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장: 전쟁이다!
절세 지하성 안.
두변이 물었다.
“설마 제 일족 3천 명을 전부 심연의 사지 (死地)로 끌고 가서 한 명씩 목을 벨 겁니까?”
부천애가 답했다.
“당연히 그렇게 번거로울 필요는 없겠지. 자네의 두성에서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버린 다음에 그들이 흘린 피를 최대한 빨리 신성한 우물에 흘려 넣으면 되네. 그러니 이걸 혈제대전이라고 하는 것이지.
물론 두족의 족장인 자네는 역시 우리가 직접 금지 구역인 심연에 끌고 가서 목을 베야겠지. 자네의 피를 가장 먼저 신성한 우물에 뿌려서 피의 제사를 시작할 걸세.”
“이미 병사를 두성으로 보냈습니까?”
두변이 묻자 부천애가 답했다.
“물론이지. 장장 8천 대군이야.”
“그럼 언제 대규모 살육을 벌일 겁니까?”
“달이 떠오르는 시각. 피의 제사는 시간을 따져야 하거든.”
두변이 생각해보니 오늘은 벌써 4월 15일, 보름달이 뜰 시기였다.
부천애가 말했다.
“가지, 두 성주. 좋은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되지.”
이윽고 열세 명이 두변을 이끌고 금지 구역 심연을 향해 쏜살같이 달렸다.
어둠이 드리웠다.
두변의 일족 수천 명은 종일 일을 한 터라, 일부는 이미 꿈나라로 가버렸고, 일부는 앉아서 수련을 하고 있었다.
기대, 기이는 병사들을 이끌고 순찰하면서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었다.
또 어떤 이들은 아직도 일을 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두변의 유모는 등불 아래에서 두변의 새 옷을 짓기 위해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두평아는 일하는 걸 싫어했지만 어머니의 강요로 옆에서 자수를 놓았다.
오씨 가문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유모는 묻지도 않았고, 두평아도 말한 적이 없었다.
그들 옆에는 진평의 동생과 진평의 모친이 있었다.
진쌍쌍이 섬세하면서도 야무지게 일을 잘해서, 두여낭은 그녀를 무척 좋아할 뿐 아니라 자신의 딸이 아닌 걸 안타까워할 정도였다.
진평의 모친이 말했다.
“노부인, 두변 대인이 지금 지부 대인이자 4품 관리라고 들었어요.”
두여낭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옆에 있던 기음음이 끼어들었다.
“백색 지부일 뿐 아니라 백색 참장이기도 해요. 그건 3품 무장이에요. 게다가 백색 자작이기도 하니 제국의 귀족이죠.”
진평의 모친이 물었다.
“아이고, 두변 대인이 아직 스물도 안 됐는데 그렇게 높은 관직에 올랐네요. 그럼 우리 진평도 앞으로 관리를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진평의 모친은 지금까지도 어리둥절해서 대체 얼마나 큰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광서가 함락되고, 여씨가 모반을 꾀하려 하는 것 등은 잘 알지 못한 채, 얼떨결에 두변을 따라 이 새로운 성에 도착했다.
계표표가 물었다.
“기음음, 예전에 당신들 삼남매는 어째서 절세 지하성을 떠난 거지? 이렇게 신선계와도 같은 곳이 뭐가 안 좋은 게 있다고?”
“밀폐되어 있고 활기라고는 전혀 없잖아. 우물 속에 앉아서 하늘만 보니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이지.”
기음음은 이런 화제를 좋아하지 않는 듯, 고개를 들고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물었다.
“계표표 언니는 두변 오라버니랑 어떻게 사랑을 나누는 거야? 나는 그게 몹시 이상하던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계표표와 두평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계표표는 두말하지 않고 기음음의 작은 몸을 안고서 밖으로 나가 버렸다. 기음음이 어른들 앞에서 정말 아이인 것처럼 거리낌 없이 아무 말이나 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기음음은 지금 고작 네댓 살 모습이어서 안아도 무겁지 않았다. 기음음에게 수명이 얼마나 더 남았을까? 반년? 아니면 5개월?
계표표는 마음이 괴로워졌다.
콰과광!
“적의 기습이다. 기습이야!”
기대, 기이의 순찰대가 즉시 호각을 불렀다.
계표표가 가장 먼저 달려갔다. 수련하고 있던 사람들도 검을 쥐고 달려갔고, 잠자던 사람들도 벌떡 몸을 일으켰다.
두변의 일족 4천여 명은 대낮에는 천갱의 이곳저곳에서 돌아다니며 일했지만 밤이 되면 여전히 전부 성주부에 모여 살았다.
