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장: 광서의 하늘이 변하다
오정도의 아내 오 부인은 사당에서 무릎 꿇은 채 벌벌 떨고 있었다.
두변이 물었다.
“너는 어째서 저들이 내 누이를 다치게 하는 걸 막지 않았지? 예전에 순검 대인 앞에서 내 누이를 지켜주던 것은 무엇이지?”
오 부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부, 부군의 뜻을 거스를 수가 없어서……. 가문의 이익을 위해서…….”
오 부인의 말이 끝나기 전에 두변이 손을 휘둘렀다.
병사 둘이 앞으로 나와서 밧줄로 그녀의 목을 옭아맸다.
예전에 두평아를 지켜준 적이 있으니, 온전한 시신을 남길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었을 뿐이다.
두변은 오씨 장원의 사당 밖 계단에 앉아서 하늘에 뜬 달을 바라봤다.
진남공의 직감이 맞았다. 광서의 국면에 크나큰 변화가 생겼고, 그것도 최근 며칠간 발생한 일이었다.
그는 광서성에 대체 얼마나 크나큰 일이 발생했는지를 반드시 알아야 했다.
게다가 이건 광서의 일만이 아니라 경성 쪽에도 사고가 난 것이 틀림없었다.
그와 동시에 무공이 고강한 환관 한 명이 군마를 타고 미친 듯이 남하했다.
긴급 서찰이었다.
그 환관은 자지도 쉬지도 않고 끊임없이 말을 바꿔 타며 미친 듯이 질주했다.
목표는 광서 백색부 동창 천호소였다.
그의 품속에는 황제가 두변에게 내리는 대단히 긴급한 성지가 있었다.
반드시 빨리, 빨리 도착해야 했다.
늦게 도착하면 모든 건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신방 안.
두평아는 몹시 평온해 보였다. 유연하고 매혹적인 몸매로 비단 의자에 앉아서 서신을 쓰고 있었다.
본래 풍만하고 건강미 넘치는 몸매였으나 지금은 조금 야위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매혹적인 몸매였다.
그녀는 두변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마음속에는 몹시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천 마디, 만 마디 말이 담겨 있었지만 도리어 입 밖으로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두변이 오씨 가문 일족을 전부 죽였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일을 제지하지도 않았고, 마음이 아프지도 않았다.
한참을 생각하던 그녀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두변, 내 죽음을 부모님께 알리지 말고, 계속 그분들께 내가 아주 잘 있다고 말해줘.
너는 다음 생에는 환관 그만하고 내가 네 아내가 되어주면 어때? 네 아기를 낳아주고, 너를 편안하게 시중들게.
네가 지금 점점 남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분명히 더 좋은 여인이 나 대신 너를 보살펴줄 수 있을 거야. 너는 집안에 자손이 가득하고, 대대로 높은 관직을 갖게 되겠지. 난 네가 몹시 자랑스러워.
하지만 이번 생에 난 불길한 사람이라서 너와 어울리지 않아.
그럼에도 난 여전히 지하에서 너를 보살펴주고 있을게. 만약에 세상에 귀신이 있다면 난 최고로 다정한 귀신으로 변해서 네 곁에서 널 지킬게. 널 위해 모기도 쫓아주고, 네 악몽을 내몰아서 네가 편안히 잠들도록 해줄게.
널 아끼는 누이 두평아가.
절필(絶筆).’
그때 계단에 앉아있던 두변은 갑자기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그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두평아 누이의 방으로 달려갔다.
방 안에 뛰어드니 그녀가 마침 가위 하나를 들고 있었다. 다시 탁자를 보자 편지 하나가 있는데 맨 마지막 한마디는 ‘절필!’이었다.
그 순간 두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뭐 하는 거야? 뭐 하려고 했어?”
두변이 두평아 어깨를 붙잡고 필사적으로 흔들었다.
두평아는 두변을 보고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녀는 웃는 동시에 눈물이 솟구쳤다.
“죽고 싶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 누이가 죽으면 유모는 어떻게 하라고?”
두변이 큰소리로 물었다.
“네가 있잖아. 나는 네가 부모님을 잘 모실 다정하고 어질며 예쁜 낭자를 찾은 걸 알고 있어. 그러니 나도 인심하고 마음 놓고 죽을 수 있어.”
“어째서 죽으려는 거지? 무슨 이유로 죽으려고 하는데?”
“나는 불길한 사람이야.”
“누이 때문에 오씨 일가가 죽은 것 같아?”
두평아는 아무 말도 없었다.
“바보 같으니! 늘 이렇다니까!”
