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장: 광풍처럼 세차게!
그건 위협이었다! 다음번에 왕부에 쳐들어오면 왕비를 더럽힐지도 모른다는 무참한 위협이었다.
원천조가 냉랭하게 말했다.
“계왕 전하, 당신의 대녕 제국은 멸망할 겁니다.”
그런 뒤 두 수장이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올렸다.
“소관,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반 시진 뒤.
계왕부에서 왕비의 고통스러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계왕, 제국의 현왕이 세상과 작별을 고한 것이다. 그는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걸 선택했다.
죽기 전, 계왕은 계속해서 세 사람을 불렀다고 한다.
폐하! 문회! 두변……!
백색성.
이곳은 곳곳이 핏자국에 시체들이 즐비할뿐더러, 사방이 벌건 화염과 짙은 연기로 가득했다.
본래 새것 같던 성벽은 이제 격전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이문회와 옥진 군주는 수비군 7천여 명을 이끌고 여언, 이도전의 4만 대군과 장장 열나흘이나 격전을 치렀다.
그 열나흘간 이문회는 쉬지도, 자지도 않았다. 그는 열 살 이상 늙어 보일 뿐 아니라 20근이나 야윈 상태였다. 본래 새까맣던 머리카락은 태반은 하얗게 셌고, 온몸 곳곳이 상처투성이에다 피투성이였다.
옥진 군주도 완전히 초췌해져서는 뼈만 남을 정도로 앙상했다.
7천 명이 4만 명과 대적해서 장장 열나흘이나 격전을 치렀고, 이제 마침내 막다른 길에 다다르고 말았다.
7천 대군이 2할도 안 되는 인원만 살아남았는데 살아남은 천여 명도 각자 부상이 심했다.
더군다나 식량도 없고 병기까지 부러졌다. 모든 화살을 다 썼을뿐더러 굴릴 수 있는 나무란 나무는 다 굴렸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까지 다 썼다.
여언과 이도전의 대군에서도 사상자가 만 명이 넘었다. 하지만 그들은 휴식을 취하며 군을 정비하면서 보급품을 채웠다. 밖에는 이미 2만 대군이 대형을 갖추고 마지막 공격을 나가기 전이었다.
화염과 연기가 가득한 성벽을 바라보며 여여해의 셋째 아들 여언이 이를 갈며 말했다.
“이문회 저 늙은 환관이 저렇게 대단할지 누가 알았겠어. 곤명부도 함락되었고, 안륭성도 함락되었는데 이 백색성만 여전히 함락하지 못하다니. 더군다나 우리에게 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내게 하고 말이지.”
이도전이 말했다.
“곧 저곳도 먹을 수 있을 겁니다. 삼공자가 분을 삭이기 어렵다면 잠시 후에 이문회를 능지처참에 처하면 그만입니다.”
여언이 삐뚜름하게 물었다.
“그럼 옥진 군주는? 그 여인은 내 큰형이 갖겠다고 지명한 여인인데?”
“삼공자께서 질릴 때까지 가지고 논 뒤 죽여버리면 아무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좋지. 최근 열흘 이상 격전을 치르느라 옥진 같은 절세미녀의 몸에서도 안 좋은 냄새가 풍기겠지. 하지만 나는 그런 냄새가 너무 좋거든. 반드시 그 여인을 죽도록 가지고 놀아야겠어.”
말을 끝낸 뒤, 여언이 갑자기 머리통 하나를 꺼냈다.
그건 이문회의 의형이자 광서 동창 진무사 이옥당의 수급이었다. 그가 직접 벤 뒤에 석회에 담가 놓았다.
여언이 큰소리로 외쳤다.
“이문회, 보았느냐? 이건 너의 의형이다. 너도 곧 저승에 내려가 그의 동료가 될 것이다. 한데 내가 네 두개골로 요강을 만들 거거든? 넌 영원히 그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하하하!”
말을 끝내고 여언은 힘차게 검을 뽑으며 소리쳤다.
“성을 공격해서 대녕 제국의 개들을 모조리 죽여버려라. 도살하라!”
“저 성을 함락시키고 모두를 도살하라!”
“도살하라!”
여씨의 2만 대군은 사나운 야수처럼 미친 듯이 황폐하기 그지없는 백색성으로 돌진했다.
성벽 위, 이문회는 파도처럼 밀려드는 적군 2만 명을 바라본 뒤, 다시 성벽 위에 있는 잔병 천여 명을 바라봤다. 아군에게는 온전한 검 한 자루조차 없었고, 모든 이의 몸이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이문회가 말했다.
“옥진 군주께서는 가십시오.”
“성을 포기하고 떠나라고요? 그리하면 선조께서 나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군주께서 여씨 수중에 떨어지면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처지가 될 겁니다.”
“문회 공, 걱정 말아요. 성이 함락되는 순간 바로 나도 죽을 테니까.”
“그럼 좋습니다. 저승길에 우리 둘이 벗이 되면 되겠군요.”
후두두두둑.
