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4장: 구세주 두변
유명대요가 성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인간, 전쟁이다, 전쟁이야! 괴수의 날뛰는 혈맥은 대학살을 해야만 진정시킬 수 있다. 전쟁을 시작해야겠다…….”
부천애가 두변을 앞으로 힘껏 밀면서 소리쳤다.
“이놈이 신성한 우물을 오염시킨 겁니다. 이놈이 사악한 기운을 집어삼킨 후 죽었는데 다시 살아났습니다. 분명히 이자가 신성한 우물을 오염시킨 겁니다. 이자가 원흉이니, 제가 이놈을 죽여서 당신께 사죄하겠습니다.”
빌어먹을! 내가 왜 우라늄 광석에 피폭되었는데? 너희를 구하기 위해서였잖아!
하지만 부천애가 망설이지 않고 검을 뽑아서 두변의 등을 찌르려고 했다.
“전부 죽어라. 비천한 인간 같으니!”
유명대요가 성난 목소리로 포효하더니, 그것의 이마가 갑자기 갈라지면서 제3의 눈이 나타났다. 더할 나위 없이 무섭게 생긴 눈이 단혼영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솩! 솩! 솩!
순식간에 부천애 등 열세 명이 정신력 공격을 받고 말았고, 그들의 정신 영역이 갑자기 폭발하면서 그 다음에는 완전히 텅 비고 말았다.
눈 깜짝할 사이, 단혼영의 정신력 공격이 절세 지하성의 최고 통치 계층 열세 명의 혼백을 빼앗아, 그들은 이제 걸어다니는 시체가 되고 말았다.
이제, 절세 지하성의 최고 통치자 중에는 두변 한 사람만 남았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혼비백산하지도 않았을뿐더러 걸어다니는 시체로 변하지도 않았다.
두변은 급히 몸을 돌려 부천애와 기천은의 등에 손바닥을 각각 대고는 흡성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집어삼키고, 집어삼키고, 집어삼키고.
유명대요가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인간들아, 전쟁 시작이다! 괴수들아, 죽여라. 절세 지하성의 인간을 모조리 죽여버려라!”
콰과과광.
수많은 괴수가 심연에서 마구 쏟아져 나와 절세 지하성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전쟁, 아니 대학살이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두변은 여전히 흡성대법으로 부천애 등의 내력을 미친 듯이 집어삼키고, 집어삼켰다.
유명대요가 고개를 숙이더니 지옥 같은 눈빛으로 천천히 두변을 쳐다봤다.
두변은 계속 눈을 감고 내력을 집어삼키고, 또 집어삼켰다.
사실 이 두 사람의 내력이 불순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두변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두 사람의 내력은 매우 순수해서 거의 정화할 필요도 없이 곧바로 집어삼키기만 해도 되는 그런 종류였다.
물론 두변이 너무 탐욕스러워서 이렇게 중요하고 위험한 순간에 내력을 집어삼키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시스템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 눈을 감고 아무것도 상관하지 말고, 흡성대법으로 내력을 집어삼키라고.
쾅!
두변의 무도 수준이 3품 하등에서 3품 중등 무사로 돌파했다.
계속 집어삼키고, 집어삼키자!
두변의 단전이 또다시 꿈틀거리며 돌파를 준비하고 있을 때.
아우우!
갑자기 몇 마리 괴수들이 다가오더니, 대성주 부천애와 기천은 등 열세 명을 전부 갈기갈기 찢은 뒤에 깨끗이 먹어치웠다.
이어서 십여 마리의 괴수가 두변을 둘러싸고 그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더니 혓바닥을 내밀어 그의 얼굴과 몸을 핥았다.
이 괴수들은 크기가 크지 않아서 2, 3미터에 불과했다. 천산갑 같기도 하고 도마뱀 같기도 했는데, 인간보다는 강하지만 대형 괴수들보다는 훨씬 약해 보였다.
그런데 괴수들이 두변의 냄새를 맡더니 우수수 떠나갔다.
그것들이 두변에게서 동류의 냄새를 맡아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지금 두변의 혈맥은 이미 순결하지 않으니 말이다.
휙, 휙, 휙.
아주 잠깐 사이에 두변 곁에 있던 괴수들이 모조리 다른 곳으로 달려갔고, 유명대요도 사라지고 없었다.
두변이 눈을 떴을 때, 유명대요도 사라지고, 모든 괴수가 다 사라졌다. 그것들은 심연의 금지 구역에서 절세 지하성으로 달리는 중일 것이다.
그런데 유명대요도 사라지다니, 왜?
두변도 미친 듯이 달려 나갔다.
심연의 입구까지 달려와 보니 백년사요와 거대한 사자 두 마리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두변은 더 쏜살같이 두성을 향해 달려갔다.
