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314화 (314/648)

314장: 퇴위라고?

광서 포정사 두강을 광서 순무로 승급시켜달라는 내용이었다.

많은 이가 대녕 제국을 비웃었다.

‘분명히 여여해가 모반을 꾀할 걸 예상해놓고도 안남 왕국의 일에 자발적으로 개입한 건가?’

‘어째서 진남공에게 십만 대군을 거느리고 남하해서 안남왕을 위해 반란을 평정하게 했지?’

대녕 제국은 그간 악수(惡手)를 여러 번 두긴 했지만, 이 한 수만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모든 국면을 검토하고 추론해서, 여씨가 반드시 진남공이 대패하고 나서야 진정한 모반을 실행할 것이라 판단했다. 왜냐하면 여씨에게는 맹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납포, 소금, 철, 비금 등 전략적인 물자들을 보유했지만, 유독 식량이 부족했다.

일단 반왕 완씨가 모반을 성공하게 되면 여여해의 영토와 한 조각으로 이어진다. 그때가 되면 두 세력은 서로 부족한 것을 융통하며 서남쪽에서 대녕 제국을 포위할 것이다.

그래서 곧 닥칠 궤멸의 재난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대녕 제국은 안남 왕국을 구하기 위해 출병해야 했다.

진남공이 패배하지 않고 안남국이 패배하지 않는다면 여여해도 차마 모반을 꾀하지 않으리라고 모든 이가 판단했다.

진남공과 안남 국왕의 연합군이 대승을 거두고, 심지어 반왕 완씨를 완전히 격파해서 안남 왕국을 다시 통일할 수 있다면 안남의 국면을 완전히 바꿔 놓을 수 있었다. 천윤제와는 달리 여창 국왕은 대권을 장악한 수많은 백성들의 진정한 지도자였다.

그렇게 되면 여씨가 맞닥뜨려야 할 건 진남공과 안남 왕국의 수십만 연합군일 것이고, 그때가 되면 모반은 고사하고 자신을 보전하기도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진남공이 안남 왕국에 출병한다는 전략적인 결단은 황제가 대단히 심사숙고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한데 누가 또 예상이나 했을까? 줄곧 여씨와 서로 미워하던 방계 집단의 해외 왕국이 이 시기에 송곳니를 드러낼 줄이야. 그들은 여씨의 맹우가 되어서 서남 토사 연맹의 통일을 이끌어냈다.

방계 집단의 해외 왕국에 대해서는 황제도 알고, 동창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든 동창이든 다들 방계 집단이 다른 방식으로 제국의 권력을 도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혼맥을 형성해서 황제의 실권을 잃게 해서 최후에 그 자리를 대신하는 방식 말이다.

그런데 뜻밖에 방계 집단의 배후가 이토록 악랄하고 과감하다니.

곧바로 군대를 이끌고 광동에 상륙한 뒤, 광서를 피로 물들이며 진남 공작, 계왕, 광서에 있는 모든 엄당 세력을 모조리 죽여버릴 줄이야. 그런 뒤 그 동맹은 광서성을 둘로 나눠 버렸다.

그렇게 되니 여씨는 모반을 꾀할 뿐 아니라, 진남공이 거느린 십만 대군의 퇴로를 끊을 것이다.

이미 망국의 국면, 신선이 와도 구할 수 없는 망국의 국면이었다.

황제는 앞에 한 무더기 쌓인 상주서를 멍하니 보고 있다가 갑자기 물었다.

“두변에게 성지를 전하러 간 흠차는 도착했느냐?”

옆에 있던 대환관 운주가 아뢰었다.

“폐하, 며칠 전 신의 의자가 폐하의 성지를 가지고 남하했으니, 곧 도착할 것입니다.”

황제가 한숨을 쉬었다.

“그는 짐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다. 짐은 대녕 제국의 멸망을 막을 수는 없지만 어쩌면 다른 이의 목숨은 지켜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황제는 두강을 광서 순무로 승급시켜달라고 요청한 상주서에 주홍색 붓으로 표시를 했다.

그 일을 허락한 것이다.

광서 순무의 자리를 두변의 목숨과 바꾸는 건 그럴 가치가 있을까?

황제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더는 남아있는 힘이 없었다. 만약 자신에게 유일하게 남은 아주 조그마한 힘으로 가까운 이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시도를 해봐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서남 토사가 여여해를 염왕으로 책봉해달라고 올린 주청은 절대로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왕이 되고 싶다고? 좋다. 반란을 일으켜서 직접 그 자리를 네 손에 넣거라.

