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장: 요녀, 쓰러지다
성화교군만 충격을 받은 게 아니라, 두변조차 그 장면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성화교가 저렇게 대단한 묘기를 보여줄 수 있다고?
곧 전투에서 패배하려고 하는 순간에 여완완이 저 묘기로 이 국면을 만회할 수 있다고?’
굉장히 성공적인 공연이라 할 만했다.
특히 하늘 가득 불의 비가 내리는 것과 수십 리 안을 뒤흔들 신의 목소리, 또 화신이 강림한 것처럼 보이는 화염의 거인 말이다.
모든 성화교군이 보기에 그것들은 당연히 신의 기적처럼 보였다.
당연히 그녀 혼자서는 그런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무공이 아무리 고강해도 그런 목소리는 낼 수 없었다. 그건 그녀 휘하의 친위대 2천 명이 복음(腹音)으로 내는 소리였다. 수많은 인력과 귀중한 물자를 소비해야 가능한 공연일 것이다.
성화교군은 다시 사기가 크게 고조되어서 성벽 위로 돌진했다.
이어서 여완완이 명령을 내렸다.
“모든 성화 친위군이여, 가라!”
명령이 떨어지자 그녀 휘하의 최고로 뛰어나고 가장 강력한 성화 친위대 2천 명이 힘차게 돌진했다.
이 성화 친위군 2천 명은 하나같이 무공이 고강했다.
그들은 더할 나위 없이 빠른 속도로 달려나갔다. 장애물이든 성벽 같은 건 그들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그들은 두변의 불사의 기적도 보지 못했으니, 그야말로 맹렬하기 그지없었다.
두변의 수천 대군의 기세가 순식간에 압도되고 말았다.
“화신의 뜻을 받들어 가짜 신 두변을 주살하라!”
정말이지 대단한 요녀 아닌가!
이렇게 신을 믿는 군대는 정말이지 귀신이 곡할 노릇일 수밖에 없었다. 사기가 저조할 때는 여지없이 패배하다가, 사기가 고조되니 말할 수 없이 대단해지니!
두변 쪽 대군에서 사상자가 점점 증가할뿐더러, 성벽 위 그들이 지키는 진지(陣地)가 한 뼘씩 뒤로 밀려났다.
콰과광.
그때 이릉 부대의 수천 대군이 마침내 성벽 밑까지 돌진했다.
두변과 이릉 부대를 합쳐서 1만 2, 3천 대군, 성화교군과 성화 친위군을 합쳐서 1만 5, 6천 대군 사이의 전투였다.
두 대군은 서로 양보 없이 맞붙으면서 전황은 초조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제 누가 이기고 누가 패배할지는 완전히 기세에 달려 있었다. 지금 양쪽 병력은 이미 막상막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여여룡 부대가 완전히 무너졌다. 끔찍할 정도로 사상자를 낸 후, 나머지 1만 대군은 마침내 지옥과도 같은 전장을 견디지 못하고 뿔뿔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안 돼, 안 돼!”
여완완이 목청이 찢어질 듯이 소리를 질렀다.
‘이런 순간 무너지면 안 돼! 여여룡 부대는 어째서 이런 순간에 무너지는 거야! 너희는 아직 2만에 가까운 대군이 있잖아. 심지어 이문회와 부홍빙 부대가 합친 것보다 더 많잖아?’
그렇지만 여여룡 부대는 평범한 여씨 대군일 뿐이라서 사상자가 어느 한계에 도달하면 완전히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쾅, 쾅, 쾅.
대군은 통제력을 잃고 미친 듯이 사방으로 도망쳤다.
부홍빙이 1만 무사를 거느리고 남쪽 성벽을 지원하러 달려왔고, 순식간에 남쪽 성벽 위 두변의 병력은 2만 3천 명을 넘어섰다.
성화교군과 절세 지하성의 무사들을 순전히 전투력만으로 논하자면 절세 지하성의 무사들이 더 강했다. 하지만 성화교군은 여러 가지 사술을 갖고 있다 보니 양쪽의 전투력은 막상막하였다.
이제 두변 대군의 수가 넘어섰으니, 전투에서 패배할 걱정은 없어졌다.
여완완의 성화교군은 두변의 우세한 병력 앞에서 사상자가 쏜살같이 늘어날 뿐이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패배하는구나!
여완완이 신의 기적을 또다시 연출한다 한들 만회할 방법은 없었다.
그녀가 정신력을 모으자, 성벽 위에 있는 두변의 얼굴까지 볼 수 있었다.
두변이 계속 웃고 있는데, 그의 비웃음이 그녀를 조소하는 것만 같았다.
“요녀, 이 못된 것!”
여완완의 눈앞이 새카매지면서 그대로 혼절할 지경이었다.
그때 그녀의 뇌가 송두리째 뽑힐 것처럼 심하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사술이 도리어 그녀를 집어삼키게 된 것일까.
