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321화 (321/648)

321장: 세외도원

두변이 앞으로 나와 큰소리로 외쳤다.

“비(悲), 마(魔), 풍(風), 액(厄), 능(凌), 주(咒)!”

그건 1세대 유성 일족이 절세 지하성에 잠입해서 정해놓은 입성 암호였다. 이것 역시 견사 대사의 기억에서 읽은 것이었다.

하지만 문 저편은 여전히 고요했다.

이어서 아득하고도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외부인이여, 즉시 떠나라. 그렇지 않으면 침입자로 간주해서 가차 없이 격살할 것이다.”

두변이 말했다.

“이미 암호를 말했는데 그래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까?”

“우리는 세상과 단절되어서 어떤 형식의 방문도 받지 않는다. 즉시 떠나지 않으면 가차 없이 격살하겠다.”

두변 등 수천 명은 이미 무기도 식량도 모조리 떨어졌다. 이곳에서 떠난다면 얼마 가지도 못해서 전부 죽어버릴 것이다.

두변이 말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수백 년간 절세 지하성에는 규칙이 하나 있었죠. 누구든 용신(龍神)의 심판을 통과하면 성에 들어갈 수 있다고요.”

용신은 사실 더할 나위 없이 강대한 괴수였다. 절세 지하성은 용신을 문신(門神: 나쁜 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지킨다는 신)처럼 대우했다.

아득한 목소리가 말했다.

“절세 지하성은 비록 절대 기밀이지만 이곳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당신이 처음 이곳에 온 사람도 아니고, 마지막 방문자도 아니다.

수백 년 동안 수백 명이 용신의 심판을 통과해서 절세 지하성에 들어오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단 두 명만 통과하고, 나머지는 전부 죽어서 고깃덩이가 되어버렸지. 당신은 확실히 용신의 심판을 진행할 것인가?”

“그렇습니다!”

쿠르르르릉.

큰소리가 울린 뒤, 두변의 앞 수백 미터의 지면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갈라졌다. 그러더니 그 속에서 더할 나위 없이 거대한 교룡이 튀어나왔다.

두변은 완전히 놀라서 넋이 나가고 말았다.

‘이, 이건 진짜 교룡이잖아!’

이미 탈피한 교룡이니, 이미 천여 살이 넘었을 것이다.

두변이 정신적인 환상 속에서 만났던 교룡은 막 탈피한 것이었던 데 반해, 이건 탈피한 지 이미 오래된 것이었다.

머리의 용각이 이미 반 척(尺)이나 되었고, 체형은 이미 100미터가 넘었다.

교룡이 뜻밖에 절세 지하성의 수호 문신이었다니!

교룡이 힘차게 포효하더니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우물 하나를 휘감았다.

아니다. 그건 우물이 아니라, 죽어버린 괴수의 입이었다. 괴수의 입 안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고, 괴상한 녹색 액체가 가득했다.

녹색 액체 아래에는 수많은 시체와 해골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 녹색 액체는 더할 나위 없이 무서워 보이기도 하고, 위험해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두변이 막천남의 보물 창고에서 얻은 신비한 녹색 독액과 몹시 유사해 보였다.

“당신의 입속에 있는 벽사단을 꺼낸 뒤, 이 괴수의 입 속, 녹색 액체 속으로 뛰어들어라.

당신이 용신의 심판을 통과할 수 있다면 이 녹색 액체가 황색, 존귀한 황색으로 변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완전히 녹아서 고깃덩이가 될 것이다.

수백 년 이래 7백여 명이 뛰어들어서 거의 전부가 고깃덩이로 변해버렸다. 단 두 명만 통과하는 데에 성공했지.”

그렇다. 이 신비한 녹색 액체는 역시나 막천남의 보물 창고에 있던 것과 몹시 유사한 맹독이었다.

우우우!

더할 나위 없이 강한 100미터 길이의 교룡이 포효하면서 무시무시한 눈동자로 두변을 주시했다.

단 두 명만 초록색 액체를 황색으로 바꾸어서 절세 지하성에 진입할 수 있었다는데, 그럼 두변은 어떨까?

그는 입에서 벽사단을 꺼내서 계표표에게 건넸다. 사실 벽사단으로도 이 괴상한 지옥 맹독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상대방이 이미 알고 있으니 뱉을 수밖에.

