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315화 (315/648)

315장: 이번 생은 의미 있다고

두변 등 십여 명이 이천 명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육맥신검을 미친 듯이 발사했고, 계표표는 검으로 적들을 미친 듯이 참살했다.

두 사람 곁으로 시체가 점점 더 많아졌지만 두 사람 곁의 호위병 십여 명도 끊임없이 쓰러졌다.

이렇게 격전을 치르다가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궁지에 빠질 것이다. 두변과 계표표의 진기가 전부 소진될 게 뻔하지 않은가.

바로 그때, 밖에서 사나운 외침이 들렸다.

“두변 아우! 이 형님이 왔다!”

계왕부의 부총관 환관 이릉이 기병 육백 명을 거느리고 맹렬히 돌격했다. 그들은 단숨에 밀려 들어와서는 순식간에 병사 이천 명의 포위망을 격파했다.

두변은 말 위에 올라서 기병 육백 명을 이끌고 쏜살같이 서남 방향으로 내달렸다.

이제, 두평아도 더 이상 심란해할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말 등에 몸을 엎드린 채 부대를 따라 끊임없이 서쪽으로 달려갔다.

계왕부와의 거리가 점점 더 멀어져서 어느덧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계왕부는 어두운 밤에 집어 삼켜진 것 같았다.

계왕은 마지막 남은 기병 육백 명을 전부 두변에게 내주었다. 이제 계왕부는 무방비 상태의 왕부가 되어서 무사 열 명도 남지 않았다.

이릉이 두변에게 계림부에 있던 그의 유모 일가는 진작 백색부로 떠났다고 말해주었다.

물론 백색부도 극도로 위험했다. 하지만 두강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계림부에 비해서 백색부는 아무래도 그에게 속한 세력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것이다.

두변은 기병 육백 명을 거느리고 쏜살같이 남하했다.

몹시 이상한 점은 광서 제독 원천조가 병사들을 동원해서 가로막지 않고, 두변 일행이 겹겹의 관할 구역을 가로질러서 염주부에 도착하도록 내버려두었다는 점이다.

황제가 두변의 안전을 위해서 여러 종류의 성지에 연달아 인장을 찍었다는 것을, 두변은 알지 못했다.

때문에 원천조는 두변을 죽이려고 추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 한 부, 두강을 광서 순무로 승진시키겠다는 성지가 아직 오지 않았으니 두변은 아직 죽을 수 없었다.

게다가 보잘것없는 어린 환관 놈 하나 살려둔다고 해도 대국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고.

지금 진남 공작부 일가는 이미 다 떠나서 모든 누각이 텅 비어 있었다.

십여 일 전에 진남 공작부는 모든 정예병을 동원해서 황금 사십만 냥을 호송하며 북상했다. 하지만 황금을 약탈당했을 뿐 아니라, 진남 공작부의 무사 천여 명이 모조리 죽었다. 진남공 세자는 중상을 입어서 생사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진남공 부인이 즉시 결단을 내려서 공작부의 모든 이를 데리고 남하해서 진남공과 합류했던 것이다.

진남공 부인은 여자이니 병사를 지킬 권한이 없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절대로 적의 수중에 떨어질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진남공의 약점이 되어버릴 테니까.

두변은 염주항에서 바다로 나가서 안남 왕국에 상륙한 뒤, 길을 돌아서 북상해서 백색부로 돌아갔다.

그가 백색부를 떠날 당시, 동창 백색부 천호소에는 병마 이천 명이 생겼고 계청주도 병사 수천 명을 모집했다.

하지만 지금은 광서가 급변하고 있었다.

백색부 성이 함락되었을 확률이 심지어 계림이 함락됐을 확률보다 더 컸다.

“하늘이시여, 보우해주십시오. 백색부는 절대로 함락되지 않아야 합니다!”

두변은 백색부로 달리면서 마음속으로 끝없이 기도를 올렸다.

만약 백색부까지 함락되었으면 아무리 천하가 크다고 한들, 정말로 두변이 몸담을 곳이 없었다.

북명검파로 갈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남하해서 안남 국왕 여창에게 의탁해?

그건 치욕스러운 도망이었다.

그저 백색부가 절대로 함락되었지 않기를 기도하고 또 할 뿐이었다.

백색부와 점점 더 가까워지고, 백색부 성이 눈에 보이는 순간, 두변은 놀라고 말았다.

눈앞의 장면이 믿어지지 않았고, 심지어 정수리의 모공까지 다 빳빳이 서버렸다.

백색부 성벽에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일렬로 늘어선 병사들은 선명한 색상의 갑옷을 입고 완전무장을 하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모든 깃발 위에 큼지막하게 ‘두(杜)’ 자가 적혀 있다는 점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설마 눈앞의 이 성이 이미 내 성이 되었다는 말인가? 성벽에 빼곡하게 늘어선 병사들은 이미 군대를 이룬 건가?

