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323화 (323/648)

323장: 생우우환, 사우안락

소성주의 오른손은 시종일관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도리어 손을 살짝 휘둘러서 무사 수백 명을 물러가게 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소성주가 두변을 보며 물었다.

“너는 어떻게 알았지?”

두변이 뻔뻔하게 대답했다.

“왜냐하면 저는 점술의 대가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건 제가 이 상황을 만회할 수 있다는 점이겠죠. 그렇지 않으면 길어야 20년 뒤, 이곳은 죽음의 땅으로 변해서 당신들의 성도 멸망하고, 유성족은 완전히 멸족될 겁니다.”

소성주가 두변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너를 어떻게 믿지?”

두변이 눈을 감고서 점이라도 치는 듯이 말했다.

“제 추측이 틀리지 않다면 소성주께서는 최근에 식욕이 사그라들었고, 잇몸에 빈번하게 피가 나며, 눈도 충혈되기 시작해서 사물을 정확하게 보기 힘들 것입니다. 무공은 여전히 고강하지만 신체가 조금 나른해졌을 겁니다.”

소성주는 더욱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두변을 바라봤다. 그는 그런 증상들을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고 자신만 알고 있었다. 소성주의 몸에 문제가 생기면 그 결과가 몹시 심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에게 아들이 자신 하나뿐이 아니었다.

두변은 어떻게 그걸 알았을까?

자신의 몸에 관련된 일을 맞히다 보니, 소성주는 어느덧 감복해서 기대에 찬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봤다.

소성주가 말했다.

“두변 선생, 내가 이대로 가다간 몹시 심각한 결말을 맞게 되나?”

“최근 소성주께서 종종 흑야(黑夜) 저수지에 가서 무공 수련을 하셨지 않습니까?”

소성주가 더욱더 경악하며 말했다.

“그렇네. 선생은 또 어떻게 그걸 알았지? 나는 깊은 물 속에서 무공을 수련해야 해. 엄청난 수압을 이용해서 내 자신의 잠재력을 끌어내야 하는데, 흑야 저수지는 가장 깊은 곳이 100미터가 넘으니 내가 수련하기 몹시 적합하지.”

“그럼 맞을 겁니다. 현재 소성주의 상태는 아직 심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원인을 찾지 않고 계속 그대로 수련하면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소성주는 반드시 죽을 겁니다.

앞으로 겪게 될 증상은 끊임없이 출혈이 될뿐더러, 망막에서도 출혈이 되고, 심지어 피부 표층에서도 출혈이 될 겁니다. 머리카락과 치아가 빠지고, 어지러움을 느끼며, 위에서 출혈이 일어납니다. 결국에는 대뇌가 불가역적 손상을 입어서 죽게 됩니다. 제 생각에 소성주께서는 이런 사례를 겪는 사람의 경우를 하나쯤은 들어보셨을 것 같은데요.”

소성주의 안색이 급변했다.

두변이 너무 정확한 말을 하니 이제 그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순식간에 소성주가 계단 아래로 내려와서 위엄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두변을 향해 공수하며 말했다.

“두변 선생, 어째서 이런 상황이 만들어졌는지 그걸 치료할 수 있는지 묻고 싶네.”

“왜냐하면 당신들 가운데 끔찍한 내부 반역자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가 당신들을 멸족시키려 하기 때문에 두려운 재난을 가져올 겁니다.”

“그 내부 반역자는 누구인가?”

두변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정말로 그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당신들 틈에 숨어있고, 지위도 몹시 높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는 점술의 세계에서 그의 뒷모습을 본 터라 그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두변 선생, 그럼 당신은 이 국면을 만회할 수 있나?”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당신들 부족 전부를 구할 수 있고, 이 성을 멸망의 운명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환 조건으로 제 일족이 이곳에 들어와 살아야 합니다.”

소성주가 침묵했다.

유성 일족은 누구와도 이 보물 같은 땅을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두변이 부족 전체를 구할 수 있다면? 그럼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두변 선생, 이 일은 내가 결정할 수 없네. 나는 아버지께 보고를 드린 뒤, 장로회와 성주회의에서 결정해야 할 걸세.”

두변은 경악하고 말았다.

성주회의라고?

그건 무슨 뜻이지? 설마 성주가 한 명 이상인 건가?

이윽고 소성주는 두변을 호화로운 객청으로 안배해주었다.

소성주가 말했다.