두변은 힘껏 이를 악물었다.

모두가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

더할 나위 없이 강한 교룡이 주시하는 와중에!

두변은 힘차게 괴수의 우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모든 건 너무나 빨리 일어났다.

두변 쪽 사람들은 애초에 그를 막을 겨를도 없었다. 계표표는 우선 멍해졌다가 이내 바로 달려 나왔다.

하지만 두변은 초록색 액체 속에 가라앉았는지 보이지 않았다.

다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

갑자기 여인 둘이 동시에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사람들 틈에서 달려 나왔다.

유모 두여낭과 누이 두평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몹시 불효했었다. 백색성으로 돌아온 뒤 두변은 심지어 유모를 보러 갈 새도 없었다.

모든 게 너무 긴박해서 두변 자신은 백색성에서 하루도 머물지 못했다. 곳곳에 위기가 도사려서 하루 더 머무를수록 그만큼 더 위험해지니까.

그 뒤로 며칠간 두변은 줄곧 대열을 이끌고 남하했다. 목적지까지 직선거리는 수백 리에 불과했지만 길을 구불구불 돌아가야 하는 통에 적어도 천여 리를 걸었을 것이다. 두변은 수천 명을 살펴야 했고, 유모, 심지어 두평아와도 친근하게 말 한마디 나누지 못했다.

유모와 두평아는 처절하게 비명을 지른 뒤, 왈칵 달려나와서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뛰어내렸다.

그게 두변을 구하려는 건지, 아니면 그를 따라가려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계표표는 줄곧 두변에게만 신경을 쏟고 있던 터라 옆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관심을 가질 새가 없었다. 그녀가 두여낭과 두평아 모녀가 괴수의 우물로 뛰어드는 걸 발견했을 때는 그들을 막으려고 해도 이미 늦어버렸다.

두 사람이 완전히 부식해서 비명횡사하려고 하는 찰나!

후욱!

갑자기 천여 살의 교룡이 숨을 내뿜었다.

그 순간 녹색 액체에 떨어지기 직전이던 두여낭 모녀가 교룡이 뿜은 김에 그대로 맞고 튕겨 나와서 바닥에 떨어졌다. 조금 아프기는 해도 다치지는 않았다.

모든 이가 괴수의 우물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설마 자신들의 지도자 두변이 죽어버린 걸까?

그게 사실이라면 모두가 완전히 절망해서 그대로 죽어버릴 것이다. 두변이 그들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두변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이곳에 오지도 못하고 진작 길에서 죽었을 것이다.

바로 그때.

모두가 놀랍게도 우물 안의 초록색 물의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천 년 교룡이 지켜보는 가운데, 녹색이 점점 바래기 시작하고 황색이 점차 드러났다.

계표표 등 모두가 감격했다.

역시, 우리의 수령 두변은 기적을 만드는 사람이구나!

우물 안 물의 색깔이 점점 더 황색으로 변했다.

모든 이가 두변이 역사상 용신의 심판을 통과한 세 번째 사람이라는 게 기정사실이 됐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우물 안 액체의 빛깔이 계속 변하다가 나중에는 금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금색, 황금의 색!

모든 이가 놀라서 얼이 빠졌다.

심지어 절세 지하성에서 울려 퍼지던 목소리도 낮게 탄성을 질렀다.

이건 무슨 뜻일까.

전에 녹색 액체가 황색으로 변하면 용신의 심판을 통과하는 것이라 했는데, 금색으로 변하는 건 무슨 뜻일까.

하지만 분명한 건 금색이 황색보다 한 단계 위라는 점일 것이다.

이건 천 년 가까이 본 적 없는 기적이었다.

수천 명이 환호했고, 교룡이 가볍게 숨을 내쉬자, 잠시 후 두변이 무사한 모습으로 멀쩡하게 떠올랐다.

두변이 기적을 만들 수 있었던 건 확실히 그에게 대운의 기운이 있기 때문일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오늘 그가 용신의 심판에서 통과할 수 있었던 까닭은 운 때문이 아니었다. 이유는 몹시 간단했다. 왜냐하면 그의 단전 안에 있는 교룡의 피 때문이었다.