바로 그때 등 뒤 멀지 않은 곳에서 급박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급박하면서도 지친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황제 폐하께서 성지를 내리셨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성지를 내리셨습니다! 대녕 제국의 남작, 동창 백색부의 대리 천호 두변은 성지를 받으시오!”

두변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내가 바로 두변입니다.”

환관은 두변을 뚫어져라 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곧바로 혼절하여 말에서 떨어졌다.

그는 이미 며칠 밤낮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끊임없이 말을 바꿔 타며 일만여 리의 여정을 보름도 안 돼서 도착한 건 자신이 늦게 도착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지금 마침내 두변을 보자 마음속에 품었던 큰 돌덩이를 내려놓은 것만 같았다. 때문에 더는 버티지 못하고 말에서 떨어져버린 것이다.

두변은 급히 사람을 시켜 환관을 부축하게 했다. 환관의 다리는 이미 피투성인 것이, 며칠 연속으로 격렬하게 말을 타서 생긴 마찰상이었다.

그들이 성문에 이르자, 성벽 위에 있던 백부장 한 명이 두변을 보고는 몹시 기뻐하며 크게 소리 질렀다.

“대인이 돌아오셨다. 두변 대인께서 돌아오셨어!”

이윽고 성벽 전체가 들끓었다.

이건 자식이 멀리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온 부모님을 집에서 만나는 느낌이었다.

절망에 빠진 사람이 구세주를 본 것만 같았다.

“대인을 뵙습니다.”

“대인을 뵙습니다!”

성벽 위아래에서 병사들이 일렬씩 연이어 질서정연하게 무릎을 꿇었다.

심지어 두변은 흐느낌까지 들을 수 있었다.

“성문을 열어라!”

명령이 떨어지자 백색부 성의 성문이 천천히 열렸다.

“입성!”

두변의 명령에 기병 육백 명이 우르르 성 안으로 들어갔다.

두변의 눈앞에 공성(空城), 죽음의 성이 들어왔다.

한참이 지나서도 그는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몇 달 전에 그가 백색부를 떠날 때만 해도 이곳이 얼마나 번영했던가. 인구가 많지 않아서 고작 십여만 명에 불과했지만 남녕부나 계림부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번영을 누리던 곳이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는 데다, 길 양쪽에 점포들이 빽빽이 늘어서 있었다. 또 다른 지구의 역사와 비교하면 이곳이 몇 배나 더 번영을 누렸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여씨 토사, 심지어 서남 토사 연맹의 모든 무역 중계 지점이 모두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이 성은 죽음과도 같은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거리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거리 양쪽에 늘어선 점포들은 문을 꽉 닫고 있거나 문을 열어젖혀도 안이 텅 비어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계표표는 얼굴에 불안함이 가득했다. 그녀는 청룡회와 아버지 계청주를 걱정하고 있었다.

청룡회 앞을 지나는 순간, 그곳에는 스산한 기운만 가득했다.

계청주는 황제의 책봉을 받아서 제국의 부장이자 명예 총병이 되었다. 그가 병력을 모집하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와서 청룡회 안에서는 군사들을 훈련시키는 열기가 하늘을 찔렀다. 삼천 묘나 되는 청룡회로도 사람들을 수용하기 부족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 청룡회 안에는 사람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성벽과 대문 입구에서 보초를 서는 사람들도 맥이 빠져 보였다.

청룡회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동창 백색부 천호소에 진입하자, 임계연과 기음음이 가장 먼저 달려나왔다.

기음음은 곧바로 두변의 품속에 달려들었다. 그녀는 두변이 저번에 만났을 때보다 더 어려 보였다.

임계연은 무릎을 꿇고 필사적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감격한 나머지 한순간 말이 나오지 않았다.

두변이 물었다.

“대체, 대체 무슨 일이 발생한 겁니까?”

임계연이 말했다.

“대인, 말씀드릴 시간이 없습니다. 우선 저를 따라오십시오.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그에게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곧 죽을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두변은 심장이 다시 마구 뛰었다.

임계연을 따라 들어서는 순간, 방 안에는 짙은 약 냄새가 물씬 풍겼다.

침상에 숨이 간들간들해진 사람이 누워있는데, 두변도 예상치 못한 사람이었다.

어머니만 다른 그의 동생, 그의 모든 걸 빼앗아 갔으며 그의 정혼자였던 방청의까지 아내로 맞은 서출 동생 두염!

지금 그는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야윈 데다가 안색이 누렇게 떠서는, 죽기까지 고작 한숨만 남아있는 것 같았다.

두염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두, 두변……. 방, 방계 집단이 제국을 배신하고, 여씨와 동맹을 맺으려고 한다. 제국의 서남부는 하늘이 변하려고 해.”