펑, 펑, 펑.
이곳 천갱에 갑자기 구멍이 연달아 나타났다.
그런 뒤, 수많은 병사가 그 틈으로 밀려 들어왔다. 병사들 수천 명이 쏜살같이 달려가서 단시간에 천갱의 맨 아래에 도착했다. 두변의 성주부 광장에 대열을 갖추더니 성주부를 겹겹이 포위했다.
계표표가 냉랭하게 물었다.
“당신들 누구지? 어째서 갑자기 우리 두성을 포위하며 공격하는 거지?”
키가 큰 청년 장수가 앞으로 나와서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난 부홍석이라고 한다. 부족성의 소성주다.”
계표표가 냉랭하게 물었다.
“부 소성주께서 무슨 일이시죠?”
“최고 정책 회의에서 두변 성주가 짧은 첨대를 뽑았다. 허니 이번 혈제대전은 너희들 두족이 책임져야 한다.”
기음음의 안색이 순식간에 서늘해졌다.
“혈제대전이 뭐죠?”
계표표가 묻자 부홍석 소성주가 대답했다.
“바로 너희들을 전부 참수해서 피를 낸 다음에, 너희들의 피를 신성한 우물에 넣는 것이지. 그래야 날뛰는 괴수들을 진정시켜서 절세 지하성에서 백 년의 평화를 지속할 수 있거든. 너희들은 절세 지하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다. 그 희생은 장렬하고도 위대한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모든 이가 충격을 받는 사이, 계표표가 냉랭하게 물었다.
“전부라고 했나요?”
“그렇지. 일족 모두 참수해서 유명대요와 괴수들에게 피의 제사를 지내야 하거든.”
계표표가 냉혹한 얼굴로 소리쳤다.
“진형을 갖춰라! 전투 준비를 한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병사 천여 명과 청룡회의 무사 천여 명이 일제히 무기를 뽑았다. 그들은 성주부의 성벽 위로 올라가 각 성문 입구를 방어하며 전투 준비를 했다.
그에 비해 노약자 2천 명은 또다시 두려움에 떨었다. 절세 지하성에 들어왔으니 이제 안정을 찾아서 평안하게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고작 며칠도 되지 않아서 또다시 험난한 지경에 빠지고 말다니.
이 세상에는 설마 진정 무탈하게 살 장소도, 세외도원도 없단 말인가.
부홍석 소성주가 어렴풋이 하찮다는 눈빛을 드러내며 큰소리로 외쳤다.
“준비하라!”
그의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궁수 수천 명이 활시위를 당겼고, 정교하면서도 강력한 투석기가 잔뜩 펼쳐졌다.
명령만 떨어지면 두변의 성주부에 파멸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었다.
다만 이번은 정상적인 전투가 아니라 혈제대전을 위한 것이니 보름달이 떠오른 순간까지 기다린 뒤에야 살육이 가능했다.
“이 비천한 것들이 참으로 가소롭군. 정말 손쉽게 고귀한 절세 지하성에 들어와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건가? 너희들이 그럴 자격이나 있나?”
부홍석 소성주는 줄곧 두변을 보러 오지 않았고, 두변이 6대 성주로 봉해질 때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겉만 번지르르할 뿐 실질적인 권한도 없으니 가소로울 뿐이었다. 부홍석은 두변과 그의 일족을 받아들인 이유가 피의 제사를 진행하기 위한 희생물로 삼기 위함인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두변이 나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두변 같은 비천한 자가 성주라는 이름을 더럽히는 모습을 굳이 봐서 뭐에 쓸까.
모조리 참살하겠다! 너희같이 비천한 것들을 제사의 제물로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너희에게 크나큰 은혜를 베푼 것이다!
부천애 등 5대 성주와 대장로 여덟 명은 두변을 끌고서 금지 구역인 심연 입구의 성루로 들어갔다. 그리고 계단을 따라서 지하 깊숙이 들어갔다.
두변으로서는 이미 세 번째 방문이었다.
금지 구역은 여전히 몹시 조용했고, 심지어 무서울 정도로 고요했다. 이건 여명 직전의 암흑 같은 게 아니라 핵폭탄이 폭발하기 직전의 괴이한 고요함과도 같았다.
두변은 이곳의 공기가 희박해졌음을 알아차렸다. 산소를 내뿜는 이끼도 두려움이라도 느끼는 듯 완전히 쪼그라들어 있었다.
곧 금지 구역의 평평한 대에 도착했다.
