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장: 압박
대녕 제국의 경성, 황궁.
어떤 말로도 황제가 느끼는 초조함을 설명할 수 없었다.
매일 안 좋은 소식이 밀려들었다.
안남 왕국에서는 저번에 진남공과 여창 국왕의 연합군이 대승을 거뒀을 뿐 아니라, 반왕 완천성을 2백 리나 격퇴시키는 등 형세가 몹시 좋았다.
하지만 결국 여씨가 그 틈을 타서 모반을 꾀하면서 반왕 완천성의 대군은 사기가 진작되어서 권토중래하여 다시 순화부를 포위, 공격했다.
무엇보다도 황제를 걱정스럽게 만들면서 심지어 두려움까지 들게 만든 건 제국 서남부의 국면이었다.
여씨가 모반을 하고 서남부 태반이 함락되면서 소식 하나하나가 모두 조마조마한 데다 망국의 징조로 가득찼다.
그런데 군신들의 공격 목표가 대단할 것 없는 인물, 두변이 될 줄이야.
황제는 이미 얼마나 많은 참언을 들었는지 모른다. 두변이 계왕부의 기병 6백 명을 편취해서 백색성에 진입한 뒤, 백색성이 이미 공성이자 죽음의 성이 되어버린 걸 발견하고는 멀리 도망쳐 버렸다든가 하는.
황제는 매일 그런 참언을 적어도 수십 번이나 들어야 했다.
황제는 그들의 말을 결단코 믿지 않았다. 그는 한 사람을 믿으면 끝까지 믿었다.
이어서 이문회가 군대 7천을 이끌고 백색성에 주둔했다.
그런 뒤 여씨의 4만 대군이 백색성을 포위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고, 열흘, 보름이 지나버렸다.
하지만 두변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황제에게 당신이 사람을 잘못 봤고, 두변은 본래 요행으로 승진한 소인배일 뿐이라고 말했다.
‘황제 폐하께서 그런 자를 심복으로 의지한다니, 정말 황당하고 가소로운 일이 아닙니까.’
‘진정한 혼군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제국 서남부의 국면은 곧 붕괴하려고 하는데 당당한 황제 폐하께서 뜻밖에 보잘것없는 환관 하나에 기대려고 하다니요. 더군다나 그를 제국의 자작이자 백색 지부, 백색 참장으로 책봉하다니요.’
‘그자가 동창 천호가 된 것만으로 비약적으로 승관했다고 할 정도인데, 이제 폐하께서 보잘것없은 환관을 구세주처럼 여기고, 지푸라기를 대들보처럼 여기고 계신 겁니다.’
‘폐하가 혼군이 아니면 뭐란 말입니까? 가소롭고 수치도 모르는 혼군이 아니면 뭐란 말입니까.’
시간이 하루하루 지나갔다.
이문회가 곧 패전으로 죽게 될 뿐 아니라, 백색성이 함락당할 상황인데도 두변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수많은 상주서가 또 벌떼처럼 밀려들더니, 황제에게 잘못된 걸 바로잡아야 한다며 압박했다. 두변의 작위 및 모든 관직을 박탈한 뒤, 여경사를 보내서 그를 체포해서 정죄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들이 두변의 작위를 박탈해야 할뿐더러 두변을 정죄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표면적일 이유일 뿐이었다. 애초에 황제를 겨냥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게 만들고, 나아가서 그가 퇴위하도록 압박하려는 것일 뿐이었다.
현재, 매일 황제의 서재 밖에서 무릎 꿇고 있는 노신들이 점점 더 늘어났다. 전부 다 예순, 일흔 이상의 은퇴한 노신들인데, 관록도 높아서 그들을 욕하거나 책망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공공연히 황제에게 퇴위하라고 압박하지는 않았지만 황제더러 잘못을 시인하라고 압박했다.
“폐하께서는 심맹(心盲)이시군요. 어찌 이리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십니까. 두변, 그 도적을 나라의 기둥처럼 여기시고, 보잘것없는 소환관을 제국의 자작, 백색 지부, 백색 참장으로 책봉하시다니요. 완전히 어리석은 행동이자 망국의 징조입니다!”
