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장: 편하게 죽이진 않아
두변이 쉰 소리로 물었다.
“두우가 언제 당신 집으로 오지? 언제 평아 누이를 그자의 첩실로 보낼 생각이지?”
오정도가 고개를 저었다.
“그거야 모르지. 두우 공자가 언제 도착하고 우리가 언제 신방을 꾸며야 할지는 모르지.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됐으니 어쩌면 이틀이나 사흘 안에 일어날 일이 될 것 같군.”
연극은 끝났다.
두변은 조용히 바닥에서 일어나서 더할 나위 없이 냉랭한 눈빛으로 오정도 부자를 바라봤다. 대단한 살기를 보이지도 않았지만 두려움이 들 정도의 고요함이었다.
오정도가 안색이 급변해서 경악했다.
“너, 무사해? 중독된 게 아니야?”
두변이 냉랭하게 말했다.
“누가 당신에게 독주를 마시면 반드시 중독될 거라고 알려줬지?”
오정도가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설령 네가 중독되지 않았다 한들 또 어쩌겠어? 네 무공이 극도로 형편없으니, 내 휘하 무사들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고. 넌 여전히 죽게 될 것이야!”
오정도는 두변의 무공이 입문 단계인 데다, 언급할 가치도 없을 정도라고 알고 있었다.
“저 두변, 환관 놈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그 아래 물건을 베어 버려라. 두우 공자께 술을 담가 드시라고 보내야겠구나. 그리고 저 여인을 잡아서 두우 공자께 선물로 드린 뒤, 그분이 마음껏 즐기시게 해야겠다.”
오정도가 뒤로 물러서며 계속 명령을 내렸다.
휙, 휙, 휙, 휙, 휙.
분노로 가득 찬 육맥신검이 발사되었다.
계표표가 곧바로 일장을 내리쳤다.
찰나의 순간에 오정도 휘하의 무사 수십 명이 모조리 죽어버렸다.
고작 4품, 5품 등급의 무사들은 수십 명이 있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숨 한 번 쉬는 사이에 쓸어 버리면 그만일 뿐.
오정도와 오염명은 놀라서 얼이 빠졌다.
‘언제부터 두변의 무공이 저렇게 대단해진 거지?’
이윽고 두 사람은 더욱더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두변은 심지어 능파미보를 시전할 필요도 없이 순식간에 두 사람에게 다가가서 병아리를 잡아채듯 두 사람의 목을 움켜쥐었다.
“안심해라, 내가 지금 바로 너희를 죽이진 않을 테니까. 너희를 이렇게 편히 죽도록 해줄 수는 없지.”
두변이 냉소하며 말한 뒤, 계표표와 함께 오정도 부자를 앞세우고 재빨리 자신의 해선으로 돌아왔다.
상선 세 척에 있는 선원과 무사들은 마련교의 무사들처럼 실성한 듯이 굴지는 않았다. 그들은 눈을 빤히 뜨고 오정도 부자가 잡혀가는 걸 지켜볼 뿐이었다.
두변이 명령을 내렸다.
“출항하라, 어서!”
해선이 전속력으로 광서성을 향해 북상했다.
그는 반드시 가장 빠른 속도로 오주부 몽산현으로 돌아가야 했다.
두평아 누이를 반드시 구해내야 했다.
며칠 뒤.
오씨 장원은 가장 귀한 손님인 포정사 두강 대인의 공자인 두우를 맞았다.
“나는 두평아를 맞으러 왔다. 두평아와 자러 왔다고! 이미 몇 년이나 기다렸는데, 만약 너희가 감히 내게 하루라도 더 기다리게 한다면 너희를 죽여버리겠다!”
두우는 잘린 팔을 이어붙이기는 했지만 몸이 많이 야위었으며, 눈빛이 더욱 음험해졌다.
그는 반드시 두평아를 갖고야 말겠다는 생각에 휩싸여 있어서, 그 망할 년을 살고 싶지도 않을 만큼 유린해야 분이 풀릴 듯했다.
오씨 장원의 지하 감옥이 열리고, 여자 몇 명이 들어가서 두평아를 끌고 나왔다. 그들은 그녀가 반항할까 봐 가장 먼저 약을 먹였다. 그리고 옷을 벗겨서 큰 나무 욕통 안에 넣어 온몸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씻긴 뒤, 향유를 빠짐없이 뿌렸다.