놀랍게도 그 신성한 우물에서는 아무런 빛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금빛은커녕 흑록색 혼탁한 빛마저 사라져서 그저 평범한 우물에 불과했다.
그런데 대성주 부천애 등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심연과 우물이 괴수족에게 속한 것이라서 절세 지하성의 인간들은 절대 이곳에 간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인간들은 오로지 피의 제사 때에만 이 평평한 대를 밟을 수 있었다.
부천애가 평평한 대 위에 올라가서 그 신성한 우물 방향으로 허리를 굽히며 예를 올렸다.
“유명대요! 절세 지하성 대성주 부천애가 뵙기를 청하오.”
아무런 반응도 없고, 그저 부천애의 목소리만 메아리칠 뿐이었다.
“존경하는 유명대요, 인간 성주 부천애가 제물을 이끌고 뵙기를 청하오.”
그의 말투가 더 공손해졌으나 유명대요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 순간, 부천애 대성주가 바닥에 무릎 꿇었다. 그의 뒤에 있는 성주 네 명과 대장로 여덟 명 모두가 일제히 바닥에 무릎 꿇었다.
“인간들이 유명대요 각하를 뵙기를 청합니다.”
총 열네 명 가운데 두변만 서 있었다.
마침내, 신성한 우물에서 괴상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거대하면서 괴상한 형체가 아래 심연에서 천천히 떠올랐다.
이게 바로 유명대요라고?
유명대요라는 괴수는 얼핏 보면 빛으로 된 형체처럼 보여서 신체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것은 보라색 장포(長袍) 를 입었고 옷 아래에는 전부 뼈였다.
게다가 그것의 얼굴은 새하얀데 얼굴의 전체를 차지한 두 눈에서는 기괴한 화염이 불타고 있었다.
이건, 뭐라고 해야 하지?
요괴? 아니면 귀신?
무려 4, 5미터 높이로 공중에 떠 있는 것이, 거인 같다기보다는 길게 잡아 늘어뜨린 요괴 같다고나 할까.
극도로 공포스러운 데다, 극도로 강해 보였다.
이 지역은 두 세계로 나뉘는데 하나는 인간이 거주하는 천갱이고, 또 하나는 지하 심연의 괴수들의 세계였다.
유명대요는 바로 이 지하 심연, 괴수족의 수령이었다.
모든 괴수가 전부 이 유명대요의 지배하에 있다고 하니, 그것이 얼마나 강한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러니 대성주 부천애 등이 바닥에 무릎 꿇고 엎드린 것이다.
“무슨 일이냐?”
유명대요가 물었다.
그것의 목소리에 두변은 전율하면서 온몸의 솜털까지 다 빳빳이 곤두서 버렸다.
그 목소리는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 내는 목소리가 아니라, 수많은 남녀가 동시에 내는 소리와 같았다. 그것도 살아 있는 남녀가 아닌 죽어버린 남녀의 목소리. 이미 죽어버린 수백, 수천, 수만 명이 동시에 내는 목소리가 중첩되어 이 유명대요의 목소리를 만들고 있었다.
이 목소리를 한 번 듣는 것만으로도 제 혼백이 무참히 잡아당겨져서 육신에서 빠져나갈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아마 죽을 때까지 이 목소리를 절대 잊지 못하리라.
부천애 대성주가 말했다.
“유명대요, 백 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혈제대전이 또 시작되었습니다. 이번에 저희는 당신을 위해 4천여 명을 준비했습니다.”
두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조금 전까지는 3천 명이라고 하더니, 지금은 4천 명이야? 아예 우리 일족을 모조리 죽여버리려는 것이로군.
유명대요가 냉소했다.
“피의 제사? 그럴 것 없다.”
사람의 혼백을 전율케 하는 목소리에, 두변은 정말 귀를 틀어막지 못하는 게 한스러울 지경이었다.
다들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무슨 뜻이야? 피의 제사가 필요 없다고?
그럼 부천애는 공연히 악인이 된 셈이 아닌가? 공연히 추악한 얼굴을 드러낸 셈이 아닌가?
두변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왜 피의 제사가 필요 없다는 거지?
바로 그때, 유명대요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신성한 우물이 너희 때문에 오염이 되었단 말이다! 설령 피의 제사를 지낸들 그곳에 아무런 기운도 들어올 수 없으니, 애초에 날뛰는 괴수들을 진정시킬 수 없단 말이다!”
두변은 화들짝 놀랐다.
지난번에 시스템이 신성한 우물을 오염시킨 결과는 몹시 심각하다고 했는데 과연 그렇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