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장: 새로운 성주 두변!
두변은 그제야 눈앞에 있는 암장의 괴수가 지난번 봤던 화염의 괴수와 전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애초에 같은 종이 아니었다.
화염 괴수는 몹시 위풍당당하며 공포스러운 데다 외계 생물 같은 느낌이 있었지만, 눈앞에 있는 이 암장의 괴수는 거대한 도마뱀 같았다. 이 괴수는 암장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 암장 속에서 살지는 않았다.
두변은 괴수의 둥지가 멀지 않은 저 어두컴컴한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둥지 안에 뼈가 가득 쌓여 있는 걸 봐서는 괴수는 다른 지하 괴수를 먹으며 사는 게 분명했다.
거대한 암장의 괴수는 본래 곧바로 두변을 집어삼키려 했지만 두변의 말을 듣고 놀라고 말았다.
괴수의 나이가 워낙 많다 보니 간단한 정신 교류 정도는 할 수 있는 상태였다.
‘너는 날 구할 수 없다! 아무도 나를 구할 수 없어!’
암장의 괴수가 포효하면서 필사적으로 절벽에 제 몸을 부딪쳤다.
위의 절세보 광장은 또다시 천지가 무너지듯 붕괴되었다.
괴수는 몹시 고통스러워 보였다. 심지어 괴수는 절벽에 부딪히면서 머리가 깨져 암적색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었다.
‘너희 인간들은 나를 속일 줄만 알지, 애초에 나를 구할 수 없다!’
암장의 괴수가 격노했다.
괴수를 속였다니?
누가 괴수를 속였지? 누구지?
‘아우우! 너희는 나를 속일 줄만 알 뿐이다. 내가 너희를 가만두지 않겠다!’
암장의 괴수가 격노하면서 다시 큰 입을 벌려서 두변을 집어삼키려고 했다.
두변은 재빨리 시스템의 눈을 가동해서 암장의 괴수의 전신을 스캔했고, 괴수의 고통의 근원을 발견했다.
괴수의 뇌에 무언가 튀어 오른 게 보이는데, 종양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무려 수십 개나 되어 보이는데 하나같이 크기가 커서 주먹만 한 것도 보이는데 움직이기까지 했다.
이러니 저렇게 고통스러울밖에. 저런 게 뇌 속에 있으니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플 수밖에.
두변이 말했다.
‘머리가 터질 것만 같지? 네 머릿속에 무서운 게 수십 개나 자라서 움직이기까지 하기 때문이야.’
암장의 괴수가 소리쳤다.
‘그래, 맞아! 머리가 아파!’
이제 두변이 멍해질 차례였다. 이건 그가 치료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가 이 암장의 괴수 뇌를 수술해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꿈속 시스템이 말했다.
‘심연의 금지에 있던 그 우물물을 마시면 치료할 수 있다.’
두변이 당황하며 말했다.
‘그 우물물은 나 때문에 오염됐잖아요.’
‘바로 오염된 그 우물물을 써야 암장의 괴수 대뇌 안에 있는 기생물을 전부 죽일 수 있다. 암장의 괴수가 오염의 영향을 받아서 좀 허약해지겠지만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곳은 몹시 무섭더라고요. 저번에 그곳을 떠날 때도 심연 아래에서 계속 소리가 들리고 지면이 계속 떨렸잖아요. 그런데도 그곳에 가야 해요?’
‘지금은 몹시 조용할 것이다.’
‘어째서죠?’
‘큰 변화가 오기 전의 고요함, 여명 직전의 어두움 같은 것이지.’
두변은 본능적으로 불안해졌다. 절세 지하성에 격변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두변은 마음을 가다듬고 암장의 괴수에게 말했다.
‘내가 널 치료할 수 있다. 내가 너에게 어떤 걸 한 잔 마시게만 하면 너는 바로 나을 수 있다.’
암장의 괴수가 소리쳤다.
‘정말로? 인간이 나를 속이지 않는다고? 인간은 항상 날 속였어!’