네가 능력이 있다면 짐의 황위를 빼앗아 가도 된다!

“성지를 내린다. 진남공 송결은 제국 서남의 일을 상관 말고, 안남 왕국의 전쟁에만 전념해서 하루빨리 반왕 완씨를 섬멸하라!”

“성지를 내린다. 이문회의 광서 진수 환관의 직위, 광서 신군 감군의 직위를 해임한다.”

“성지를 내린다. 안남 왕국에 대녕 제국 주재 총독부를 만들어서 진남공 송결을 총독으로 임명하고, 이문회를 총독부 대총관 환관으로 책봉한다.”

황제는 정신이 몹시 맑았다. 진남송 송결에게 군대를 거느리고 광서로 돌아오라고 하는 경솔한 짓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다면 천지가 무너지는 재난을 초래하게 된다.

안남 왕국에서 완씨를 철저히 격파하고, 여창이 안남 왕국을 통일해야만 상황을 만회할 수 있는 여지가 조금이라도 생긴다.

만약 진남공의 십만 대군이 북상해서 광서로 돌아온다면 여씨 왕국의 수십만 대군과 방계 집단의 수만 대군의 협공을 맞닥뜨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송결의 십만 대군은 치명적인 재난을 맞게 된다.

물론 광서의 할거가 직접적으로 진남공 십만 대군의 퇴로를 끊어버리는 상황을 초래했으니, 앞으로 대녕 제국에서 어떠한 보급도 얻기 어렵게 되었다. 모든 병기, 돈과 양식 등 모두 안남 왕국의 반 동강이 난 강산에서 조달해야 했다.

그때 밖에서 환관 하나가 고했다.

“폐하께 아룁니다. 노태사 안동(顏同)이 알현을 청합니다.”

황제가 깜짝 놀라 말했다.

“스승을 뵐 테니, 부축해서 들어오시게 하라.”

노태사 안동은 삼대(三代)에 걸친 원로 중신으로, 대신들 가운데 비교적 중립적이었다. 천윤제의 스승일 뿐 아니라 그의 부친의 스승이기도 했다. 올해 벌써 여든으로, 황제가 몹시 존경하고 신뢰하는 자였다.

잠시 후에 부들부들 떨면서 노신 한 명이 들어와서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노신, 폐하를 뵈옵니다.”

황제가 앞으로 가서 직접 노태사 안동을 부축해서 일으켰고, 온화한 목소리로 물었다.

“스승께서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몸은 편안하십니까?”

노태사 안동이 말했다.

“듣자니 폐하께서 벌써 몇 달이나 조회에 들지 않으셨다고 하더군요.”

“국면이 무너지고 짐이 무능해서 스승을 걱정시켰습니다.”

노태사 안동은 황제의 부축을 받으며 부들부들 떨며 앉은 뒤, 한참이나 웅얼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폐하와 군신 사이의 갈등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돌이킬 수는 없겠습니까?”

황제가 고개를 저었다.

“만회할 수 없습니다.”

“폐하께서 올해 쉰하나가 되셨지요?”

“수고스럽게도 스승이 아직도 짐의 나이를 기억하고 계시군요.”

“폐하께서는 스무 해 동안 황제 노릇을 하시느라 전전긍긍하시고, 얼음장 위를 걷듯이 조심스럽게 행동하셨으니, 선조께 미안할 것이 없으십니다. 게다가 몸도 그다지 좋지 않으시니, 차라리 자리에서 물러나서 휴양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그러면 노신도 자주 폐하를 뵐 수 있으니 종종 폐하와 함께 바둑을 둘 수 있지 않습니까.”

황제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자신이 존경하며 신뢰하는 노인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스승께서는 군신들을 대표해서 짐에게 퇴위하라고 압박하러 오셨던 거였습니까?”

노태사 안동이 말했다.

“폐하께서 퇴위하시면 군신과의 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습니다. 어쩌면 서남의 위기도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을 테고,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당장의 난국을 타개하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끝장날 때가 되어서야 속셈이 드러난다고, 태사는 아주 조금이라도 완곡하게 표현하는 것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퇴위라는 두 글자를 내뱉었다.

순식간에 대환관 운주의 눈에서 눈물이 솟구쳤다. 슬프고 분했다.