“이곳에 책이 많으니, 두변 선생은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 것이네. 나는 바로 아버지께 보고를 드리러 가지. 우리 기성(紀城)은 최단 시간에 성주회의, 장로회의를 개최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할 것이네.”

기성이라니?

왜 이곳을 절세 지하성이라고 부르지 않고, 기성이라고 부르지?

기이한 불빛이 갑자기 말했다.

‘현재 절세 지하성은 다섯 개의 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구역에는 크고 작은 십여 개의 천갱이 있는데, 큰 건 직경이 10킬로미터에 달하고, 작은 건 직경이 천 미터에 불과하지.’

‘10킬로미터라고요? 이런 수준의 운석 충돌이라면, 사방 수천 리에 충분히 파멸적인 재앙이 왔을 텐데요.’

‘그때 충돌한 운석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운석의 에너지가 자체적으로 폭발했기 때문이다.

충돌한 지 수백 년이 지난 뒤, 이 천갱들은 이세계의 에너지로 인해 몹시 특수한 생태적 환경을 만들어냈다. 이곳 지구와는 다른 반면, 이세계의 생태 환경과 조금 유사한 환경이지. 전란을 피하기 위해서 6대 부족이 무심코 이곳을 발견해서 정착했는데, 그 부족들은 각각 기(紀), 임(林), 서(舒), 사공(司空), 도(塗), 부(傅) 여섯 성씨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 6대 부족은 부족마다 천갱을 선택해서 정착했다. 즉 절세 지하성이란, 성 하나가 아니라 여섯 성을 통칭한 것이다. 네가 지금 머물고 있는 이 천갱은 기족(紀族)에게 속한 곳이니 기성이라고 부른다. 수백 년 동안 6대 부족끼리 음으로 양으로 투쟁을 벌였고, 심지어 여러 번이나 무장 충돌이 일어났다. 덕분에 너도 이곳에 오는 길에 많은 병사를 보게 되었을 것이다. 성의 율법도 몹시나 엄혹하다.’

내부자끼리의 싸움은 어떤 곳이든 예외가 아닌 모양이었다. 게다가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폐쇄되고, 영원히 함락되지 않는 성 안에서 내부 투쟁마저 없었다면 안일해진 나머지 진작 일족 전체가 파멸했을 것이다. 내부 투쟁과 경쟁이야말로 절세 지하성을 지금까지 발전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생우우환, 사우안락(生于憂患 死于安樂: 우환 속에서는 살아남고 안락 속에서는 죽게 된다. - 맹자孟子)이란 바로 이런 이치였다.

내부 투쟁이 없다면 상황을 만들어서라도 내부 투쟁을 벌여야 한다. 지나친 안일함이 사람을 죽게 만드니까.

꿈속 시스템이 말했다.

‘분구필합 합구필분(分久必合, 合久必分: 나눠진 지 오래되면 반드시 합쳐지고, 합쳐진 지 오래되면 반드시 나눠진다. -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이라고 했다. 백 년 전에 큰 전쟁이 일어나서 사공 일족이 완전히 멸망되었다. 나머지 5대 부족들은 상의 끝에 성주회의를 개최해서 대성주 한 명을 추대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장로회를 성립해서 5대 부족의 성을 관리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니 그제야 가까스로 백여 년의 평화를 유지하게 되었다.’

역시나 이곳은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이 세상에는 진정한 세외도원 같은 건 없었다.

경쟁이야말로 인류의 영원한 주제였다.

두변이 물었다.

‘그럼 지금 절세 지하성에 있는 5대 부족은 다 합치면 몇 명이나 됩니까?’

‘대략 20여만 정도다. 전성기에는 30여만이 있었지.’

20여만 명이 천갱 다섯 개 안에서 생활할 수 있다니, 이곳의 생태계는 역시나 대단하구나.

두변은 이 20여만 명 중에 병력을 얼마나 모을 수 있을까 가늠했다.

3만일까? 아님 5만?

이어서 두변은 방 안의 책들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곧 아름다운 시녀들이 십여 가지의 음식과 좋은 술 다섯 가지 등을 내왔다.

대단히 호화롭다고 할 수 있었다.

아무리 계왕부라 해도 손님에게 이렇게 많은 음식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건 정찬도 아니지 않은가.

두변은 손도 대지 않고 있다가 잠시 망설인 끝에 고기 몇 조각을 먹었다.

