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320화 (320/648)

320장: 공성을 떠나다

두변은 가장 높은 곳에 서서 그들이 일렬로 청룡회 연병장으로 걸어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의 옆에는 예닐곱 살의 기음음이 서 있었다.

“기음음, 당신 몇 살이지?”

기음음이 어린아이처럼 대답했다.

“난 아직 어린아이라고!”

“당신의 쌍둥이 언니 기염염이 영도현의 아내지. 올해 일흔이 넘었을 텐데 그녀를 본 모든 이는 그녀의 절세 미모에 매혹되지 않은 사람이 없다더군. 많아야 서른셋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인다고 하고. 피부가 매끈하고 주름 하나 없고, 머리카락은 태생적으로 새까맣다던데.

용모를 늙지 않게 만드는 술수를 쓰는 것 외에도 내 생각에 가장 중요한 건 인종이 달라서겠지. 기염염뿐 아니라 당신들의 오라비 기천구도 올해 곧 여든이 된다는데, 그를 본 모든 이는 그가 많아야 마흔밖에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고 하던데?”

기음음의 안색이 확 바뀌었다.

“기음음, 당신들 세 오누이는 절세 지하성의 유성 일족이지?”

기음음은 침묵했다.

“당신들 유성 일족의 수명은 백오십 정도지. 그러니 일흔 정도면 외부 사람들의 서른 살에 해당하니 그 자체로 몹시 젊겠지. 게다가 당신들은 외부 사람들과 반드시 구별되는 면이 있더군. 당신들은 귀가 아주 조금 더 날카로워.”

이것들은 두변이 견사 대사의 기억에서 읽은 내용이었다. 그러니 견사 대사의 정신 전승은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한 보고였다.

“당신들의 천부적인 재능은 더할 나위 없이 높지. 그러니 북명검파에서 기천구, 기염염, 또 당신 기음음의 무공 경지가 남들과 견줄 수도 없을 정도였을 테고. 심지어 당신 기음음은 하마터면 대녕 제국의 최강자가 될 뻔했잖아.”

기음음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래. 우리 세 사람은 절세 지하성의 유성족이야. 당신, 군대를 이끌고 절세 지하성에 갈 작정이야?”

“그래. 나는 그 성을 원해.”

“안 돼. 안 된다고. 죽을 거야. 유성 일족은 극도로 외부인을 배척해. 수백 년 동안 아무도 절세 지하성에 진입할 수 없었고, 우리는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었어. 왜냐하면 우리는 그곳을 독차지해야 하니까.

1600년 전에 거대한 유성이 추락해서 그곳에 신기한 기운이 가득 차게 되었어. 그곳에서 살기만 해도 모든 이의 수명이 몹시 늘어나는 데다, 젊어 보이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게 되지. 또 천부적인 무공도 몹시 높게 되고.

유성 일족은 어떤 이와도 그 이익을 조금이라도 나누는 걸 허락하지 않아. 절세 지하성에 들어가려고 한 사람은 모두 침입자로 간주되어서 죽임을 당해.”

도화원기(桃花源記)라는 건가.(※도연명陶淵明의 작품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는 무릉의 한 어부가 복숭아꽃이 아름답게 핀 숲속 물길을 따라갔다가 진秦나라의 난리를 피하여 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 방문하게 되고, 그곳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돌아온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지금은 상황이 변했어.”

두변이 말했다.

청룡회의 거대한 연무장.

5천 명도 넘는 사람들이 집결했다. 병사 천육백 명, 청룡회 제자 2천 명, 나머지 2천 명. 그 안에는 유모나 진평의 부모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모든 이는 절망스러운 표정이었으나 오히려 눈빛은 희망을 품고 있었다.

이런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그들은 두변이 또다시 기적을 만들어내길 기대했다.

두변이 가장 높은 곳에 서서 큰소리로 외쳤다.

“여씨는 서남 토사 연맹을 통일시켰습니다. 반역자 방계 집단은 이미 양광에 상륙했고요.

우리는 제국에 충성하고, 황제 폐하께 충성을 바치는 유일한 힘입니다.

고작 동창의 천호인 저 두변이 광서에서 제국의 최고 관원이 되었습니다.

우리쪽 병사는 4천 명뿐이나 30만이 넘을지도 모르는 대군을 상대해야 합니다.

우리 식량은 십여 일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매일 두 끼, 끼니마다 죽을 마셔야 하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갈 곳이 없습니다.

