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장: 저건 또 누구?
5월 19일.
광서 제독 원천조가 1만 5천 대군에게 염주부에 진주하라고 명을 내렸다.
그건 두변의 퇴로를 차단하고, 두변이 패전한 뒤 안남 왕국으로 물러나는 걸 저지하기 위한 의도이기도 했다.
두변을 완전히 가둔 채 죽일뿐더러, 그의 대군을 전멸시킬 의도였다.
게다가 더 깊은 속내는 안남 왕국과 대녕 제국 사이를 단절하기 위해서였으니, 악랄한 저의를 품었다고 볼 수 있었다.
한 달여나 수리를 끝낸 백색성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파손된 성벽은 전부 보수되었고, 성의 안팎은 이미 하나의 군사 진지로 변했다.
전운이 짙어짐에 따라 두변도 점점 더 신경을 곤두세웠다.
황제의 성지는 이미 받은 상태였다. 천윤제는 그에게 아무런 요구도, 당부도 하지 않고 그저 광서 여경사 진무사에 추가로 봉했을 뿐이다.
그건 전투에서 대승한 뒤, 뒷일을 대비한 것이리라. 만약 대승을 거두게 되면 그 관직은 상방보검과 같은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물론 패배하면 모든 게 끝.
그가 곧 마주할 건 10만 대군, 장장 자신들보다 세 배나 많은 병력이었다.
아무리 두변이 자신의 군대에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더라도, 긴장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모든 이가 이번 전투를 위해 피땀을 쏟았다.
의부 이문회는 쉬지도, 자지도 않고, 방어선을 짓는 일을 맡았다.
옥진 군주는 아주 조그마한 흠이라도 있을까 봐 매일 각 진지를 순시했다.
모든 병사는 매일 필사적으로 고된 훈련에 임했다. 피땀을 쏟으며 이번 초강 대전을 준비했다.
백색성의 상공에는 공기가 굳어 있다 할 정도로 팽팽한 긴장의 기운이 감돌았다.
5월 23일.
여여해가 왕포를 입고 수십 미터 제단 위에 올라섰다.
제단 아래의 광장에는 대염 왕국의 10만 대군이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다.
여여해의 시선이 그 10만 대군을 훑은 뒤, 여여룡, 사륭석, 여완완을 훑고 지나갔다.
두변을 섬멸하기 위해서 자신이 10만 대군을 동원할뿐더러, 대단한 대장군 두 명, 성화교의 성녀이자 대염 왕국의 장공주까지 동원할 줄이야.
대염 국왕 여여해가 힘차게 보검을 뽑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대군은 출발하라. 백색성을 평지로 밀어버리고, 날뛰는 어릿광대 두변과 그의 군대를 모조리 죽여버려라!”
쿵, 쿵, 쿵.
북소리가 울리고 귀청이 찢어질 듯한 폭음이 울렸다.
10만 대군이 일제히 외쳤다.
“백색성을 밀어버리고, 두변의 군대를 모조리 죽여버리자!”
이윽고 대염 왕국의 10만 대군은 불꽃색 홍수처럼 백색성 방향으로 쏜살같이 행군했다.
홍수의 기세가 모든 것을 부숴버리고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하루 뒤.
두변은 여완완, 사륭석, 여여룡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끝도 없이 펼쳐진 채 백색성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얻었다.
그는 성벽에 서서 하늘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와라, 운명이 달린 전투여, 와라. 승리하면 모든 걸 얻고, 패배하면 묻힐 곳도 없이 죽게 될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다그닥, 다그닥.
갑자기 동쪽 방향에서 흙먼지가 매섭게 일었다.
등에 화살이 꽂힌 척후병 하나가 성문 방향으로 달려오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주군, 적의 기습입니다. 적의 기습입니다!”
슉, 슉, 슉, 슉.
화살 비가 퍼붓더니, 그 뛰어난 척후병은 난사된 화살에 그대로 맞아 죽었다.
이윽고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울리면서 사나운 기병 한 무리가 동쪽 하늘가에 나타나서 흉흉한 기세로 백색성을 향해 돌진했다.
두변은 깜짝 놀랐다.
저건 또 누구지?
여씨의 10만 대군이 이렇게 빨리 올 리는 없는데? 그럼 저건 대체 누구란 말이야? 어떤 군대야? 이런 시기에 백색성을 공격하다니?
