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장: 빌어먹을, 여완완!
“빌어먹을, 여완완!”
눈앞이 새까매진 원천조는 끝내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우리가 두변을 너희 여씨에게 없애라고 맡겼건만 이런 결과를 가져와?
10만 대군이야, 10만 대군!
그 대군을 가지고도 이렇게 어이없이 패배해?
젠장할, 설령 지더라도 이렇게 빨리 져서는 안 되지!
적어도 이틀, 사흘은 버티다가 우리가 도착해서 너와 내가 동서로 협공하면, 두변 그 환관 놈은 반드시 죽을 팔자였다고.
한데 하루도 버티지 못했다고?
물론 이번 전투에서 여완완은 특별히 큰 잘못을 한 건 아니었다. 그녀의 패배는 필연적이고도 우연적인 요소가 가득했다.
필연적인 건 두변 군대의 전투력이 너무나 강한 데 있었다.
두변이 이렇게 특수한 곳에서 군대를 찾아왔을 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거의 모든 무사가 직업화된 무사인 데다, 복무한 지 20년 이상인 청장년들인 것을.
우연적인 요소는 두변이 불사의 기적을 펼치면서 성화교군의 사기를 떨어뜨렸다는 점이다.
설령 그렇더라도 여완완에 의해 전세가 하마터면 뒤집힐 뻔했다. 그러니 이번 전투에서 여완완은 질책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 도리어 중요한 순간 그녀는 몹시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며, 하마터면 상황을 만회할 뻔했다.
원천조는 당연히 그런 점을 몰랐으니, 여완완을 머저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이어서 그는 힘겨운 선택을 해야만 했다.
철수해야 할까? 아니면 계속 전진해야 할까?
전진한다면? 여완완의 대군은 이미 완전히 붕괴되었다. 게다가 따로 지원병이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원천조 혼자서 백색성을 공격해야 했다.
중요한 건 그가 받은 밀서에서는 여완완이 대패했다고만 적혀 있을 뿐, 두변 쪽 사상자가 얼마나 되는지, 또 병사가 얼마나 남았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만약 철수한다면?
내키지 않았다. 정말이지 내키지 않았다.
두변이 여완완의 10만 대군과 대적했으니, 설령 이겼다고 한들 사상자가 많을 테고,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백색성이 가장 취약한 순간일 터였다.
길게 한숨을 내쉰 원천조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거의 잠깐 사이에 결정을 내렸다.
“간신 두변이 황족을 모살했으니 그 죄는 모반에 해당한다. 우리는 명을 받들어 그를 토벌해야 하니, 대군은 계속 전진하라!”
원천조가 명령을 내리자, 3만 5천 대군이 계속 끝도 없이 펼쳐져서 서쪽을 향해 나아갔다.
두변이 기병 4천 명을 거느리고 백색성 안으로 들어갔다.
“대성주 만세, 만세, 만세!”
“대인 만세, 만세, 만세!”
백색성 상공에 가득하던 억압된 분위기는 완전히 흩어지고, 대신 자부심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절세 지하성의 무사들은 특유의 긍지와 자부심 때문에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다. 그 대신 자신들만의 독특한 방식을 사용해서 이 찬란하고도 위대한 승리를 자축했다.
쿵! 쿵! 쿵!
일렬로 늘어선 대군이 검으로 자신의 갑옷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런 뒤 광장에 열병해서 무예를 겨루기 시작했다.
그건 절세 지하성의 전통이었다. 그들은 체력과 정력 모두 몹시 왕성했다. 오늘의 전투 강도가 몹시 높긴 했지만 그들의 축하 의식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두변은 말에 올라탄 채, 절세 지하성 무사들의 축하 의식을 지켜봤다. 그건 장엄하고도 열렬한 의식이었다. 그들의 축하 의식은 무예를 겨룬다고 하기보다는 군무를 추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문회와 옥진 군주 모두 흥미진진하게 그들을 구경했다. 그 와중에 부홍빙은 군대를 거느리고 성벽을 계속 지켰다. 척후병은 이미 보냈고, 사공엽의 매까지 보내 정찰을 하게 했다. 중요한 건 동쪽 방향에서 원천조의 대군이 오는지 확인해야 했다.
두변이 말했다.
“의형, 천보현에 진수한 대군은 본래 많지 않은 데다, 절세 지하성의 무사들도 얼마 없었습니다. 어떻게 단숨에 무사 4천 명이 튀어나온 겁니까?”
이릉이 웃으며 말했다.
“네가 한 번 봐봐. 우리 주변에 누가 없어졌지?”
두변이 자세히 살펴보자, 기세 소성주가 없는 걸 알아차렸다.
이릉이 말했다.