“폐하, 그 두변은 간악한 도둑입니다. 폐하의 명성을 망쳤습니다. 마땅히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서 모든 관직을 박탈해야 합니다. 그놈을 체포하라고 성지를 내리십시오. 그래야만 폐하의 명성을 만회할 수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예전 이영도의 일을 잊으셨습니까? 폐하께서는 그도 무척 신뢰하고 총애하셨지요. 끊임없이 그의 관직을 승진시키며, 심지어 영설 공주와 혼례를 하사하려고 하셨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변절해서 여진 제국의 군왕이 되었습니다. 우리 대녕 제국의 최대의 적이 되어버렸습니다. 폐하께서는 오늘 또다시 소인배 두변을 총애하시니, 그건 그때의 일을 되풀이하려는 게 아닙니까?”
그 마지막 대목까지 듣던 천윤제는 거의 피를 뿜을 뻔했다.
그는 필사적으로 숨을 몰아쉬며 눈을 감았다. 손에 염주를 쥐고 계속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두변, 너는 짐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짐은 너를 믿는다, 짐은 널 믿는다…….”
그렇지만 백색성이 함락되고 이문회가 죽는다면 두변의 명성은 더는 만회할 수 없으리라.
의부가 죽는 걸 보고도 나 몰라라 하는 건 대단히 큰 죄였다. 설령 황하의 물을 다 부어도 그 오명이 깨끗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황제는 철저히 절망할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밖에 대신 한 명이 찾아왔다.
그는 내각 대신으로, 황제와 만나지 못한 지 꽤 오래된 자였다. 내각과 황제와 관계가 틀어진 지 이미 오래였다.
그런데 지금 그 내각 대신이 뜻밖에 황제의 서재 밖에 나타났다.
내각 대신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폐하께 아룁니다. 계왕의 세자 영충요가 두변이 계왕부의 부총관 이릉과 결탁해서 계왕부에 최후로 남은 기병 6백 명을 강탈해갔다고 탄핵했습니다. 그 때문에 계왕부는 왕부를 방비할 힘이 전무해졌고, 최근에 불량배나 건달이 왕부에 달려들어 살인, 방화, 겁탈, 약탈을 자행한 나머지, 계왕 전하께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계왕 세자가 혈서를 올리며, 황제 폐하께서 두변을 정죄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번개라도 내려친 듯, 천윤제의 머릿속이 순식간에 텅 비어버렸다.
계왕이, 죽었다고?
내가 가장 믿는 형제가 죽었다고?
그 순간 밖에 있는 모든 노신들이 무릎을 꿇고 외쳤다.
“폐하, 청컨대 간악한 환관 두변을 체포하도록 성지를 내려주십시오.”
“폐하, 청컨대 간악한 환관 두변을 체포하는 성지를 내려주십시오!”
그런데 바로 그때.
환관 하나가 재빨리 달려와서는 큰소리로 외쳤다.
“폐하, 경사입니다. 경사입니다. 제국 자작, 백색 지부, 백색 참장 두변이 3만 5천 대군을 이끌고 돌아와서 여언의 대군을 격퇴시켰습니다. 이문회 공공, 옥진 군주와 백색성을 구했습니다!”
천윤제를 제외한 모든 이가 경악하며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천윤제는 믿을 수가 없었다.
날마다 나쁜 소식뿐이었는데 갑자기 좋은 소식이 들리니, 그저 환각인 줄로만 알았다.
수없이 상상하던 그 장면인가 보다 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천윤제는 벌떡 일어나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큰소리로 웃었다.
“하하하하하!”
천윤제의 웃음소리는 몹시도 후련한 듯했지만 얼굴엔 이미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잠잠해졌다.
황제가 말했다.
“밖에 있는 노신 여러분, 그대들의 뜻을 짐이 알겠소. 정말로 알겠소. 그대들이 두변을 없애버리려는 건 가짜고, 짐을 압박해서 퇴위시키려는 게 진짜 의도겠지.
두변의 원죄는 단 하나요. 그건 바로 나라는 황제에게 충성을 바쳤다는 점. 짐에게 충성을 바친 모든 이는 다 죽어 마땅하고, 최후에는 짐을 철저한 외톨이로 만들려는 셈 아니오? 그대들 배후에 있는 주인은 별의별 궁리를 다하는군. 짐의 이 자리를 원하면 어째서 직접 뺏으러 오지 않지?”
바깥은 죽음과도 같은 정적에 휩싸였다.
이건 황제가 대신들에게 난신적자(亂臣賊子)라고 처음으로 욕을 하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황제는 바깥에 있는 모든 이의 그 주인까지도 욕했다. 사람이 우물쭈물해서는, 황위를 찬탈하고 싶지만 또 직접적으로 찬탈할 용기는 없을 뿐 아니라, 가장 적은 대가를 들이면서 이익은 극대화시키려 한다고 말이다.