두변은 더는 참지 못한 나머지 소리를 질렀다.
“두평아, 예전에는 네가 제법 똑똑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말도 못하 게 멍청하잖아! 오씨가 멸족된 가장 큰 이유는 모반이야, 모반. 알겠어? 설령 네가 없었더라도 그들은 구족까지 죽여없애야 했다고.”
그러더니 두평아의 유서를 들고 한 구절씩 읽어 내려갔다.
두평아는 그 유서를 쓸 당시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이, 지금 두변이 직접 읽는 걸 들으니 더할 나위 없이 부끄러웠다. 얼른 서신을 빼앗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두변이 큰소리로 계속 읽었다.
“너는 다음 생에는 환관 그만하고 내가 네 아내가 되어주면 어때? 네 아기를 낳아주고, 너를 편안하게 시중들게?”
두평아는 죽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워서 필사적으로 유서를 빼앗으려고 달려들었다. 결국 그걸 가로채서는 갈기갈기 찢었다.
두변이 그녀의 턱을 쥐고 말했다.
“두평아, 다음 생이란 말 하지 마. 너무 허무맹랑하잖아. 아무래도 이번 생이 좋겠어. 마침 이 신방에 화촉도 마련되어 있고. 너는 예전에 말끝마다 내게 시집간다고 하지 않았어? 그럼, 지금 하자.
그런데 미안하지만 나는 지금 여전히 환관이야. 그래도 안심해. 언젠가 정상적인 남자로 회복될 테니까.
물론 내가 지금 환관이라서 내가 편안해지도록 시중들 수는 없어. 하지만 네가 편안해지도록 내가 시중들 수는 있어. 어때?”
두평아는 두변의 노골적인 말을 들은 뒤 완전히 얼이 빠져 버렸다.
반 시진 남짓 지난 뒤, 두변이 오씨 장원을 떠날 때까지도 두평아는 여전히 머리가 텅 빈 채였다. 죽고자 했던 의지는 그보다 더 충격적이고, 심지어 죽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일에 덮여 버렸다. 그녀는 멍하니 마차 안에 앉아서 두변을 따라 그곳을 떠나면서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전혀 알지 못했다.
두변은 계왕부로 가려고 했다.
광서에 대체 무슨 일이 생겨서 이러한 급변의 상황을 맞았는지 알아야 했다.
계왕부는 몽산현으로부터 백여 리 거리에 있었다. 많은 이가 말을 타고 움직인 지 한 시진이 후, 계왕부의 대문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두변이 앞으로 가서 말했다.
“들어가서 아뢔라. 광서 동창 백색부 대리 천호 두변이 뵙기를 청한다고.”
그 이름을 듣고 대문을 지키는 무사가 깜짝 놀라서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두변을 쳐다봤다. 그런 뒤 말했다.
“대인, 여기서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들어가 아뢰겠습니다.”
사실 두변은 계왕이 준 영패가 따로 있어서 아뢸 필요도 없이 계왕부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다.
그와 계왕의 관계는 친밀했고, 계왕의 딸 이강 군주가 그를 흠모할뿐더러, 계왕부의 부총관인 이릉 환관은 두변의 의형이었다. 또 계왕은 이문회의 사형제인 데다가 두변을 가장 지지하는 자였다.
잠시 후, 계왕의 세자 영충요가 나왔다.
두변이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올렸다.
“세자를 뵙습니다.”
그런데 계왕 세자의 안색이 몹시 안 좋았다. 심지어 얼음장 같은 얼굴에 옅은 적의까지 띠고 있었다.
“두변?”
영충요가 냉랭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가 한 번도 보여주지 않던 말투였다. 이 세자는 항상 몹시 겸손하고 신중한 데다 모든 이에게 온화했다. 두변에게는 특히 더 온화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어째서 지금은 이토록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두변이 말했다.
“예, 접니다. 계왕을 뵙고 싶습니다.”
세자 영충요가 냉랭하게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다. 우리 계왕부는 널 환영하지 않는다.”
두변의 낯빛이 확 변했다.
이건 또 무슨 연극을 하는 거지?
계왕부와 그토록 친밀한 관계를 맺었는데, 지금은 문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한다?
게다가 족히 황금 수십만 냥이 되는 돈을 내놓으며 계왕과 순무 장양명에게 병사를 훈련시키라고 했는데?
바로 그때, 온화하고 점잖은 여인이 걸어오며 말했다.
“영충요, 무례하게 굴지 말거라.”
두변이 서둘러 허리를 굽혔다.
“왕비를 뵙습니다.”