여씨 대군 쪽에서 화살 비를 퍼붓자, 이문회 곁에 있던 천여 명의 병사가 줄줄이 쓰러졌다.
그런 뒤, 수없이 많은 공성용 사다리가 성벽에 걸쳐지고, 적군이 개미 떼처럼 기어 올라왔다.
이제 더 이상 나무 조각 하나, 돌덩이 하나도 없으니 적군을 막지 못하고 함락될 것이다.
성이 함락되는 순간, 성안의 모든 이가 도살당할 뿐 아니라, 이문회와 옥진 군주의 시신은 두려운 겁난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문회는 이가 나간 검을 쥐며 하늘을 바라봤다.
“두변, 내 아들아. 이 아비가 더는 너를 기다리지 못하겠구나. 하지만 하늘에서 나는 반드시 너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뒤 이문회가 옥진 군주에게 말했다.
“옥진 군주, 제국을 위해 충성을 다할 준비를 하시지요.”
옥진 군주가 힘차게 검을 뽑으며 말했다.
“문회 공을 따르겠습니다!”
여씨의 군대가 밀물처럼 성벽 위로 밀려 올라왔다.
여언이 흉악하게 미소지었다.
“성을 함락시키고 모든 이를 도살하라!
이문회를 능지처참해라!
옥진 군주는 죽이지 말아라! 설령 그녀가 자진하더라도 온전한 시신을 남기거라! 내가 사용해야 하니 말이다. 하하하하!”
“이문회, 이 늙은 환관아, 죽거라!”
“옥진 군주, 설령 네가 죽어도 나는 널 놓아주지 않겠다!”
“하하하!”
그런데 바로 그때.
대지가 갑자기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여언이 놀라 뒤돌아 바라보니 남쪽 하늘가에 검은 선 한 줄이 나타났다.
거대한 하얀 늑대 수백 마리가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 가운데 누군가 푸른빛 검을 손에 쥐고 은빛 장포를 입고 있었다.
그의 뒤에서 기병 수천 명이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수천 명의 기병이 격렬한 광풍처럼 세차게 밀려들고 있었다.
두변의 수만 대군의 행군은 너무나 힘겨웠다. 원시림 수백 리를 지나는 데 무려 십여 일이나 걸렸다.
기어코 원시림에서 빠져나와서 수백 리 북상하면 백색부의 천보현이었다. 천보현에도 수천 대군이 주둔하는 게 맞지만, 지금은 전부 차출되어서 백색성을 공격하러 갔으니 지금은 공성이 되어버렸다.
바로 이곳에서 두변은 의부와 옥진 군주가 뜻밖에 7천 군대를 이끌고 자신을 구하러 왔다가, 백색성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두변은 속이 타들어갈 지경이었다.
두변은 생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졌다. 이윽고 그는 의형 이릉에게 병사 5천 명을 이끌고 천보현을 함락시킨 뒤, 그곳에 주둔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천보현은 마침 백색성과 절세 지하성의 중간에 끼어 있었다. 백색성에서 절세 지하성까지 가는 길은 반드시 막힘이 없어야 했다.
그런 뒤 두변은 잠시 대부대를 내버려둔 채, 기병 3천 6백 명만 이끌고 북쪽 2백리 거리에 있는 백색성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
여언의 눈에 먼저 들어온 건 거대한 늑대에 탄 기병 수백 명이었다. 이들은 이름 그대로처럼 진정한 낭기병(狼騎兵)이었다.
낭기병이 있는 게 이상하지는 않았다. 사륭석에게도 낭기병이 있었고, 심지어 코끼리를 타고 전투하는 대상기병(大象騎兵)도 존재했다.
하지만 눈앞의 저 늑대들은 너무 건장하고 거대해서 심지어 군마보다 더 컸다. 중요한 건 거대한 늑대가 달리는 속도가 놀라울 정도라서 천리마보다 더 빠를 지경이었다.
그 뒤에 따라오는 기병도 3천여 명인데, 모든 말이 2천 근은 거뜬히 넘을 것 같은 덩치에, 높이는 6, 7척이 넘어서 여씨 군마의 크기를 훨씬 뛰어넘었다.
더군다나 모든 군마가 다 선명한 색상의 갑옷에 싸여있었다.
말에 탄 기병 모두 키가 몹시 컸다. 모든 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선명한 빛깔의 갑옷으로 온몸을 감쌌다.
저런 말 한 마리는 적어도 은자 3천 냥 이상을 줘야 할 테고, 그런 전신 갑옷은 은자 3, 4천 냥이 넘을 것이다.
저들은 어디에서 온 군대일까? 하늘에 있는 신의 나라에서 온 건가?
대녕 제국이든 안남 왕국이든 어디든 저런 장비를 장착할 수 없었다. 해외 방계 집단 제국은 극도로 강대하고 번영을 누리고 있으니, 어쩌면 저런 장비를 장착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맹우가 아닌가?
따그닥, 따그닥.
기병들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가까워지고.