“피부가 너무 좋네. 피부가 쫀쫀한 게 역시 젊은 게 좋아. 꼭 비단 같아!”
“평아 낭자가 복도 많지. 소야께서 내치셨는데도 포정사 대인의 공자를 시중들 수 있다니 말이야.”
“한데 소문에 포정사 대인의 공자는 성질이 좋지 않다는데? 두평아가 그의 첩이 되면 얼마 살지 못하고 무참히 학대당하다가 죽을 것 같은데.”
목욕을 끝낸 두평아는 붉은색 혼례복으로 갈아입었다. 겨울인데도 붉은색 혼례복이 아주 얇은 이유는 두우가 쉽게 찢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두평아에게 약을 먹였음에도 두 손은 등 뒤로 해서 밧줄로 묶어 두었다.
“반항하지 말고 즐겨요. 즐기지 못하겠으면 죽어야 하니,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고 단념할 수밖에.”
나이 많은 어멈 하나가 두평아의 팔을 묶고 나서 말했다. 그런 뒤 여러 명이 두평아를 들고서는, 그녀가 마치 요리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방 안으로 들여보냈다.
“공자께서 원하시던 두평아 낭자를 데려왔습니다. 옷이 얇아서 언제라도 찢을 수 있습니다. 두 손이 묶여 있으니 반항할 수도 없고요. 온몸 구석구석을 향기롭게 만든 데다, 모든 곳을 깨끗하게 만들어뒀습니다. 마음껏 맛보십시오.”
“하하하! 두평아, 이 천한 것이 마침내 내 수중에 떨어졌구나. 오늘 밤, 네가 초주검이 될 때까지 유린하고,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난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다.”
두우가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채 달려 나오더니 흉악하게 웃었다.
“오늘은 두변 그 개새끼가 너를 구하러 오지 못할 것이다!”
두평아는 방으로 실려 들어갔다.
이곳은 임시로 만든 신방(新房)이었지만 있어야 할 건 전부 갖춰져 있었다.
두우는 심지어 합환주를 두 잔 따랐다.
“저년의 약을 풀어줘라.”
두우의 말에 어멈이 대답했다.
“약을 풀어주면 이 여인이 반항할까 봐 걱정됩니다.”
“반항이라고?”
두우가 하하, 하고 큰소리로 웃었다.
“무공이 없는 여인은 아기 고양이 같아서 반항할수록 나를 기분 좋게 만들지.”
어멈이 병 하나를 열고 그걸 두평아의 코밑에 대고 흔들었다.
더없이 자극적인 냄새가 그녀의 코를 파고 들어갔고, 강력한 냄새에 자극받은 두평아는 바로 깨어나서 아름다운 눈을 떴다.
두우가 수척하고 창백한 얼굴을 갑자기 두평아 코 앞에 들이댔다. 그녀에게 의외의 기쁨을 주려는 것처럼.
그렇지만 두평아는 눈을 뜬 뒤로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왜? 나를 보고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지?”
두우가 몹시 실망스러워하며 냉랭하게 물었다.
지금 두평아의 심정은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절망보다 더한 슬픔은 없다!.’
그녀의 심정은 몹시 단순하면서도 복잡했다.
그녀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는 단 한 사람, 두변뿐이었다. 하지만 그 감정이 애초에 사랑인지, 아니면 오누이로서의 정인지는 분간할 수 없었다.
남편 오염명과는 혼인한 지 몇 년이나 됐다. 비록 그와 줄곧 아이가 없었지만 고양이와 오래 지내도 정이 드는데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는가.
더군다나 남편 오염명은 줄곧 그녀에게 잘 대해줬고, 시어머니도 그녀에게 잘해주었다.
그러니 두평아도 이제 이곳을 집으로 여겼고,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 모두를 가족으로 여겼다. 조금이라도 분수에 맞지 않는 생각을 한 적이 없으며, 두변이 출세를 했다지만 다른 생각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 여인은 부녀자로서의 덕목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 밖의 격변에 사람의 본성이 이토록 험악하게 변할 줄이야 생각지도 못했다. 줄곧 자비롭고 인자하다고 여겼던 시아버지는 순식간에 철저하게 무서운 존재로 바뀌었다.
다정하고 자상했던 남편 오염명도 순식간에 냉혹한 사람으로 변해서는, 그녀에게 휴처서를 던져서 그녀를 넋이 나가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별일이 아니었다. 휴처를 당한다고 해도 그만이어서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녀에게는 아직 부모님과 동생 두변이 있으니까.