보름달이 뜨면 부천애의 군대가 두족 사람들을 상대로 대규모 살육을 벌일 것이기 때문이다.
둥근 달이 천천히 어두운 밤하늘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부천애의 아들 부홍석의 얼굴에 흉악하고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높게 든 오른손이 곧 떨어져 내리는 순간, 군대 8천 명의 두변 일족 살육이 시작될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두변이 갑자기 달려와서는 큰소리로 외쳤다.
“멈춰!”
부홍석 소성주가 두변을 보고 경악하고 말았다.
“저 천한 두변, 네가 어째서 아직 죽지 않았지? 어떻게 죽지 않을 수가 있지?”
두변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홍석? 네 아버지는 죽었다. 다른 성주와 대장로까지 다 죽었어. 유명대요가 전쟁을 선포하고 수많은 괴수가 뛰쳐나왔다. 그것들이 절세 지하성을 공격하는 중이니, 너희 부족의 성이 가장 먼저 공격을 받을 것이다.”
부홍석이 냉랭하게 대꾸했다.
“두변, 이 비천한 개자식아. 내가 네 말을 믿을 것 같나? 너희 같은 비천한 외부인들은 애초에 절세 지하성의 백성이 될 자격이 없다. 설령 피의 제사가 없었어도 너희를 모조리 죽여버려서 절세 지하성의 혈맥을 정화해야 마땅하지.
모든 이는 명령을 들어라. 준비, 시…….”
소성주 부홍석이 미친 듯이 학살 명령을 내리려고 하는 순간, 빼어난 모습에 늠름한 자태를 가진 냉혹한 절세 미녀가 하얀 늑대를 타고서 쏜살같이 달려왔다.
냉혹한 절세 미녀가 말했다.
“부홍석, 빨리 군대를 이끌고 돌아가야 해. 괴수들이 성을 공격하는 바람에 우리 병사들이 거의 죽고, 우리 부성이 곧 함락되려고 해.”
마침내 소성주의 낯빛이 확 바뀌었다.
부홍석이 냉랭한 말투로 말했다.
“부홍빙, 기억해. 나야말로 부성의 소성주야. 너는 내게 명령할 자격이 없어. 가더라도 먼저 저 개자식 두변을 죽이고 난 뒤에 가야 한다고!”
하지만 냉혹한 절세 미녀가 곧바로 직접 명령을 내리며 소리쳤다.
“모든 부족의 군대는 부성으로 돌아간다, 지금 당장!”
그러고는 곧바로 흰 늑대를 타고 돌아갔다.
부홍석 휘하의 병사들이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한 무리씩 떠나기 시작했다. 재빨리 철수해서 부성으로 돌아가서 괴수들을 상대해야 했다.
이것만 보아도 부성에서 부홍빙의 위신을 알 수 있지 않은가.
소성주 부홍석이 격노하더니 냉랭하게 두변을 노려보며 말했다.
“천한 두변! 너는 조금만 기다려라!”
이윽고 그도 내키지 않아 하면서 그곳을 떠났다.
상황이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었다.
먼저 부족의 성이 무너졌고, 그 다음에는 도족(涂族)의 성, 서족(舒族)의 성, 임족(林族)의 성, 최후에는 기성까지 무너졌다.
5대 부족의 무사들이 용감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사실 그들은 자부심이 충만할뿐더러, 비정상적일 정도로 강했다. 괴수들을 마주하고서도 그들은 후퇴하지 않았고, 오히려 격렬하게 전투를 치러서 괴수 수백 마리를 죽였다.
하지만 절세 지하성이 영원히 함락되지 않는다는 말은 고작 외부의 적을 겨냥한 말에 불과했다.
사실 괴수들은 내부의 적이었다. 그것들은 사방팔방으로 이어진 지하 동굴들을 따라 손쉽게 모든 천갱 안을 파고들 수 있었다. 그것들은 달리는 속도가 무엇보다도 빨랐고, 이빨과 발톱이 더할 나위 없이 매서웠다. 더군다나 끊임없이 지하 동굴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괴수들이 천갱 안으로 달려들어서는 보이는 대로 인간을 학살했다.
모든 것이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터라 5대 부족은 애초에 무언가를 정비해서 전투를 벌일 겨를이 없었다.
두변의 천갱은 너무 오랫동안 황폐해져 있었고 인구도 적었기에 괴수들은 그곳을 공격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다른 천갱의 사람들과 병사들이 지하 통로를 통해 두변의 천갱으로 후퇴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사람들은 괴수들이 뜻밖에 두변의 천갱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두변만은 괴수들의 간악한 속셈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일부러 사람들을 죄다 이곳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전부 한 번에 살육하려는 속셈인 것이다.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났다.
