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장: 제국이 찢어지는 순간
이렇게 내력을 옮긴 지 거의 반년이었다. 꿈속 시스템의 전 숙주가 수련한 건 전설급 내공으로, 혼백이 사라진 후에도 그가 수련한 전설급 내공은 매일 자동으로 탄현토납을 통해 진기를 몸에 가득 채웠다.
하지만 장장 반년이나 그 내력이 전부 여여해에게로 빨려들어갔고, 이제 전 숙주의 단전은 거의 텅 빈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지금의 여여해가 얼마나 고강할지는 헤아릴 수도 없지 않을까.
땡, 땡, 땡.
그때, 밖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길시(吉時)가 되었다.
여여해가 눈을 뜨는데, 두 눈에서 나오는 빛이 마치 예리한 검과도 같았다. 작년의 그에 비하면 여여해는 사람이 바뀐 것 같았다. 웅장함은 산과 같고, 패기는 용과 같아서 한 지방의 효웅에서 패주로 탈바꿈했다.
그가 갑자기 일어서자, 밀실의 공기까지 힘차게 폭발하듯이 울렸다.
움켜쥔 주먹에서 끓어오르는 힘이 느껴지는데, 심지어 별을 움켜쥐고 있는 느낌까지 들었다.
“영종오? 이연정? 계청주? 이제 너희는 하찮은 개떼에 불과하다!”
여여해가 세상 그들이 하찮다는 듯이 말했다.
설령 전성기 때의 영종오가 찾아와도 자신에게 일격필살을 당할 거라는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었다.
여여해는 곧바로 성화교 사제들의 머리를 뛰어넘어, 상체를 드러낸 채로 계단을 걸어서 대전을 나섰다.
왕궁 대전은 장엄하고 엄숙했다.
대전 아래에 있는 계단에는 예전 서남 토사 수십 명, 장군 수백 명, 문관 수백 명이 서 있었다.
대전 아래 광장에는 장병 수만 명이 붉은색 갑옷을 입고 화염 깃발을 든 채 빼곡하게 서 있었다.
왕궁 밖에는 평민 십만 명이 서 있었다.
여여해는 그렇게 상반신을 드러낸 채, 왕궁의 가장 높은 계단에 나타났다.
“우리의 대왕을 뵙습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
토사 수십 명, 장군 수백 명, 문관 수백 명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그런 뒤 모든 토사와 문무백관이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한 줄씩 연달아 머리를 조아리며 엎드렸다.
환관들은 여여해가 불꽃색 왕포를 입는 걸 시중들었다. 왕포에는 불꽃색 용 여덟 마리가 수놓여 있었다. 대녕 제국의 황제가 입는 용포에는 아홉 용이 수 놓여 있으니, 딱 한 마리만 모자란 셈이었다.
이어서 성화교의 대사제가 그에게 불꽃색 구슬이 박힌 황금 왕관을 씌워졌다.
여여해는 패주 등급의 대단한 무도 대종사에서 일국의 왕이 되었다.
왼손에는 보검을 들고, 옆에 있는 성화교 대사제가 한쪽 무릎을 꿇고 양손으로 불꽃색 인장 하나를 받쳐 들었다. 그건 대염 왕국의 최고 권력을 의미했다.
정예 병사 수만 명이 질서정연하게 무릎 꿇고서 큰소리로 외쳤다.
“대왕을 뵙습니다. 만세, 만세, 만세!”
이어서 각국의 사자들, 무려 수십 개 국가의 사자들이 앞으로 나와서 한쪽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외신(外臣), 안남 국왕 완천성 폐하를 대신해서 대염 왕국의 국왕 폐하의 즉위를 경하드리러 왔습니다.”
완천성은 바로 안남 왕국의 반동강이 난 강산의 또 한쪽을 점령한 반왕이었다. 그가 가장 먼저 여여해의 대염 왕국과 외교 관계를 맺었다.
“외신, 면전왕의 사자가 대염 왕국 국왕의 즉위를 경하드리옵니다.”
“외신, 대월 왕국의 사자가 대염 왕국 국왕의 즉위를 경하드립니다.”
“외신, 동영 제국의 사자가 대염 왕국 국왕의 즉위를 경하드립니다.”
그 장면은 원숭이가 사람 흉내를 내듯 엉성하지 않았다.
여여해가 왕국을 세우고 즉위를 하는 행사에 사자를 파견해 참가한 나라들은 다 보잘것없는 소국이 아니었고, 무려 서른아홉 개 나라가 참가했다.
지금, 대녕 제국이 큰일을 치르더라도 이렇게 많은 국가의 사신을 불러오지는 못할 것이다.
대환관 하나가 조서(詔書) 한 부를 올렸다.
대염 왕국이 천하에 알리는 첫 번째 조서인 셈이었다.
조서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대녕 제국이 어질지 못한 까닭에 백성들이 처참한 고통을 당하는구나.