두변은 이 암장의 괴수가 지능이 그리 높지 않음을 눈치챘다.
‘네가 감히 날 속인다면 나는 이 인간을 죽이겠다!’
암장의 괴수가 소리쳤다.
두변이 시선을 돌려 바라보니, 그제야 옆의 동굴에 있는 대성주 부천애가 눈에 들어왔다. 부천애의 온몸에 핏자국이 있는 데다 화상도 입은 모양이었다. 지금 그는 동굴 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 운공해서 내상을 치료하는 중인 듯했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만약 내가 널 속이면 나까지 같이 먹어버려.’
이윽고 두변이 밧줄을 타고 위로 기어오르려고 했다.
시스템이 말했다.
‘위로 올라갈 필요 없다. 이곳 지하 통로는 사방으로 통한다. 왼쪽 동굴을 타고 가면 금지 구역의 심연 입구에 도착할 수 있다.’
두변은 그 왼쪽 동굴로 올라갔다.
두변은 시스템이 알려주는 노선을 따라 끊임없이 전진했다.
두변이 길을 가면서 물었다.
‘시스템, 그 암장의 괴수 뇌에 기생물이 그렇게 많이 자란 건 어째서입니까?’
‘그걸 기르던 자가 음식에 기생물을 넣어서 줬다. 지금의 저런 크기까지 자라려면 적어도 몇 년은 걸렸겠지.’
‘난쟁이 선지자 사공엽이 그런 겁니까?’
시스템은 두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시스템의 안내에 따라 구불구불 난 길을 따라가자 어떤 출구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곳에서 다시 수천 미터를 걸으니 역시나 익숙한 성루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성루는 바로 금지 구역인 심연의 입구였다.
백년사요가 갑자기 헤엄쳐와서 두변의 몸을 휘감았을 뿐 아니라, 거대한 사자 두 마리도 달려왔다.
이 야수 세 마리는 금지 구역 심연의 입구를 지키며 본래는 누구도 안으로 들이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이 백년사요는 두변의 냄새를 힘껏 맡은 뒤에 한참을 망설이더니 역시나 두변을 풀어주고 뒤로 물러났다.
이건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대성주만 금지 구역인 심연에 들어갈 자격이 있었다.
두변이 또다시 성루에 진입해서 바닥에 있는 석문을 여니, 돌계단으로 이루어진 통로가 나타났다.
어제 두변이 이곳을 떠날 적에는 천지가 요동쳤지만 지금은 무시무시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두변은 심호흡을 한 뒤 계단을 따라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 어제 자신이 매장되었던 무덤을 지나 계속해서 밑으로 더 내려갔다.
드디어 어제 봤던 우뚝 솟아있는 대(臺)와, 그 아래 끝없이 펼쳐진 심연 앞에 도착했다.
그 우물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지만 철저하게 오염된 상태였다.
우물물은 흑록색 탁한 물빛이어서, 더이상 예전처럼 밝고 고결한 기운은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우물물에 아무런 방사능도 담겨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두변은 병을 꺼내서 오염된 우물물을 가득 담았다.
여전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누군가가 자신을 응시하는 듯한 느낌은 무시할 수 없었다.
두변은 1분도 지체하지 않고 재빨리 그곳을 떠났다.
그와 동시에 우물 밑에서 괴상하고 무시무시한 눈동자 두 개가 번쩍 빛을 발했다.
두변은 가장 빠른 속도로 암장의 괴수가 있는 동굴 속으로 돌아갔다.
암장의 괴수는 여전히 미친 듯이 주위 절벽에 부딪치면서 절세보 광장은 이미 절반이 무너져 내린 상태였다.
심지어 아까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핏자국들이 늘어나 있었다. 아마 광장이 붕괴하면서 떨어진 몇몇 이가 암장의 괴수에게 무참히 물려버린 것이리라.
