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장: 열등감에 가득 찬 겁쟁이
그와 동시에 부홍빙과 기세 소성주도 무사 3천여 명을 이끌고 지진으로 인해 새로 난 통로로 미친 듯이 달렸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어 버렸다.
아우우!
포효성과 함께 수많은 괴수가 새로 갈라진 통로에서 달려나왔다. 그것들은 새까만 파도처럼 천갱 안으로 밀려들어서 십여만 평민에게로 달려들었다.
부홍빙은 순간 눈앞이 새카맣게 변하면서 혼절할 지경이었다.
부홍빙과 기세 소성주는 고통의 눈물을 흘렸다.
이 세상에 역시 기적은 없는 건가?
절세 지하성의 5대 부족이 수백 년을 생존했건만 오늘 마침내 멸망하려고 하는 것인가.
눈 깜짝할 사이에 수많은 괴수가 사람들 틈으로 달려들어서 선혈이 사방으로 튀고, 대학살이 시작되었다.
두여낭이 두평아와 진쌍쌍을 품에 안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겁내지 마라. 겁내지 마. 모든 게 빨리 지나가서 곧 아무것도 모르게 될 게다.”
두평아는 기음음을 품에 안았다. 기음음은 눈을 감고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제문(祭文)을 조용히 읊었다.
괴수 수십 마리가 흉악한 눈으로 두변의 일족들을 바라봤다. 야들야들해서 맛있을 것 같은 두평아나 기음음 등을 바라보고는 끔찍한 선혈이 묻은 앞니를 드러내고 있었다.
“멸망하려면 멸망하라지! 모든 건 하늘의 뜻이다!”
부홍빙이 처절하게 소리치고는 눈을 감아 버렸다.
바로 그때, 천갱 성의 가장 높은 곳에 거대한 형체가 나타났다. 모든 괴수의 주인, 강대한 지하 패주 유명대요였다.
다음 순간, 유명대요가 큰소리로 외쳤다.
“모든 괴수는 살육을 멈춰라!”
순식간에 모든 괴수는 정신법(定身法)에 조정이라도 된 듯 움직임을 일제히 멈췄다.
물론 ‘유명대요’의 뒤에는 두변이 그것의 목을 비틀고 서 있었다.
유명대요가 다시 소리쳤다.
“모든 괴수는 전부 철수하라!”
몇 초간 망설인 뒤, 모든 괴수가 재빨리 그곳을 떠났다. 고작 몇 초 만에 괴수들은 천갱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십여 개 출입구에서 흔적 없이 사라졌다.
부홍빙뿐 아니라, 기세 소성주까지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수많은 이가 목놓아 울었다.
기적이 또다시 일어났다. 외부에서 온 두변 성주가 또다시 절세 지하성을 구했다.
그들은 두변이 어떻게 한 건지, 도대체 어떻게 더할 나위 없이 무시무시한 유명대요를 격파하고 조정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두변이 또다시 온 성을 구했으며, 십여만 명을 목숨을 구한 것만 알면 그만이었다.
더군다나 지금 두변이 높은 곳에 서서 달빛을 받고 서 있으니, 신령이 강림해서 중생을 구원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부홍빙이 검을 땅에 꽂고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부홍빙, 두변 대성주를 뵙습니다!”
기세 소성주도 검을 땅에 꽂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기세, 두변 대성주를 뵙습니다.”
나머지 소성주 셋도 잠시 망설이다가 검을 땅에 꽂으며 똑같이 소리쳤다.
잠시 후, 몇만 대군이 검을 땅에 꽂은 뒤, 한쪽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마지막으로 절세 지하성의 백성 십여만 명이 전부 무릎 꿇으며 머리를 조아리며 소리쳤다.
“두변 대성주를 뵙습니다. 만세, 만세, 만세!”
그 순간 두변은 온몸의 모공까지 활짝 열리는 것처럼 더할 나위 없이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이 순간, 자신이 절세 지하성과 십여만 명을 철저히 손에 쥐게 된 것이다.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게 바로 권력의 맛인가. 맛좋은 술을 마신 것처럼 조금 취하게 만드는구나!
그런데 바로 그때, 두변의 목 뒤가 갑자기 서늘해졌다.
등 뒤에서 난쟁이 선지자 사공엽이 얼음장 같은 말투로 말했다.
“두변, 득의양양하겠구나. 내 수중에 지옥톱이라는 병기가 있는데 네 목에 걸고 살짝 당기기만 하며 네 목을 절단시킬 수 있다. 너는 끝내 내 손에 죽게 될 것이다. 절세 지하성의 모든 이도 내 손에 모두 죽어야 해. 나도 드디어 복수를 끝낼 수 있겠지.”