여완완은 고통스럽게 심장을 부여잡고 입술을 끊임없이 떨면서 겨우 목소리를 냈다.
“철, 철, 철수…….”
몹시 힘겹게 몇 마디를 내뱉고는 눈앞이 새까매져서 그대로 털썩 바닥에 쓰러졌다.
“퇴군한다, 퇴군하라!”
여완완이 혼절하자, 그녀의 수하 사제가 퇴군의 호각을 불었다.
격전을 치르던 성화교군은 즉시 모든 적을 내팽개친 뒤, 일제히 탄환같이 생긴 덩어리를 바닥에 힘껏 던졌다.
펑, 펑, 펑.
그 순간 짙은 붉은색 연기가 터져 나오면서, 성벽 전체가 순식간에 짙은 안개에 뒤덮여서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어서 성화교군은 특수한 냄새를 맡으며 빠르게 집결하더니 재빨리 철수했다.
어떤 군대가 뛰어난지 보려면 가장 중요한 건 군대가 퇴각할 때 얼마나 질서정연한지 살펴야 한다.
퇴각은 언제나 가장 위험해서 언제든지 군대가 대규모로 붕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 여완완이 완전히 혼절해서 인사불성이 되면서 성화교군에는 우두머리가 없었다.
하지만 성화교군은 순식간에 전투 임무를 분배했다. 일부는 후방을 엄호하고, 일부는 질서정연하게 퇴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변이 그들이 여유 있게 퇴각하도록 허용할 사람일까.
“모든 기병은 적군을 추격해서 죽여라!”
순식간에 모든 기병이 전투 대열에서 잠시 물러나더니 각자의 군마와 거대한 늑대에 올라탔다.
성화교군은 역시나 대단했다. 정예 병사 2천 명이 후방을 엄호하고, 1만여 명이 빠른 속도로 철수했다.
고작 30분도 안 되어서 그들은 완전히 전장에서 물러날 수 있었다.
만약 이대로 상황이 지속된다면 이 최정예 부대는 비교적 온전하게 대염 왕국의 왕도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운이 몹시 나빴다.
왜냐하면 또다른 무리가 대규모로 진영이 무너진 후 대염 왕국의 문산성으로 마구 도망치고 있는 와중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좀전에 패망한 여여룡 부대의 대군이었다.
그 대군은 성화교군처럼 뛰어나지 않았다. 대규모로 진영이 무너진 상황에서 지휘 체계를 완전히 잃은 채, 2만에 가까운 대군은 미친 듯이 흩어지며 도망치고 있었다. 성화교군이 제 아무리 질서정연하게 후퇴한다고 하더라도 순식간에 그들 때문에 진형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바로 그때, 두변이 4천 명 정도의 기병들을 거느리고 성안에서 뛰쳐나왔다.
따그닥, 따그닥.
기병 4천 명이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짧디짧은 일각 만에 두변은 패전하여 뿔뿔이 도망치는 여씨 대군을 따라잡았다.
여여룡의 대군 때문에 대열이 흩어졌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비교적 온전하게 진열을 유지하고 있던 그들은 여완완의 마차가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사기가 완전히 흩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들이 열광적으로 숭배하는 화마 성녀가 뜻밖에 시야에서 사라진 것이다.
본래는 설령 퇴각할지라도 화마 성녀가 높디높은 마차 위에 서서 그들을 내려다보며, 그들을 지휘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런데 지금 화마 성녀가 아예 보이지 않을 줄이야.
“달려라, 달려!”
두변의 기병 4천 명이 빠르게 여씨의 패퇴한 대군 속으로 달려들어서는 적군을 끊임없이 깔아뭉개고, 끊임없이 짓밟았다.
게다가 두변의 기병들은 의도적으로 성화교군을 골라서 도살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이 화염과도 같은 색이라서 너무나 눈에 잘 띄는 탓도 있었다.
정예 군대인 성화교군은 대열을 조직해서 저항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사기가 붕괴한 상황에서는 그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대열을 조직하려고 하면 즉시 여여룡의 패잔병들이 나타나 대열을 마구 흐트러뜨렸다.
게다가 화마 성녀가 보이지 않는 점이 그들의 사기를 한계치까지 떨어뜨렸다.
비록 적군이 반항하기는 했지만 들판에서는 기병이 너무나 우세했다.
더군다나 절세 지하성의 군마는 키가 크고 우람할뿐더러 갑옷까지 두르고 있었다. 이마 위에도 뿔처럼 생긴 것이 달려 있었으니…….
퍽, 퍽, 퍽, 퍽.
그렇게 부딪치면 곧바로 날아갈 뿐이다. 피를 뿜으며, 뼈가 으스러지고, 오장육부가 전부 파열되어서 다시 깨어날 수도 없을 정도로 죽어 버린다.
기병들이 미친 듯이 적군에게 충돌하면서 미친 듯이 참살했다.