암장의 괴수는 두변이 나타난 걸 보자 크게 소리를 질렀다. 물론 괴수가 인간의 말을 할 줄은 몰랐지만 아마 ‘그게 해독약이냐?’ 정도이리라.
‘빨리, 빨리. 인간! 나를 빨리 치료해다오. 안 그러면 너희를 죄다 먹어치우겠다!’
두변은 손에 쥔 병을 들어올렸다. 그 안에는 오염된 우물물이 담겨 있었다.
그는 어떻게 이걸 먹여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었다. 의심이 많은 상대방이 그더러 먼저 우물물을 마셔서 독이 없다는 걸 증명해 보라고 한다면 골치가 아파지니까.
하지만 결국 두변의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그는 자신의 입장에서 괴수를 헤아렸던 것이다.
암장의 괴수는 두변이 병을 들어올린 걸 보고는 두말도 하지 않고 달려와서 큰 입을 벌려 훅 빨아들였다. 병까지 입속에 빨아들인 뒤에 힘껏 삼켜서 안에 든 우물물을 죄다 집어삼켰다.
두변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으이그, 네가 그렇게 지능이 낮으니 아무나 네 뇌에 기생물을 심었겠지!
오염된 우물물을 마신 암장의 괴수는 순간 넋이 나갔다.
잠시 후, 괴수가 하늘을 찌를 것처럼 포효했다.
“아우우! 아우우!”
괴수의 피부가 전부 터지더니 핏물이 솟구쳐 올랐다.
괴수는 심지어 서 있지도 못해서 비틀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두변이 시스템의 눈을 가동해서 보니, 괴수의 대뇌 속에 있는 주먹만 한 기생물 수십 개가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다가 끝내 전부 죽었다. 그런 뒤 아주 조그맣게 오그라든 걸 볼 수 있었다.
오염된 우물물이 역시나 대단하구나. 기생물을 전부 죽여버리다니. 물론 이 암장의 괴수의 수명도 아주 조금은 단축되었을 것이다.
일각 뒤, 암장의 괴수가 눈을 뜨며 말했다.
‘힘들긴 하지만 전보다는 낫구나. 인간, 네가 나를 살렸다.’
두변은 조금 겸연쩍었다. 자신이 괴수를 구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괴수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줬다고 한들 그것의 수명이 단축되었으니까.
암장의 괴수가 말했다.
‘네가 나를 구했으니, 너희를 놔주겠다.’
두변은 여전히 동굴 안에서 가부좌를 틀고 내상을 치료중인 대성주 부천애를 바라보았다. 재빠르게 그쪽 동굴로 올라가서 그를 짊어지고 그곳을 떠나려고 했다.
그때 암장의 괴수가 말했다.
‘인간, 기다려라!’
암장의 괴수가 입을 벌리더니 구슬 하나를 왈칵 토해냈다. 붉은색 구슬이 바닥에 떨어져 주워서 가까이 살펴보니, 그 구슬 안에 화염이 맹렬하게 활활 타고 있는 것 같았다.
두변이 물었다.
‘이게 뭐죠? 피화주(避火珠)입니까?’
꿈속 시스템이 말했다.
‘당연히 아니다. 그건 화마주(火魔珠)다. 나중에 너도 용도를 알게 될 것이다. 벽사단 못지 않는 대단한 보물이다.’
두변은 그 화마주를 챙긴 뒤, 대성주 부천애를 업고 그곳을 떠났다.
두변이 대성주 부천애를 업고 절세보로 올라오자 천둥소리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모든 이가 영웅을 바라보듯이 두변을 우러러봤다.
뜻밖에도 지하성에 새로 들어온 자가, 그것도 무공이 그렇게 약한 자가 대성주 부천애를 구했을뿐더러 격노한 괴수를 진정시키고, 절세보의 붕괴를 막았다.
사흘 뒤.
대성주 부천애가 장로회 구성원 수백 명 앞에서 두족이 정식으로 절세 지하성의 여섯 번째 부족이 되었음을 정식으로 선포했다.
