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364화 (364/648)

364장: 폭군이구나.

황궁 안.

노신들이 하나같이 머리를 조아리며 통곡했다.

“몰염치한 두변이 전투를 하지도 않고 도망친 뒤에 군사 정보를 거짓으로 보고한 게 분명합니다. 대패를 대승이라고 말하고, 자신의 대군이 전멸했건만 여여해의 대군이 전멸했다고 말입니다.”

“두변, 이 몹쓸 도적놈이 나라와 백성들에게 해를 끼칠 뿐 아니라 군왕까지 속이는 대죄를 범했습니다. 그놈을 없애지 않으면 하늘마저 용인하지 못할 겁니다!”

“폐하, 바로 당신께서 그자를 총애하고 용인해줌으로써 두변 그 도적놈이 이토록 미쳐 날뛰는 겁니다!”

노신들이 공동의 적에 대해 적개심을 불태우면서 날카로운 말을 연달아 뿜어냈다.

그들은 어찌 되었든 절대로 두변이라는 소환관이 여씨의 10만 대군을 격파했다는 일을 믿지 않을 것이다. 일개 열아홉짜리 소환관이 그 상황을 구했다고? 농담을 하지도 말아라. 그게 사실이라면 동량지재(棟梁之材: 기둥과 들보가 될 만한 인재)인 자신들은 어떤 처지에 몰리겠는가.

이윽고 노신들은 벌떡 일어나서 안으로 달려들려고 했다.

“청컨대 선조의 가법(家法)으로 엄당을 징벌해주시옵소서!”

“황제 폐하, 간신을 징벌해주시옵소서!”

하지만 내각 대신 장사지는 운주의 말을 들은 뒤 까무라칠 지경이었다.

그는 이 노신들과는 달랐다. 그는 이 전보가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두변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적인 입장에서 따져봐도 두변이 그런 거짓말을 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노신들이 달려들려고 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아직 미숙함을 깨달았다.

이 노신들은 두변이라는 소환관이 전력을 다해서 여씨의 10만 대군을 없앨 수 있다는 걸 믿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전보가 반드시 거짓일 필요는 없었다.

노신들은 내심 두변이 진짜로 이겼을지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단숨에 그 전보가 가짜라고 단언하면서 두변이 군왕을 속인 죄를 범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뒤, 곧바로 달려들어서 황제가 순종하도록 윽박지르려는 것이다.

역사상 이런 일은 적지 않게 일어났다. 문신들이 마음먹고 불량해지고자 하면 대단히 지독하게 하곤 했다.

태자가 검을 뽑고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감히 이 문을 한 발짝이라도 넘을 것이냐. 나더러 무정하다고 탓하지 말거라!”

노신 한 명이 곧바로 옷을 젖히며 소리였다.

“자, 제 심장을 찌르십시오. 저는 선대 황제를 두 분이나 모셨고, 3조를 겪은 노신입니다. 오늘 태자 전하의 검에 죽으면 저도 선대 황제께 드릴 말씀이 있겠습니다.

여러분, 대녕 제국이 2백여 년간 문인을 키워줬으니 보국하려면 지금 해야 하오. 나를 따라 뛰어 들어갑시다!

대녕 왕조의 선조들이시여, 저희는 제국을 위해, 선조께서 물려주신 강산을 위해 싸우겠습니다!

저는 제 피를 선조께 바치며, 환관을 뿌리 뽑아서 사직을 바로잡겠습니다!”

태자가 검을 뽑았지만 사방을 둘러볼 뿐 정말로 손을 쓸 수는 없었다. 이 노신들은 모두 3조에 걸쳐 황제를 모신 신하들이었고, 심지어 이중에는 황족도 있었다.

만약에 누군가가 정변을 일으켜서 모반을 하려고 한다면, 또 적이 서재에 달려들어서 부황을 해치려고 하면, 그는 전혀 망설이지 않고 검을 뽑아 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닭 모가지 비틀 힘도 없는 노신들이었다.

서재로 뛰어든 뒤에도 노신들은 여전히 황제를 겹겹이 포위한 채 무릎을 꿇었다.

내각 대신 장사지는 내각에서 작성한 지의(旨意) 하나를 펼쳤다. 그 위에는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적혀 있었다.

‘환관 두변이 황족 영충요를 모살했으니, 그의 모든 작위와 관직을 박탈하고 경성으로 잡아들여서 능지처참에 처한다. 만약 이 명을 거스르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든 가차 없이 죽여버려라.’

“청컨대 폐하, 인장을 찍어주십시오!”

