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353화 (353/648)

353장: 백색대전(百色大戰) 一

커다란 석환이 연달아 두변의 백색성 성벽 위로 미친 듯이 내리쳤다. 한 번 내리칠 때마다 천지가 흔들리는 것처럼 귀청이 떨어질 듯 큰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성벽 전체가 떨리고 있었다.

몇 달 동안 성벽을 보수해 놓았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충격을 견디지 못했으리라.

콰과과광.

투석기의 포격이 한없이 이어졌다.

가끔은 석환 하나가 성벽을 넘어 성안의 건물 한 채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기도 했다.

다행히 병사들은 견고한 엄폐물 안에 있어서 인명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콰과광.

두변 쪽 투석기도 미친 듯이 포격을 가하면서 여씨 대군으로부터 대규모 사상자를 앗아갔다.

하지만 아쉽게도 투석기의 정확도에 문제가 있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여씨 대군의 사상자는 더욱 놀라웠으리라.

사륭석이 여완완을 힐끗 보았다.

그녀는 동요하지 않을뿐더러, 군대를 후퇴시킬 의사가 전혀 없어 보였다. 아무리 인명피해가 크더라도 절대로 물러서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미친 듯이 서로에게 포격을 가하며 대치하는 시간이 장장 한 시간이 넘어서자, 여씨 쪽에서는 조금 멈칫하는 형세를 보였다.

이제 두변 쪽 성벽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 단지 아직까지는 구멍 하나 생기지 않았다.

아무래도 투석기의 정확도가 너무 떨어져서 웬만해서는 같은 곳을 연달아 명중시킬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백여 근짜리 석환으로 한 지점을 조준해서 미친 듯이 쏘아대면 구멍 하나 생기지 않겠는가.

여씨의 투석기들이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성안, 두변의 투석기들도 당분간 공격을 멈췄다.

여완완이 백색성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웃었다.

“두변, 방금 전까지는 작디작은 전주에 불과했다. 이제 진정한 파멸의 공격이 이어질 것이다!

성화 독탄(毒彈)으로 바꿔라!”

여완완이 명령을 내리자 주변 사람들의 낯빛이 일시에 변했다.

그런 뒤 붉은색 장포를 입은 성화교 사제 수백 명이 쏟아져 나오더니 상자를 하나씩 연달아 열었다.

조심스럽게 납포(蠟布: 기름을 먹여 만든 방수천)로 싸두었던 덩어리를 풀어서 기름이 잔뜩 묻은 성화 독탄을 꺼내 투석기에 놓고 불을 붙였다.

모든 사제는 그 성화 독탄에 닿을까 봐 두려운 듯이 전부 특수한 가면과 장갑을 끼고 있었다.

“발사!”

명령이 떨어지자 여씨의 투석기가 또다시 미친 듯이 포격을 시작했다.

이번에 던져진 건 더 이상 일반적인 석환이 아니라 여완완의 비밀 무기인 성화 독탄이었다.

정통 성화교는 각종 비술에 능했다. 사실 대염 왕국의 성화교는 정통 성화교라고 할 순 없어서 수십 년 전에야 비로소 서역 성화교에 흡수되었다. 하지만 독과 비술을 사용하는 데는 몹시 뛰어났다.

콰과광.

엄청난 불덩어리들이 공중에서 호선을 그리며 날아가더니 매섭게 폭발했다.

화염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르고, 무시무시한 황색 연기가 자욱했다.

협소한 구역에서라면 이런 독연(毒煙)은 충분히 치명적일 수 있지만 야외에서는 아무래도 비교적 빨리 흩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독연의 살상력은 놀라울 정도여서, 연기에 눈이 반쯤 멀게 되고 격렬한 기침을 일으킬 뿐 아니라, 심지어 각혈까지 하게 만들었다.

저번에 백색성을 공격할 때는 여씨가 이 맹독 살상 무기를 사용하는 걸 아까워했다. 운남성과 귀주성을 공격할 때는 더더욱 사용할 일이 없었고.

하지만 이번에 두변을 철저히 없애기 위해, 여완완은 이 독탄을 거침없이 꺼내들었다.

콰과광, 콰과광!

성화 독탄은 매우 귀중해서 다섯 번 정도의 포격 정도만 가능한 상황이었다.

독탄을 세 번째 포격한 순간, 백색성 안은 이미 황색 독연으로 뒤덮여 있었다. 게다가 두변 쪽 투석기도 공격을 멈췄다.