두족의 족장 두변은 정식으로 절세 지하성의 여섯 번째 성주가 됐으며, 절세 지하성 대장로회의 구성원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로써 두변은 정식으로 절세 지하성의 최고 통치 계층이 되었다.
대성주 부천애는 모든 이 앞에서 두변을 향해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두변 성주, 목숨을 구해준 자네의 은혜에 감사를 표하네.”
두변이 절세 지하성에 진입한 지 열흘도 채 안 된 시기였다.
이제 최종 목표까지 한 걸음만 남았다. 절세 지하성의 주인이 되어서 수만 대군을 이끌고 뛰쳐나가서 백색성을 탈환하며, 서남 전체를 휩쓸어버리는 것이다.
마지막 한 걸음이자, 가장 어려운 한 걸음이 남았다.
이어진 며칠 동안 두변은 상대적으로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두씨 일족이 머무는 천갱 성은 두성이라고 불렸으며, 하루가 다르게 새로워져서 농작지가 조금씩 개간되었고, 우물도 새롭게 마련하고, 집도 하나둘 정리되어 갔다.
특히 두변의 성주부는 몰라보게 달라져서는, 예전의 휘황찬란함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
하지만 두변은 긴장을 풀 수 없었다. 결국 마지막 한 걸음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곳에서 안일한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대군을 이끌고 돌격해서 백색성을 탈환할 뿐 아니라, 제국의 서남부를 석권해야 했다.
필경 그는 황제가 책봉해준 백색 지부, 백색 자작, 백색 참장이 아닌가?
그밖에 또 하나의 그림자가 시종일관 두변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백여 년 전에 절세 지하성의 사공 일족은 어째서 멸족당했을까? 시스템은 그게 겁난을 대비한 제사 때문이라고 말했는데 그 제사란 대체 무엇일까?
게다가 또 한 가지, 기음음은 절세 지하성의 유성 일족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살게 된 뒤로 그녀는 도리어 자신의 신분을 필사적으로 숨겼다. 절세 지하성의 그 누구도 자신을 발견하는 걸 원치 않는 것처럼.
그러니 두변은 가벼운 마음으로 지금의 생활을 누리지도 못할뿐더러, 도리어 경계심에 가득 차 있었다.
어느 날, 기음음이 두변을 찾아와서 진지하게 말했다.
“두변, 당신은 부천애와 기천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두변이 한참을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괜찮은 것 같던데?”
“비록 내가 이곳을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정중하게 당신에게 알려줘야겠어. 그 두 사람을 믿지 마.”
두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절세 지하성에 진입한 열흘 동안 부천애와 기천은은 시종일관 그를 지지해줬다.
두변의 일족 수천 명이 절세 지하성에 들어왔을 뿐 아니라, 두변도 6대 성주 가운데 한 명으로 지위가 올랐다. 이 모든 게 부천애와 기천은 두 명이 그를 밀어준 덕이었다.
기음음이 말했다.
“절세 지하성의 젊은이들은 어쩌면 괜찮을지도 모르지. 우월감과 정의감이 가득하니까. 하지만 대장로회의 사람들은 권력을 장악한 지 수십 년이나 되어서 애초에 믿을 만한 사람들이 아니야. 어쨌든 당신은 절대로 조심해야 해. 기세처럼 권력을 장악한 적이 없는 젊은 세대는 괜찮지만…….”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 절세보에서 소식을 전하는 이가 쏜살같이 달려와서 두변의 성주부 앞에 도착해 무릎을 꿇었다.
“두 성주를 뵙습니다. 대성주께서 최고 정책 회의를 개최하니, 두 성주께서 즉시 오셔서 참가하시라고 하셨습니다.”
최고 정책 회의를 개최한다고?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소식을 전한 이는 바로 돌아갔고, 기음음이 다시 한 번 당부했다.
“내 말을 꼭 기억해.”
이윽고 두변도 야생마에 올라서 절세 지하성의 중심지인 절세보로 쏜살같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