장사지가 소리치자, 노신들도 따라서 소리쳤다.

“폐하, 인장을 찍어주시옵소서.”

“청컨대 폐하, 인장을 찍어주십시오!”

항장무검은 의재패공(項莊舞劍 意在沛公: 항장이 검무를 추는 것은 연회에 초대받은 유방을 죽이기 위함이었다. 언행과 속셈이 다름을 비유)이라 했던가. 그들은 이런 미쳐 날뛰는 방법을 사용해서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다. 그들의 진정한 목표는 항상 두변이 아니라 황제 자신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장면은 또 익숙했다. 역사상 이런 장면이 몇 번이나 일어났을까? 꽤나 많이 일어나지 않았나.

바로 그때, 밖에서 목소리가 또다시 울려 퍼졌다.

“운남 동창에서 긴급 군정을 아룁니다. 백색대전에서 두변은 대승을 거뒀고, 여씨의 10만 대군이 전멸하다시피 했습니다.”

잠시 후!

“호북 동창에서 긴급 군정을 아룁니다……!”

다시 잠시 후!

“사천성 검각후가 긴급 군정을 아룁니다……!”

한 성에서, 혹은 일개 세력에서 올라온 정보가 아니었다. 모두 두변이 대승을 거뒀다는 같은 말을 전하고 있었다.

노신들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황제의 두 다리를 붙잡고 소리칠 뿐이었다.

“청컨대 폐하, 인장을 찍어주시옵소서. 간악한 엄당을 벌하고, 천하의 정의를 바로잡아주시옵소서!”

황제가 큰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너희들이 정말 짐을 너무 잘 아는구나. 짐이 인자한 군왕이라서 재임 중인 대신도 죽이지 않는데 하물며 사직한 대신은 더더욱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걸 말이다. 너희 모두가 예순이 넘은 데다, 3조를 모신 원로 대신에, 짐의 스승이기도 하며, 심지어 선대 황제의 스승이기도 했지.

짐이 너희를 처벌한다면 짐은 혼군이자 폭군이 돼서 사서에 악명이 자자하게 기록되겠지.

그래서 너희 같은 노신들이 거리낌 없이 방자한 행동을 할 뿐 아니라, 이토록 터무니없는 장면을 펼쳤을 테지. 정말 감탄을 금치 못하겠구나.”

황제가 냉랭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짐이 인자한 군주인 건 나라를 위해 참은 것일 뿐이다. 후대에 내 이름에 어떤 명성이 따를지에 관해서는 짐은 개의치 않는다! 너희는 젊을 때, 황제에게 곤장을 맞는 걸 좋아하지 않았나? 문신이 황제에게 곤장을 맞게 되면, 천하에 명성을 떨쳤지. 어디를 가든 그는 불굴의 기개를 가진 서생의 양심으로 떠받들고, 우상처럼 여겨졌지.”

천윤제가 냉랭하게 명령을 내렸다.

“오늘 짐이 너희 뜻을 이뤄주겠다. 여봐라. 이 간신들을 모두 끌고 나가서 바지를 벗기고, 모든 이가 보는 앞에서 곤장 열세 대를 치거라!”

이연정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명을 받들겠나이다!”

이윽고 늑대처럼 매섭게 생긴 대내 시위 수십 명이 달려와서 사직한 노신들을 병아리 잡아채듯 잡고 나갔다.

노신들은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 않았다.

‘천윤제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지? 천윤제는 인자한 군주잖아. 예전에는 이런 명령을 내리기는커녕, 한마디 악담도 하지 않았다고!’

심지어 어떤 노신의 침이 황제의 얼굴에 튀었을 때, 황제는 침이 마를 때까지 내버려두기도 했다. 또 다른 역사에서 세상을 어지럽게 했던 정덕(正德) 황제(명나라 제11대 황제 무종武宗. 황음荒淫한 것으로 이름이 높음.)도 대신들의 욕지거리에 통곡할 뿐이었는데 천윤제처럼 착실한 사람은 어떻겠는가?

지금 그 착실한 황제가 사직한 노신들을 곤장으로 치는 일을 한다고? 정말로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폭군이구나, 폭군…….”

“걸주(桀紂: 하왕夏王 걸桀과 상왕商王 주紂. 폭군에 대한 비유)로구나…….”

“하늘이시여,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십시오!”

“대녕 제국의 선조들이여, 하늘에서 저희에게 벼락을 내려주십시오. 대녕이 멸망하려고 합니다!”

대내 시위들은 그런 말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명을 받들어 이행할 뿐이었다.

