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장: 최후의 순간
경성, 황궁 안.
연로한 신하 수십 명이 질서정연하게 황제의 서재 밖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그곳에서 무릎 꿇은 지 며칠이나 지났다.
시간을 따져보면 두변과 여씨 10만 대군의 초대형 전투가 이미 시작됐을 테니, 곧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들은 어쩌면 황제가 시치미를 뗄까 봐 걱정해서 그런 것일까?
그러니 최근 며칠간, 모든 노신이 교대로 서재 밖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두변이 패전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오기만 하면 이 늙은 신하들은 즉시 황제에게 죄기소를 쓰라고 압박할 계획이었다.
그와 같은 시각.
경성 전체에 어두운 파도가 용솟음치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야간 통행 금지를 시행해서, 경성 구문(九門)의 일부 수장들이 일제히 교체되었다.
남북 병영의 군관 교체도 빈번해졌다.
이어서 군대가 한 무리씩 연달아 끊임없이 경성 안으로 진입했다.
이틀 전에 영설 공주가 휘하의 만호 한 명을 보내서 5천 대군을 거느리고 성지를 받들어 경성에 진입했다.
뿐만 아니라, 이연정의 명령을 받아 각 성에 분포한 동창의 고수들이 하나같이 경성에 들어와서 황궁 안으로 진입했다.
짧디짧은 며칠 만에 황궁 안의 시위군이 6천이나 더 많아졌다.
1만 8천 명이 넘는 대내 시위(大內侍衛: 궁중 안을 지키는 시위)가 황궁을 철통처럼 지켰다.
예민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폭풍우가 치기 전의 질식할 듯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경성의 백성들은 걸을 때도 손발을 떨며, 차마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게다가 문밖에 나갈 일이 없으면 가능한 문밖으로 나서지 않았다.
쿵, 쿵, 쿵, 쿵, 쿵.
또 군대 한 무리가 경성에 진입했다. 게다가 그들은 완전히 합법적으로, 정상적인 방어 임무를 교대하러 들어왔다.
하지만 모든 이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최근에 경성에 들어온 군대는 전과는 전혀 달랐다.
모든 병사가 완전 무장을 했고, 병사들이 거리를 지나갈 때면 조용하면서도 놀라운 살기가 가득해서 온 거리가 다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그러더니 다시 잠시 후, 또 다른 군대가 남문을 통해 경성으로 진입했다. 그 군대는 그렇게 뛰어나 보이지는 않은 데다 병사 수도 4천 정도였다. 그들은 통주 병영에서 왔다.
최근 며칠간, 얼마나 많은 군대가 임무 교대라는 명분으로 경성에 들어왔는지 모른다.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는 군대가 있는가 하면, 방계에 충성을 바치는 군대가 있고, 또 냉랭하게 방관하는 더 많은 군대가 가득 들어찼다.
모든 기운이 한곳으로 모이고 있었다.
두변의 전투 결과가 전해지기만 하면 그 모인 기운이 순식간에 폭발해버릴 것이다.
그때가 되면 어쩌면 천지가 놀랄 변고가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태자부 안.
태자가 이미 온몸에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채 냉랭하게 물었다.
“오늘 경성 안팎에 부황께 충성을 바치는 군대가 얼마나 있지?”
한 대장군이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황궁 안의 시위군을 합하면 폐하께 충성을 바치는 군대는 5만 5천이 있습니다.”
“그럼 저쪽에 충성을 바치는 군대는 얼마나 되지?”
태자가 묻자 그 장군이 답했다.
“3만 5천입니다. 한데 훨씬 더 뛰어난 군대입니다.”
“진북공 원등(袁騰)은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나? 경성 주변에 총병이 셋이 있는데 그중 둘이 그의 사람이 아닌가.”
장군이 답했다.
“중립이긴 하지만 암암리에 방계에 치우쳐서 그들에게 많은 편의를 봐줬습니다. 그의 수중에 있는 10만 대군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태자가 검을 뽑으며 말했다.
“가자, 나를 따라 궁에 들어가서 부황을 지키자!”
경성의 어떤 장원 안. 고풍스러운 서재 안에 세 남자가 앉아 있었다.
진북공 원등, 내각 수보 방탁(方琢), 내각 대신 겸 호부상서 두회였다. 조정과 재야에 막강한 권세를 휘두르는 3대 우두머리였다.
내각 수보 방탁이 담담하게 말했다.
“원등 공, 중요한 순간이니 당신의 입장이 확고해야 하오.”