그건 한 가지 사실을 의미하리라. 두변의 군대가 독연에 쓰러져서 투석기 공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후우…….”

여완완이 길게 숨을 내쉬자 공기에 매혹적인 향기가 아득하게 퍼졌다.

어쩌면 전투는 이쯤에서 이미 기정사실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누가 성화 독탄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콰과과광.

성화 독탄이 네 번째 포격을 가했다.

콰과광.

다섯 번째 포격을 가했다.

이로써 여씨의 비장의 무기인 성화 독탄 공격이 전부 끝났다.

그때 백색성 안은 죽음과도 같은 정적에 휩싸였다.

성안에서의 투석기 반격은 진작 멈춘 상태였고,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노란색 독연이 성 전체를 뒤덮었다.

여완완, 사륭석, 여여룡은 가만히 바라볼 뿐, 즉시 성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독연은 적이 되었든 아군이 되었든 상관하지 않고 전부 독살하기 때문이었다.

장장 2각 뒤.

성 가득 퍼져 있던 독연이 점점 걷히고 있었다.

이제 공성의 순간이었다.

백색성을 평지로 밀어버리고, 두변의 세력을 모조리 몰살할 순간이 도래했다.

여완완이 담담하게 말했다.

“사륭석 부족은 성을 공격하라!”

성화교군 2천 명이 일제히 큰소리로 외쳤다.

“사륭석 부족, 성을 공격하라!”

이윽고 전투를 알리는 북소리가 하늘을 뒤흔들듯이 울려 퍼졌다.

사륭석은 뒤돌아서 여완완을 마주 보더니, 갑자기 제 옷을 찢어서 산처럼 우람한 몸집을 드러냈다.

사륭석은 줄곧 여완완에 대한 자신의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백색성을 평지로 밀어버리고, 성안의 모든 이를 도살하라!”

사륭석이 포효했다.

그 순간 그 휘하의 4만여 대군이 백색 성벽을 향해 미친 듯이 돌격했다.

조금 전 성화 마약을 마신 군대는 이미 약효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 이들은 지금 이 순간 최고조로 흥분했을 뿐 아니라, 모든 것을 파멸시키겠다는 충동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였다.

명령이 떨어지자 다들 우리에서 나온 야수와도 같다고 할까.

콰과과광.

대지가 또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잿빛 파도가 백색성을 향해 미친 듯이 밀려들었다.

어느덧 성벽과의 거리가 점점 좁혀들었다.

300미터, 280미터.

성안은 여전히 소리 없이 조용했다.

여여룡이 여완완을 힐끗 쳐다봤다. 그 눈빛은 ‘또 무료한 도살이 시작되겠군.’ 하는 뜻이었다.

두변의 부대는 방금 전 독연으로 인해 전투력을 잃은 게 분명해 보였다.

사륭석의 군대는 성벽으로부터 250미터 거리가 남았을 때, 순간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만났다.

수많은 바위와 큰 통나무가 성벽 앞 공터에 어지러이 미궁처럼 늘어져 있었다.

그 순간 사륭석의 수만 대군은 암초를 만난 파도처럼 돌격 속도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하지만 뒤에서는 병사들이 여전히 쏜살같이 달려오면서, 곧 장애물 앞에서 개미떼처럼 서로 우왕좌왕 밀칠 뿐이었다.

이들이 정상적인 군대였다면 대열을 지어서 질서정연하게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미치광이였다. 약을 마신 미치광이들, 돌격해서 싸우고 죽일 생각만 하는 미치광이들이었다.

지금은 약효가 한계치에 달해서 애초에 지휘가 될 상황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한 가지 방향만 존재했다. 그건 바로 성벽을 기어올라서 안에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는 것.

여완완이 보기에 안에 있는 두변의 군대는 이미 독연에 쓰러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사실 걱정할 게 없는 전투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놀랍게도 하늘이 컴컴해지면서 저쪽에서 먹구름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그건 먹구름이 아니었다. 그건 화살비였다.

날카로운 화살 1만여 개가 성안에서 맹렬하게 발사되어서는 호선을 그리며 날아오더니, 우왕좌왕 몰려 있는 사륭석의 대군에게로 세차게 내리쳤다.

퍽, 퍽, 퍽, 퍽.

폭우에 섞인 우박이 모래 구덩이에 박히는 것 같기도 하고, 태풍이 보리밭을 훑고 지나간 것도 같았다.

