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361화 (361/648)

361장: 여여해, 피를 뿜다.

쿵, 쿵, 쿵, 쿵.

정오 무렵, 원천조의 3만 5천 대군이 드디어 나타났다.

그들의 수는 여씨의 10만 대군보다 적지만 대단한 정예군이었다. 십여 개의 진형으로 질서정연하게 서 있을뿐더러, 동작이 한 사람처럼 일치하는 경지까지는 아니더라도 거의 차이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행군하는 도중에 거의 소리도 내지 않았다. 억제되고, 조용했지만 강력한 살기만 가득했다.

대군은 끊임없이 행군해서는, 백색성 성벽과 천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3만 5천 대군이 십여 개 방진(方陣)으로 가지런히 서서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도 이들 모든 병사도 치아까지 무장한 상태였다. 방계의 해외제국은 좀더 멀리 있는 대륙에서 거대한 철광을 얻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건 노천 철광(지표면에 노출되어 있는 대규모의 광산)이었다.

광산에 있는 강철을 갑옷과 무기를 만드는 데에만 쓴다면 천 년을 써도 다 쓰지 못할 양이었다.

그러니 그 모든 병사가 장착한 갑옷과 장비는 대녕 제국과 비교하면 너무나 사치스러워서 울고 싶을 정도였다.

태양이 내리쬐니 갑옷에서 밝은 빛을 발산했다.

방계 해외제국의 군대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사실, 방계 해외제국이 발견한 건 철광뿐이 아니라 거대한 금광도 있었다.

그들이 해상 무역과 산더미 같은 황금이 있는 탓에 대녕 제국의 문무 집단을 매수할 수 있었다. 실질적인 이익을 가질 수 없으면 누가 그들을 따르며, 황제와 맞선단 말인가?

충분한 이익을 얻을 수 있으면 누구를 위해서라도 황제를 끌어내리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계속해서 그들을 방씨 집단이니 방계라고 부르는 건 사실 잘못된 것이다. 방씨 집단이란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에 불과했다.

광서 제독 원천조가 무리 속에서 앞으로 나와서 전장 전체를 살폈다.

그는 전장에 시체가 한 구도 없이, 사방에 씻을 수 없는 핏자국만 가득한 걸 발견하고 전율했다.

이건 무엇을 나타내는가?

어제의 전투에서 분명히 수많은 시체가 나왔을 것이다. 두변이 전투를 하고 싶지 않았다면 시체의 목을 베어서 머리를 쌓고서라도 원천조의 대군을 위협하고 겁먹게 하려고 시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두변은 그러지 않았을뿐더러, 도리어 전장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원천조의 대군이 공격하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다시 성벽 위를 살피니, 2, 3만 대군이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서 있었다. 그들은 일부러 고성을 외치거나 살기를 드러내지 않았다.

원천조는 이런 기질이 너무나 익숙했다. 방계의 정예군도 이런 모습이었다. 교만함, 냉담함, 상대에 대한 무시, 절대적인 자신감, 그런 것들.

두변의 군대가 이토록 뛰어나단 말인가?

그들이 입은 갑옷은 심지어 원천조 등 뒤에 있는 대군보다 더 호화로웠다. 색상이 더 선명하고 화려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왜 키까지 저렇게 큰 건지!

원천조는 두피가 저릿해져서는 냉랭한 눈으로 성벽 위에 있는 두변을 노려봤다.

이건 두변이 처음으로 원천조를 만난 순간일 뿐 아니라, 원천조도 처음으로 두변을 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원천조는 두변이 상상했던 것처럼 냉혹한 자였다. 악랄하고 냉랭하며 지독히 강한 자.

두변은 원천조가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그는 잘생기고 젊고 평온했다.

두 사람은 허공을 두고 서로를 바라봤다.

두변은 이렇게 생각했다.

‘난 지금 전투를 하고 싶지 않다. 그저 여씨를 멸망시키고 싶을 뿐이야. 한데 원천조 네가 전투를 치르려고 한다면 나도 큰 사상자가 나는 걸 감수하고 너와 끝까지 사투를 벌이겠다.’

원천조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지금 두변 너를 완전히 섬멸하고 싶지만 그러면 여씨 좋은 일만 시키는 거겠지.’

원천조가 계산해보니, 자신의 3만 5천 대군이 백색성을 함락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러려면 동시에 자신 부대가 거의 전멸할 지경이었다.

이 군대는 그의 목숨줄이었다.

두변과 냉랭하게 몇 분이나 시선을 교환한 원천조가 소리쳤다.

“전군 철수하라!”