원등이 말했다.
“우리 원씨는 영씨 가문에 너무 오랫동안 충성을 바쳐서 한 번에 돌아서기란 몹시 어렵소.”
방탁이 말했다.
“원등 공 휘하에 군대 수십만, 매년 조정에서 은자를 얼마나 받고 있소? 우리 주군의 손에서는 또 은자를 얼마나 받고 있소? 천진항(天津港), 천주(泉州), 강절(江浙) 등 여러 항구에서 해상 무역이 얼마나 이루어지는지 산더미 같은 돈을 벌고 있는데, 원등 공이 받는 것은 그중 얼마나 차지하고 있소? 어느 집 밥을 먹고 누구를 위해 일해야 하는지는 원등 공이 잘 아시겠지요.”
원등이 말했다.
“방탁 공, 내가 당신들에게서 돈을 가져가는 건 사실이지만, 당신들이 내 군대에 손을 더 깊게 뻗고 있지 않소? 현재 내 군대의 참장들과 총병들이 다 당신들이 준 은자 때문에 배가 부를 정도요. 그들이 내 말을 들을지, 아니면 당신들 말을 들을지도 모를 일 아니요.”
갑자기 밖에서 방검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원등 공, 제가 한마디만 묻겠습니다. 두변, 그 환관 놈이 패전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 황제가 퇴위하지 않으려고 해서 정변이 발생한다면, 우리 군대가 황제의 군대와 싸우기 시작할 겁니다. 그때 당신의 10만 대군은 어느 편에 서실 겁니까?”
갑자기 두회가 기침을 한 번 하더니 가볍게 말했다.
“방탁 공, 언제 시간이 나면 원등 공의 자제 몇 명을 보내서 해외를 둘러보게 하시지요. 주군의 해외 제국과 주군의 군대를 둘러본 뒤, 대녕 제국과 거의 비슷한 규모의 천하를 둘러보게 하고, 끝없는 철광과 금광을 둘러보게 하는 건 어떤지요?”
수보 방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좋지요. 젊은이에게 세상 물정을 보게 해서,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세상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하면 포부가 좁아질 수 없지요.”
두회가 말했다.
“내 아들 두염이 죽은 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는데, 청의가 아직도 북명검파에 있소? 효를 지킨다는 건 마음만으로도 충분하오. 그 애의 혼사를 빨리 치러야 하지, 그 애의 앞날을 지체해서는 안 되오.”
수보 방탁이 말했다.
“이번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서 황제가 퇴위한다면 청의의 혼사도 확실히 빨리 결정해야 할 것이오.”
두회가 말했다.
“적어도 이번까지는 우리는 원등 공을 압박하지 않으리다. 나는 황제를 알고 있소. 두변이 패전해서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제국의 서남부가 완전히 함락되면 그는 분명히 스스로 붕어할 것이오. 이른바 정변이나 경성대전 같은 건 황제 밑에 있는 사람들의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오. 황제는 자식을 극도로 아끼니, 차마 태자를 궁지로 몰지 않을 것이오.”
원등은 웃고 말 뿐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방탁이 말했다.
“그렇다면 기다리지요. 두변이 패망했다는 소식이 곧 전해질 것이오.”
두회가 말했다.
“곧 올 거요.”
방검지가 갑자기 밖에서 말했다.
“두 대인, 당신의 그 아들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당신이 예전에 그 아이를 포기했을 때, 그 아이가 오늘처럼 우리에게 치명적인 화근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해보셨습니까?”
두회가 담담하게 말했다.
“치명적인 화근이랄 것도 없다.”
두회의 목소리가 몹시 담담한 것이 모르는 사람을 말하는 투였다.
두회가 말을 이었다.
“방탁 공, 최암이 양주 지부를 맡은 지도 2년이 되었으니, 한 등급 승관시켜도 될 거요. 양주 지부는 검지에게 가라고 하면 어떻소?”
수보 방탁이 말했다.
“방검지 말이외까? 스물여덟밖에 안 된 아이요. 양주 지부를 맡기에는 너무 젊지 않겠소?”
두회가 말했다.
“문제될 건 없지요. 지부 직을 이미 2년이나 했으니, 5품에서 4품으로 정상적으로 승관하는 것뿐인데요.”
방검지가 냉소하며 말했다.
“두변 그 환관 놈은 열아홉인데도 백색 지부를 하고, 백색 참장까지 겸임하고 있습니다. 또 제국의 자작이고요. 두회 대인께서는 아직도 작위가 없으시지 않습니까?”