백색성은 이미 포위되었고, 지금 우리를 포위한 군대는 이미 5만이 넘었고, 아직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모든 이가 우리가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막다른 길에 몰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모든 이가 제국 서남부의 함락이 기정사실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대녕 제국의 멸망마저 기정사실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을 듣자 모든 이의 눈빛이 절망에서 단호함으로 바뀌었다. 죽음과 마주하는 단호함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말할 겁니다.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우리가 죽지 않는 한, 광서는 완전히 함락되더라도 제국의 서남부는 완전히 함락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죽지 않을뿐더러, 빠른 시간 내에 천군만마를 이끌고 여씨 반역자를 모조리 죽여버릴 겁니다.

나는 당신들과 함께 영원히 함락되지 않는 성으로 가겠습니다.

그곳에는 수많은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음의 성이 된 백색성과 비교하면 천국과 같겠죠.

그곳에는 강한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데 그들이 장차 우리 편에 참여해서 우리와 나란히 전투를 치르는 군대가 될 겁니다.

그 위대한 성은 우리의 후방이자 우리의 강대한 근거지가 될 겁니다.

갑시다. 길이 어디 있는지 묻지 말고 따라와 주십시오.

나는 당신들과 함께 희망과 승리를 향해 걸어가겠습니다!

이제, 출발!”

명령이 떨어지자 수천 명이 끝도 없이 늘어서서 두변을 따라 남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공성이자 죽음의 성이 된 백색성을 떠났다. 그곳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모든 식량과 무기, 돈, 물자들을 가지고 갔다.

이로써 백색성은 철저히 공성이 되어버렸다.

수천 미터나 멀어진 뒤 두변은 참지 못하고 뒤돌아 백색성을 바라봤다.

“곧 돌아온다. 아주 빠른 시일 내에. 그때가 되면 나는 진정한 백색지왕(百色之王)이 되는 것이다.”

두변은 5천여 명을 이끌고 끊임없이 남하했다.

따그닥, 따그닥.

등 뒤에서 격렬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대인, 천보현(天保縣)의 대군이 출동해서 우리를 향해 돌진하고 있습니다!”

천보현은 백색성 남쪽 백여 리 지점에 위치한 곳이었다.

두변이 물었다.

“병사가 얼마나 되지?”

“5천입니다!”

병사 5천이 출동했다는 건 천보현에 있는 여씨의 주력 군대가 총출동했고, 1, 2천만 남아서 성을 지킨다는 의미였다.

두변에게는 군대 천여 명과 청룡회의 제자 2천여 명이 있으나 나머지 2천 명은 노약자와 싸울 줄 모르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이번 전투는 싸워볼 만했다.

아직 두변에게 초화감유 일부와 신비한 초록색 액체가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두변이 큰소리로 외쳤다.

“진형을 펼쳐라. 회(回)자 진(陣)을 만들어서 모든 노약자와 가솔을 모두 중앙에 보호한다!”

일각 뒤에 회자 진형이 갖추어졌다.

병사 천여 명은 가장 바깥층에, 청룡회 제자들은 두 번째 층에, 가솔 2천 명은 가운데로 모아 보호했다.

여씨의 천보현 5천 대군이 점점 더 가까워졌다.

5천 대군에는 기병이 2천, 보병이 3천 명이었다.

두변의 군대를 발견한 천보현 기병 2천 명이 돌격하기 시작했다.

“지옥의 불꽃놀이 준비하라!”

“독화살을 준비하라!”

여씨의 기병 2천 명이 점점 더 가까워졌다.

“쏴라!”

두변이 힘차게 명령을 내렸다.

초화감유 수백 병이 힘차게 날아가 적군의 기병 진형 속으로 떨어졌다.

독화살 천여 자루가 미친 듯이 난사되었다.

콰과광.

슉, 슉, 슉, 슉.

죽음의 꽃이 또다시 만개했다. 그 많던 기병들이 폭발해서 산산조각이 났다.

독화살이 몸에 박히면서 미친 듯이 살을 부식시키자, 적들이 들어본 적이 없을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

한 시진 뒤에 전투가 끝났다.

여씨의 5천 대군은 사상자를 감당하지 못한 나머지 후퇴하기 시작했다

두변은 수천 명을 이끌고 또다시 남하했다.

다음날, 150리를 걸었다.

“적의 기습입니다, 기습입니다!”

뒤에서 여씨 기병 3천 명이 또다시 추격해 왔다.

두변은 재차 전투를 치러서 한 시진 반 뒤, 또다시 여씨의 기병들을 격퇴했다.

잠시 멈출 새도 없이, 두변은 수천 명을 이끌고 계속 남하했다.

셋째 날, 150리를 걸었다.

“적의 기습입니다, 기습입니다!”

후방에서 여씨의 기병 3천5백 명이 또다시 추격해왔다.