여여해는 나라와 백성들을 근심한 나머지,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 대염 왕국을 건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군신들이 서로 죽겠다고 압박하는 통해 왕에 등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가 왕으로 칭하게 된 건 절대로 개인의 권세를 위해서가 아니라 천하의 창생(蒼生)을 위해서노라.’
이 조서는 문필로 보든 기세로 보든 대단히 잘 쓰인 문장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여여해는 조서를 슬쩍 보더니 경멸하듯이 그 조서를 한쪽에 던져 버렸다.
‘뭘 이렇게 겉치레를 떨어대는 거냐? 다 문인들의 수법이니 들어줄 수가 없군!’
여여해는 내력을 운용해서 호랑이가 포효하듯 목소리를 냈다.
“과인이 선포하노라. 대염 왕국이 정식으로 성립되었다!”
군신들이 놀라서는 즉시 무릎을 꿇었다.
“폐하, 만세, 만세, 만세!”
수만 대군도 큰소리로 외쳤다.
“폐하, 만세, 만세, 만세!”
밖에서는 백성 십만 명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서 하늘이 울리도록 소리쳤다.
“폐하 만세, 만세, 만세!”
“여언, 이도전!”
여여해가 불렀다.
여언은 여여해의 세 번째 아들로, 계왕의 이강 군주를 아내로 맞아들이려 한 자였다. 바로 이 사람이 군중 앞에서 광서 동창 진무사 이옥당을 참살했다.
그는 여여해와 생김새가 제법 비슷했지만 얼굴이 좁아서 좀더 음험해 보였다.
“아신(兒臣: 아들이 신하로서 자신을 부르는 호칭), 여기 있습니다!”
“신, 여기 있습니다!”
이도전도 대염 왕국의 고위 무장으로 변신했다.
대염 국왕 여여해가 엄숙한 말투로 말했다.
“현재 광서 유주부 서쪽은 모두 우리 대염 왕국이 장악하고 있다. 한데 어째서 백색부는 여전히 대녕 제국의 늙은 환관 놈인 이문회 수중에 있는 것이냐?”
여언이 대답했다.
“아신, 이옥당의 목을 벨 수 있었으니 당연히 이문회의 수급도 벨 수 있습니다. 아신, 1만 대군을 이끌고 백색성을 함락시킬뿐더러, 이문회를 참살하고, 옥진 군주를 산 채로 사로잡겠습니다.”
원 천도회주 이도전이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신, 삼공자를 보좌해서 백색성을 탈환하고, 이문회를 참살하겠습니다.”
대염 국왕 여여해가 말했다.
“과인, 지의(旨意)를 내리겠노라. 백색성을 전부 도살해서 한 사람도 살려두지 말아라. 풀 한 포기, 나무 하나도 남겨두지 말아야 한다!”
“아신, 명을 받들겠습니다!”
“신, 명을 받들겠나이다!”
그런 뒤, 갑옷 차림의 여언이 호부(護符)를 받고 물러났다. 그는 왕궁을 나와서 1만 대군을 이끌고, 백색성으로 돌진했다.
하지만 그때 백색성은 이미 3만 대군에게 겹겹이 포위당했으니, 모두 합쳐서 4만 대군이 백색성에 있는 이문회의 수천 명을 공격하는 셈이었다.
“목국공(穆國公) 여여룡은 어디에 있나?”
여여해가 묻자 여여룡이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신제(臣弟: 아우가 신하로서의 자신을 지칭하는 말), 여기 있습니다.”
여여해가 말했다.
“너에게 명을 내리겠다. 3만 대군을 이끌고 안륭 토사부를 공격해서 안륭 저씨를 모조리 죽여버려라!”
여여룡이 머리를 조아리며 고했다.
“신제,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윽고 그도 호부를 받고서 왕궁을 떠났다.
“검국공(黔国公) 여여호, 천남공(天南公) 사륭석.”
여여호와 전 사륭 토사 사륭석이 앞으로 나와서,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신, 여깄습니다.”
여여해가 말했다.
“너희 두 사람은 주력 10만 대군을 이끌고, 운남으로 북상해서 태자를 보좌하라. 반드시 한 달 안에 곤명부를 함락시키고, 두 달 안에 운남성 전역을 함락시켜야 한다.”
“신,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윽고 두 사람은 호부를 받고 왕궁을 물러났다.
이어서 염국 왕궁은 대규모 책봉 의식을 진행했다. 서남 토사 연맹의 모든 토사가 공작이나 후작에 책봉되었다.
여여해의 모든 아들이 국공(國公)에 책봉되었다.
이도전도 후작에 책봉되었으며, 여여해의 여동생, 홍하상회의 주인 여여지는 대장공주(大長公主)에, 여완완은 장공주에 책봉되었다.
적자 여담은 왕태자에 책봉되었다.
이도전과 여여지의 딸 이능어는 군주에 책봉되었다.
그와 동시에, 대군이 우렁차게 함성을 질렀다.