방계 집단의 군대일 리는 없을 것 같은데. 그들이 이런 시기에 백색성을 공격할 리 없어.
과연, 누구일까.
그 기병들이 두변의 시야에 전부 나타난 순간, 그는 그제야 기병들의 수가 많지 않고 고작 3백여 명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선두에 있는 건 두변이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사람, 계왕 세자 영충요였다.
게다가 그 기병들이 달고 있는 깃발은 계왕부의 깃발이었다.
계왕부가 지금 어디에서 기병들을 끌고 왔을까? 계왕이 진작에 마지막 기병 6백 명을 넘겨주었었는데?
기병 3백여 명이 성문 아래까지 달려왔다.
무사 두 명 사이에 영충요가 끼어 있는 모습이, 보호하는 것 같기도 위협하는 것 같기도 했다.
두변이 영충요를 바라보며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
“세자, 이건 무슨 뜻입니까?”
영충요가 두변을 쳐다보고는 얼굴을 실룩이는데 눈빛이 복잡했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감정이 모두 원한으로 바뀌었다.
“두변, 너는 이릉과 연합해서 우리 계왕부의 기병 6백 명을 훔쳤다. 이제 그들을 내놓거라.”
영충요가 큰소리로 일갈했다.
그 순간 두변은 자신이 들은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계왕이 일전에 두변에게 기병 6백 명을 넘겨주라고 한 걸 영충요는 곁에서 똑똑히 들었었다. 그런데 지금 두변과 이릉이 기병들을 훔친 것으로 바뀌었다?
두변이 심호흡을 한 뒤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자, 다른 사람들에게 위협이라도 당한 것입니까? 그럼 안심하시지요. 제가 즉시 구해 드리겠습니다.”
영충요가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계왕의 세자다. 곧 새로운 계왕이 될 것이야! 내 곁에 있는 이들은 모두 내 계왕부의 새로운 기병들인데, 또 누가 나를 위협한단 말이냐?
두변, 어물쩍 다른 말을 하지 말고 즉시 내 기병 6백 명을 내놓거라. 나는 그들을 계왕부에 데리고 돌아갈 것이다. 저 배신자 이릉도 내가 처분하도록 넘기거라.”
두변은 더할 나위 없이 마음이 아프고, 분노했으며, 슬펐다.
지금 두변이 느끼는 분노만 놓고 본다면, 영충요 저 쓰레기를 베어 죽이지 못하는 게 한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부친 계왕은 두변이 가장 존경하는 어른 가운데 한 명이었다. 심지어 최후의 순간, 귀중한 기병 6백 명을 자신에게 넘겨준 분이기도 했다.
두변이 다시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영충요, 당신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여씨 대염 왕국의 10만 대군이 쳐들고 오는 중이라서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성 밑까지 들이닥칠 겁니다. 그 전투는 내 운명만 결정하는 게 아니라, 황제 폐하와 제국의 운명과도 직결된 겁니다.”
영충요의 얼굴이 다시 실룩거렸다.
두변이 말을 이었다.
“바로 이 생사가 달려 있는 순간에 기병 6백 명을 데려가겠다는 겁니까? 물론 계왕부에서 필요하다면 기병 6백 명을 내어 드릴 수 있습니다. 심지어 전투를 치른 후에는 무사 천 명을 지원해서, 당신이 왕부를 재건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오주부는 이미 방계 집단의 수중에 완전히 들어갔으니, 내가 군대를 당신에게 넘기는 것도 호랑이 입에 집어넣는 격이나 다름없지요.
내게 의형 이릉도 넘기라고 하는 건, 방계 집단이 그를 죽이도록 만들려는 것이 아닙니까?”
영충요가 한참을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는 우리 계왕부의 배신자이니 당연히 내가 처결해야 한다.”
두변이 분을 삭이기 어려워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헛소리 지껄이지 마십시요. 영충요, 뭘 아닌 척하는 겁니까? 당신이 나약해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걸 알고 두강과 원천조가 당신을 협박했겠죠!
물론 당신 같은 멍청이도 그건 알겠죠? 두강과 원천조가 내게 당신을 죽이라고 몰아붙인 뒤 황족을 살해했다는 죄를 나에게 씌우려 한다는 걸 말입니다! 그렇게 해야 원천조가 출병할 이유가 생기니까요. 황족을 주살한 건 역모나 마찬가지니, 원천조가 대군을 이끌고 거들먹거리면서 반란을 평정한다는 이유로 날 죽이러 오겠죠.