초화감유는 진작 다 써버린 데다, 초록색 액체도 거의 바닥이 난 상태였다.

기대, 기이가 천마혈군 3백 명을 이끌고 나섰다.

두변의 의형 이릉이 기병 6백 명을 이끌었고, 계표표는 청룡회 제자 천 명을 이끌고 섰다.

“두변, 너는 계속 남하해. 우리가 후방을 엄호할게!”

이윽고 네 사람은 2천여 명을 이끌고 여씨의 기병 3천5백 명을 향해 돌진했다.

두변은 남은 사람들을 이끌고 계속 남하했다.

몇 시진 뒤, 그들은 깊은 산속에 있는 인적이 없는 구역에 진입했다.

이곳까지 왔으면 여씨의 기병들이 쫓아올 리 없었다.

며칠 동안의 미친 듯한 추격전과 기습이 드디어 끝났다.

여섯 시진 후.

이릉, 계표표, 기대, 기이가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다. 2천 명 가운데 1,200명만 돌아왔고, 나머지는 전부 죽었다.

8백 명 가운데 사망자가 가장 많은 건 청룡회 제자들이었다. 무도를 익혀서 무공은 고강하지만 전장에서 적들을 참살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나머지는 계왕부의 기병들이 사망자가 가장 많았다.

이릉뿐 아니라 기대와 기이도 부상을 입었다.

며칠 간의 연이은 전투 끝에, 현재 두변의 병사는 3천여 명에서 2천 명만 남았다.

계표표가 말했다.

“이제 괜찮아. 우리는 적어도 포위망을 완전히 돌파했잖아. 여씨의 포위망을 완전히 벗어났어. 우리는 이미 절반은 승리한 거라고.

두변, 이곳은 인적이 없는 깊은 산속이라 사방에 장기(瘴氣)가 가득해서, 들어간 뒤 나오지 못할 수도 있어. 자신 있는 거지?”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장기를 피할 수 있어요.”

이곳 수백 리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구역으로, 사방이 원시림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다만 곳곳에 장기가 가득해서 인간은 차마 그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두변은 꿈속 시스템을 통해 최단 경로 지도가 있어서 완벽하게 모든 장기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설령 그걸 피했다고 한들, 원시림 곳곳에 독사와 맹수가 있어서 여전히 적지 않은 사상자가 났다.

특히 매일 원시림을 걸으니 방향감각이 사라져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고 식량도 점점 줄어들면서 대열의 사기도 갈수록 저하되었다.

지금의 두변은 그들의 절대적인 지도자이자, 정해신침(定海神針: 손오공이 무기로 사용하는 여의봉)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모두를 이끌고 원시림 안을 걷는데 한 번도 장기를 만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크나큰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꼬박 엿새를 걸은 후에야 두변은 4천 명을 이끌고 원시림에서 벗어났다. 본래 위험천만하고 장기가 가득한 지대였건만, 꿈속 시스템이 안내해준 덕에 대군이 전멸하는 참극은 벌어지지 않았다. 비록 사상자가 나기는 했지만 그 수가 많지는 않았다.

그때, 두변의 눈앞에 거대한 낭떠러지 밑으로 갈라진 거대한 균열이 나타났다.

두변이 물었다.

‘이곳이 세상과 차단된 절세 지하성의 입구가 맞습니까?’

시스템이 말했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두변이 큰소리로 외쳤다.

“다 왔습니다!”

그 말을 듣자 사람들의 사기가 고조되었다.

두변은 4천 명을 이끌고 그 지하의 갈라진 입구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다음은 더없이 복잡하고 미궁 같은 땅굴이었다.

절세 지하성이 수백 년간 세상과 차단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듯했다. 시스템의 안내가 아니었다면 수백 리나 펼쳐진 원시림은 애초에 아무도 통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미궁 같은 땅굴도 막천남의 묘혈에 있는 그 미궁보다 더 복잡했다.

여전히 시스템의 최단 경로 지도에 의지해야 했다.

두변은 지하 통로 속에서 수없이 돌고 또 돌았다.

사흘 밤낮을 걷고 또 걷자, 모든 사람이 거의 무너질 지경이었다. 폐소공포증에 사람들이 이유 없이 울고 소리쳤다.

또 일부는 길에서 죽었다.

사흘 밤낮을 지하 통로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장장 3백여 리를 걸었다.

그때 문득, 더할 나위 없이 거대한 문이 눈앞에 나타났다. 족히 20미터가 넘는 대단히 큰 석문이었다.

도착했구나!

절세 지하성에 도착했구나!

앞에 있는 게 바로 절세 지하성의 대문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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