두회가 웃으며 말했다.
“날뛰는 어릿광대 하나를 황제가 목숨을 구할 지푸라기처럼 손에 꽉 쥐고 있는 것이다. 곧 죽을 사람 얘기를 꺼내서 뭐하나?”
방탁이 말했다.
“됐소. 기다립시다! 오늘쯤 소식이 올 것 같소이다.”
황궁 안.
태자는 갑옷을 입고 검을 쥔 채 황제의 서재 밖에 도착했다.
그건 황궁의 규범을 위반한 것으로, 아무리 태자라지만 병기를 가지고 황궁에 들어올 수는 없었다.
하지만 태자의 태도에 황제, 황후, 이연정 등은 몹시 기쁘고 위안이 되었다.
태자는 도착한 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바로 황제의 문 앞을 지키고 섰다. 그 뜻은 몹시 명확했다. 오늘, 누가 감히 부황께 퇴위를 압박한다면 먼저 자신의 시체를 밟고 지나가라는 뜻이었다.
서재 안.
황후는 소복 차림으로, 여전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가만히 목어를 두드리고 있었다.
매일 목욕하고 향을 피운 뒤 가만히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목어를 두드리며 기도를 올린 지 꼭 한 달이 지난 터였다.
하늘이 기적을 내려줘서 자신의 부군을 구해달라고 기도를 올렸다.
이연정도 한쪽에서 무릎을 꿇었고, 영종오 대종사는 황제와 대국하고 있었다.
지금 황제는 도리어 몹시 평온해 보였다. 평소에는 영종오와 대국해서 이기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최근에는 도리어 그가 빈번하게 승리를 거뒀다. 영종오의 마음이 완전히 흐트러진 탓이었다.
태자가 한 일, 이연정이 한 일, 영설 공주가 한 일을 황제도 알고 있었다.
그는 몹시 감동했다.
하지만 정변이 일어나도록, 경성대전이 일어나도록 만들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되면 제국은 재난을 맞닥뜨릴뿐더러 태자도 궁지에 몰리게 될 뿐이다.
두변에게도 정이 깊은데, 하물며 자신의 아들이 아닌가.
두변이 패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순간, 그는 가장 먼저 자진할 것이다.
유조(遺詔)도 다 써놓은 상태였다.
유조에는 태자에게 황위를 물려주는 것 외에 두변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설령 두변이 전투에 패배할지언정, 황제는 그가 너무 고마웠다.
천윤제의 마음이 점점 더 차분해졌다.
와라, 와. 어떤 나쁜 소식이든 오거라.
짐은 이미 모든 마음의 준비를 끝냈다!
밖에서는 은퇴한 노신들이 여전히 일제히 무릎을 꿇은 채, 최후의 순간이 도래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밖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더니, 어렴풋이 ‘백색 자작 두변’ ‘대군 전멸’이라는 몇 글자가 들리는 듯했다.
그 말을 듣자 연로한 노신 수십 명이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태조 황제, 태종 황제, 선대 황제들이여, 보셨습니까? 황제 폐하께서 날뛰는 어릿광대 하나를 총애하고, 그런 환관 두변을 중용하여 제국 서남부가 완전히 함락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영씨 선조들께서는 하늘에서 보시고 있습니까? 폐하께서 선조들이 남긴 유지를 따르지 않으시고, 뜻밖에 환관에게 작위를 책봉하였으며, 제국의 서남부를 스무 살도 안 된 어린 환관에게 위탁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천지가 무너지는 화를 초래하게 된 겁니다.”
“엄당의 두변은 나라와 백성들에게 화를 초래했습니다. 황족을 주살하고, 권력을 난폭하게 휘둘러서 그로 인해 제국 서남부의 함락을 초래했습니다. 그러한 간신은 천 번, 만 번 찔러 죽여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태조, 태종, 선대 황제시여,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시다면, 그 엄당의 화근에게 벼락을 내려쳐 주시옵소서!”
내각 대신 장사지가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폐하, 신 두변을 탄핵합니다. 그는 황족을 주살하고 나라와 백성들에게 재앙을 끼쳤으니, 폐하께서 그를 체포해 재판에 회부시켜서 능지처참해주시기를 청하옵니다.”
점점 더 많은 대신들이 무릎을 꿇고 상주서를 올리며 두변을 탄핵했다.
황제는 내심 한숨을 쉬었다.
이제, 최후의 순간이 온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