그는 몹시 원망스러웠다. 자신의 약함이 원망스러웠고, 자신이 황제를 위해서 저 간신들을 뿌리 뽑지 못하는 게 원망스러웠다. 그의 시선이 촛대를 향했다. 저 촛대를 들어서 눈앞의 저 늙은 간신을 무참히 쳐 죽이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 없었다.

‘폐하께서 너를 얼마나 신뢰하셨는데? 너를 얼마나 존경하셨는데?

매해 명절마다 사람을 보내 선물을 보내며 안부를 물었고, 심지어 네 서출 증손이 출사하자 글 하나 써서 보내는 것도 잊지 않으셨거늘!

그토록 은혜와 도의를 보이셨는데 너라는 늙은이는 가장 먼저 나와서 황상께 퇴위를 압박해?

간신, 간신, 갈기갈기 찢어 죽일 놈!’

“퇴위? 퇴위라고?”

황제는 천자의 의자를 바라보며 멍하니 넋을 놓았다.

두변이 십여 명을 거느리고 적군의 이천 병력에게 달려들었을 때, 마음속은 한없는 비분과 비장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풍차에 달려든 돈키호테처럼 어리석지는 않겠지만 그처럼 격앙된 상태였다.

이윽고 양쪽은 한 곳에서 맞붙어 미친 듯이 교전을 벌였다.

두변의 육맥신검은 두렵고도 놀라웠고, 계표표의 무공은 전장에 더욱더 잘 어울렸다.

두 사람은 미친 듯이 적군을 살육했다.

하지만 십여 명으로 이천 명을 이기는 것은 애초에 어림없는 일. 일단 두 사람의 현기가 소진되면 처참한 결말을 맞게 된다.

바로 그때, 계왕이 깨어났다.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났지?”

계왕비가 대답했다.

“전하께서는 더는 상관하지 마세요.”

계왕이 소리쳤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요?”

“두변이 전하를 보러왔습니다. 한데 오주 지부, 오주 여경사, 오주 동창이 병력 이천 명을 보내서 우리 계왕부를 포위하면서 두변을 내놓으라고 압박했습니다. 두변은 곧바로 달려나가서 십여 명을 거느리고 그들과 맞붙어서 싸우고 있어요.”

계왕이 눈물 흘리며 말했다.

“그들이 사람들을 보내 번왕부를 포위하며 공격한다고? 대녕 제국은 과연 멸망하려고 하는 것인가?”

계왕이 숨을 깊이 들이켜며 물었다.

“우리 계왕부에 무사가 얼마나 있소?”

“육백입니다.”

“세자, 계왕부에 마지막 남은 무사 육백 명을 집결시켜서 이릉 통령에게 맡긴다. 가서 두변을 구하고, 그가 백색부로 돌아갈 때 호송하도록 해라. 그 뒤에 무사 육백 명은 돌아올 필요 없이 두변을 따르라고 해라.”

계왕의 말을 듣고, 세자 영충요가 물었다.

“무사 육백 명을 전부 보내면 앞으로 누가 우리 계왕부의 안위를 지켜줍니까? 어떻게 우리 계왕부의 체통을 유지합니까?”

계왕이 더할 나위 없이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영충요를 바라봤다.

“저들이 우리 왕부를 포위하며 공격하러 왔는데 무슨 체통이 더 남아있더냐? 대녕 제국은 곧 멸망할 테니, 저들 무사 육백 명이 왕부에 남아봤자 공연히 뜨거운 피를 낭비하기만 하겠지. 두변을 따르면 저들이 조금이라도 힘을 쓸 수 있을 테고.”

“부왕!”

계왕은 두 다리가 없지만 발버둥치며 벌떡 일어나더니 모든 힘을 다 쓰며 말했다.

“영충요, 네가 감히 내 뜻을 거역하겠느냐? 감히 거역한다면 내 너를 죽여버리겠다!”

계왕의 세자 영충요가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무릎 꿇었다.

“명, 따르겠습니다.”

계왕이 다시 누우면서 눈물을 흘렸다.

“두변더러 다시 들어와서 나를 만나게 하지 말아라. 그를 볼 면목이 없다. 그들 부자가 그토록 좋은 국면을 만들어줬건만 우리가 무참히 그걸 파묻어버렸구나. 그가 황금 사십만 냥을 기부했는데 내 손에서 그걸 잃어버렸어. 빌어먹을, 빌어먹을…….”

사실 그게 어디 계왕의 책임이던가.

도리어 계왕은 두변을 위해, 제국을 위해 일하느라 참사를 당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줄곧 부귀한 신분의 여유로운 번왕으로 남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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