“기세 소성주의 아내 또한 강한 무사라더군. 다만 기세 소성주와 혼인한 후에 아이를 낳고 키우기 시작하면서 군영에서 물러나서 현모양처가 되었지. 두 사람은 청매죽마(靑梅竹馬)라서 한 번도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떨어져 있은 적이 없었단다. 이번에 절세 지하성에서 식량을 운반해야 해서 그녀가 다시 군영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무사 4천 명은 식량을 호송하던 군대였는데 마침 이번 전투 때 도착한 것이다.”
이릉 의형의 무사 4천 명이 제때 도착하면서 전투의 승리를 앞당겼을 뿐 아니라, 두변 대군의 사상자를 크게 감소시켜 주었다.
저녁 무렵, 두변의 자작부 안에서 이문회는 사상자 통계를 낸 표를 건넸다.
3만 2천 대군에, 나중에 이릉이 지원하러 온 4천 대군까지 합치면 총 3만 6천 대군이었다.
이번 전투의 사상자는 무려 9천 3백 명이었다.
그 숫자를 본 두변은 눈매가 절로 가늘어졌다. 사상자 수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다.
하지만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사륭석의 5만 대군과 대적한 부홍빙의 부대는 사상자가 몹시 적어서 천 명도 채 되지 않았다.
여여룡 부대와 대적한 이문회 부대에도 사상자가 많지 않아서 고작 2천 5백여 명이었다. 반대로 그들은 여여룡의 1만 3천 대군을 없애버렸다.
두변에 이릉 부대까지 합쳐서 총 1만 4천 대군 중에 사상자가 뜻밖에 6천에 달했다. 절반 가까이에 달하는 수치였다.
그 숫자에 두변은 머리가 저릿해지며 가슴이 저릴 지경이었다.
그 사상자들은 전부 여완완의 성화교군과 성화 친위군의 소행이었다.
퇴각하기 전에 여완완의 성화교군과 성화 친위군에서 사상자가 대략 9천 정도였다.
그 말은 두변이 수성하는 쪽이었는데 양쪽의 사상자 비율이 2 대 3이라는 의미였다.
그나마 성화교군의 수가 많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고작 2만여 명에 불과한 데다, 그들이 두변의 불사의 기적에 타격을 받고 크게 좌절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성화교군의 공격을 절대 막지 못했을 것이다.
이문회가 말했다.
“하지만 좋은 소식도 있단다. 우리 무사들의 장비가 극도로 뛰어난 데다, 치아까지 무장한 상태라서 사상자가 만 명 가까이 났지만 사망자는 2천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7천 명은 모두 부상을 입은 것뿐이라서 치료한 뒤에 다시 전장으로 돌아갈 수 있다. 갑옷으로 엄격하게 보호받은 덕에 손발이 부러져서 불구가 된 경우도 극히 적다.”
두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 기세 소성주의 부인이 무사 4천 명을 이끌고 식량을 운반하러 왔을 때 의원 2백여 명까지 데려온 덕에 마침 부상자 7천여 명을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이문회가 말했다.
“두변, 여여룡 부대가 붕괴되어서 성화교군의 철수 진열에 달려들었을 뿐 아니라, 여완완이 중요한 순간 쓰러져서 성화교군의 사기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던 게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고 성화교군 1만여 명이 온전하게 문산성으로 돌아갔다면 앞으로 우리에게 큰 골칫거리가 됐을 게다.”
그렇다.
어찌 보면 여여룡 부대의 패잔병들이 큰 공을 세웠다. 결국 두변이 기병 4천 명을 거느리고 4, 50리를 추격해서 성화교군 4, 5천 명과 여여룡의 패잔병 만 명을 죽일 수 있게 된 것도 그들 덕이었다.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갑자기 밖에서 어떤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절세 지하성의 새 조련사로, 서신을 전하는 까마귀를 담당할 뿐 아니라, 공중을 감시하는 매까지 담당했다.
“들어오시오.”
조련사가 들어와서 아뢰었다.
“대성주께 아룁니다. 매가 동쪽 50리 지점에서 대군을 발견했습니다. 약 3만 명 이상입니다!”
두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여심할 여지도 없이 원천조의 대군이겠지.
“의부, 방씨 집단의 해외제국의 정예군은 여씨와 견주면 어떻습니까?”
두변이 묻자 이문회가 답했다.
“해외제국의 최정예군은 천마교의 천마혈군 정도이다. 심지어 더 강화된 천마혈군이라고 할 수 있지.”
두변은 말의 의미를 알아챘다. 수십 년 전 천마교주 기음음의 천마혈군은 실험용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는 반면, 지금 방계 해외제국의 천마혈군은 이미 성숙한 군대라는 의미였다.