그렇게 전투 한 번 치르지 않고 원천조의 대군은 모조리 철수했다.

그들은 곧바로 수백 리 밖에 있는 전동현 안으로 물러났다.

두변 대군의 위세가 원천조를 겁먹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대염 왕국의 왕궁 안.

여여해는 옥좌에서 잠도 자지 않고 눈도 붙이지 않은 채, 무려 하루를 기다렸다.

그는 파견한 사자가 보고하러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전장에서 진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 했다.

오늘 밤, 어떤 말로도 그의 마음속 초조함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그의 단전과 근맥까지 평온하지 못해서 집어삼켰던 현기가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더이상 파견한 사자의 보고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날이 밝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여완완의 심복 대사제가 가장 빠른 속도로 서둘러 돌아왔기 때문이다.

대사제가 군마를 타고 왕궁 안으로 달려와서는 말 등에서 그대로 굴러떨어져서는 대전 안으로 달려들어가 여여해 앞에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폐하, 폐하. 저희가 패배했습니다. 패배했습니다!”

여여해가 몸을 흠칫 떨었다. 이윽고 한참 동안이나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여전히 몹시 터무니없다는 생각뿐이었다.

성화교 대사제가 고했다.

“폐하, 저희의 10만 대군이 전멸하다시피 했으며, 도망쳐서 돌아온 사람은 2만 명이 안 됩니다.”

국왕 여여해는 여전히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쇠처럼 딱딱하게 굳은 몸이 그대로 일어서서는 뒤쪽 궁전을 향해 걸어갔다.

아무도 가까이 오지 말라는 뜻으로 손을 번쩍 흔들 뿐이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 들어와서야 여여해는 오장육부에서 들끓는 현기를 더 이상 제어하지 못했다.

푸악!

그저 수차례 피를 왈칵 뿜어낼 뿐이었다.

그와 같은 시각.

기병들이 연달아 경성 방향으로 미친 듯이 질주했다.

그들은 질주하는 동시에 미친 듯이 외쳤다.

“긴급 전보요!”

“긴급 전보!”

“긴급한 군사 정보요! 두변 자작이 백색대전에서 대승을 거두고 여씨의 10만 대군이 전멸했소!”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경악하기도 전에 우선 믿을 수 없어 했다.

‘백색 자작 두변이 누군데? 한 번도 그런 사람에 대해서 들은 적이 없는데?’

‘강대한 대염 왕국이 아침 해가 떠오르듯이 왕성한 기세를 펼치고 있는데 뜻밖에 그들이 대패했다고? 게다가 10만 대군이 전멸했다고?’

‘중요한 건 그 전투가 남녕부나 곤명부에서 치러진 게 아니라, 백색성이라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작은 성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어찌 되었든 수많은 이들이 이번에 이름 하나를 기억하게 되었다. 바로 백색 자작 두변 말이다.

전동현성은 너무 작아서 원천조의 대군이 하루, 이틀 머물기에는 충분해도 장기적으로 주둔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원천조의 대군은 전동현에서 고작 하루만 머물고 다시 남녕부로 물러났다.

남해도장의 대문 입구.

여씨의 모반으로 남녕부도 함락된 지금, 남해도장도 완전히 텅 비어 있었다.

광서 순무 두강이 대문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예전에 이문회가 바로 이곳에서 대규모 살육을 벌였소. 광서에 있는 여씨의 모든 세력, 부정부패한 관리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면서 전대미문의 좋은 국면을 만들었지요. 우리 방계는 바로 그 틈을 빌려 엄당 세력을 속이고 짧은 동맹을 맺었고. 그런 뒤 뒤돌아서 엄당을 배신하고 이옥당과 광서 순무 장양명을 죽여버렸고, 계왕을 폐인으로 만들며, 진남공의 세자를 없애버렸지 않습니까. 일거에 광서에 있는 엄당 파벌의 세력을 모조리 숙청했지요. 이어서 여씨와 모의해서 광서성을 할거했고요.”

원천조가 말했다.

“그건 대부분이 순무 대인의 솜씨니 큰 공을 세우셨소.”

“여씨가 모반해서 몇 달 안에 제국의 서남부를 점령하고, 황제가 죄기소를 쓴 뒤 자진해서 퇴위하며, 태자가 황제에 등극한다. 이것이 주군의 전략이니 한 단계도 잘못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원천조가 침묵하자, 광서 순무 두강이 말을 이었다.

“물론 당신이 백색성을 공격하지 않은 건 옳았소이다.”

길게 한숨을 내쉰 뒤, 광서 순무 두강이 탄식했다.