“사공엽, 당신은 위대한 술사입니다. 앞으로 당신은 내 전장에서 무시무시한 역할을 발휘할 겁니다. 내게 충성을 바치시지요!”
난쟁이 선지자가 냉랭하게 소리쳤다.
“네게 충성을 바치라고? 하하하! 너는 성화교를 아느냐? 그 사악한 덩어리는 그들이 내게 준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불타 죽으려고 했을 때도 그들이 나서서 날 구해줬다. 그들은 나더러 천재라고 하더군. 연단학과 연금학의 천재라고 말이다. 그들이 내게 충성을 바치라고 할 때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난쟁이 선지자 사공엽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성화교에 비하면 너 두변이 또 무슨 대수라고? 널 죽이기만 하면 저 유명대요가 죽든 살든 모두 너의 통제에서 벗어날 텐데? 그러면 수많은 괴수도 제어 불능이 되어서 다시 한 번 학살을 벌일 테고, 6대 부족 사람들도 모조리 죽어버리겠지.”
꿈속 시스템이 말했다.
‘반드시 사공엽을 손에 넣어야 한다. 그는 절대적인 연금술의 천재라서 끔찍한 무기들을 만들어낼 수 있고 앞으로 네게 결정적인 승리를 가져다줄 수 있다. 반드시 그를 손에 넣고, 그가 너에게 충성을 바치게 해야 한다.’
난쟁이 선지자 사공엽이 뒤틀린 얼굴로 웃었다.
“설마 또 사공멸과 사공령 일을 꺼내려고? 그들이 내 형제이기는 해도 나는 한 번도 그들을 본 적이 없다. 네가 그들과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나 어쨌든 나는 널 죽이고, 모두를 죽일 것이다.”
그의 말투에는 뼈에 사무칠 정도의 원한이 가득 담겨 있었다.
두변은 그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자는 난쟁이라서 기족이 거둬 키웠어도 줄곧 그리 좋지 않은 시선을 받았을 것이다. 게다가 절세 지하성 사람들이 다들 키가 크고 위풍당당한 모습이라서 그 점 때문이라도 난쟁이인 사공엽에게는 더욱더 열등감이 들게 만들었을 것이다. 나중에 그는 자신의 출신을 알게 되고, 사공 일족이 멸족된 이유를 알게 되면서 내심 원한이 더욱더 사무쳤을 것이다.
게다가 그에게는 미련을 가질 일이 전혀 없었다. 그의 인생은 전부 암흑 속에 있으며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그 때문에 모든 걸 파멸하고 싶은 욕구가 충만해진 것도 당연했다.
사람에게 희망이 없다면 당연히 온 세상이 자신과 함께 파멸되기를 바랄 것이다.
난쟁이 선지자 사공엽이 큰소리로 웃었다.
“이유를 못 찾겠지? 이유를 못 찾을 것이다. 하하하! 두변, 죽어라. 절세 지하성의 모든 이여, 다 죽거라. 나도 함께 따라 죽을 테니 다 같이 죽자꾸나.”
말을 끝낸 사공엽이 손에 쥔 지옥톱을 휙 잡아당겼다.
그 순간 두변은 목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새빨간 피가 솟구쳤다. 그와 동시에 목 부분에 황금빛 비늘이 갑자기 솟아올라 지옥톱이 그의 목을 무참히 절단하려는 걸 막아냈다.
난쟁이 선지자 사공엽이 경악했다.
‘이 지옥톱이 얼마나 날카로운데! 쇠사슬마저 칼로 잘린 듯이 깨끗이 절단할 수 있는데 하물며 피와 살쯤이야! 그런데 어째서 두변은 목이 잘리지 않는 거지? 이 무슨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두변이 말했다.
“사공엽, 당신은 절세 지하성의 모든 이를 죽여버리고 싶은 거죠?”
“그렇다. 모두 다 같이 죽어야 해!”
사공엽이 손에 더욱더 힘을 줬다.
“당신 딸도 그 안에 포함되는 거죠? 그 애는 올해 겨우 열여섯 살인데?”
난쟁이 선지자 사공엽이 놀라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너 무슨 헛소리야! 내겐 애초에 딸이 없어. 내게 딸이 있을 리 없다고!”
“당신은 어쩌면 17년 전의 어두운 밤을 잊었을지도 모르겠군요. 당신은 부잣집 공자들이 농가의 여인을 폭행한 후 여인에게 사악한 약을 먹이는 장면을 마주쳤죠. 당신은 드물게 선한 마음이 동해서 그 부잣집 공자들을 죽여버리고 특수한 방법을 써서 그 시체를 완전히 증발시켜버렸죠. 한데 그 농가 여인은 사악한 약에 당해서 당신과 하룻밤을 보낼 수밖에 없었죠.
내 추측이 틀리지 않다면 그건 당신이 처음으로 여인과 하룻밤을 보낸 경험일 겁니다. 그때, 당신은 나이가 꽤 많았겠지만 말이에요.”