당연히 진작 알고 있던 소식이지만, 두변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두염을 쳐다봤다.

어떻게 이런 말이 두염 입에서 나오지?

두염이 쇠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진변현 현령을 맡을 때, 방계 집단이 내게 일을 도울 조수 백 명을 데려오라고 하더군. 나는 그 당시에 방계 집단이 나를 키워주려 한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처음에는 나도 권력을 쥘 수 있었지만 나중에는 영문도 모르게 배척당해서 완전히 실권을 잃었어.

하지만 나도 결국 현령이라서 많은 일에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어. 내가 데려온 백 명이 모두 한 가지 일에 종사하고 있는 걸 발견했거든. 바로 무역이야. 게다가 무역하는 품목이 납포, 비금, 철, 소금 등등 다 여씨가 생산하는 물품이더군.

그 당시에는 아직 물건은 보이지 않고, 단지 글로만 거래하는 무역에 불과했어. 그러다 어느 날 넷째 숙부가 오셔서 말씀하셨지. 우리 가문이 제국보다 큰 권한을 가졌고, 가문의 이익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두변, 네가 백색성 전투해서 승전을 거둔 데다, 병사 수천 명이 생겼고, 거기에다 계청주의 청룡회와 만 명에 가까운 병마가 생겨서 홍하 상회가 무역 중심지를 내 진변성으로 옮길 계획을 세운 거야.”

두변은 두염의 말에서 방계 집단과 여씨가 담판을 나눈 내용을 알 것 같았다.

두변이 백색성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맹렬한 기세를 보여준 게 도리어 방계 집단이 담판을 할 때 내민 패가 된 셈이었다.

두염이 말을 이었다.

“숙부께서는 내가 날아오를 순간이 왔다고……. 그 외에…… 그분은 또 나와 방청의를 화리(和離: 합의 이혼)시켜서 보답을 해야겠다고 하셨고. 방계 집단은 진변현을 진변주로 승격시킬 테니, 2년 안에 나는 그 봄바람을 타고 지현에서 지주로 승진할 거라고 말이야.

나 두염은 두가의 자식이자 방계 집단의 일원이야. 하지만 그보다 제국의 관원인 게 먼저지. 황제 폐하께서는 나를 진사로 임명해주셨고 관직에 책봉해주셨어.

난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해. 폐하께서 대전에서 내 문장과 시사가 일품이라고 칭찬해주셨어. 하지만 포부가 조금 부족했다고. 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장원을 했을 거라고 말이야.

한데 지금 두가와 방계 집단은 제국을 배반하고 결탁하려고 하고 있어.

하지만 그래서 되겠어?

나는 가문에 충성하지만 제국과 폐하께 충성을 바치고 있다고.

더군다나 나는 방청의를 무척이나 사랑해서 혼인을 했지만,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고서도 손가락 하나 건드린 적 없어. 한데 이제 또 그녀와 화리를 하라고 해. 그렇게 하면 내 사나이 대장부로서의 체면이 남아나겠어?

나는 숙부의 제안을 거절한 데다 미숙하게도 큰소리로 책망했어. 그런 뒤 나는 바로 연금됐지. 게다가 누군가가 내가 매일 먹는 음식에 독을 썼더군. 나는 그게 무슨 독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점점 더 말라가고 점점더 무기력해졌지.

두강은 여씨의 사자와 사흘 밤낮이나 담판을 짓다가, 결국 떠날 때는 얼굴에 득의만만한 미소가 가득하더군.

나는 방계 집단과 여씨가 결탁해서 제국의 정세가 위태로워졌다는 걸 깨달았어. 너무 다급한 순간이라서, 지키고 있는 사람이 무방비한 틈을 타서 도망쳤지. 이 크나큰 비밀을 제국에 알려주려고.

하지만 탈출한 뒤에야 내가 갈 곳이 없다는 걸 깨달았어. 고개 들어 보이는 모두가 적이었고, 사방이 다 반역자더군. 유일하게 생각난 충신이 뜻밖에 두변, 너밖에 없었어.

그래서 미친 듯이 백색성으로 와서 이 놀라운 정보를 너에게 알려주려고 했는데, 너는 없었어. 결국 그 정보를 이옥당 대인께 알렸지. 그분은 알게 된 즉시 홀로 말을 타고 급히 계림부로 달려간 뒤, 이 사건을 순무 장양명 대인과 계왕 전하께 알렸어. 게다가 수십 마리 전서구를 날려서 이 놀라운 소식을 황제 폐하께 전해드렸고.

두변, 난 곧 죽을 거야. 하지만 죽기 전에 끝내 큰일을 한 거 아닌가. 사전에 방계 집단과 여씨의 음모를 폭로했으니 이번 생은 의미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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