“생각도 못했소이다. 만에 하나라도 예상도 못했고요. 두변 그 어린 독사가 탈바꿈해서 교룡으로 변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리에게 큰 골칫거리가 생긴 겁니다.”

“그렇소. 큰 골칫거리요.”

“이제는 황제가 반격하려 들 것이오.”

두강의 말에 원천조가 말했다.

“여씨에게는 수십만 대군이 있으니, 두변의 운명이 어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요.”

두강이 고개를 저었다.

“기다릴 시간이 없소이다. 반드시 최대한 빨리 두변, 그 몹쓸 놈을 해결해야 하오.”

대염 왕국의 궁전 안.

국왕 여여해는 가만히 옥좌에 앉아 있었고, 여완완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었다.

두 사람의 낯빛이 모두 더할 나위 없이 창백했다.

여여해는 여완완이 전황을 낱낱이 고하는 걸 끝까지 들으면서도, 오랫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여여해가 말했다.

“그렇다면 이번 전투에서 너는 결코 잘못을 범하지 않았구나. 이번 전투에서 대패한 건 따지고 보면 두변의 군대가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강했기 때문이다.”

“예, 그렇습니다.”

“왕태자가 이미 귀주성을 함락시켜서, 대녕 제국 서남부에는 이제 사천성 하나만 남았다. 귀주에 주둔하는 군대, 토사, 무도 문파들 가운데 투항하는 자들이 많아서 현재 왕태자의 수중에는 20만 병력이 있다. 여여호의 수중에 있는 병력도 6만이 넘고, 우리가 10만 대군을 더 징집할 수 있다.”

군대는 이런 식이었다. 전투가 없을 때는 병사 수가 몹시 적었다.

그러다가 전투가 시작되면 병사 수가 점점 더 많아진다. 특히 모반을 일으킨 쪽이 재정과 물자 조달에 압박감을 받지 않는다면 두려울 정도로 군대를 팽창시킬 수 있었다.

여씨가 원래도 돈이 그리 부족하지 않았고 해외 방계 제국에서 식량을 끊임없이 운반해주니, 식량도 부족하지 않았다. 지금 대염 왕국이 통일한 인구는 2, 3천만 명이 넘었다. 여여해가 원하기만 하면 병력을 어느 정도 더 늘릴 수 있었다. 물론 정예 부대를 얻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여여해가 말했다.

“우리 수중에 40만 대군이 있다. 너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왕태자 여담에게 주력 대군을 거느리고 사천을 공격하라고 해야 하느냐? 아니면 그에게 회군하라고 해서 수십만 대군을 집결시켜서 두변의 백색성을 공격하라고 해야 하느냐?”

여완완이 미간을 찌푸렸다. 단번에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서남의 여러 성 중에 사천성이 함락시키기가 가장 어려웠다.

우선 사천에는 검각후(劍閣侯)라는 자가 있는데 그의 휘하에 6만 대군이 있었다. 비록 그가 황제에게 면종복배(面從腹背: 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배반함)하지만, 오히려 사천 땅을 자신의 기반으로 간주했다.

뿐만 아니라, 사천성의 후방 수비군은 무려 몇만 명이었다. 비록 전투력이 높지는 않지만 귀주, 운남성의 머저리 같은 군대보다야 강했다.

최고의 관건은 성화교가 귀주, 운남성에는 몹시 순조롭게 침투했지만 사천에는 줄곧 침투하기가 힘들었다는 점이었다.

사천성의 무도는 천도맹과 마련교가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설령 아무리 싸우기 어렵더라도 20만 대군을 출동시키면 사천성을 함락시키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대염 왕국은 진정으로 완전해져서 더는 허점이 없어지고 원하는 대로 진퇴를 거듭할 수 있게 된다.

사천을 함락시키지 못하면 대염 왕국이 취약점을 없앤다는 전략은 끝내 실패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국면에서는 사천을 공격해야만 크나큰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두변이 계속 맹위를 떨치도록 내버려둔다면 더욱더 두려운 상황이 펼쳐진다. 두변이 후방에서 세력을 확장하며, 대염 왕국의 근본까지 위협을 가할 수 있었다.

게다가 두변이 죽지 않으면 대염 왕국의 위세에 크나큰 타격을 받는다.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여여해가 말했다.

“마차를 준비하라. 과인이 직접 백색성에 가야겠다!”

여완완이 놀라 되물었다.

“부왕?”

여여해가 그만하라는 듯이 손을 저었다.

“이 일에 대해 더는 아무 말도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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