황제는 이미 자신에게 따라올 명성 따위는 개의치 않아 했다.

순식간에 노신들은 하나씩 바닥에 눌린 채, 매섭게 바지가 벗겨졌다.

퍽, 퍽, 퍽.

밤나무로 만든 곤장이 노신들의 엉덩이와 허벅지를 흉포하게 내리쳤다.

아무런 고상함도 존엄성도 찾아볼 수 없었다.

순식간에 피부가 찢기고 터지며, 새빨간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한 차례씩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울음소리가 솟구치니, 전대미문의 참상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두변, 과인과 얘기를 나누러 오거라.”

여여해의 말에 두변이 대답했다.

“여후(侯), 당신과 나 사이에는 나눌 수 있는 얘기가 없지 않습니까?”

“오너라! 네가 오지 않으면 심각한 결과가 있을 것이다.”

결국 두변은 거대 늑대를 타고 고수 수십 명을 데리고 성 밖으로 나가서는 여여해와 500미터 거리 앞에서 멈춰섰다.

“여후, 이제 이야기하시죠!”

여여해가 오히려 입을 다물자, 두변도 더는 말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했다.

결국 여여해가 물었다.

“두변, 너는 어째서 영씨에게 충성을 바치지?

물론 나도 천윤제가 제법 괜찮은 황제라는 걸 인정한다. 비록 영명하고 대단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자기 사람에게는 제법 잘해주는 황제지. 한데 나는 네가 그렇게 얄팍한 생각으로, 황제 때문에 대녕 제국에 충성을 바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유는 몹시 간단합니다. 대녕 제국은 이 시기에 멸망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선대 황제 몇 명이 어리석었기 때문에 대녕 제국이 지금의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내가 저번에 경성에 가는 와중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서 집을 잃고 떠도는 걸 보았습니다. 대녕 제국의 중서부 전체가 화산처럼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습니다. 지금 대녕 제국의 국면은 그저 나쁜 게 아니라 완전히 엉망진창입니다.”

“그런 대녕 제국에 네가 충성을 바칠 가치가 있나?”

“대녕 제국은 적어도 이 시기에 멸망해서는 안 됩니다. 대녕 제국이 멸망하면 이 땅덩어리가 사분오열될 겁니다. 북쪽에는 황금 제국의 잔여 세력이 있고, 동북쪽에는 여진 제국이 있으며, 동부 연해에는 방계가 있고, 서남에는 당신들 여씨가 있습니다. 하나의 통일된 제국이 아무리 형편없어도 사분오열된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 사실은 역사를 통해 수없이 증명되었다.

한 왕조가 아무리 부패하고 망가졌더라도 그런 왕조 안에서 대다수의 백성들은 여전히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예를 들면 동한(東漢) 말엽에 이 땅덩어리에 적어도 인구가 수천만이 있었다. 그런데 삼국 말기가 되자, 모든 인구를 합쳐도 천만 명이 되지 않았다. 8할의 인구가 전란과 전염병으로 죽었다.

더 뒤의 오호난화(五胡亂華), 더 뒤의 오대십국(五代十國) 시기에도 백성들이 겁난을 겪지 않은 시기가 있던가? 인구의 6, 7할이 죽지 않았던 때가 있던가?

정상적인 왕조 교체라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지금 대녕 제국이 맞닥뜨린 현실은 이민족의 침입, 그것도 3대 이민족의 침입이었다.

여여해가 물었다.

“대녕이 어리석어서 우리 여씨가 그 자리를 대신하겠다는데, 왜 정상적인 왕조 교체가 안 되는 거지?”

“여후, 당신의 배후에는 서역 성화교가 있습니다. 당신이 천하를 얻으면 이 땅덩어리의 문명이 철저히 소멸됩니다.”

여여해가 분노해 소리쳤다.

“너는 내가 서역 성화교와 거짓으로 결탁했음을 보지 못하는 거냐? 너는 내가 육성한 성화교는 다른 종류이고 서역 성화교에게 통제를 받지 않는 곳이라는 걸 모르는 거냐?”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고작 시작에 불과하니, 뒷일은 당신이 막아내지 못할 겁니다. 당신은 이미 성화교의 명분을 사용했으니, 성화교가 당신에게 침투하는 건 예정되어 있습니다.”

여여해는 한참을 침묵했을 뿐, 두변의 견해를 부정하지 않았다.

잠시 후에 여여해가 입을 열었다.

“나는 사실 성화교와 완전히 단절할 수 있다. 심지어 대염 왕국 내에 있는 성화교 세력을 철저하게 없애버릴 수 있다.”

0