게다가 그들이 내게 당신을 죽이라고 몰아붙이는 건 나와 황제 폐하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함이란 것도 모릅니까? 일개 신하인 내가 황족을 주살하면 온 천하가 나를 비난하겠죠.
당신은 정녕 저들에게 이용당해서 자신의 사람은 가슴 아프게 하고, 원수는 즐겁게 하는 일을 할 셈입니까?”
두변이 주먹으로 성벽을 치며 노성을 질렀다.
“영충요, 이 멍청이 같으니라고. 당신 부왕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당신의 왕부에 들어가서 살인, 방화, 약탈을 벌인 불량배들을 대체 누가 보냈는지, 어떤 이의 군대가 그 역할을 했는지, 당신이 설마 모른단 말입니까?”
영충요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두강과 원천조가 사람들을 시켜 토박이 불량배로 분장해서 계왕부에서 살인, 방화, 약탈을 벌였으니까.
마찬가지로 계왕이 목숨을 끊도록 몰아붙인 것도 두강과 원천조이고. 하지만…….
두변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영충요, 두강과 원천조가 무섭겠죠. 그들이 부왕을 죽게 만들었으니까요.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 건 내가 계왕부에 정이 있고, 당신들에게 잘 해줬기 때문이겠죠.
두강과 원천조는 간신이고, 나는 충신이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영충요가 얼굴을 거듭 실룩거리고는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했다.
“두변, 딴소리하지 말아라. 내 기병 6백 명을 내놓고, 이릉, 그 배신자를 내놓아라.”
두변이 큰소리로 웃더니 세자고 뭐고 개의치 않고 소리쳤다.
“하하하하. 천하에 이보다 더 황당무계한 일이 있을까? 영충요, 너는 당당한 황족이거늘, 간신 두강과 원천조, 네 아버지를 죽인 원수가 무서워서 너희 계왕부와 정이 두터운 사람을 위협하는 것도 서슴지 않아? 네가 이렇게 하는 건 나를 사지에 내모는 것이라는 것도 알아?”
영충요는 당연이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렇게 하는 건 극도로 악랄한 의도가 있음을 말이다.
두변이 또 큰소리로 외쳤다.
“만약 내가 거느린 병사들이 대녕 제국의 병사들이었다면 그들이 이 장면을 보고 얼마나 실망할지, 그들의 사기에 얼마나 크나큰 타격을 줄지도 아냐?”
대전이 곧 시작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더군다나 이건 제국의 운명이 결정되는 전투였다.
당당한 황족이 이렇게 중요한 순간 나타나서 두변에게 군대와 그 의형을 내놓으라고 압박하다니. 당당한 황족이 배신자에게 이용당해서 충신을 압박하다니.
다행히도 두변의 주력 군대는 절세 지하성의 군대라서 대녕 제국에 충성을 바치는 게 아니라 두변에게 충성을 바칠 뿐이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도 달라질 건 없었다.
하지만 이문회 휘하의 병사 천여 명은 더할 나위 없이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퍽, 퍽, 퍽.
영충요 뒤에 있던 기병들이 갑자기 수급 열 개를 내던졌다. 그것들은 전부 두변의 순찰 기병들의 수급이었다.
‘이 짐승들이 순찰 기병을 죽여?’
두변의 눈매가 가늘어지며 화가 치솟아 물었다.
“영충요, 내게 기병을 돌려달라고 왔으면서 어째서 내 순찰 기병들을 죽였지?”
영충요가 답했다.
“그들이 활로 우리를 쏘려고 했다.”
두변이 노성을 질렀다.
“이곳은 곧 전장이 된다. 낯선 병사 한 무리가 달려오는데 순찰 기병들이 설마 활을 쏴서 경고를 하지 말아야 했냐? 게다가 분명히 너희 발밑의 땅을 향해 화살을 쐈을 텐데, 그런 순찰 기병들을 모조리 죽여?”
영충요의 얼굴이 끊임없이 실룩이고 있었다. 당연히 그가 순찰 기병들을 쏴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게 아니었다. 그의 뒤에 있는 기병들은 애초에 원천조의 사람들이라 자신이 지휘할 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