두변도 이 교룡의 피가 엄청나게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은 헀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환영합니다. 나의 귀빈이여, 당신은 절세 지하성에 세 번째로 들어온 손님이 되었습니다.”

절세 지하성 안의 아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쿠르릉.

이윽고 석문이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굴처럼 생긴 곳이 나타났다.

“귀빈, 들어오십시오! 물론 당신 한 명만 들어오는 걸 허락합니다!”

계표표가 벽사단을 두변에게 건넸다.

두변은 자신의 휘하 수천 명을 바라봤다.

이들은 지치고 배를 주린 데다가 식량은 이미 떨어졌다. 기껏해야 사흘에서 닷새면 노약자 이천 명이 대규모로 죽어 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두변이 큰 소리로 말했다.

“형제들, 어르신 여러분! 나 혼자 먼저 절세 지하성에 들어가겠습니다. 맹세하건대 이틀 안에, 스물네 시진 안에 반드시 절세 지하성의 대문을 열어서 여러분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 후로 더 이상 거처를 잃은 채 헤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아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빈, 그건 절대로 안 될 일입니다. 우리 유성족은 외부인 그 누구와도 하늘이 내려주신 이 땅을 공유하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4천 명이라뇨. 당신은 기적을 만들어서 녹색 액체를 금색으로 변하게 했지만, 그건 고작 당신이 우리 귀빈이 되도록 만드는 데에 불과합니다. 당신 자신도 절세 지하성에서는 살 수 없거늘, 하물며 다른 사람까지요?”

물론 두변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곳은 확실히 하늘이 내려주신 땅이다. 천여 년 전에 이세계의 거대한 유성우가 떨어져 생긴 곳이라서 이세계 에너지가 충만했다. 이곳에 살면 백오십 세 이상 장수할 수 있을뿐더러, 젊고, 아름답고, 강해진다.

이런 보물과도 같은 곳을 누군들 남과 나누길 원하겠나. 그런데 단숨에 그런 곳에 4, 5천 명이나 밀려드는 상황이라니.

입장을 바꿔도 누구든 안 된다고 할 것이다.

두변이 물었다.

“여러분은 저를 믿습니까?”

수천 명이 답했다.

“믿습니다!”

두변은 수천 명을 향해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절세 지하성은 석문이 장장 십여 미터 두께로 몹시 두꺼웠다.

두변이 문을 지나 기나긴 통로를 지나니, 그 끝에는 또 문 하나가 있었다.

두변은 앞으로 다가가 그 문을 밀었다.

그 순간 눈앞이 환해졌다. 오랫동안 동굴 속에만 있었던 두변은 내리쬐는 햇빛에 한순간 눈을 뜰 수 없었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그는 마침내 지하성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견사 대사의 기억 속에서 이 지하성에 대한 내용을 읽긴 했지만, 막상 실제로 보게 되니, 기적 같기도 하고 몽환적이면서 아름다운 모습에 전율해버리고 말았다.

지하성이라 하면, 아마 많은 이가 이름만 듣고는 땅속 깊은 곳의 암흑천지의 음습한 공포가 떠오를 것이다.

그렇지만 이곳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눈앞의 이 천갱은 지름 20리에, 대략 900미터 깊이로, 성 전체가 이 천갱 안에 세워져 있다고 보면 된다.

수많은 집이 겹겹이 둘러싸인 채 빙빙 돌면서 위로 올라가는데 장장 수십 층이나 되었다. 최상부는 모두 농경지로, 장장 몇만 묘(畝)가 넘었다.

이곳은 암흑천지가 아니라 햇빛이 충분히 들어와서 1년 사계절이 봄날 같았다.

이세계 에너지 때문에, 키우는 가축은 바깥보다 두세 배 더 크며, 재배하는 농작물과 과실 모두 바깥보다 몇 배나 더 컸다.

더군다나 이곳에는 바깥에 없는 식물, 꽃, 약재, 동물들이 많았다.

천갱의 가장자리는 100미터 높이의 절벽으로 둘러싸여서 천연적인 장벽 역할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어떤 군대도 이 100미터 절벽을 뛰어넘기란 불가능했다. 게다가 절벽의 바깥은 장기로 가득한 원시림이었다.

그러니 이곳이 영원히 함락되지 않는 성이자, 진정한 의미의 세외도원(世外桃源)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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