이문회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 방계 해외제국의 최정예군은 여완완의 성화교군보다 더 강할 게다. 한데 이번에 양광에 상륙한 정예 부대 중에는 방계의 최정예 비밀 무사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 원천조 대군의 전투력은 성화교군보다 약간 낮고, 여여룡 부대보다 높을 것이다. 수는 대략 3만 5천 정도이고.”
두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지금 바로 원천조와 전투를 치르고 싶지 않았다.
물론 반드시 원천조와 두강을 죽여야겠지만 그건 여씨를 멸망시킨 이후여야 했다.
지금 전투할 수 있는 인원은 2만 7천 정도였고, 굴림 나무든 돌덩이든 기름이든, 심지어는 화살마저 바닥이 났다.
이런 상태에서 원천조의 3만 5천 대군과 전투를 개시하면 이긴다 해도 처참한 사상자가 나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추후에 여여해를 어떻게 대적하고, 또 여씨를 어떻게 없애버린단 말인가.
하지만 전투에 대한 의지가 충분해야만 이런 국면에서는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두변이 명령을 내렸다.
“전군, 휴식을 취하고 취침하라. 내일 있을 전투를 준비하라!”
그의 명령이 쏜살같이 전해졌다.
원천조, 나는 싸우고 싶지 않지만 네가 기꺼이 해야겠다면 받아주마!
명령이 전달된 뒤, 승리를 축하하던 무사들은 즉시 하던 일을 멈추고 집결해서 대열을 지었다. 가장 빠른 속도로 식사를 끝낸 뒤, 자신의 취침 자리로 돌아가서 눈을 감았다.
고작 일각 만에 그들은 전부 잠이 들었다. 내일 최고의 몸 상태를 만들어야만 있을지도 모를 전투를 맞이할 수 있으니까.
정말로 대단한 군대이지 않은가.
다음 날 아침 일찍, 아직 날이 채 밝지도 않았을 무렵.
무사 2만 7천 명이 늠름한 자세로 질서정연하게 성벽 위에 늘어서 있었다. 하루 전 전투의 피곤함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을뿐더러, 드높은 투지와 살기가 가득했다.
그뿐 아니라 모든 이가 입고 있는 갑옷은 여전히 티끌 하나 묻어있지 않고 새것처럼 빛났다. 매일 아침, 그들이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갑옷을 닦고 검을 가는 일이니까.
모든 이가 마찬가지로 치아까지 가리는 무장을 한 데다, 비수, 단검, 장검, 쇠뇌, 강궁 등 갖춰야 할 모든 장비를 장착했다.
그뿐 아니라 모든 무사의 등에는 화살이 한 통씩 가득 채워져 있었다. 물론 그들이 가진 화살은 이것이 전부였다.
바깥의 전장은 심지어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어제 두변측 수뇌부에서는 논쟁이 있었다.
첫 번째 주장은 전장을 이 상태로 유지해서 원천조에게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시체를 보여주고 그들을 두렵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두 번째 주장은 여씨의 전사한 병사들 수만 명의 목을 베어서 그 머리를 쌓아서 원천조 대군에게 충격을 주자는 것이었다.
두 가지 주장 모두 나름 일리가 있지만 두변이 한마디를 했다.
전장을 원상태로 유지해서 시체를 산더미처럼 쌓아놓든, 아니면 전사한 수만 명의 목을 베어서 머리통을 쌓아놓든, 다 상대에게 겁을 주려는 것인데 그건 무슨 목적일까? 원천조의 대군이 두려움을 느껴서 차마 공격하게 하지 못하려는 목적이 아닌가?
모든 이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두변이 말했다.
“그건 원천조에게 우리가 이번 전투를 치르고 싶지 않고, 우리가 그와 이번 전투를 치르는 걸 두려워한다고 알려주는 꼴이 아닙니까?”
이문회는 두변의 말이 몹시 기쁘고 위안이 됐다.
내 아들이 다 컸구나!
두변이 말을 이었다.
“물론 틀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번 전투를 치르고 싶지 않죠. 남아있는 물자를 거의 다 썼을 뿐 아니라, 사상자도 많으니까요. 한데 그럴수록 우리는 전의가 하늘을 찌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이어서 두변이 명령을 내렸다.
“즉시 가서 전장을 정리해라. 큰 구덩이 여러 개를 파서 시체를 완전히 묻어버려라. 전장에 시체 한 구도 보이지 않아야 한다. 다만 사방에 가득한 핏자국은 볼 수 있어야 한다!”
이윽고 어젯밤에 수천 명이 출동해서 전장에 있는 시체를 전부 모아서 먼저 불태운 뒤 완전히 파묻어버렸다.
오늘 아침, 전장에는 시체 한 구도 없이 핏자국만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