황제가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이 여씨는 10년 전의 막씨보다 훨씬 대단하군. 완전히 파죽지세로 제 국토를 확장하고 있으니 말이지.
제국 서남부가 함락되고 천지가 갈라진 건 당연히 나라는 황제의 죄겠지. 내가 간신을 임용했기 때문에 서남이 함락당한 것이겠지. 그렇다면 그 간신은 누구겠소? 당연히 두변 아니오?
짐이 성지를 내려서 두변의 직위를 박탈하기만 하면 다음 단계는 짐이 잘못을 인정하는 죄기조(罪己詔)를 작성하고, 그 다음 단계는 나를 압박해서 퇴위시키려 하겠지.”
밖은 여전히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황제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제국 서남부가 어떻게 함락된 건지, 그대들은 정말 그 이유를 모른단 말이오? 이제 곧 흙에 묻힐 사람들인데 그렇게 가식을 떨 필요가 있소? 짐이 간신을 총애했기 때문이라고 덮어씌우고, 그 간신이 두변이라고?
그대들을 실망시켜서 몹시 미안하구려. 두변이 죽지도 않고, 도망치지도 않고, 돌아왔으니 말이오. 더군다나 여씨의 2만 대군까지 격파했다잖소!”
밖의 모든 노신들이 놀라서 거칠게 숨을 들이켰다.
황제가 냉소했다.
“내각의 장 대인, 당신은 이미 그 소식을 알고 있었겠지? 그래서 계왕 세자가 두변에게 죄를 내려달라고 청한다는 상주서를 만들어냈을 테고.”
밖에서 내각의 장 대인이 냉소하며 말했다.
“폐하, 이건 확실히 계왕 세자 영충요의 혈서입니다. 청컨대 폐하께서 봐주시옵소서.”
그렇다. 내각은 진작 두변의 귀환 소식을 알았고 은퇴한 노신들만 알지 못했다. 노신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역할이란 황제의 서재 밖에서 무릎을 꿇고 그를 혼군이라고 욕할 수 있는 것뿐이었다.
대환관 운주가 그 상주서를 받아서 황제에게 허리를 굽히며 올리면서 나직이 말했다.
“폐하, 고정하십시오. 고정하셔야 합니다.”
“짐은 기뻐하고 있다. 조금도 화를 내는 게 아니야.”
황제가 상주서를 받아서 읽는 순간,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지면서 무한한 실망감과 고통이 밀려들었다.
계왕의 죽음에 그는 가슴이 후벼 파듯 아팠다.
하지만 그는 세자 영충요도 신임했다. 이 아이는 조금 유약하기는 하나, 그래도 좋은 아이였다. 계왕의 사망 소식을 들은 뒤, 황제는 가장 먼저 영충요를 즉시 새로운 계왕에 봉해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이다.
방금 전에 계왕 세자가 두변을 탄핵하는 상주서를 올렸다는 내각 장사지의 말을 들었을 때도 황제는 절대로 믿지 않았을뿐더러, 분명히 위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일이 처음으로 일어나는 것도 아니니까. 나라가 곧 망하려 하고, 요악스러운 일이 난무하니 무슨 일이든 일어나지 못할까.
하지만 지금 황제는 한눈에 이 상주서가 계왕의 세자, 영충요의 필체라는 걸 알아봤다.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칼처럼 날카로웠고 피울음으로 가득했다.
모든 단락에서 두변의 동기를 규탄할 뿐만 아니라, 두변이 그의 계왕부에 해를 끼쳤다고 노하며 질책하고 있었다.
두변만 아니었다면 계왕부가 이런 재난에 휘말릴 일이 없었을 테고, 계왕도 남들에게 두 다리가 잘리며 근맥이 망가지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특히 최후에 두변이 계왕부에 마지막으로 남은 기병 6백 명을 빼앗아갔기에 계왕부가 최후의 존엄과 존귀함을 잃었다고 규탄했다. 그 탓에 토박이 불량배들이 계왕부로 난입해서 살인, 방화, 약탈, 간음을 저질렀고, 최후에 계왕이 처참하게 죽게 만들었다고.
영충요는 말끝마다 두변이 계왕을 죽게 만들었다고 질책하면서, 황제가 성지를 내려서 두변을 체포하여, 그를 정죄하고 참수해서 계왕부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청하고 있었다.
황제는 화가 나서 온몸이 떨렸다.
몹쓸 놈, 이 몹쓸 놈!
우둔하고도 수치를 모르는 몹쓸 놈 같으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