계왕비가 두변을 바라보는 눈빛은 조금은 복잡해 보였다.
“두변, 들어와라.”
그런 뒤 더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예전에 계왕비는 두변을 조카처럼 대했는데, 지금은 너무나 냉랭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두변은 계왕비를 따라 왕부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어떤 방 밖에 도착했다. 순간 짙은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강렬한 약 냄새가 풍겼다.
계왕비가 문을 밀면서 말했다.
“들어가라.”
그 안에는 침상에 누워서 혼수상태에 빠진 계왕만 보였다. 얼굴이 납빛에, 입술은 말라서 갈라지고 핏기가 전혀 없었다.
계왕은 병이 난 걸까, 아니면 중독되었을까?
두변이 즉시 시스템의 눈을 열어서 계왕의 몸을 살핀 결과, 계왕은 병이 난 것도, 중독된 것도 아니라는 걸 발견했다.
그런 게 아니라 두 다리가 누군가에게 송두리째 잘려버렸고, 온몸의 근맥이 망가졌다.
그는…… 폐인이 되어서 지금 혼수상태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두변은 먼저 격노했으나 곧 싸늘한 냉기가 그의 머릿속 속으로 파고들었다.
계왕, 그것도 당당한 조정의 번왕이!
그런 사람이 뜻밖에 누군가에게 두 다리가 잘리고, 근맥이 망가져?
“이건…… 누구 짓입니까?”
두변이 소리를 질렀다.
“누구인 줄 알면? 당신이 설마 내 아버지를 위해 복수를 해줄 수 있나?”
영충요가 냉랭하게 물었다.
“누구입니까?”
“이름도 신분도 알 수 없는, 해외의 초절정 고수다.”
“배후는 누굽니까?”
“증거는 없지만 확실히 알고 있지. 방씨 집단이다. 만약 굳이 이 일의 획책자를 꼽는다면 그건 바로 양광 총독 고정과 광서 제독 원천조다!”
원천조라고?
두변은 그 사람을 알고 있었다. 비록 원씨 성을 가졌지만 그자는 대녕 제국의 무장 제일 명문가 원씨 가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이 사람은 8년 전에 땅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갑자기 등장했다.
스물여덟에 대녕 제국의 무장원이 되어서 여경사에 입단했다.
서른일곱에 여경사의 우제독이 되었는데, 이제는 광서 제독이 되었다.
뭘 믿고?
광서 제독과 광서 총병은 전혀 다른 호칭이다.
광서 총병은 정2품이지만 광서 제독은 1품 고관인 데다 군정(軍政)의 대권을 장악한다.
게다가 광서에는 아주 오랫동안 제독이 없었다.
“설령 양광 총독이든 광서 제독이든, 그래도 감히 조정의 번왕을 암살할 수는 없습니다. 이건 역모를 꾀하려는 겁니까?”
두변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이건 암살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죽이려 한 것이네.”
계왕비의 말에 두변은 더욱더 기가 막혔다.
계왕비가 말을 이었다.
“저번에 오씨 장원에서 계왕은 포정사 두강과 방계 집단 전체의 노여움을 샀지. 그들은 복수하고 싶었지만 손을 쓰지는 않았어. 한데 이번에 자네가 수백만 냥을 내어주며 계왕과 순무 장양명에게 병사를 훈련시키라고 한 일이 그들의 한계를 건드려버린 게야. 계왕은 황제의 성지를 받들어 왕부의 호위병 이천 명을 거느리고 염주부로 그 황금을 호송하러 갔어. 진남 공작부도 무사 천 명을 보냈고, 광서 동창도 무사 이천 명을 보냈지. 총 오천 명이 황금 사십만 냥을 호송하니 이치대로라면 염려할 일이 없었지.”
무사 오천 명이 대녕 제국의 경내에서 황금을 호송했으니 절대로 무탈해야 할 것이다. 하물며 얼마 전까지 광서는 이문회가 철저히 피의 숙청을 벌였으니 더욱더 별 탈이 없어야 마땅했다.
계왕비가 말을 이었다.
“열하루 전 밤에, 황금을 호송하던 무사 오천 명은 옥림부 밖에서 습격을 당해서 무사 오천 명이 전멸했네. 천호 세 명은 살해당하고, 천호 두 명은 종적을 알 수 없어. 진남 공작 세자는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중상을 입은 데다가, 계왕은 처형당하듯이 두 다리가 잘리며 전신의 근맥이 망가졌어. 황금 사십만 냥은 날개 달린 듯이 날아가 버려서 온데간데없네.”
두변은 거의 머리가 폭발할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