그런데 뜻밖에 오염명 부자가 포정사 두강의 비위를 맞추려고 자신을 짐승 두우에게 보낼 줄이야.
두평아는 그 순간 천지가 무너지는 것 같았고, 정신세계까지 붕괴되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지 못할 듯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반항을 하며 계림부로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지하 감옥에 갇힌 채, 매일같이 미혼약을 먹게 되었다. 그녀가 희망을 걸었던 시어머니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절망보다 더 큰 슬픔은 없었다.
“네가 감히 나를 두려워하지 않아?”
두우가 술잔의 술을 그녀의 얼굴에 왈칵 뿌렸다.
두평아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데, 그가 그녀를 괴롭히는 게 무슨 재미가 있겠나.
“두우, 너에게 한 가지 부탁할게.”
두평아가 갑자기 입을 열자 두우가 큰소리로 웃었다.
“부탁한다고? 좋아, 좋아. 네가 뜻밖에 나에게 부탁을 하다니, 부탁해봐.”
“날 죽여줘. 제발 부탁할게.”
두평아가 조용히 말했다.
“널 죽인다고? 그럴 수 없지. 아까워서 어떻게 죽일 수 있겠어? 네 몸에 군침을 흘린 지 10년이라고. 안타깝게도 그 당시에는 내가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는데 이제 네가 어렵사리 내 수중에 들어왔는데 너와 백 번쯤 자지도 않고 어떻게 너를 죽일 수 있겠어?”
두평아는 처량하게 웃을 뿐, 더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이에 두우가 몹시 분노하며 소리를 질렀다.
“어째서 울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는 거지!”
그가 갑자기 비수 하나를 뽑아 들더니 두평아의 큰 눈을 겨누었다.
“울어! 소리치라고! 두려워해! 그렇지 않으면 나는 이걸 찌를 테니까.”
두평아가 냉소하더니, 도리어 눈을 더 동그랗게 떴다.
두우가 차갑게 말했다.
“좋아, 그래 그것도 좋아. 기왕 네가 소리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으니 내가 짓밟아봤자 별 재미가 없겠어. 그럼 먼저 너에게 피맛을 조금 보여줘야겠군!”
두우가 비수를 휘둘러서 두평아의 얼굴을 그으려고 했다. 그러면 두려워하며 소리칠 테니까.
“두우!”
뒷문이 열리고.
팅!
두우 손의 비수가 뭔가를 맞고 날아갔다.
긴 여행길에 지쳐 보이는 두변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눈빛은 더할 나위 없이 마음 아파하는 듯하지만,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평온했다.
두평아는 두변을 보는 순간,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것처럼 그 큰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두변이 두평아를 보며 한번 웃어 보였다.
“여전히 예쁜데, 아주 조금 말랐네?”
두평아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미소를 보냈다. 아름답고 매혹적인 미소였다.
두변이 고개를 돌려 두우를 향해 말했다.
“두우, 좀, 나와봐.”
두우는 두변을 보는 순간 얼굴색이 확 바뀌더니 한바탕 큰소리로 웃었다.
“두변,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지? 마침 잘됐군. 내가 네 두평아 누이를 맛보는 걸 지켜보라고. 마침 그녀가 생기라고는 조금도 없어서 재미없던 참이었는데 잘됐군.”
그러더니 두우가 밖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여봐라, 이 환관 놈을 잡아서 두 손, 두 발을 잘라버려라!”
저번에 사고를 당한 뒤로 두우는 자신의 안위를 몹시 신경 쓰게 되었다. 그 후로 어디에 가든 언제나 무사 십여 명을 데려갔고, 그중에 3품 무사는 세 명이 넘었다.
그렇지만 두우가 아무리 외쳐도 밖에서는 아무런 대꾸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두변이 말했다.
“외칠 필요 없어. 다 죽었으니까.”
“악!”
두변의 말에 호응이라도 해주는 것처럼 밖에서 처참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물론 계표표였다. 그녀 같은 종사급 고수가 3, 4품 무사 십여 명을 죽이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두우는 얼굴에 경련이 일더니, 재빨리 비수를 집어들어서 두평아를 인질로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그대로 두변에게 잡혀 버렸다.
능파미보를 두우를 잡는 데에 쓰는 건, 정말 닭 잡는 데에 소 잡는 칼을 쓰는 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