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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무제-341화 (341/648)

341장: 그럴 리 없어!

3만 5천 대군이 진형을 펼치자 끝도 없이 이어졌다.

아침 태양이 천천히 떠올라서 태양빛이 대군의 갑옷들을 비추면서 눈부시게 번쩍였다.

평민 10여만 명이 대군을 전송하러 전부 나왔고, 절세 지하성의 수문 대령 기천농이 두변 앞에 무릎을 꿇고 술 한잔을 바쳤다.

두변이 절세 지하성에 들어올 때 문을 열어준 이도 그였고, 두변이 처음으로 만난 사람도 그였다.

“대령, 우리가 떠난 뒤에 절세 지하성의 백성 10여만 명은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두변이 말하자 수문 대령 기천농이 답했다.

“속하, 전력을 다해서 대성주를 위해 이곳을 지키겠습니다. 대성주의 이번 출정이 교룡이 바다를 나서고, 구름을 뒤집어 비를 내리며, 천하를 전율하게 만드는 여정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두변은 술을 받아서 단숨에 마셔버렸다.

기천농이 3만 5천 대군을 바라보며 말했다.

“절세 지하성의 아들들아, 너희는 바깥세상에 가본 적이 없으니 유성 일족을 망신시키지 말거라.”

두변은 야생마에 올라서 떠오르는 아침 태양을 바라보며 힘차게 손을 휘둘렀다.

“대군은 이동한다. 출발하라!”

쿠구궁.

3만 5천 대군이 질서정연하게 발걸음을 내디디며 광장을 떠나 광활한 도로를 따라 빙 위로 올라가서 절세 지하성을 떠났다.

역시 최정예 부대다웠다. 3만 5천 명이 행군하는데 여전히 질서정연할뿐더러, 심지어 내딛는 걸음도 거의 일치했다.

쿠구궁.

절세 지하성의 수십 미터 높이의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

아우우!

천년 교룡이 힘차게 포효한 뒤에 백 미터나 되는 몸을 빼고 나와서 위엄이 있으면서도 다정한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봤다.

교룡이 대단히 강한 괴수임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괴수족이 절세 지하성을 공격할 때, 교룡은 성문 너머에서 포효하며 괴수들을 겁먹게 해서 물러나게 하는 일밖에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구두사신처럼 온몸이 땅 밑에 박혀 있어서 자기 구역 이외에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수백 년도 더 전에 그것이 아직 약할 때 절세 지하성의 선조가 이 괴수를 구해준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이 괴수는 절세 지하성을 지키는 용신(龍神)이 되었으니, 절세 지하성을 방비하는 신수인 셈이었다.

천년 교룡이 말했다.

“수백 년이 지나서 마침내 진정한 대성주가 나타났구나. 이틀 전에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나도 환상을 버렸다. 대지의 분열은 반드시 올 테고, 내 몸은 땅 밑에 박혀 있으니 앞으로 대지의 분열을 피할 수 없다.”

두변은 괴수의 눈을 바라볼 뿐 위로의 말을 하지는 않았다.

대지가 분열되면 수많은 괴수가 그 순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온몸이 지하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괴수라면 더 그러하리라.

천년 교룡이 말했다.

“나는 최후의 탈바꿈을 진행 중이다. 만약 성공한다면 이 구역을 벗어날 수 있을 테고, 실패한다면 8년 뒤 대분열 때 죽겠지. 그러니 시간을 내서 한번 돌아와라. 만약 내가 실패하면 그저 공연히 대지의 분열 때 죽고 싶지 않다. 너에게 줄 물건도 있고. 어쨌든 너는 절반쯤은 내 동류인 셈이니까.”

교룡은 두변의 몸에서 저와 마찬가지인 교룡 혈맥의 냄새를 맡았다. 다만 저번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그 기운이 더욱더 분명해졌을뿐더러 신비로워졌다.

두변이 대답했다.

“알겠다. 또 보자.”

“대성주, 몸조심해라!”

천년 교룡은 말을 마친 뒤 제 큰 머리를 구부려 두변의 이마에 살짝 댔다. 그리고는 땅 밑으로 파고 들어가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계속 전진한다!”

지난번에 두변 일행이 백색성에서 절세 지하성에 도착하기까지 대략 열이레가 걸렸다.

하지만 이번에 3만 5천 대군을 이끌고 백색성으로 향하는 데에는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군대의 규모도 몇 배나 커졌지만, 마차 천 수레에 실린 물자들까지 있었다.

수백 리에 달하는 지혈 통로를 빠져나가야 할뿐더러, 수백 리 이상이나 되는 원시 삼림도 빠져나가야 했다.

두변의 최정예 군대는 교룡처럼 길게 늘어서서 매섭게 땅속을 뚫고 지상으로 나왔다.

시간이 하루하루 지나갔다.