난쟁이 선지자 사공엽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일을 이자가 어떻게 알았지?
그것은 그의 일생 동안의 유일한 아름다운 기억이었다. 또 그가 유일하게 좋은 일을 했던 순간이었다. 그는 한평생 열등감과 원한에 가득 차 있었을뿐더러, 세상을 파멸시키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날 밤, 그는 무고한 한 여인을 구했다.
두변이 말을 이었다.
“그날 밤은 아마도 당신에게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하룻밤이었을 겁니다. 당신은 천당에 오른 듯한 기분이 들었겠죠. 한데 날이 밝기도 전에 당신은 몰래 도망쳤어요. 당신은 그 농가 여인이 당신이 추하고 무섭게 생긴 난쟁이라는 걸 발견할까 봐 두려웠겠죠. 당신은 그녀 마음속에 영원히 아름다운 인상으로 남아있고 싶었겠죠.”
난쟁이 선지자는 안색이 점점 더 창백해져서는 두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넌 사람이냐, 귀신이냐? 그 일을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거늘, 네가 어떻게 아는 거지?”
난쟁이 선지자 사공엽은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두변이 말을 이었다.
“당신은 겁쟁이처럼 도망치느라 그 가련한 농가 여인이 혼인도 안 하고 아이를 기른 걸 몰랐겠죠. 여인은 자신의 부모에게 초주검이 되도록 맞았어요. 그래도 그녀가 배 속에 있는 아이를 떼어버리는 걸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에게 무참히 망신을 당했죠.
그녀는 혼자서 아이를 낳고는 구걸해가며 버텼어요. 아이의 아버지를 찾아주기 위해서요. 바로 당신이라는 겁쟁이를 말입니다. 무려 십여 년간 찾았지만 찾지 못하던 그녀는 노비로 일하다가, 나중에는 자수를 배워서 힘겹게 딸을 열일곱이 될 때까지 키웠어요. 그 여인은 이제 한쪽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고, 한 손을 절게 되었어요. 그렇게 되었는데도 그녀는 힘겹게 자수를 놓으면서 모녀가 서로를 목숨처럼 의지하며 몹시 힘겹게 살고 있어요. 여전히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요. 어느 날 아이의 아버지를 찾아서 일가족이 함께 살기를 꿈꾸면서요. 그 여인의 마음속에서 아이의 아버지는 영원히 그녀를 악당들 손에서 구해준 영웅이니까요. 만약 그가 나서서 그녀를 구해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겁탈부터 당한 뒤 살해되었을 게 뻔하니까요…….”
“그만 말해. 그만 말하라고. 너는 날 속이는 거야. 날 속이고 있어…….”
난쟁이 선지자 사공엽이 울부짖었다.
“지금 그 여인과 당신의 사랑스러운 딸도 이 사람들 틈에 있어요. 당신은 설마 그녀들까지 죽여버릴 건가요? 그 모녀가 누군지 알고 싶지 않아요?”
“아니야, 너는 날 속이고 있어. 나를 속이는 거야!”
사공엽이 큰소리로 울부짖더니 지옥톱을 버린 채 곧바로 도망쳤다.
그때처럼 그는 또다시 도망치고 말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뒤틀린 원한이 가득했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속에는 영원히 열등감에 찬 겁쟁이가 살고 있었다.
두변이 유명대요의 목을 덥석 쥐어 반쯤 비틀면서 말했다.
“모든 괴수에게 집결하라고 명령해!”
그 순간 가짜 유명대요는 급히 명령을 내렸고, 곧 모든 괴수가 집결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두변은 유명대요의 목을 움켜쥐고 앞에서 길 안내를 했다. 그 뒤에는 빼곡하게 수많은 괴수들이 뒤따라갔고, 그 뒤를 부홍빙, 기세 소성주, 계표표가 군대를 이끌고 따라왔다.
두변은 무엇을 하려고 할까. 물론 잠깐 고생하더라도 쭉 편해지려면 모든 괴수를 죽여서 절세 지하성의 사람들을 완전히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야 했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 괴수들을 이끌고 전투하는 것이 더 위풍당당하지 않겠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건 불가능했다. 이곳은 이세계의 에너지가 침입한 곳이라서 괴수들은 절대로 이 구역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변은 유명대요의 목을 움켜쥐고 괴수들을 이끌고 끝없이 앞으로 걸었다. 기나긴 통로를 가로질러서 기족의 성에 도착했다.
이곳도 쑥대밭이 되긴 마찬가지였지만 다른 부족의 성보다는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강대한 교룡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교룡이 성 밖에 있어서 성 안으로 들어올 수 없더라도 교룡의 강대한 기운이 다른 괴수들을 겁먹게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