여언과 이도전은 1만 대군을 이끌고, 백색성을 포위하고 있는 3만 군대와 합류해서 백색성을 함락시키고 이문회를 멸한다!
여여룡은 3만 대군을 이끌고 대녕 제국에게 가장 충성을 바치는 토사인 안륭 토사부를 공격한다!
여여호, 사륭석은 10만 대군을 이끌고 북상해서 운남성 변경으로 간 후, 왕태자가 군대에 합류하는 걸 기다린 뒤에 즉시 운남으로 쳐들어간다!
여씨의 대염 왕국은 오늘 건국되자마자 거의 20만 대군을 맹렬하게 돌격시켰다.
천하가 뒤흔들리고, 제국이 찢어지는 순간이었다.
절세 지하성 안.
모든 이가 다 바쁘게 움직이면서 평민들은 옷과 갑옷, 식량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일이면 대군이 이곳을 떠나서 백색성을 되찾으려 갈 것이다.
군대는 여러 가지 물자를 준비하는데, 특히 두 가지 물자를 신경 써서 준비했다.
첫 번째, 금지 구역 심연에 있는 오염된 우물물을 전부 나무통에 담아 운반할 예정이었다.
이건 시스템이 시킨 일이었다. 두변으로서는 이 신성한 우물물이 무슨 용도로 쓰일지 알지 못했다. 이 우물물이 이미 오염된 건 맞지만 방사능은 남아 있지 않았다.
꿈속 시스템은 이게 최고로 귀중한 연금술 재료라며 앞으로 이것으로 대단히 무시무시한 걸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그에 따라 난쟁이 선지자 사공엽의 중요성도 커졌다. 그는 선지자 점술사가 아니라 천재 연금술사였다.
두 번째는 절세 지하성 대문 입구에 있는 괴수의 우물 속의 녹색 액체였다. 모든 걸 부식시킬 수 있는 독 액체 말이다.
그 녹색 독 액체는 천년 교룡의 소유라서 두변이 전부 가져갈 수는 없지만 절반 정도는 가져갈 수 있었다.
하지만 절반도 몹시 많은 양이라서 족히 만 근이 넘었다.
어느 낡고 허름한 민가 안에서 얼굴이 망가진 여인 하나가 실을 뽑고 있었다. 그녀 곁에는 열여섯, 열일곱 밖에 안 된 청초하고 영리해 보이는 소녀가 앉아있었다.
생활이 몹시 어려웠지만 소녀는 손놀림이 몹시 기민한데, 손에 든 자수를 한 시진도 넘게 들고서도 여전히 한쪽 모퉁이만 완성한 채였다. 소녀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머릿속으로 무엇인가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얼굴이 망가진 데다 눈까지 먼 여인이 기침을 하자, 그 소녀는 몸을 흠칫 떨고는 예쁜 얼굴로 어머니를 향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열심히 자수를 두었지만 그 시각은 절대로 일각이 넘지 않았다.
난쟁이 선지자 사공엽은 어두운 곳에서 몸을 숨기고 그 모녀를 바라봤다.
그렇다. 그의 딸이었다. 더군다나 정상적으로 태어난 딸, 키가 크고 몹시 예쁘게 생긴 딸이었다. 하지만 눈과 코 등에서 자신의 핏줄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사공엽은 온몸을 덜덜 떨면서 눈물을 참지 못했다.
“누구야?”
열일곱 소녀가 경계하며 바로 달려나오는 순간, 사공엽은 순식간에 줄행랑을 쳤다
소녀는 그의 작은 뒷모습을 보고는 그가 아이라고 생각했는지 다정한 목소리로 불렀다.
“어이, 도망치지 마. 누나한테 먹을 게 있어!”
딸의 애교 섞인 목소리에 사공엽은 딸이 자신의 진짜 모습이라도 볼까 봐 재빨리 도망쳤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다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내일 날이 밝으면 두변은 대군을 이끌고 이곳을 떠나서 광서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오늘 저녁, 두변은 유모, 두평아 누이와 함께 있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사공엽이 대문 입구에 나타났다. 계표표는 이미 두변의 뒤에서 검을 절반쯤 뽑았다.
“두변, 내 충성을 바라느냐? 그럼 나를 따라와라.”
그러더니 사공엽이 성주부의 깊숙한 곳으로 걸어갔다.
두변이 거주하는 이곳 성주부는 예전에 사공 일족의 성주부였으니, 사공엽의 집이기도 한 셈이었다.
“대인!”
계표표가 가지 말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두변이 사공엽의 뒤를 따르자, 계표표가 무사 수십 명을 데리고 따라붙었다.
사공엽이 냉소하며 말했다.
“나를 믿지 않으면 오지 않으면 그만이지, 꼬리를 수십 개 데리고 오겠다고?”
두변이 계표표 등에게 손을 흔들며 돌아가라고 했지만 계표표가 여전히 만류했다.
“내가 알아서 할게요.”
이윽고 두변은 혼자서 사공엽을 따라 계속 성주부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