기병 3천여 명의 진형이 변하기 시작하더니 날카로운 검 모양의 진형으로 바뀌었고, 푸른 검을 쥔 사내가 낭기병 수백 명을 이끌고 날카로운 검의 끝부분이 되었다.
여언은 그제야 저자가 이 군대의 수장임을 깨달았다.
여언이 물었다.
“저 똥멍청이는 누구요?”
이도전이 얼굴을 한번 실룩이더니 대답했다.
“두변입니다.”
여언은 낯빛이 바뀌더니 쉰 소리로 물었다.
“그, 그가 바로 두변이오?”
이도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자가 바로 두변입니다.”
여언이 흉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두변, 저 환관 놈은 도망친 게 아닙니까? 저 어린 잡종 놈이 도망친 게 아니란 말이오?”
콰과광.
최정예 기병들이 날카로운 검날이 되어서 파도처럼 점점 더 가까이 밀려들었다.
여언이 정색을 하며 물었다.
“이도전, 우리 2만 군대가 저 기병들이 돌진하는 걸 막을 수 있소?”
이도전이 답했다.
“아마 가능할 겁니다. 아무래도 우리 병사의 수가 저들의 일곱 배는 넘지 않습니까. 게다가 기병이 두려운 건 처음에 돌진해서 적군을 밟아버리는 기세에 있습니다. 방패와 장창을 사용하면 저들의 돌진을 부술 수 있습니다! 두변의 기병 수천 명이 우리 대군 속으로 달려들면 돌격의 기세를 잃고 뒤엉켜버려서 도리어 우리에게 먹힐 겁니다.”
여언이 성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모든 군대는 뒤로 돌아 진형을 갖춰라. 오귀진(烏龜陣: 거북이 모양의 진형), 오귀진을 갖춰라!”
여씨의 2만 군대는 즉시 뒤돌아서 새롭게 집결하며 진형을 갖췄다.
비록 그들은 두변의 최정예 군대와 견줄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런대로 정예군에 속했다. 호령을 듣고 허둥대지도 않을뿐더러, 몹시 능숙하게 진형을 갖출 뿐이었다.
쿵, 쿵, 쿵.
2만 명이 거대한 철통 같은 오귀진을 이루었다.
가장 바깥 둘레에는 병사들이 거대한 방패를 쥐고, 2미터에 가까운 방패 벽을 만들어서 모든 병사를 뒤에 놓고 보호했다.
견고한 방패 벽은 낮은 성벽처럼 보일 정도여서, 난공불락처럼 보였다.
방패 벽의 틈새로 수많은 장창이 고슴도치처럼 튀어 나왔다. 그 사이로 수많은 궁수들이 활시위를 당기며 돌격해오는 기병들을 조준했다.
이런 진형은 기병들에게는 상극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성벽을 등지고 있으니, 기병들이 돌격하는 기세를 막는 데에 효과적이었다.
쿵, 쿵, 쿵, 쿵.
대지가 점점 더 격렬하게 떨려왔다.
두변의 기병들이 날카로운 검날처럼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천 미터, 8백 미터, 7백 미터…….
성벽 위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려던 이문회와 옥진 군주는 두변의 기병이 나타난 그 순간 완전히 넋이 나가버렸다.
그리고 곧 미친 듯이 기뻐했다.
그들은 겁난에서 살아난 게 기쁠 뿐 아니라, 두변의 변신이 몹시 기쁘기도 했다.
한참이 지나서 옥진 군주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문회 공, 두변의 기병들은 곧 흩어져야 합니다. 적군에는 궁수들이 무려 1만여 명이나 있어요. 기병들이 저렇게 모여 있다가는 잠시 후에 적들이 화살비를 퍼부으면 크나큰 사상자가 날 겁니다.”
이문회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을 겁니다. 군주께서는 보시면 아실 겁니다.”
성에서 내려다보니 여언의 2만 대군은 새까만 암초 덩어리 같기도 했다. 무시무시한 방패 진형은 물 샐 틈 없는 철통처럼 보였다.
두변의 기병 3천여 명은 거대한 파도이자 검처럼 사납게 적군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5백 미터!
3백 미터!
두변이 도룡검을 힘껏 뽑아서 목청이 찢어져라 소리쳤다.
“적군을 죽여라!”
기병 3천여 명이 힘차게 검을 뽑아서 소리쳤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기병 3천여 명의 기세가 하늘을 뒤흔들었다.
“쏴라, 쏴라!”
여언이 큰소리로 외쳤다.
슉, 슉, 슉, 슉, 슉.
여언 대군의 진형 안에서 궁수 1만여 명이 힘껏 화살을 발사했다.
하늘이 왈칵 어두워지고, 화살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수많은 화살비가 공중에서 백여 미터를 가로질러서는 두변의 기병 진형으로 사납게 내리쳤다.
아무런 명령을 내릴 필요가 없었다.
모든 기병이 재빨리 방패를 들고서 군마의 중요 부위인 눈을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