했다.
“나는 돈을 벌기만 하면 되지, 누구의 물건인지 상관할 것 같나? 이 외에도 식량, 갑주, 병기, 어쨌든 위에서 내게 뭘 운송하라고 하면 나는 그걸 운송할 뿐이야. 조정에서 금지 품목을 정한다고 해도, 조정이 뭐 대수라고.”
조정이 뭐 대수라는 말이 일개 해상의 입에서 나왔다.
어쩌면 그들의 마음속에서 대녕 제국은 진작 끝장난 건지도 몰랐다.
한숨을 쉰 뒤에 오정도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본래 흉악한 너 같은 놈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거든. 한데 네가 돌아와서 우리가 배신한 걸 보면 어떻게 되겠어? 그러니 당연히 먼저 손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너라는 환관 놈을 죽여서 마음속 원한을 풀 수밖에.”
사태가 무척 심각했다. 오정도는 두변을 배반했을 뿐 아니라 포정사 두강에게 의탁을 했다.
게다가 두변과 인척이라는 신분이 아니었다면 두강은 애초에 오정도가 의탁하는 걸 받아들였을 리 없었다. 그 같은 해상은 두강 눈에는 개뿔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오정도는 두변의 비호를 받는 데다가 두변 누이의 시가였다. 이에 두강은 오정도가 자신에게 의탁해오는 걸 받아들였다. 그렇게 하면 두변에게 배신감을 안겨줄 수 있을 테니까.
참으로 가소롭구나!
오정도가 두강의 앞잡이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두변 덕분이었다. 두변과의 관계가 아니었다면 그는 한 푼의 값어치도 아니었다.
두변은 또다시 고통스럽게 눈을 감았다가 몇 초가 지나서야 눈을 뜬 뒤 한숨을 쉬었다.
“두평아 누이는 어디 있지?”
이것이 바로 그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오정도가 냉랭하게 말했다.
“그애가 가야 할 곳으로 갔지.”
“똑바로 말해!”
두변이 소리치자, 오정도가 이를 갈며 말했다.
“당시 네가 우리 저택에서 포정사 두강 대인 공자의 팔을 잘랐잖아. 아무리 제때 붙였어도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그래서 두우 공자가 어쩔 수 없이 해외로 가서야 어렵사리 팔을 치료할 수 있었다고. 우리 오가는 사죄하기 위해, 당연히 원흉인 두평아를 두우 공자에게 보내야 해.
그런데 두우 공자가 정말 그 애 체면을 크게 세워주셨더군. 뜻밖에 두평아를 첩으로 들이려 하시다니! 포정사 대인의 공자가 휴처 당한 일개 노비의 딸을 첩으로 맞아들이다니. 두우 공자께서 참으로 도량이 넓으시지 않아?”
그 말을 듣자 두변은 머리가 폭발할 것만 같았다.
두평아는 그의 누이였다. 친누이는 아니었을지라도 친누이보다 더 친밀한 누이였다.
어릴 때부터 청매죽마(靑梅竹馬)로 자랐고, 서로를 의지하며 살았다.
당시 두평아는 온 가족을 구하기 위해서 오염명에게 시집가기로 의연하게 결단을 내렸다. 그 덕에 풍족한 돈을 받아서 일가족에게 집을 사줄 수 있었으며, 그 결과 일가족은 계림부에 터전을 잡게 되었다.
그 일은 그녀 자신에게는 대단히 억울한 일이겠지만 동시에 크나큰 은혜를 베푼 일이었다.
그래서 두변이 바로 그런 이유로 오씨 부자를 보살펴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오씨 부자가 이제 두평아 누이를 내쳐버렸다니! 더군다나 두우, 그 짐승의 첩으로 보냈다니!
두변이 저번에 그의 팔을 베어버렸는데도 지금 그가 두평아를 첩으로 맞아들이려고 한다는 것은, 두평아가 그의 수중에 떨어지는 순간 그에게 온갖 유린과 굴욕을 당하며 짓밟히고, 차라리 죽기를 바랄 정도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의미였다.
두변은 새빨개진 눈으로 오염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계림부에 있을 때 우리 평아 누이에게 첫눈에 반한 것 아니었나? 네가 필사적으로 구애를 해서 겨우 누이를 맞아들였던 것 아냐? 어떻게 누이를 내치고, 두우 그 짐승에게 보낼 수 있지?”
오염명이 냉랭하게 말했다.
“그 못된 년은 내게 시집왔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늘 너를 그리워하고 있었지. 너희가 친 오누이가 아닌 걸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너희 두 사람은 남에게 말 못 할 지저분한 관계를 맺었어. 그녀가 그런 결말을 맞은 건 다 자초한 것이다.”
‘지저분한 관계는 개뿔!’
어릴 때부터 두평아의 장난이 조금 지나치기는 했지만 그녀든 두변이든 오누이로서의 선을 넘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두변은 이 누이를 좋아하는 만큼 안타까웠다. 그저 누이가 행복하고 떳떳하고 즐겁게 살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어떻게 됐나? 저들은 두강의 귀한 아들에게 비위를 맞추기 위해 두평아를 내쳐버렸다. 상대방에게 첩으로 보내서 그녀를 짓밟으라고 던져주었다.
오정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노비의 딸은 역시나 노비의 딸다워서 거친 성미를 길들이기 어렵더군. 우리가 그 애를 포정사 대인의 공자께 보내려고 한다니까 죽느니 사느니 소란을 피우지 뭐야. 어쩔 수 없이 그 애에게 약을 먹여야 했어. 밧줄로 묶고 지하 감옥 안에 가둬서 집안이 창피를 당하는 일을 면할 수 있었지. 두우 공자가 우리 집에 도착하기만 하면 즉시 그 애를 내보내서 깨끗이 씻긴 뒤, 두우 공자의 침상에 보낼 것이다.”
말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하는 것을 보니, 오정도는 두강에게 아첨할 수 있는 어떤 기회도 놓치지 않을 태세였다. 주변을 포위한 무사 수십 명도 모두 두강이 보내준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