하루, 사흘, 닷새, 열흘, 열사흘, 열이레…….

그 십여 일간 제국 서남부의 국면에 놀라운 변화가 발생했다.

우선 여씨와 방계 집단은 진작 광서성을 분할하여 동쪽 6부(府)는 방계 집단에게, 서쪽 6부는 여씨에게 귀속되었다.

여여해가 건국해서 왕으로 자칭한 지 고작 이레 만에 광서성 서쪽의 6부와 45현에서 전부 깃발을 바꿔 걸었다.

병사 한 명도 저항하는 이 없었고, 모든 관원이 순순히 투항했다. 여여해의 대군은 막힘없이 여섯 개의 부를 접수한 셈이었다.

여씨 왕국의 주된 공격 방향은 북쪽으로, 왕태자 여담이 직접 원수 자리에 오르고, 여여호와 사륭석은 각각 부원수가 되었다. 10만 주력 대군이 대녕 제국의 요충지, 운남성의 수부(首府) 곤명을 곧바로 공격했다.

여여해는 지의를 내려 한 달 안에 곤명부를 함락할 것을 요구했고, 그 결과 고작 열흘 만에 곤명부가 함락되었다.

그러자 운남성의 남부 5부와 37개 현이 전부 투항했다. 여담의 10만 대군은 파죽지세로 계속 북상했다.

대군이 지나간 곳마다 대녕 제국의 주부(州府) 관원들은 소문만 듣고도 간담이 서늘해져서 일제히 성문을 열고 투항했으며 저항하는 일이 없었다.

대염 왕국의 국공 여여룡은 3만 대군을 이끌고 제국의 가장 충성스러운 토사인 안륭 토사부를 공격했다.

안륭 토사부의 낭군은 대녕 제국에서 가장 잘 싸우는 군대였다. 하지만 주력 낭군은 이미 저홍면 장군과 함께 안남 왕국으로 동원되어서 남아 있는 저홍엽 장군의 수중에는 고작 5천 명의 노쇠한 장병들밖에 없었다.

저홍엽 장군은 노쇠한 병사 5천을 이끌고 여여룡의 3만 대군에 대항해서 닷새 밤낮이나 격전을 벌였다.

덕분에 여여룡의 3만 대군은 3분의 1을 잃었으나 저홍엽 장군의 군대는 전멸하다시피 했을뿐더러, 본인도 생사를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

전투가 개시된 지 열나흘 뒤, 안륭 토사부는 함락되었다.

짧디짧은 보름 만에 여여해의 대염 왕국은 영토가 두 배나 확장되었다. 광서성의 절반과 운남성의 태반, 귀주성의 3분의 1, 서남 토사 연맹과 안륭 토사부까지.

왕국의 면적은 단숨에 37만 제곱킬로미터가 넘었을 뿐 아니라, 통치하는 인구는 2천만 명이 넘었고, 투항하는 곳의 후방 군대만 해도 10만 명이 넘었다.

대녕 제국의 후방 수비군은 처음에는 적군의 모습을 본 뒤에야 투항했는데, 나중에는 여여해의 대군이 아직 수백 리 거리에 떨어져 있는데도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듯이 투항하기 시작했다. 종국에는 여여룡의 대군이 아직 안륭 토사부에 있는데도 멀리 수백 리 밖에서 대녕 제국의 장수가 자진해서 항복하러 찾아오기까지 했다.

여여룡도 이 상황에 완전히 어리둥절해졌다.

‘이 몸이 함락시킨 건 안륭 토사부이건만 어떻게 귀주성에 있는 주와 부까지 내가 함락시킨 곳이 된 거지? 내가 이곳에서 움직이지 않고서도 왕국의 국토 8백 리를 개척한 거야? 내가 그렇게 대단해?’

대녕 제국의 관원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끝없이 투항했다.

대녕 제국에 강직한 장군이 없어서가 아니라 모든 정예군은 진남공이 차출해갔기 때문이었다. 남은 건 전부 후방 군대와 최후방 지방 수비군이라서 극도로 부패한 군대인 데다 전투력이랄 게 전혀 없었다.

이들 주부의 문관들은 사직 후 떠남으로써 여씨의 대염 왕국에 충성을 바치려 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후방과 최후방 수비군의 장수들은 전부 여씨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들이 보기에 이건 부귀영화를 얻을 수 있는 대단한 기회였다.

광서성의 서반부가 완전히 함락당했을 때, 오주의 계왕부에서도 극도로 터무니없고 몰염치한 일이 발생했다.

이른바 토박이 불량배라고 하는 이들이 장장 수백 명이나 계왕부에 달려들어서는 대규모로 약탈을 하고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 일까지 일어났다.