두변의 천갱에 십여만 명이 밀려들었다.
본래 텅 비어있던 천갱이 순식간에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거의 모든 집마다 사람들이 가득 찬 데다, 심지어 폐허된 된 집에도 사람이 가득 찼다.
나머지 5대 부족의 성은 모두 함락되었고, 이미 괴수들이 들어가서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5대 부족의 전체 인구는 본래 25만 명이고, 그중 병사가 8만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 괴수들의 대학살을 거친 뒤에는 고작 17만 명만 남았고, 병사의 수는 채 5만이 되지 않았다.
마침내 이 5만 대군이 두변의 천갱에 방어진을 배치했다.
사흘간 대학살을 거친 뒤, 괴수들도 조금은 만족감을 느꼈는지 잠시 공격이 멈춘 상태였다.
하지만 곧 불길한 소식이 들려왔다. 모든 괴수가 집결하기 시작해서 점점 더 많이 모이고 있었다.
이 괴수들이 이제 곧 총공격을 가하려는 게 분명해 보였다.
두변의 성주부는 지금 5대 부족 소성주들의 거처이자 절세 지하성의 지휘 중심부가 되었다.
현재 5대 성주와 대장로 여덟 명이 전부 죽었으니, 두변이 유일한 성주이자 유일한 대장로 구성원일뿐더러, 절세 지하성의 최고 수령이 되어야 마땅했다.
그렇지만 5대 부족 소성주들은 회의를 열 때마다 두변을 아예 배제했다.
게다가 이 성주부는 두변의 소유였지만 지금 두변은 안으로 들어갈 권한도 없었고, 그의 유모 및 가족들도 모두 쫓겨났다.
5대 부족의 소성주들을 각자 상의를 하면서도 아무도 두변에게 의견을 물으러 오지 않았다.
지금 큰 적을 눈앞에 둔 상황이 아니라면 부홍석은 벌써 두변의 일족을 살육하라고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게다가 그의 부친 부천애가 수십 년간 대성주를 했었기에 지금 다른 소성주들은 본능적으로 부홍석의 말만을 따랐다. 기세 소성주는 그에 대해 조금 불만을 가졌으나 그는 세력이 미미했다.
두변은 가능한 자신의 일족들을 진정시키고, 제 병사들을 거느리면서 자신의 의무를 이행했다.
고개를 들어 천갱 성의 가장자리를 보니 괴수들의 수가 점점 더 늘어나는 것이, 곧 최후의 결전이 시작될 모양이었다.
“두변 성주, 알려주실 수 있나요? 유명대요가 어째서 반목했는지, 괴수 대군이 어째서 곧바로 절세 지하성으로 공격해 들어왔는지 말이에요.”
여인의 냉랭한 목소리가 울렸다.
두변이 뒤돌아서 바라보니 그 여인은 키가 몹시 커서 거의 190센티미터는 되어 보였다.
부홍빙, 부홍석 소성주의 누이로, 혼례를 치르지 않은 과부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사공족 성주의 손자였으나, 그 당시 살해당했다.
두변이 말했다.
“그들에게는 신성한 우물이 매우 중요했는데, 그 신성한 우물이 오염되었죠. 그래서 괴수들이 통제력을 잃고 절세 지하성을 공격하게 된 겁니다.”
“신성한 우물이 어째서 오염되었죠?”
두변이 잠시 망설이다가 답했다.
“내가 죽기 직전에 신성한 우물 속으로 추락했기 때문이죠. 그 우물물이 나를 치료해주긴 했지만, 내 몸 안의 사악한 기운을 깨끗이 몰아내줬죠. 덕분에 우물물도 오염이 되어버렸고요.”
부홍빙이 당황한 듯이 두변을 바라봤다.
“당신이 입을 다물고 있으면 아무도 그 일을 모를 텐데, 어째서 내게 알려준 거죠?”
두변은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두변, 당신이 사악한 기운에 오염된 것도 절세 지하성을 구하기 위해서였죠. 게다가 당신이 신성한 우물에 떨어진 것도 고의가 아니니, 신성한 우물이 오염된 데에는 당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어요.
원죄는 우리에게 있죠. 5대 부족이 연합해서 사공 일족을 없애지 않았다면 선지자 사공멸이 저수지에 사악한 덩어리를 던져 놓지 않았을 것이고, 신성한 우물도 당연히 오염되지 않았을 거예요.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는 법이에요. 죄는 우리에게 있고, 모든 건 당신과 무관해요.”
두변은 당황해서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부홍빙을 바라봤다.
부천애 일행의 험악함을 겪은 후라, 이렇게 정당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의외이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