자신의 일족 수천 명이 아직도 바깥에서 배고픔과 추위를 견디고 있는 상황에서 소성주가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만을 바랐다. 식량이 떨어졌으니 수천 명은 며칠 버티지 못하고 대규모로 사상자가 나기 시작할 것이다. 특히 부녀자와 어린아이, 노약자들에게서 말이다.

여씨에게 계속 쫓기고 수천 명을 이끌고 남하하면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던 두변은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는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몇 시진 뒤.

문이 열리고 사람이 들어오는 소리에 두변은 즉시 눈을 떴다.

바깥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화려한 방 안에 이미 촛불과 향로가 켜져 있었다.

소성주가 말했다.

“두변 선생, 나를 따라오게. 절세보(絕世堡)로 가서 정책 회의에 참가해야 하네. 모든 성주와 장로들이 자리할 걸세.”

두변은 급히 일어나 성주부를 나섰다. 두 사람은 거대한 늑대를 타고 서쪽으로 질주했다. 그들 뒤에는 정예 기병 백 명이 그들을 따르고 있었다.

이 천갱의 밤은 매우 조용한 것이, 아무도 밤 생활을 즐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야간 통행 금지를 시행한 나머지 가는 길에서 순찰하는 병사들을 세 무리나 마주쳤다.

이 상황은 진(秦) 왕조보다도 엄격하다 할 만했다.

두변은 소성주를 따라서 천갱의 가장 윗부분까지 달린 뒤 동굴을 따라 이곳 기족의 성을 떠났다.

이 동굴은 인공적으로 만든 것으로, 절세 지하성 전체에 있는 총 십여 개의 천갱이 전부 이런 동굴로 연결되어 있었다.

2천 미터 길이의 동굴을 지나자, 또 하나의 천갱이 눈앞에 나타났다. 다만 이 천갱은 기성보다는 작아 보였다.

소성주가 말했다.

“도착했네!”

이 작은 천갱 곳곳에도 과수원, 화원, 건물 수백 개가 즐비했다.

모든 건물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고 극도로 호화스러웠다.

천갱의 가장 아래 중앙에는 더할 나위 없이 거대한, 아마도 궁전이라 불러야 할 것 같은 곳이 있었다. 이 궁전이 바로 절세보이자, 절세 지하성에 있는 5대 부족의 핵심 통치 장소였다.

장로회가 이곳에 있었고, 대성주도 이곳에 있었다.

절세보 앞 광장에 도착한 뒤, 두변과 기 소성주는 거대 늑대에서 내려서 가지고 있던 모든 병기를 내놓았다.

이 절세보의 웅장한 모습은 기족 성의 성주부를 훨씬 능가했다.

절세보 대문에 들어가기 전에 거대한 짐승 두 마리가 다가와서 두변의 냄새를 맡았다. 사자 같기도 하고 호랑이 같기도 한 짐승으로 높이가 3미터가 넘는 크기였다.

거대한 짐승 두 마리가 숨을 내쉬며 길을 비켜서고, 거대한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 안에는 수백 명이 앉아있었는데 전부가 호화로운 옷을 입고 있고 무공이 대단히 고강한 자들이었다. 이들이 아마도 5대 부족의 장로회 구성원일 것이다. 각 부족마다 장로 수십 명이 있을 테니, 다 합치면 3백 명 정도였다.

이들 일반 장로의 자리가 비교적 아래쪽인 데 반해 중앙에 있는 단 위에는 자리가 고작 열세 개밖에 없었다. 이 열세 개 자리는 지면보다 3미터 정도 높아서 대전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이 열세 개 자리는 다섯 성주와 대장로 여덟 명의 자리였다. 이 열세 명이 절세 지하성에서 최고 권력을 가진 자들로, 가장 중앙에 있는 황금 보좌는 아마도 대성주의 자리일 것이다.

대성주는 5대 부족의 성주들이 추대한 사람으로, 그의 권한은 다른 성주들 위에 있으니, 그야말로 절세 지하성의 진정한 성주라고 할 수 있었다.

두변이 들어서자, 모든 이의 시선이 두변에게로 향했다.

두변은 성주 몇 명은 비교적 젊은 데에 반해, 장로회에는 이미 연로한 사람이 많음을 발견했다. 이곳처럼 백오십 세까지 장수할 수 있는 곳이라 해도 꽤 많은 수의 장로, 특히 대장로는 머리카락과 수염이 모두 하얗게 셌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했다.

기족의 소성주는 자신의 위치로 가서 앉았다. 그는 일개 부족의 소성주이기도 한 동시에, 일반 장로회의 구성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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