계왕이 최후로 남은 기병 6백 명을 두변에게 넘겨준 탓에 왕부를 지키는 무사는 고작 수십 명뿐이었다. 그들만으로 조직적인 토박이 불량배들을 막을 수 없었으니, 왕부 태반이 불에 탔을 뿐 아니라, 왕부 안에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은 전부 약탈당했으며 수십 명이나 살해당했다.

광서 순무 두강 대인은 그 일을 듣자 완전히 격노하여 즉시 주둔군에게 명령을 내려서 계왕부를 약탈하고 불 지른 주모자를 체포했다.

그런 뒤 순무 두강과 광서 제독 원천조는 직접 계왕부를 찾아서 사죄하며 위문을 청했다.

계왕은 두 다리가 부러지고 양손의 근맥까지 망가져서 두 달이나 침상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는 지금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위어 있었다.

“소관, 왕야를 놀라게 만든 죄를 지었습니다.”

순무 두강이 허리를 굽히며 사죄의 말을 했다.

계왕이 두강을 바라보며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했다.

“두강, 자네는 묻힐 곳도 없이 죽을 것이네.”

그 말을 듣고 순무 두강이 고개를 들고 계왕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계왕 전하, 소관은 이번에 보고를 하러 온 겁니다. 첫 번째, 여여해가 나라를 세우고 왕을 자처했습니다. 광서 서쪽의 6부가 전부 함락되었습니다. 안륭 토사부가 함락되었고, 운남성의 태반이 전투를 치르기도 전에 투항했습니다. 귀주성의 남부 여러 부도 전부 싸우기도 전에 투항했습니다. 석 달도 안 돼서 제국의 서남쪽 다섯 행성이 전부 함락되었습니다.”

광서 제독 원천조가 말했다.

“계왕 전하께서는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두변이 당신들에게 준 황금 40만 냥을 누가 뺏어갔는지 말입니다. 그건 제가 뺏은 겁니다. 엄당, 계왕부, 진남공의 황금을 지키던 정예 병사 5천 명도 제가 군대를 이끌고 모조리 죽여버린 겁니다. 당신의 두 다리는 해외 자객이 절단한 게 아니라 제가 한 겁니다. 광서 엄당을 모조리 죽여버린 사람도 접니다!”

광서 순무 두강이 말했다.

“장양명도 제가 사람을 시켜 죽게 만든 겁니다.”

계왕은 얼굴이 완전히 흉악하게 변해서는 쉰 소리로 소리쳤다.

“너희는 다 갈기갈기 찢겨 죽을 것이다!”

광서 순무 두강이 말했다.

“당신은 아직도 희망을 두변 그 환관 놈에게 걸고 있는 겁니까? 마지막 기병 6백 명을 그에게 넘겼고요? 그는 이미 도망쳤습니다. 그자는 완전히 겁쟁이인데 당신들은 희망을 그자에게 걸다니요. 대단히 가소로운 일입니다!”

“그럴 리 없다. 절대로 그럴 리 없어…….”

계왕이 온몸을 일으키려 안간힘을 썼다.

광서 순무는 냉소를 한 번 하고 말 뿐, 추호도 논쟁을 벌일 생각이 없었다. 두변이 도망친 건 절대적인 사실이니까.

광서 제독 원천조가 말했다.

“또 당신의 친우 이문회, 그 멍청한 놈은 안남 왕국에서 가만히 있지 않고 군대 7천여 명을 이끌고 북상해서 백색성에 주둔했더군요. 의자 두변을 구하러 왔는데 뜻밖에 그 환관 놈은 도망쳐버린 거지요. 그자는 제 의부를 무참히 함정에 빠뜨린 셈입니다. 이문회는 저 죽음의 성에 남아서 지키고 있습니다.”

두강이 말했다.

“이문회가 정말이지 대단하지 않습니까. 고작 7천여 대군을 믿고서 여언과 이도전의 4만 대군에 무려 열흘 넘게 저항하다니요.”

원천조가 말했다.

“허나 지금 이문회는 병력이 소진되고 식량이 끊겼으니 전멸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는 곧 죽거나 이미 죽었겠지요. 또 옥진 군주, 이 제국이 자랑하는 보배는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하거나, 여씨 수중에서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삶을 살겠지요. 계왕 전하께서는 광서의 번왕이십니다. 현재 광서성이 전부 함락되었는데 당신은 또 무슨 면목으로 살아계십니까?”

두강이 말했다.

“계왕 전하, 몇 달 전에 당신이 제 노여움을 사지 않았습니까? 저는 보복한다고 말한 이상, 반드시 보복합니다. 어젯밤, 토박이 불량배 수백 명이 당신의 왕부에 와서 약탈하고 불을 질렀는데 왕비께서는 놀라지 않으셨는지요? 소관, 가능한 빨리 그 도적들을 체포해서 사건을 심리할 겁니다. 그렇지 않고 그들이 또다시 약탈하러 오면 왕비께서…… 기겁하게 되실까 봐 걱정이 되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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