성화교군은 일대일 전투 능력 면에서도 절세 지하성의 무사들보다 떨어졌다. 단지 방금 전까지는 갖가지 사악한 비술을 이용해서 그나마 대등하게 싸웠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한 명은 말을 타고 한 명은 지상에서 달리고 있으니, 더욱 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마침내 전투 국면은 일방적인 도살로 변했다.
대규모 철수가 마침내 대규모 와해에서 대규모 도살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산과 들판 전체에 다닥다닥 뭉쳐서 도망치는 병사들로 가득 찬 걸 볼 수 있었다. 패퇴해서 도망치는 여씨의 병사들이 3만을 넘어섰다.
그 3만 명의 도망병들이 두변의 기병 4천 명에 의해 미친 듯이 따라잡혀서 죽임을 당했다.
적군은 순식간에 저항할 힘을 모두 잃었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두변은 거의 4, 50리를 미친 듯이 추격해 들어갔다.
마침내 추격을 포기한 것은 지세가 점점 더 복잡해져서 사방에 산과 밀림이 가득해지면서였다.
게다가 여씨의 패잔병들이 이미 완전히 분산되어서 더 이상 전투의 효율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절세 지하성의 군마들이 아무리 뛰어나고 튼튼하더라도 미친 듯이 4, 50리나 추격했으니 꽤나 지쳤을 것이다.
“성으로 돌아간다!”
두변이 명령을 내리자 기병 4천 명은 방향을 바꿔서 백색성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성으로 돌아간 지 20리 정도 되었을 때, 전방에 갑자기 척후병 한 명이 미친 듯이 달려왔다.
그자는 거대 늑대를 탄 척후병이었다.
“오늘 밤 별빛은 이토록 어둡고, 밝은 달은 핏빛으로 변했다!”
척후병이 질주하는 와중에 구호를 외쳤다.
거대 늑대를 탄 척후병이 쏜살같이 두변 앞으로 달려오더니, 곧바로 늑대 등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주군께 보고드립니다. 중요한 군사 상황이 있습니다!”
“말해라!”
그 척후병이 말했다.
“이문회 대인께서 이 정보는 기밀이라 주군 혼자서만 보셔야 한다고 명하셨습니다.”
두변이 야생마를 타고 십여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그가 손을 뻗으며 말했다.
“가져와라.”
척후병이 밀서 한 통을 공손하게 두변 손에 건넸다.
펑!
그 순간 그 밀서가 갑자기 폭발했다.
밀서가 폭발하면서 터져나온 것은 맹독이 아니라 암장의 온도를 넘어설 정도의 뜨거운 화염이었다.
화염이 두변의 갑옷 위로 달라붙어서는 두변의 가슴뿐 아니라, 팔, 손바닥, 온몸을 벌겋게 불태우기 시작했다.
“하하하……. 두변, 이 환관 놈아. 죽어라!”
척후병이 사납게 웃으며 손에 쥔 날카로운 검으로 목을 베려고 달려들었다.
그 사람은 두변의 척후병이 아니라 사륭석이었다.
야수처럼 사납고, 뱀처럼 교활한 사륭석!
알고 보니 그가 거대 늑대를 탄 척후병을 죽인 뒤, 그 기병의 갑옷을 바꿔 입었던 것이다.
사륭석의 거대한 검이 휙 소리를 내며 두변의 목덜미를 향해 매섭게 내려왔다.
두변의 서늘해진 눈빛에서 단혼영 공격이 쏘아져 나갔다.
사륭석은 무공뿐 아니라 정신력마저 몹시 강해서 두변의 정신력 공격이 그의 뇌를 텅 비게 만들 시간은 고작 0.5초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두변은 자신을 향해 내려오는 거대한 검을 덥석 붙잡았다.
으드득!
그리고 무참히 부러뜨려버렸다.
그의 손은 여전히 무탈했다. 이미 손이 황금빛 비늘로 덮여 있으니까.
다음 순간, 부홍빙과 기세 소성주, 계표표 세 사람이 쏜살같이 달려들어서 사륭석을 바닥에 눌러버렸다.
곧 정신을 차린 사륭석이 미친 듯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두변, 나인 줄 몰랐겠지? 너는 성화교의 마화(魔火)에 당했다. 이건 암장의 온도를 넘어서서 어떤 갑옷이든 불태우며 관통시킬 수 있으니, 살과 가죽은 말할 나위 없겠지. 곧 너의 오장육부 모두 불에 타서 구멍이 나고 고통스러워하며 처참하게 죽을 것이다!”
두변은 말없이 갑옷을 벗어서 가슴을 드러냈다.
당연히 가슴은 무탈했다.
그렇다. 그 마화가 갑옷을 불태우고 옷을 태워버렸지만, 그와 동시에 두변의 온몸이 황금빛 교룡 비늘로 뒤덮였다.
아무리 마화라 해도 교룡 비늘을 꿰뚫지 못하고 곧 꺼져버렸음을 사륭석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