순식간에 사륭석 대군의 한가운데가 마치 보리 수확이라도 한 것처럼 한 번에 쓰러졌다.

“아악! 악! 악!”

수많은 처참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쩌면 그걸 처참한 비명이라고 말하기보다는 날카로운 비명소리라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 화살 한 번 맞는다고 한 번에 죽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모든 화살촉에는 녹색 부식액이 묻혀 있었다. 그러니 그 화살이 적중한 곳의 피와 살은 반드시 부식되어서 큰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게 된다.

어디에 맞게 되든지, 맞은 곳을 바로 잘라내는 게 아니라면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설령 화살에 적중한 게 아니라 고작 스치고 지나갔더라도 즉시 부식해서 몸에 큰 구멍이 나며, 순식간에 전투력을 잃게 된다.

솩, 솩, 솩, 솩.

성안에서 그 무시무시한 화살비가 미친 듯이 쏟아져 내렸다.

적을 얕봤기도 했고, 약을 마신 상태이기도 해서, 사륭석 몇만 대군은 벌떼처럼 전부 성벽 장애물 앞에 모여 있었다. 너무 밀집되어서 서로가 서로를 밀쳐낼 지경이니, 땅에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그러니 두변의 맹독성 화살비가 적군을 미친 듯이 도살할 수밖에.

그 장면을 본 여완완의 얼굴빛이 더할 나위 없이 흉측하게 변했다.

그제야 그녀도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성화 독탄 공격이 별다른 역할을 발휘하지 못했고, 독연도 두변의 군대에 파멸적인 타격을 주지 못했음을.

백색성 안이 쥐죽은 듯 조용했던 것은, 여완완이 상대를 완전히 얕보게 만들어서 바로 다음에 그들을 도살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 이렇게 화살을 멀리 쏠 수 있을까?

무려 7백여 척(대략 235미터)이 넘는 거리였는데?

이 세계에서 명사수라면 당연히 7백 척 정도의 거리는 쏠 수 있겠지만, 두변이 명사수를 그렇게 많이 데리고 있다고?

그것도 매번 1만여 개 이상을?

물론 초대형 강노로도 7백 척 이상의 거리를 쏠 수 있겠지만, 그런 초대형 강노는 무게가 무겁고 많은 화살을 장착하지 못할뿐더러, 애초에 이런 규모로 화살비를 퍼부을 수 없었다.

그녀는 두변이 절세 지하성의 강노를 얻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경금과 괴수의 힘줄로 만든 강노는 가벼우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하다는 것도 당연히 모를 수밖에.

그렇다면 두변의 군대는 여완완의 독연 공격을 어떻게 피했을까?

우선 병사들은 여전히 엄폐호 안에 숨어 있었는데 각 엄폐호의 공기 유입구에는 여과 장치가 여러 겹 달려 있었다. 그 다음에 모든 병사가 간단한 방독 가면을 착용하고 있었다.

이 방독면에는 독연을 여과할 수 있는 건 비교적 원시적인 활성탄이 장착되어 있을 뿐 아니라, 사공엽이 성화교의 독연을 전적으로 겨냥해서 준비한 약물도 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관건은 역시 사공엽이었다. 이 천재 연금술사에게 성화 독탄도 별것이 아니라서 쉽게 해독할 수 있었다.

설령 그럴지라도 여완완의 독연 공격은 두변의 군대에 적지 않은 사상자를 가져다주었다. 아무리 방어를 잘한다고 했지만 병사 수백 명은 눈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고, 병사 2천 명은 눈에 경상을 입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두변은 여완완을 속여서 성벽 앞의 대도살 장면을 펼치는 데 성공했다.

솩, 솩, 솩.

두변의 초대형 강노는 몹시 단순해서 활차에 활시위를 걸 때도 거의 힘이 들지 않았다. 병사 네 명이 초대형 강노 한 대를 조작하면 대략 13초면 한 차례 화살을 발사할 수 있었다.

그러니 13초마다 한 번씩 치명적인 화살비가 쏟아질 수 있는 것이다.

솩, 솩, 솩, 솩.

화살비가 사륭석 대군의 목숨을 광적으로 거두어들이고 있었다.

광란의 병사들이 수확된 보리처럼 한 무더기씩 바닥에 쓰러지면서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약 기운이 오른 병사들은 여전히 광분하여 앞으로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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